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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함으로 화목케 하시는 은혜 (레7: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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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함으로 화목케 하시는 은혜 (레위기 7장 11-2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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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는 참 읽기 힘든 책이라고 합니다. 동물을 자기 손으로 직접 잡아서 죽이고, 털을 제거하고, 가죽을 벗기고, 피를 씻어내고, 몸을 분해하여 각을 떠서 제단에 올리는 과정이 계속 반복되다 보니 어려울 수밖에 없고, 동물을 죽이는 생생한 장면 때문에 거부감이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제사법은 레위기 7장까지만 나오고, 그 뒤에는 제사장의 위임식이나, 정하고 부정한 음식에 대해, 그리고 일상적인 사회생활을 규정하는 소소한 법들이 나오기 때문에 인내를 가지고 읽다보면 그리 어려운 책도 아닙니다.


 


레위기 7장까지 길게 소개 되는 제사법도 이것만 아시면 간단합니다. 레위기에서 언급하는 제사의 종류에는 5가지가 있습니다.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 이 다섯 가지 제사가 5장까지 순서대로 나오면서, 각 제사에 필요한 희생 동물들이 무엇이냐(소, 양, 염소, 비둘기..) 혹은 곡물(가루)이나 액체(기름, 포도주..) 등이 무엇이냐를 설명합니다. 다섯 가지 제사가 있다는 것만 알아도 레위기 5장까지는 그냥 읽어 진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참 쉽죠?


 


그런데 제사 중에 속죄제와 속건제를 잘 구분하지 못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속죄제’는 다른 사람과는 상관없는 자신 만이 아는 은밀한 개인의 죄에 대해서 회개와 용서를 구하는 제사이고, ‘속건제’는 하나님이 정하신 성물을 범하거나(만지고 훼손 하는 등), 이웃에게 범죄 한 것이 있을 때 드리는 제사로, 이 제사에서는 잘못에 대한 배상 범위가 정해집니다. 속죄제는 개인의 죄, 속건제는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죄라고 구분하시면 됩니다. 이렇게 레위기 5장까지는 다 해결이 되었고, 나머지 6, 7장은 다섯 가지 제사종류의 추가적인 보충 설명이 반복됩니다. 이렇게 7장까지가 순식간에 정리되었습니다. 참 쉽죠?


 


이왕에 제사 종류 5가지를 설명 드렸으니, 이 다섯 가지 제사를 드릴 때 행하는 4가지 제사방법도 알려 드립니다. 첫째는 전제, 액체를 제단에 부어서 드리는 방법이고, 둘째, 화제, 불로 완전히 태워서 드리는 방법, 셋째, 거제, 제물의 일부분(뒷다리 등)을 들어서 드리는 방법이고, 넷째, 요제, 제물을 손으로 흔들어 드리는 방법입니다. 5가지 제사 종류, 4가지 제사 방법이 있다는 것을 참고 하시기 바랍니다. 읽지 않고 여기 까지 듣기만 했는데도 다들 어렵다는 표정이시네요. 인내를 가지고 읽으시다보면 성경은 어렵고 쉬운 부분에 상관없이 깊이 깨닫는 은혜를 주십니다. 말씀을 더욱 더 사모하고, 말씀 안에서 진리를 발견하고, 말씀 안에서 삶의 여러 가지 문제의 해결 방안을 공급 받고, 말씀으로 올바른 삶의 기준을 세워 가시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말씀은 특별한 구절입니다. 제가 특별함의 의미를 부여한 것은, 오늘 말씀 중에 성경 전체에서 ‘감사’라는 말이 처음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레위기 앞 선 책인 창세기와 출애굽기에는 ‘은혜’ 라는 단어는 31번, ‘사랑’이라는 단어는 19번이나 등장하지만, ‘감사’라는 단어는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세상이 창조되고, 홍수 심판을 받고, 애굽을 탈출하는 과정 중에 ‘감사’라는 단어가 쓰이지 않았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그만큼 레위기에 처음 등장하는 ‘감사’라는 단어가 새롭게 느껴지고, 특별히 ‘화목제사’를 드리는 내용에서 나온다는 것에서 더 큰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12절과 15절에서, “감사함으로 드리는 화목제물”이라는 말씀이 연속으로 나옵니다. 왜 성경에서 화목 제사를 드리는 장면에서 감사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했을까요? 아마도 감사라는 단어가 레위기에서 처음 나온다는 것도 오늘 처음 아신 분도 많으실 겁니다. 이유는 너무나도 분명합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가 좋지 않은 관계였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하나님과 관계 개선에 노력해서 사이를 좋게 하는 것이 급선무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사람이 사이가 멀어지는 이유는 단 한 가지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선택하지 않고 세상을 선택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이라는 말 속에는, 내가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을 우선적으로 선택하는 것을 말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렇게 선택하면서, 이것이 최선이며 곧 나의 행복이라고 여기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내가 하나님을 먼저 선택하지 않고 세상을 선택하는 것을 “죄”라고 규정 하고 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죄”라는 것은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법이나 규정 등을 어기는 일반적인 상황을 훨씬 뛰어넘어서,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되지 않은 머릿속의 생각들, 입으로 나오는 말 한마디, 어떤 계획이나 판단, 결정과 행동 하나 하나, 이 모두가 다 죄 라는 것입니다.


 


“아니 내가 내 인생 살아가는데, 내 인격인데, 내 마음대로 말하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며 사는 것도 문제인가?” 이해 안 되고 동의하기 어렵다고 하더라도, 오직 유일하게 선하신 하나님으로부터 의도 되지 않은 모든 것은 다 죄라고 성경은 분명하게 규정하고 있습니다. (갈 3:22,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었다. 롬 14:23,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니라, 히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 믿음의 주인, 곧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따르지 않는 모든 것은 죄라는 결론) 이것은 우리를 통제하기 위함이 아니라, 죄를 벗어나게 되면, 상상하지 못하는 자유와 평안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더 좋은 것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하심 이라는 것을 받아 들여야 합니다.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과 사이좋게, 친하게 지내는 화목의 시간을 결코 보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죄에 대해서 인정하지 않고, 적당히 묻어두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때에 듣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오는 것을 절대로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미워 하셔서가 아니라 너무나도 사랑하시기 때문에 거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너무나 사랑하셔서 언제나 함께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셨는데, 그 해결의 실마리가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려 주려고 성경에서 ‘감사’를 ‘화목제사’와 연결시켜 제일 먼저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은 화목을 이룰 수 있는 실마리를 풀어가는 사람입니다. 이미 화목함을 이룬 사람은 범사에 감사하며 기쁨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 감사함을 입에서 떠나지 않게 하십시오. 감사하는 마음을 쌓아 두거나, 감사의 고백을 미루지 마십시오. 하루를 마치고 잠들기 전에 기도하시면서 모든 생각나는 것을 충분하게 감사하는 습관으로 생활하십시오. 하나님은 감사하는 자들에게 가까이 오게 하심을 허락하시고, 화목의 은혜를 내려 주십니다. 00교회 모든 성도는 감사를 풍성하게 드리는 가운데, 하나님과 항상 사이좋게, 친하게, 기쁨으로 지내시는 화목의 은혜로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럼 레위기에서 말하는 감사함의 화목제물을 드리는 규정을 살펴보면서, 우리의 감사 생활을 점검해 보겠습니다.


 


 


첫째,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화목을 구할 때는, 내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화목제사에서는 기본적으로 불에 태워서 드려야 할 희생 동물이 반드시 필요한데, 소나 양, 그리고 염소 중에서 선택해서 드립니다.(레 3장) 12, 13절에서 보면, 이러한 희생 동물과 함께 드려야 할 추가적인 예물들이 나옵니다. 총 네 가지인데, ① 기름 섞은 무교병, ② 기름 바른 무교전병, ③ 고운 가루에 기름 섞어 구운 과자(이상 12절), ④ 유교병(13절)입니다. 무교냐, 유교냐는 누룩이 들어갔느냐, 들어가지 않았느냐의 차이를 말하는 것이고, ‘병(餠)’이라는 것은 한자로 떡 병자인데, 유대인 방식으로 구운 빵을 말합니다. 토핑 없는 피자라고 생각하시면 연상이 되실 겁니다. 그냥 병과 전병의 차이는, 병(餠)은 지름이 20~50cm(두께 1cm) 되는 큰 빵이고, 전병(煎餠)은 우리나라의 부침개 정도 되는 호떡만한 빵을 말합니다.


 


화목제사에 이 네 가지를 “감사제물(희생동물)과 함께 드리라”라고 규정해 주셨습니다. 가짓수가 네 가지이고, 크기와 내용도 다르지만, 크게 누룩이 들어 있느냐, 없느냐로 나뉩니다. 성경에서 누룩은 죄를 상징합니다. 누룩이 있느냐 없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누룩이 들어 있는 빵이라고 할지라도, 희생제물과 함께 불에 태워지면 모든 것이 사라집니다. “감사제물과 함께 드리라”는 말씀 속에는 현재 나의 모습, 나의 몰골 상태가 죄에 쪄들어 있든, 그렇지 않는 상관하지 말고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 나아기만 한다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희생하심의 그 은혜로 우리의 모든 흠결이 다 태워지고 사라지는 용서의 은혜를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함께 드리는 예물이 각각 나뉘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나아가는 것과 남이 나아가는 것은 완전 별개라는 뜻입니다. 어느 누구도 나의 나아감을 대신해 줄 수는 없습니다. 내가 내 모양 그대로 가지고 감사함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그 누구도 도와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분들이 계십니다. “나는 너무 죄가 많아서 교회에 나가기 힘들어요. 내 상태가 조금 나아지면 교회에 나갈께요” 나아지면 나오신다고요? 우리 인간은 나약하기 짝이 없어서 죄를 스스로 이겨낼 능력이 없습니다. 나아지기를 기다리고 묵혀두면 좋아지기는커녕 더 죄에 붙잡혀서 넘어지고, 무너지게 되어 잇습니다. 결코 나아지지 않고 악화만 됩니다. 하나님은 병들고, 상처 받고, 죄에 물들어 있는 사람을 고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 내 모습 그대로 빨리 나아 갈 때에만 죄 문제를 해결 받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으로 인해 구원 받았지만, 여전히 죄의 유혹에 시험 당하고 있고, 여전히 누룩이 가들 들어 있는 채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누룩은 부풀어 오르고 터져버려서 우리의 모습을 흉측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그 일그러진 모습을 부끄러워하지 마시고, 그냥 그대로 나오세요. 무조건 나아오는 자에게는 죄를 불태워 주시고 화목의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단지, 우리가 나아갈 때에는 “감사함으로,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나아가면 됩니다. 00교회 모든 성도는 망설이지 않고 내 모습 그대로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 내 안에 쌓여 있는 죄의 누룩을 제거하여 깨끗함 받고, 하나님과 함께 기쁘고, 행복한 화목의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둘째,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화목을 구할 때는, 받은 만큼 나누어 주는 축복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15절에, 감사함으로 드리는 제물의 고기는 그날에 먹고 이튿날 까지 놔두지 말라고 하였고, 17절에, 셋째 날 까지 고기가 남아 있으면 불사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지금 먹고 있는 것도 충분한데 그 다음 날의 먹을 것 때문에 염려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매일 매일 일용할 양식을 주셨음에 감사함으로, 맛있게 먹는 데만 집중하면 됩니다. 또 하나는, 그 날에 먹을 수 있을 만큼만 먹고, 남겨질 정도로 풍성한 음식들이 있다면 이웃에게 기쁨과 감사함으로 마음껏 나누어 주라는 의미입니다.


 


18절에서, 만약 셋 째 날에도 화목제물의 고기를 먹으면, 하나님이 기쁨으로 제사를 받지 아니하고, 드리는 사람의 예물은 가증한 것이 되고, 고기를 먹은 사람은 죄를 짊어진다(벌을 받게 된다-표준새번역)고 합니다. 하나님과 화목하려다가 오히려 낭패를 당할 수도 있는 엄중한 규정을 세워 놓으셨습니다. 이렇게 까지 엄하게 말씀 하신 이유는, 은혜를 많이 받고 누리는 사람은 그 만큼 더욱더 그 은혜를 나누어 줄 의무도 있다는 것으로 풀이될 수 있습니다.


 


은혜는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고, 은혜 받으면 평안하고 기쁨이 넘칩니다. 그 좋은 것을 나만 누리는 것은 대단한 사치 일 수 있습니다. 은혜는 함께 나눌 때 그 기쁨이 배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마다 받은 화목의 은혜는 나만 누림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아직 하나님을 모른 채 죄와 짝하여 지내면서, 하나님과 대립하고 원수의 관계를 이루고 있는, 내 가족, 내 이웃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 날에 다 먹고 조금이라도 남기지 말라”는 말씀처럼, 화목케 하시는 은혜를 풍성하게 주시는 것은, 반드시 나눔의 주체가 되라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제 우리 모두가,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나아가 화목의 은혜를 누리는 것을 뛰어 넘어서, 나를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나를 통해서, 화목케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쁘게 받아들임으로, 그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는 놀라운 구원의 역사가 일어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셋째,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화목을 구할 때는, 은혜 받을 때의 감사함의 마음으로, 세상에서 거룩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19절, 20절은 똑 같은 의미로,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나아갔던 사람과, 드려졌던 제물 모두는 그 깨끗함의 상태가 철저하게 유지 되어야 함을 말합니다. 19절에서는, 화목제물의 고기는 깨끗한 자만 먹고, 먹는 고기 자체도 부정하게 되면 불사르라고 했습니다. 20절에서는 부정한 상태의 사람이, 화목제물의 고기를 먹게 되면 백성 중에서 끊어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끊어진다는 것은, 일차적으로는 신앙 공동체 내에서 추방당한 다는 의미가 있고, 나아가서는 다시는 하나님께 나아가지 못하는 버림 받은 자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화목케 하는 은혜를 받은 사람들은 은혜를 받기 전 보다 은혜를 받은 후에 더욱 더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1장 27절 말씀에,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를 짓는 것이니라”라고 했습니다. 거룩함의 성만찬의 은혜에 참여 하면서, 몸과 마음이 부정한 상태이면, 은혜 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죄를 짓게 되는 것이라고 말씀 합니다. 은혜가 은혜 되게 하려면, 그 은혜를 소중하게 여기고, 은혜 받을 때나, 그 은혜를 누릴 때나, 그 은혜를 전하는 축복의 통로로 활동 할 때나, 변함없는 깨끗하고 거룩한 모습으로, 은혜 받은 자답게, 하나님과 화목의 관계를 이룬 자답게 말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은혜 주실 때도 기뻐하시지만, 은혜를 소중히 여기고 지켜가는 사람을 더욱 귀하게 여기고 더 큰 은혜로 풍성케 하여 주십니다.


 


오늘 레위기 화목제사의 규례를 통해 우리는 성경의 첫 감사함에 담긴 의미들을 듣고 깨달았습니다. 다시 한 번 정리해 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있는 그대로의 모습 일지라도, 하루 속히 감사함으로 하님께 나아오기만 하면 화목케 하는 은혜를 주신다고 약속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내려 주신 은혜가 한 곳에 머물러 있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소개 되어 흘러가기를 바라시며, 그 축복의 통로로 우리가 일하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각자에게 내려주신 화목의 은혜가 더럽혀지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시고, 은혜 받은 자들이 거룩함으로 살아가며 영광 돌리시기를 기대 하십니다.


 


00교회 모든 성도들이 화목제사에서 감사가 처음 언급 된 것처럼, 하루의 처음 시작을 감사로 시작하여 하나님과 화목의 관계를 항상 유지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풍성하게 받으신 화목의 은혜를 이웃에게 마음껏 나누어주며, 은혜 받은 자답게, 거룩한 삶을 최선을 다해 살아냄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칭찬 받는 믿음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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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감사할 수 있는 은혜를 풍성하게 주셨사오니, 죄를 사하여 주시고 화목케 하시는 하나님께, 매일, 매 순간마다, 감사함으로 나아가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화목의 은혜를 열어 주시기 위해 십자가의 고난을 감당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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