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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밧 과부로 본 봉사 (왕상17: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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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밧 과부로 본 봉사 (왕상 17:8-10)



8.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9.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머물라 내가 그 곳 과부에게 명령하여 네게 음식을 주게 하였느니라 10. 그가 일어나 사르밧으로 가서 성문에 이를 때에 한 과부가 그 곳에서 나뭇가지를 줍는지라 이에 불러 이르되 청하건대 그릇에 물을 조금 가져다가 내가 마시게 하라



이 시간에 “사르밧 과부로 본 봉사”라는 제목입니다. 미국에 이민해서 살고 있는 한인 2세가 명문 컬럼비아대 의과대학에 지원했는데 성적도 우수하고 집안 형편도 부유해서 무난히 합격되리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불합격 통지서가 날라왔습니다. 불합격 사유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귀하의 성적은 아주 우수합니다. 가정형편이나 여러 조건들도 만족스럽습니다. 그런데 귀하의 서류 어디를 보아도 헌혈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남을 위해서 헌혈한 경험도 없는 귀하가 어떻게 환자를 돌볼 수 있겠습니까” 




이처럼 우리에게 봉사가 없다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 신앙에서 예배 교제 전도 등 중요한 몇 가지 중에 한 가지가 봉사입니다. 만약 봉사가 없다면 기정이든 교회든 사회나 국가라도 올스톱되고 말 것입니다. 이것을 헬라어 원문으로 ‘디아코니아’(διακονια)라고 하는데 '디아코니아'는 자선과 구제의 의미를 포함한 모든 섬김을 가리키는데 ‘집사’를 ‘디콘’이라고 하는 것도 그런 어원에서 생겨난 말입니다.



성경이 말씀한 봉사란 무엇일까요?



1. 봉사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8-9절에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머물라 내가 그 곳 과부에게 명령하여 네게 음식을 주게 하였느니라” 하셨습니다. 엘리야를 위하여 그 곳 과부에게 명령하였다고 하셨습니다. 봉사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이런 봉사가 있었기에 초대교회가 박해 속에서도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명령이기에 목숨 걸고 순종해야 합니다. 물론 하나님이 예정하신 것이지 사르밧 과부가 그 명령을 직접 들었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엘리야가 사르밧으로 가서 성문에 이를 때에 한 과부가 그 곳에서 나뭇가지를 줍고 있어서 청하건대 그릇에 물을 조금 가져다가 내가 마시게 하라 하면서 떡도 한 조각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가 이르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 뿐이라 내가 나뭇가지 둘을 주워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12절) 이런 상황이었지만 순종했습니다. 봉사를 이렇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갈6:2에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했으며, 빌3:3에는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파라” 했습니다. 벧전4:8에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모두 명령형입니다.



예배를 영어로 워쉽이라고 하는데 서비스를 가리키기도 합니다. 예수님이 사탄에게 주 하나님만 경배하고 섬기라(마4:10) 하실 때 “섬기라”는 단어가 바로 봉사입니다. 예배도 중요한 영적 봉사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명령이기 때문에 기근이 와도 해야 합니다. 가난해도 해야 합니다. 오늘 죽더라도 해야 합니다. 합당치 않아도 해야 합니다. 엘리야는 이스라엘 선지자이지 시돈의 선지자가 아닙니다. 시돈은 지중해 연안에 있는 항구로서 이방인데 활동은 이스라엘에서 하고 밥은 시돈에서 먹고 그런 격입니다. 그래도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순종했습니다. 순종이 안 되면 복종이라고 하시기 바랍니다.



2. 봉사에는 기적이 따라옵니다.



13-16절에 “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한 개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 그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 그와 엘리야와 그의 식구가 여러 날 먹었으나 여호와께서 엘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 같이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 놀라운 기적이었습니다. 대접하고 나면 생겨나고 또 생겨나고 그래서 엘리야도 살고 사르밧 과부도 살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봉사의 신비입니다.



함평에서 작은 전파사를 하는 어느 집사님이 있었습니다. 그 분은 농촌의 목회자 몇 사람을 지원하고 계셨는데 참으로 신기하다고 말했습니다. 이 달에 순종하고 나면 또 순종할 수 있는 복을 주시고 이번에는 참 어렵다 했는데 어디선가 일감이 들어와서 또 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과 같이 계속하여 생겨나는 기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신본주의 신앙입니다. 신본주의 신앙은 형편이 어려워도 하나님이 하라 하시면 해야 한다는 개념이지만 인본주의 신앙은 자기 형편 따라서 혹은 할 수 있는 상황이 다가와도 하지 않습니다. 봉사라는 신앙 자체가 그 마음에 없기 때문입니다. 못하면 기도라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봉사의 소원 그 자체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신본주의에 서야 합니다. 이 신본주의에 선 사람이나 교회가 복을 받아 잘되고 있습니다. 작은 능력으로도 말씀을 지키려한 빌라델비아 교회처럼 열린 문의 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면 어떻게 하시든 복에 복을 주셔서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십니다. 아직도 복을 받지 못했다면 무언가 잘못하고 있지 않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3. 그러나 봉사에는 시험도 있습니다.



왕상17:17-18에 “이 일 후에 그 집 주인 되는 여인의 아들이 병들어 증세가 심히 위중하다가 숨이 끊어진지라 여인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이 나와 더불어 무슨 상관이 있기로 내 죄를 생각나게 하고 또 내 아들을 죽게 하려고 내게 오셨나이까” 했습니다.



하나님의 종을 영접한 가정에 복만 있을 줄 알았는데 어려운 일이 생겼습니다. 과부에게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죽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을 모셨으니 죄가 있어도 덮어지고 좋은 일만 있어야 하는데 아들이 죽을 걸 보니 오히려 죄가 불거지고 반대의 결과가 있게 되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물론 사르밧 과부의 오해였습니다.




이 때 엘리야가 아들을 달라 하여 자기가 거처하는 다락에 올라가서 자기 침상에 누이고 여호와께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의 종이 거하는 집에 이런 불상사가 났으니 보통 일입니까? 부르짖기만 한 것이 아니라 21절에 “그 아이 위에 몸을 세 번 펴서 엎드리고 여호와께 부르짖”었다고 했습니다. 몸으로 아이의 가슴에 충격을 주며 즉 응급처치를 하면서 기도했습니다. 그 결과 혼이 다시 돌아오며 살아났습니다.



이처럼 봉사에는 시험도 있습니다. 내 심령이 죽을 수 있습니다. 봉사하다가 내가 시험에 들 수 있습니다. 힘 빠지게 하는 일이 생기기도 합니다. 말도 안 되는 일을 당하기도 합니다. 혹은 나에게 감사하기를 바라고 내가 영광을 받으려는 시험도 있습니다. 섬김을 받고서도 감사할 줄 모르고 대접 받기를 당연시 하고 불평하는 사람이 있다면 기본도 안된 사람이지만 그러나 이런데 신경 쓰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말씀대로 하시기 바랍니다. 마5:44-45에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하셨습니다. 하나님도 그렇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4.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야 합니다.



다시 8-9절에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머물라” 놀라운 것은 사르밧 과부가 귀한 일을 했지만 어디에도 이름이 소개 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름도 없는 여인입니다. 알려진 거라야 사르밧 과부라는 것뿐입니다.



여기에 귀한 봉사의 비밀이 나타납니다. 이처럼 봉사는 청지기 정신으로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것으로, 하나님의 뜻 안에서, 그의 명령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힘을 받아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는 것이 청지기 정신입니다.



그래서 벧전4:10-11에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마6:1-4)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봉사하시고 예수님께서도 봉사하시니 우리들도 봉사하십시다. 봉사하는 마음에 기쁨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봉사가 하나님의 명령임을 깨닫고, 어떤 상황에서도 어떤 방해가 와도 다 이기고, 청지기 정신으로 예수 이름으로 온전히 하나님께 쓰임을 받고, 모든 영광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가장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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