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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하나님이 쓰시는 그릇입니다 (딤후2:20-21)

본문

사람은 하나님이 쓰시는 그릇입니다./ 디모데후서 2:20-21




성경은 우리가 진리를 쉽게 이해하도록 비유를 많이 사용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➀떡으로 비유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영혼의 양식이라는 말입니다. ➁생수로 비유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적인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라는 의미이기도 하고,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정결하게 하는 능력이 있다는 말입니다. ➂좌우에 날선 검으로 비유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적인 무기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귀를 물리칠 수 있습니다. ➃반석을 부수는 방망이로 비유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단단한 자아를 깨뜨리는 능력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➄꿀로 비유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맛있다는 의미이며, 우리의 영혼을 건강하게 만든다는 의미입니다. ⑥순금으로 비유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너무나 가치 있다는 말입니다.


오늘 설교는 성경에서 사용한 비유 중에서 그릇에 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성경에서는 사람을 그릇으로 비유합니다. 그릇을 통해서 발견하는 진리를 나누겠습니다.


 


1. 사람은 주인이 있습니다.


세상에 있는 그릇은 주인이 있는 그릇이 있고 버려진 그릇이 있습니다. 반면에 사람은 반드시 주인이 있습니다. 주인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➀자기가 주인인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모든 일을 자기 주도적으로 합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똘똘한 것 같지만 사실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 보시기에 교만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인생에 허비하는 시간이 많습니다. 잠언 16:9을 보겠습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인생이 자기가 계획한대로 된다면 좋겠으나 인생은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되는 것입니다. 자기 주도적인 사람은 하나님의 인도와 충돌하기 때문에 피곤한 인생을 살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인도를 이길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가 자기의 주인인 사람을 선택하시면 그 사람은 많은 고난을 당합니다. 왜냐하면 자아가 깨지는 과정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때 빨리 깨지면 다행인데 고집스럽게 버티는 사람들은 고난이 길고 아픔이 많습니다.


➁마귀가 주인인 사람이 있습니다. 마귀의 손에 잡혀서 마귀가 이끄는 대로 끌려가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인생이 비참해집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인생을 삽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의 주인이 마귀이기 때문입니다. 정말 불행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데 온전한 인생을 살 수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마귀와 함께 영원한 멸망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➂하나님이 주인인 사람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이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창조주이시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자기의 주인이 되거나 마귀가 자기의 주인이 되어서 살아갑니다. 감사한 것은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은 예수님의 피로 값 주고 산 하나님의 소유된 존재들입니다.


하나님이 주인된 인생은 복된 인생입니다. 왜냐하면 주인이신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시며 참 좋으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주인이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이 주인이십니다. 그래서 복된 인생입니다.


 


2. 사람은 새롭게 될 수 있습니다.


그릇의 비유는 우리 인생이 새롭게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예레미야 18:4입니다. “진흙으로 만든 그릇이 토기장이의 손에서 터지매 그가 그것으로 자기 의견에 좋은 대로 다른 그릇을 만들더라” 이 말씀에 보면 토기장이가 진흙으로 만든 그릇이 맘에 들지 않았나 봅니다. 그래서 그 그릇을 깨버리고 자기 의견에 좋은 대로 새로운 그릇을 만듭니다.


사람이 신앙생활을 시작하면 주님의 손에서 새로운 그릇이 됩입니다. 고린도후서 5:17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예수님을 믿으면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요즘 아이들은 요강이 뭔지 모를 것입니다. 우리 어릴 때는 방에 요강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화장실이 집 밖에 있었습니다. 밤중에 화장실을 가려면 일어나서 옷을 챙겨 입어야 하죠. 또 집 밖으로 나가야 하죠. 또 시골에 전기 시설도 없던 터라 무섭기도 하죠. 그래서 방 안에 요강을 두었습니다. 옛날 어느 목사님 집이 이사를 하다가 놋요강이 깨졌습니다. 그래서 마루 밑에 두셨는데 놋그릇을 만드는 장로님이 그걸 보시고는 자기에게 달라고 하여 가져갔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에 오셔서 보기 좋은 놋그릇을 내놓으셨습니다. 목사님께서 물으셨습니다. “이것이 무슨 그릇입니까?”, “목사님, 며칠 전에 가져간 요강으로 만든 그릇입니다” 깨진 놋요강이 기술자 장로님의 손에 들어가니 아주 좋은 그릇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신앙생활이 이런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 안에서 새 그릇이 되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3.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본문 20절(디모데후서 2:20)입니다.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큰 집에는 다양한 그릇이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집을 생각해보세요. 다양한 그릇이 있습니다. 큰 그릇도 있고 작은 그릇도 있습니다. 밥그릇 국그릇 냉면그릇 간장그릇 등 다양한 그릇이 있습니다. 이렇듯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 안에도 다양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생김새도 다르고 성품도 다릅니다. 달란트도 다르고 하는 일도 다릅니다. 다양성을 인정해야 대인관계가 평안합니다.


성경에서는 교회를 몸으로 비유합니다. 머리는 주님이시고 성도는 몸에 붙어 있는 지체입니다. 지체는 다 다른 것입니다. 다 눈일 수 없고 다 코일 수 없습니다. 모든 지체가 눈이라고 생각해보세요. 보는 것은 귀신 같이 보겠죠. 앞만 보지 않고 옆도 보고 뒤도 볼 것이고, 학생들은 시험 볼 때 남의 시험지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밥을 눈으로 먹을 수 없고, 숨을 눈으로 쉴 수는 없습니다. 모든 지체가 다 눈이 된다면 그 사람은 괴물이고 그 사람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몸의 모든 지체는 생긴 것도 다 다르고 기능도 다 다른 것처럼 하나님은 사람을 다양하게 만드셨습니다. 이 다양성을 인정해야 대인관계가 편안해집니다.


모든 사람이 내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고 내가 싫어하는 것을 싫어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내 맘에 들지 않는 사람을 만나면 그러려니 해야 합니다. 이상하리만큼 까다로운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함께 있으면 불편하고, 하는 말마다 얄미운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 사람 때문에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그 사람 때문에 신앙이 흔들리면 안 됩니다. 그 사람은 그대로 인정을 하고 ,나는 내 신앙을 지키고, 내 자리를 지키고, 내가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입니다. 큰 집에 다양한 그릇들이 있는 것처럼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4. 사람마다 사명이 있습니다.


그릇마다 용도가 있습니다. 국그릇은 국을 담는 일을 하고 밥그릇이 밥을 담는 일을 합니다. 사람들도 각자가 가진 사명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몸의 지체보다 더 다양하며 각자의 사명이 있습니다. 눈은 보는 사명입니다. 코는 숨을 쉬고 냄새를 맡는 사명입니다. 입은 말을 하고 음식을 먹는 사명입니다. 귀는 듣는 사명입니다. 각 지체마다 고유의 사명이 있는 것처럼 사람도 각자 사명이 있습니다.


인생은 사명대로 사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부르신 부르심을 알고 그 부르심대로 사는 것이 가장 아름답고 가장 행복한 인생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사명은 망각하고 다른 사람의 사명을 부러워하며 자신의 사명이 아닌 일을 자꾸만 하려고 합니다. 합당한 일이 아닙니다. 또 어떤 사람은 자신의 사명은 최고라고 생각하여 다른 사람들의 사명은 쓸모없는 것처럼 생각하는데, 그것 또한 합당한 일이 아닙니다. 팔은 팔의 일이 있고 다리는 다리의 일이 있는 것처럼 각 사람은 자신의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사명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일에 힘을 써 해야 합니다. 며칠 전에 제 아내가 저를 놀리려고 “도대체 잘하는 일이 뭐가 있냐?”고 했습니다. 제가 빙그레 웃었습니다. 제가 왜 웃었을까요? 첫째는 제가 저를 놀리려는 제 아내의 맘을 꿰뚫고 있었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저는 제 갈 길이 있고, 제가 해야 할 일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릇마다 쓰임새가 있는 것처럼 사람은 각자의 사명이 있습니다. 남처럼 못한다고 힘들어할 필요도 없고, 남들보다 잘하는 것이 있다고 교만할 필요도 없습니다. 왜요? 사람은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과 길이 있기 때문입니다.


 


5. 깨끗한 사람이 귀한 사람입니다.


본문 21절(디모데후서 2:21)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귀하게 쓰임 받는 그릇은 금 그릇도 아니고 은 그릇도 아닙니다. 깨끗한 그릇입니다.


그릇이 사용되어지려면 갖춰야할 조건 중에 하나가 깨끗함입니다. 우리는 그릇을 사용하기 전에 먼저 청결 상태를 확인합니다. 만약 그릇이 더러우면 먼저 깨끗하게 한 후에 사용합니다. 아무리 그릇이 좋고 비싸고 아름답고 튼튼하더라도 더러우면 쓰임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사람을 그렇게 쓰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쓰시기 전에 먼저 그 사람을 깨끗하게 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룩함이 능력입니다.


성전의 구조를 보면 성전 뜰이 있고 성소가 있고 지성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성소에 임재하셨습니다. 대제사장이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지성소에 들어가려면 먼저 성전 뜰을 통과하고 성소를 거쳐서 지성소에 들어가는 것이 순서입니다. 성전 뜰에는 번제단과 물두멍이 있습니다. 제사장은 희생제물을 드리는 번제단을 통과한 후에 바로 성소에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제사장은 손을 씻는 물두멍을 통과해야 합니다. 번제단은 우리의 구원을 위한 희생 제물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십자가를 보여줍니다. 물두멍은 말씀으로 씻어 정결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제사장은 성소에 들어가서 사역하기 전에 물두멍을 통과해야 하는 것처럼 신자가 하나님의 일을 하기 전에 먼저 죄사함을 받고 정결해야 합니다. 제사장은 물두멍을 통과한 후에 빛을 발하는 등대를 살피고 떡상을 살피고 향단에 향을 피운 것처럼 신자는 죄사함을 전제한 상태에서 세상의 빛이 되며, 영혼의 양식을 공급받고, 기도의 향을 하나님 앞에 올려드릴 수 있습니다. 대제사장은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장소인 지성소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물두멍에서 손을 씻었던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임재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깨끗함을 받아야 합니다.


미국 초대 대통령인 워싱턴이 아직 장군 시절일 때에 중요한 전투를 앞에 두고 있었습니다. 당시 연전연패를 거듭하던 워싱턴 장군의 부대는 당장 있을 전투마저 패한다면 전쟁이 아예 패배로 끝나버릴 가능성도 있었습니다. 기나긴 전투와 계속된 패배에 지친 워싱턴 장군의 군사들은 기강이 매우 해이해졌고, 그 중에는 하나님을 욕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워싱턴 장군은 모든 장교들을 불러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이번에 있을 전쟁에 우리가 승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지금의 전력으로는 냉혹히 말하면 이긴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오늘부터 특별히 병사들의 사기에 영향을 미치는 말과 하나님께 불경한 말들을 하지 않도록 잘 관리해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모독하는 사람이 하나님이 주실 복을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야 인생을 승리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도움을 받으려면 먼저 하나님께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가 깨끗한 영혼인지를 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복을 받으려면 먼저 복을 받을만한 깨끗한 그릇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에 깨끗해야 하나님 앞에서 깨끗한 그릇일까요? 얼굴이나 몸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잘 아실테고, 무엇에 깨끗해야 할까요?


➀물질 관계가 깨끗해야 합니다. 돈에 대해서 깨끗해야 합니다. 대학총장을 지내신 어느 목사님이야기입니다. 그분의 어머니가 22살에 아들을 낳고, 첫 아들이어서 하나님께 드린다고 서원을 했습니다. 특이한 것은 어머니가 그 아들에게 헌금할 돈을 주든지, 용돈을 주든지 꼭 새 돈을 주더랍니다. 자신의 아버지나 동생들에게 돈을 줄 때는 늘 헌 돈이었는데 자기에게만 늘 새 돈을 주더랍니다. 그래서 그분이 어머니께 물었습니다. 이때 어머니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는 주의 종 될 사람이니 평생 돈과 물질에서 깨끗하라고 늘 새 돈을 준다.”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그 목사님은 평생을 돈에 대해서 깨끗하게 살았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돈에 깨끗해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돈, 재물에 문제가 있던 사람은 용서 받은 일이 없습니다. 사울은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재물에 욕심을 부리다가 하나님께 버림받았습니다. 아간은 여리고성이 무너질 때 재물에 욕심을 부려서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게하시는 나아만이 나병을 치료 받고 돌아갈 때 재물에 욕심을 부려서 나병환자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계산이 정확해야 합니다. 남의 돈이나 주님의 돈에 욕심을 내서는 안 됩니다.


➁성적으로 깨끗해야 합니다. 요즘은 마귀가 음란으로 많이 역사합니다. 마귀가 성윤리를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정치 지도자들이 동성애를 합법화시키려고 하는 시대이고, 목사들 가운데도 그쪽에 손을 들어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랑이란 미명하에 음란을 로맨스로 꾸미고 있는 시대입니다. 그럼에도 그리스도인은 성적으로 깨끗해야 합니다.


초대교회가 로마제국을 무너트렸던 이유가 성적인 깨끗함이었다는 글을 읽었습니다. 당시 로마 군인들은 전쟁터에서 돌아와서 먹는 것을 즐기고, 음란과 호색을 낙으로 삼았습니다. 로마 군인들 사이에 성병이 만연했습니다. 그 당시 귀족계층의 여자들도 성적으로 문란했다고 합니다. 로마 사람들은 자기들은 성적으로 문란하면서도 정결한 신부를 얻고 싶었습니다. 로마제국 당시 성적으로 가장 깨끗한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로마 군인들은 자신들은 예수 믿지 않지만 예수 믿는 처녀와 결혼하는 것을 최고의 로망으로 여겼습니다. 이 정결한 처녀들이 로마 군인들을 변화시켰고, 제국을 변화시켰습니다.


안타가운 것은 한국교회 이곳저곳에서 목회자의 성추문의 소리가 들려옵니다. 그리스도인인데 바람을 피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인터넷을 통해서 보지 말아야 할 것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보는 교인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서 깨끗한 그릇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성적으로 깨끗해야 합니다. 음란한 시대입니다. 눈도 지키고, 마음까지 지키시기를 바랍니다.


➂마음이 깨끗해야 합니다. 마음이 청결한 사람이 하나님을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려면 마음이 깨끗해야 합니다. 작은 죄도 물리치시고, 지극히 작은 죄라도 범하면 바로 하나님께 죄를 자백하고 예수님의 피로 씻어내야 합니다. 하나님은 깨끗한 사람을 귀하게 사용하십니다.


 


6. 사람은 약한 존재입니다.


고린도후서 4:7입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질그릇은 유약을 바르지 않고 구은 그릇입니다. 그러므로 윤기가 없고 단단하지 못하고 무른 것이 흠입니다. 한 마디로 막 쓰는 값싼 그릇입니다. 하나님이 없다면 사람은 질그릇처럼 가치가 없는 존재입니다.


아동문학가 정채봉 씨가 쓴 글 가운데 “세상에서 가장 짧은 동화”라는 제목의 글이 있습니다. 내용이 정말 짧습니다. 이런 내용입니다.


세탁소에 갓 들어온 새 옷걸이한테 헌 옷걸이가 한마디 하였다. “너는 옷걸이라는 사실을 한시도 잊지 말길 바란다.”, “왜 옷걸이라는 것을 그렇게 강조하시는지요?”, “잠깐씩 입혀지는 옷이 자기의 신분인 양 교만해지는 옷걸이들을 그동안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명품 옷을 걸치고 좋은 자동차를 타고 수십억 하는 집에 사는 사람도 질그릇 같은 존재입니다. 사람들은 자기의 조건이 자기라고 착각을 하는데 그런 것들은 세탁소에 있는 옷걸이가 걸친 옷과 같습니다. 그런 것들은 잠간 있다가 없어지는 것들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대단한 사람인 것처럼 생각하지만 사실은 질그릇에 불과한 존재입니다. 그걸 모르니까 교만함 속에서 사는 것입니다.


질그릇은 단단한 그릇이 아닙니다. 떨어지면 퍽하고 깨어지는 약한 그릇입니다. 사람도 그렇습니다. 대단히 강한 것 같아도 약하기 짝이 없습니다.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망치로 머리 한대 맞으면 바보가 됩니다. 아무리 건강한 사람도 자동차와 강하게 충돌하면 중환자실에 들어가야 합니다. 죽음을 기다리는 힘없는 중환자만 약한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모두 질그릇처럼 약한 존재입니다.


프랑스의 유명한 화가 빈센트 반 고흐는 젊은 한 때, 탄광에서 일을 했습니다. 한 광부가 기계를 포장했던 천으로 작업복을 만들어 입고 있는데, 작업복 등에 “깨어지기 쉬우니 주의하시오”라고 인쇄된 문구가 적혀 있었습니다. 그걸 보고 고흐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문구는 기계취급자에게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해 인쇄한 것이었지만 고흐에게는 인생의 정체를 깨우쳐주는 놀라운 교훈이 되습니다. 인생이란 언제, 어디서 깨어질지 알 수 없는 연약한 질그릇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겸손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제가 만든 겸손의 정의입니다. “겸손이란 자신의 약함, 악함, 미련함, 불의함, 가난함을 인정하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사는 것이다.” 우리는 약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강하시며 자기를 의지하는 사람들에게 힘이 되시는 분입니다.


 


7. 사람은 주를 모시면 존귀합니다.


그릇은 내용물이 중요합니다. 신앙생활은 질그릇에 보화를 담는 것과 같습니다. 고린도후서 4:7입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여기서 보배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가치 없는 질그릇에 보배를 담으면 보배의 가치로 인하여 그릇의 가치가 달라집니다. 주님은 세상의 어떤 것보다 더 가치가 있는 보배이십니다. 신자가 된다는 말은 주님을 자기 안에 모시고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하면 인생의 가치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 변화됩니다. 그 이유는 자기 안에 주님을 모시기 때문입니다. 내 안에 주님이 계시니 생각도 말도 행동도 달라집니다. 교회생활을 하면서도 변화되지 않는 이유는 자기 속에 주님을 모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이미 우리에게 임하여 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연약한 질그릇에 임하시는 능력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질그릇이고 주님은 우리 안에 보배로 오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존귀한 사람들입니다.


 


8. 채움을 위해서는 비워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영성은 비움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지만 자신을 비워 종의 몸으로 사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를 구원 하시려던 소원을 이루셨습니다. 주님이 비우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구원은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채우기 전에 먼저 할 일은 비우는 일입니다. 무엇인가 가득 차있는 그릇에는 아무 것도 담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채우려면 먼저 내 안에 가득 차있는 것을 비워야합니다.


열왕기하 4장에 보면 한 선지생도의 아내가 엘리사를 찾아왔습니다. 그 여인의 남편은 죽었고 빚 때문에 두 아들을 종으로 내주어야 할 형편이었습니다. 엘리사는 여인에게 집에 무엇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여인은 엘리사에게 “기름 한 그릇 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엘리사는 그 말을 듣고 기름의 축복했습니다. 엘리사는 여인에게 “모든 이웃에게 그릇을 빌리라 빈 그릇을 빌리되 조금 빌리지 말아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여인에게 두 아들과 함께 집에 들어가서 문을 닫고 준비한 모든 그릇에 기름을 부어서 차는 대로 옮겨 놓으라고 말했습니다. 여인이 엘리사의 말대로 두 아들과 함께 문을 닫은 후에 그릇에 기름을 부었더니 기름이 계속해서 나와서 모든 그릇에 기름을 채웠습니다. 그 여인은 그 기름을 팔아서 빚을 갚고 남은 것으로 두 아들과 생활했습니다. 여인은 그릇에 기름을 채우기 전에 먼저 빈 그릇을 준비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받아 누리려면 내가 빈 그릇이 되어야 합니다. 물 한 잔을 채워도 컵이 비어있어야 하는데, 나의 그릇이 세상적인 것과 인간적인 욕망으로 가득하다면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어떻게 채우겠습니까? 하나님의 것을 받으려면 먼저 예수 그리스도 외에 내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비워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주님 앞에 갈 때까지 비우고 채움의 반복입니다. 내 것을 비우고 주님의 것으로 채워야 합니다. 땅의 것을 비우고 하늘의 것으로 채워야 합니다. 물질적인 것을 비우고 영적인 것으로 채워야 합니다. 이것이 잘 훈련된 사람이 신령한 사람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이 쓰시는 그릇입니다. 이 진리를 통해서 주님이 주시는 메시지를 나눴습니다.


1. 사람은 주인이 있습니다. ➀자기가 주인인 사람이 있습니다. ➁마귀가 주인인 사람이 있습니다. ➂하나님이 주인인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인 되셔야 합니다.


2. 사람은 새롭게 될 수 있습니다. 토기장이가 진흙으로 만든 그릇이 맘에 들지 않으면 부셔버리고 가루를 만들어서 새 그릇을 만드는 것처럼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3.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양성을 인정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 보다 못한 것 때문에 열등감 갖지 말고, 다른 사람보다 잘하는 것 때문에 교만하지 말고 자신의 길을 가고 자신의 일을 합시다.


4. 사람마다 사명이 있습니다. 성공적인 인생은 목숨을 걸만한 사명을 발견하고 하루를 살아도 사명대로 사는 것입니다.


5. 깨끗한 사람이 귀한 사람입니다. ➀물질 관계가 깨끗해야 합니다. ➁성적으로 깨끗해야 합니다. ➂마음이 깨끗해야 합니다.


6. 사람은 약한 존재입니다. 질그릇처럼 깨어지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의지하며 살아야 합니다.


7. 사람은 주를 모시면 존귀합니다. 질그릇이지만 보배이신 주님을 모시면 주님 때문에 존귀해 지는 것입니다.


8. 채움을 위해서는 비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받기 위해서 내 것, 땅의 것, 세상의 것, 육신의 것을 비우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성경을 가슴에 대고 믿음의 고백을 하겠습니다. “나는 질그릇입니다. 나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나는 나의 사명을 따라 살겠습니다. 나는 물질과 성과 마음을 깨끗하게 지키겠습니다. 나는 약하기 때문에 주님만 의지하며 살겠습니다. 나는 내 안에 거하시는 보배이신 주 때문에 존귀합니다. 나는 주님으로 채우기 위해서 비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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