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요단강을 건너가게 하소서 (신3:23-27)
본문
나도 요단강을 건너가게 하소서/신명기3:23-27, 마태복음25:1-13
할렐루야!!
오늘도 하나님의 성전에 나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성도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한량없는 은혜와 사랑과 은총이 충만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월은 쉼 없이 흘러서 어느덧 12월이 되었습니다. 새해를 맞이하여 새로운 각오와 결심으로 새롭게 한해를 시작한 때가 바로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마지막달이 되었습니다. 이 마지막 달을 맞이하여 성도 여러분들도 감회가 새로우리라고 믿습니다.<아 멘!>
이 12월은 「결산의 달」 입니다. 지나간 1년 동안 우리들은 무엇을 어떻게 얼마나 하였는가를 결산해야 합니다. 주님의 심판대 앞에서 준엄한 판결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이 12월을 잘 마무리를 하여야 할 줄로 믿습니다.<아 멘!>
주님의 심판은 피할 수가 없습니다. 반드시 거처야 할 관문입니다. 그 때에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도 충성하였으니 내가 많은 것으로 갚아 주리라” 는 주님의 사랑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반대로 “악하고 게으른 종아 네가 적은 일에도 충성치 않았으니 나를 떠나 마귀와 그의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무저갱에 들어가라” 고 하신다면 어찌하겠습니까?
성도 여러분!!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판사가 낚시를 무척이나 좋아하였습니다. 어느 날도 낚시도구를 챙겨서 바다낚시를 갔습니다. 그날따라 고기가 잘 잡혔습니다. 한참 낚시에 정신이 팔려서 열중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가냘프게 「사람 살려…」하는 소리가 들려와서 소리 나는 곳으로 달려가 보니 어떤 젊은이가 물에 빠져서 허우적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판사는 온 힘을 다하여 그 청년을 건져내어 살렸습니다. 그 청년은 고맙다고 몇 번이나 인사를 하면서 생명의 은인이니 평생 잊지 않겠노라고 하면서 돌아갔습니다. 이 판사는 좋은 일을 하였다는 기쁜 마음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후 세월이 흘러서 이 판사는 그 때의 일을 까마득히 잊어버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가지 재판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날 재판을 받는 죄수는 살인강도를 한 흉악범이었습니다. 그런데 재판석에서 보니 어디서 본 듯한 얼굴이었습니다. 자세히 더듬어 보니 1년 전 낚시를 하다가 구해준 바로 그 젊은이였습니다. 이 죄수도 재판장을 알아보고 하는 말이 “ 재판장님 1년 전에 내가 물에 빠져서 죽을 수밖에 없었을 때에 나를 구해서 살려 주셨으니 이번에도 나를 또 한 번만 살려 주십시오 그러면 내가 평생에 그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재판장은 그 젊은이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1년 전에 내가 그대의 목숨을 구해 주었지만 이제는 구해줄 수가 없네” 그리고 그에게 중형을 선고하였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젊은이와 같이 우리 인생들은 죄악에 빠져서 멸망 받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었는데 주님이 오셔서 우리들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 때는 무조건적인 구원입니다. 그러나 다시 재림하시는 주님은 죄와 상관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서 죄 사함 받아 세마포 예복을 입고 기름과 등불을 준비한 신부 된 성도를 부르러 오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아 멘!>
오늘 본문 신명기 말씀은 이에 앞서 민수기 20장에서 연결이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므리바에 이르렀을 때에 백성들이 먹을 것이 없고 물이 없다고 모세와 아론을 공박할 때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하니까 하나님은 반석 앞에 백성들을 모으고 그 반석에게 명하여 물을 내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백성들을 모아 놓고 그만 하나님께 범죄를 하고 말았습니다.
(민20:10-11) “모세와 아론이 회중을 그 반석 앞에 모으고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반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하고 모세가 그의 손을 들어 그의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니 물이 많이 솟아나오므로 회중과 그들의 짐승이 마시니라” 그래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민20:12절 말씀에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회중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고 하셨습니다.
모세가 40년 간 갖은 고난과 죽음을 무릅쓰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요단강 건너편까지 인도하여 왔는데 하나님은 모세에게 명하시기를 비스가산에 올라가서 요단강 건너편을 바라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가나안땅을 바라보기만 하고 건너가지는 못하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미 이 말씀은 민수기 20장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예고하신 바가 있습니다.
그러나 설마 하였는데 40년의 고난을 겪으면서 이제 꿈에도 그리던 가나안땅을 눈앞에 두었는데 하나님은 모세에게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얼마나 애석하고 원통한 일이겠습니까? 꿈에도 그리던 가나안땅인데 그곳을 눈앞에 두고도 들어가지 못하는 모세의 심정이야말로 얼마나 괴롭겠습니까?
그리고 마태복음 25장에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열 처녀의 비유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 중에 신랑을 기다리던 열 명의 처녀들은 똑같이 밤을 지새우며 신랑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미련한 다섯 처녀는 기름이 부족하여 등불이 꺼져갔습니다. 이들은 부랴부랴 기름을 사러간 사이에 신랑은 도착이 되었고 혼인잔치 집의 대문은 굳게 닫혀 버렸습니다.
단지 기름이 부족하다는 이유만으로 저들은 ‘미련한 처녀’ 라는 낙인이 찍히고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밤새워 기다린 것이 허사가 되었습니다. 아무리 대문을 두드려도 열어주지 않았습니다. 기쁨과 즐거움의 잔치를 눈앞에 두고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들은 이 두 곳의 말씀 중에서 공통점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그 공통점은 바로 모세나, 신랑을 기다리던 처녀들이나, 똑같이 마지막에 들어가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그렇게도 寤寐不忘(오매불망) 그리워하던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였고 다섯 처녀는 그렇게도 기다리던 혼인 잔치에 들어가지 못하였습니다. 모두가 마지막 순간에 있었던 일입니다.
성도 여러분들이여!!
이 말씀을 통해서 깨닫는 바가 있을 줄로 압니다. 우리들도 하나님을 믿지만 마지막 순간에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게 될 것을 염려하여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마태7:22-23절에 말씀하시기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 성도들은 12월 달을 맞이하여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하겠습니다.
1. 비스가산 위에서 부르짖는 모세의 절규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모세는 하나님께로부터 가나안땅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는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 애원을 합니다.
“하나님 나로 하여금 저 요단강을 건너가게 하소서”
“주여! 나로 건너가게 해 주세요”
아무리 부르짖어도 하나님의 뜻은 변함이 없습니다. 요단강 건너편 모압 평지까지에 백성들을 인도하여 놓고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느보산의 비스가 산봉우리에 올라 멀리 눈을 들어 가나안땅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울부짖어 기도합니다.
혼인잔치에 들어가지 못한 다섯 처녀도 대문을 두드리며 울부짖습니다.
본문 11절 말씀에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주소서”
그러나 안으로부터 들려오는 대답은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는 대답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모세의 심정을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지막 순간에, 죄를 짓든지, 잘못하여 하나님 앞에 가지 못하고 어두움에 쫓겨나지 않도록 항상 깨어 근신하여 기도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 멘!>
(마25:30)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2. 그러면 모세가 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였습니까?
민수기 20장의 말씀에 보면 모세를 비롯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신 광야에 이르렀을 때에 물이 없어서 백성들이 동요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백성들의 동요는 곧 불평으로 변하였고 불평은 원망으로 변하였습니다. 그 원망은 바로 모세와 아론에게로 향하였습니다.
(민20:4-5)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회중을 이 광야로 인도하여 우리와 우리 짐승이 다 여기서 죽게 하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여 이 나쁜 곳으로 인도하였느냐 이곳에는 파종할 곳이 없고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고 마실 물도 없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모세는 엎드려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영광중에 나타나셔서 모세에게 일러주었습니다.
8절 “지팡이를 가지고 네 형 아론과 함께 회중을 모으고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는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라 하라 네가 그 반석이 물을 내게 하여 회중과 그들의 짐승에게 마시게 할지니라”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백성들을 반석 앞에 모으고 백성들에게 훈시를 합니다. “반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하고 모세가 그의 손을 들어 그의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니 물이 많이 솟아나오므로 회중과 그들의 짐승이 마시니라” 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회중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청천 하늘에 벼락과도 같은 말씀입니다. 지금까지 무엇 때문에 온갖 고생을 감수하면서 광야 길을 걸어왔습니까?
그러면 모세는 왜 가나안땅에 들어 갈 수가 없었을까? 무슨 큰 죄를 범하였기에 허락지 않았을까요?
(1)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민20:12절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라고 하였습니다. 즉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하실 때에 “반석에게 명하여 물을 내게 하라” 고 하셨습니다. 반석을 치라는 말씀이 아니었는데 모세는 반석을 지팡이로 쳤습니다. 그도 두 번씩이나 쳤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아니한 것입니다. 물론 모세가 고의적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해서 한 행동이 아닙니다. 그러나 부지중에 잘못하여 지은 죄도 어디까지나 죄는 죄인 것입니다.
(2)두 번째 이유는 하나님의 거룩한 영광을 나타내지 아니하고 자신을 나타낸 것입니다.
민20:10절에 보면 모세가 백성들에게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게 하랴” 고 하였습니다. 물을 내게 하는 것은 모세가 아니고 하나님입니다. 이 중요한 사실을 모세는 순간적으로 잊었던 것입니다.
(고전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고 하셨습니다.
3. 그러면 오늘의 우리들은 어떻게 하여야 하겠습니까?
사랑하는 ○○교회 성도 여러분!!
인류 역사상 모세와 같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누구보다도 열심도 있었고 믿음도 있었고 무슨 일에나 기도로서 하나님의 인도함을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요단강까지 인도하였습니다.
애굽의 바로와 싸우면서 백성들을 이끌어 내었고, 광야 40년 동안에는 백성들의 불평과 원망과, 때로는 돌로 치려고 하는 위험을 무릅쓰고 인도하여 온 모세를 하나님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의 열 처녀의 비유에서 기름을 가지지 못한 처녀들이야 타당한 이유가 있지만 모세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한 가지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은 모세와 같은 사람도 얼마든지 버리시기로 작정만 하신다면 버릴 수 있고 또 길가의 돌멩이와도 같은 세리와 창기들을 통하여서도 얼마든지 아브라함의 자손을 만들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마3:8-9)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마7:22-23)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라고 하신 말씀을 보아서도 능히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 성도들은 어떻게 하여야 하겠습니까?
(1) 우리 성도들은 믿음을 굳게 지키고, 부지중에 라도 죄 짖지 말아야 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서, 우리 주님 다시 오시는 날에 주님 앞에 담대히 설 수 있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눅18:8)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2) 항상 깨어서 근신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마24:43)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둑이 어느 시각에 올 줄을 알았더라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마25:13절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
마26:41절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눅 21:36절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고전16:13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라”
엡6:18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라”
골4:2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살전5:6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
벧전 5:8절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3) 기름과 등불을 준비해야 합니다.
기름만 있어서도 안 되고 등만 있어서도 안 됩니다. 반드시 등과 기름이 있어야 불을 밝힐 수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25장의 열 처녀 비유 중에서도 등만 가진 사람은 신랑이 올 때에 불을 밝힐 수가 없어서 바깥 어두움에 쫓겨 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등은 우리의 믿음입니다.
그리고 기름은 위로부터 임하는 성령의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믿음과 성령의 은혜는 항상 공존하여야 하며 어느 한 가지가 없으면 기능을 발휘할 수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반석과 같은 믿음을 소유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말세에 남종과 여종에게 물 붇듯 부어 주시마고 약속하신 성령을(행2:17, 욜2:29)충만히 받아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과 구원의 불을 온 천하에 밝혀야 될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마5:14-15)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결 론 : 오늘의 말씀을 마칩니다.
성도 여러분!!
2019년이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금년 얼마 남지 않은 이 중요한 시기에 지나간 날들을 돌이켜 보면서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움이 없는 믿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지나간 1년뿐만이 아니라 내 평생 살아온 길을 한 번 뒤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온갖 죄악과 허물로서 얼룩진 우리의 일생이었습니다. 이제는 바로 깨닫고 바른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시49:20)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마지막 순간에 하늘나라의 천국 문 앞에서 쫓겨나는 슬픈 운명이 되지 말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비스가산 꼭대기에서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여, 울부짖는 모세를 생각하고, 기름준비 하지 못하여, 혼인 잔치에 들어가지 못하여, 울부짖는 미련한 다섯 처녀를 생각하면서 우리 ○○교회 성도들은, 모두 천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 준비를 잘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
다 같이 복음성가를 부르고 마치겠습니다.
눈물의 참회록
1. 지금껏 내가 한일이 주를 위한 것이었는지
지나간 세월 돌이켜 주님 앞에 아룁니다.
이 한 몸 주를 위하여 목숨 버린다 했으나
주의 영광 뒤로하고 나의자랑 앞세웠으니
내가가는 이 길이 주를 위한 것보다
예수이름을 파는 가롯유다와 같습니다.
2. 한평생 주를 위하여 변함없이 살겠다던
베드로 같은 믿음이 내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내 맘 속엔 허영과 교만만 있고
주님지신 십자가는 짐이 된다 벗었습니다.
내가 가는 이 길이 주를 위한 것보다
율법을 앞세우는 바리새인과 같습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