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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내가 알았습니다 (대하33: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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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내가 알았습니다 (대하 33:10-13)




남유다에 신앙 개혁을 일으켰던 히스기야가 죽고 그의 아들 므낫세가 왕위에 올랐다(대하32:33). 므낫세는 히스기야에게 특별한 아들이었다. 히스기야는 병에 걸려 죽을 뻔 했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생명을 연장 받는 이적을 체험한 적이 있었다(왕하20:1-11).



(왕하 20:1)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매...


(왕하 20:2) 히스기야가 낯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왕하 20:3) ...심히 통곡하더라


(왕하 20:5)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왕하 20:6) 내가 네 날에 십오 년을 더할 것이며...



이 일이 있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약 3년) 태어난 아들이 바로 므낫세였다. 이처럼 므낫세는 믿음의 사람 히스기야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체험한 후에 낳은 아들이었다. 그러니 얼마나 애지중지 키웠을 것이며, 또 얼마나 신앙으로 양육했겠는가? 다른 건 몰라도 하나님의 은혜로 생명을 연장 받았던 그 사건만큼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려주고, 들려주고, 또 들려주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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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므낫세는 아버지의 신앙을 따르지 않았다. 그것도 그냥 단순히 따르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히스기야가 일생동안 일으켜 놓은 신앙개혁을 수포로 되돌려 버렸다. 본문은 므낫세가 저지른 악행이 얼마나 크고 심각했는지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대하 33:1-3) 므낫세가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십이 세라 예루살렘에서 오십오 년 동안 다스리며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들의 가증한 일을 본받아 그의 아버지 히스기야가 헐어 버린 산당을 다시 세우며 바알들을 위하여 제단을 쌓으며 아세라 목상을 만들며 하늘의 모든 일월성신을 경배하여 섬기며



(대하 33:5) 또 여호와의 전 두 마당에 하늘의 일월성신을 위하여 제단들을 쌓고



(대하 33:6) 또... 그의 아들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며 또 점치며 사술과 요술을 행하며 신접한 자와 박수를 신임하여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많이 행하여 여호와를 진노하게 하였으며



(대하 33:7) 또 자기가 만든 아로새긴 목상을 하나님의 전에 세웠더라...



(대하 33:9)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이 므낫세의 꾀임을 받고 악을 행한 것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멸하신 모든 나라보다 더욱 심하였더라




므낫세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 마치 이방인처럼 살았다. 산당을 세우고, 우상을 위한 제단을 쌓고, 목상을 만들고, 거기에 경배하고, 점을 치고, 신접한 자들을 대거 신임하고, 심지어는 자기 아들을 인신공양 하기 까지 했다. 므낫세는 하나님 앞에서 온갖 악한 짓이란 악한 짓은 모조리 다 저질렀다. 이로 인해 온 나라가 우상숭배로 들끓었다. 그 정도가 얼마나 심했던지 웬만한 이방 나라들조차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한마디로 므낫세는 철저한 우상 숭배자였다.



남유다의 역대 왕들을 살펴 볼 때에, 우상숭배를 자행한 왕들의 말로는 너무나도 비참했다. 므낫세의 할아버지 아하스는 아람, 북이스라엘, 에돔, 블레셋, 앗수르의 침략에 시달렸다(대하28:1-4,16-21). 더 위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제 6대 왕 아하시야는 북이스라엘 왕 예후에게 처참하게 암살당했다(대하22:3-4,8-9, 왕하9:13,27-28).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이 있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과거에 일어난 일들을 통해서 현재를 살아가는 교훈을 얻기 위해서이다. 북이스라엘은 차치하고서라도 남유다의 역대 왕들만 보더라도 우상숭배를 저지른 자들은 끝이 좋지 않았다. 그러므로 므낫세는 엄연한 역사적 사실을 교훈 삼아서 우상숭배를 멀리해야 했다.



하지만 어리석게도 그는 우상숭배를 일삼았다. 그러니 끝이 좋을래야 좋을 수가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므낫세는 이방 나라의 침입을 받아 포로로 끌려가게 된다(신18:9-14).



(대하 33:10-11) 여호와께서 므낫세와 그의 백성에게 이르셨으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앗수르 왕의 군대 지휘관들이 와서 치게 하시매 그들이 므낫세를 사로잡고 쇠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고 간지라



전투에서 패배하기만 해도 타격이 큰데 침략을 당해서 포로로 끌려가기까지 했으니 얼마나 큰 수모인가? 이건 왕으로서 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 그리고 하나님께 택함 받은 민족으로서 엄청난 수치이자 고통이었다. 이 모든 것이 므낫세 스스로 자초한 일이었다. 그러니 누굴 탓할 수 있겠는가? 므낫세는 왕에서 포로로, 끝없는 나락으로 곤두박질쳤다.




그런데 불행 중 다행히도 므낫세는 이 일을 겪으면서 늦게나마 정신을 차리게 된다.



(대하 33:12-13) 그가 환난을 당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간구하고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앞에 크게 겸손하여 기도하였으므로...



므낫세는 그동안 우상숭배에 찌들대로 찌들어 살아 왔다. 우상 ‘숭배’를 넘어 우상 ‘집착’, 우상 ‘중독’ 수준이었다. 자기 혼자만 그랬으면 차라리 나았을 텐데 왕이랍시고 그 권세와 권력을 이용해서 나라 전체를 우상숭배의 도가니로 만들었다. 그 죄악이 얼마나 크고 심각한가?



이랬던 므낫세가 환난을 당한 이후로 달라졌다. 우상이 아닌 하나님을 찾았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매달렸다. “고생을 해봐야 정신을 차린다”더니, 이게 영 틀린 말은 아닌 모양이다. 참으로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는 므낫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를 환난에서 건져 주셨다.



(대하 33:13) ...하나님이 그의 기도를 받으시며 그의 간구를 들으시사 그가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다시 왕위에 앉게 하시매



이렇게 해서 므낫세는 왕위를 되찾게 된다. 천만다행이었다. 더욱 다행스러운 것은 므낫세의 변화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므낫세는 왕권을 회복한 이후로 더욱 힘써 하나님을 섬겼다. 이전에는 왕의 권력을 악용해서 백성들에게 우상숭배를 명령했었는데, 이제는 하나님께서 주신 힘을 바르게 사용했다. 우상을 척결하고, 제단을 보수하고, 예배를 회복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대하 33:15-16) 이방 신들과 여호와의 전의 우상을 제거하며 여호와의 전을 건축한 산에와 예루살렘에 쌓은 모든 제단들을 다 성 밖에 던지고 여호와의 제단을 보수하고 화목제와 감사제를 그 제단 위에 드리고 유다를 명령하여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 하매



이처럼 므낫세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 왜냐하면 이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분명하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대하 33:13) 므낫세가 그제서야 여호와께서 하나님이신 줄을 알았더라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3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1. 역사를 통해 배워야 한다.


우상숭배를 저지른 왕들은 끝이 좋지 않았다. 반면에 신실하게 하나님을 섬긴 왕들은 하나님께서 끝까지 지켜 보호해 주셨다. 하나님을 떠나면 패망한다. 그러나 하나님을 따르면 형통을 누린다. 이것이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고, 성경의 가르침이다.



므낫세는 역사의 가르침을 놓쳐 버렸다. 그 결과 환난을 자초했다. 므낫세처럼 역사의 교훈을 저버리는 우를 범하지 않길 바란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신앙의 선배들을 통해서, 그리고 우리 삶 가운데 베풀어 주신 은혜의 경험을 통해서 교훈을 얻는 지혜로운 성도님들 되시기 바란다.




2. 다 끝났다고 생각되는 바로 그때에, 하나님께서 다시 시작하신다.


므낫세는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다. 한 나라의 왕이 포로로 끌려갔으니 일반 백성들의 처지는 말할 것도 없었다. 므낫세와 남유다는 이제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끝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끝내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므낫세를 다시 일으켜 세우시고, 남유다를 붙잡아 주셨다.



므낫세는 환난 가운데 기도했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셨다. 우리가 보기에는 다 끝난 것처럼 보여도 아직 끝난게 아니다. 하나님께서 다시 시작하시면 바로 그 순간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능력의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기 바란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환난에서 벗어나는 은혜를 경험하는 성도님들 되시기 바란다.




3.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므낫세는 왕이었기 때문에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 힘을 가지고 나라 전체를 우상숭배에 빠트리기도 했고, 온 백성이 하나님을 경배하도록 지도하기도 했다. 자신에게 주어진 힘을 어떻게 사용하느냐는 순전히 자기 마음이다. 하지만 거기에는 반드시 책임이 뒤 따른다. 하나님께서 책임을 물으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저마다 크고 작은 힘을 가지고 있다. 가정에서는 부모로서 혹은 자녀로서의 힘이 있다. 사회에서는 어른으로서, 상사로서, 각자의 영역에서 발휘 할 수 있는 힘이 있다. 교회에서는 직분자로서 힘이 있다. 아무 힘도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문제는 그 힘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이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힘이 적다고 해서 책임을 면하는게 아니다.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 앞에서 결산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힘을 지혜롭게, 선하게 사용해야 한다. 그래서 칭찬받는 하나님의 종이 되어야 한다.



오늘 말씀을 기억하면서 날마다, 매 순간 마다 ‘변화된’ 므낫세처럼 “이제야 내가 하나님을 알았습니다” 고백하는 성도님들 되시길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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