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길 수 없는 하나님의 기쁨 (요16:16-24)
본문
빼앗길 수 없는 하나님의 기쁨(요16:16-24)
언제나 기쁨으로 감사함으로 살아가는 할머니 성도 한 분이 있었습니다.
그 삶의 비결이 궁금했던 한 사람이 물어보았습니다.
‘항상 기쁨으로 살아가시는 것을 보니 할머니는 근심이나 걱정이 없으신가 보죠?’
‘나라고 왜 역경과 고통이 없겠습니까?’
‘그러면 어떻게 그렇게 매일 기쁘게 살 수 있으십니까?’
‘나는 어려운 일이 생기거나 걱정거리가 생길 때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삼일 만에 부활하신 주님을 바라봅니다.’
‘그러면 꼭 삼일이 아니더라도 주님께서 해결해주시는 은혜를 늘 경험하게 됩니다.
그래서 걱정하지 않고 기쁨으로 감사함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러분, 주님의 부활이 주는 은혜는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는 은혜뿐만이 아니라
근심과 걱정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오늘의 성도들에게도
놀라운 은혜의 비밀이 되는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은 죽음을 앞두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가르치신 다락방 강화 중에 일부인데요,
이 말씀에서 주님이 강조하신 내용이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한 것입니다.
22절 말씀을 보면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고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것은 근심이 아니라 기쁨입니다.
근심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그 기쁨을 빼앗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입니까?
고해와 같은 세상이라는 말을 쓰지 않더라도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근심이 없을 수 없습니다. 참 많습니다.
이 근심이 지나가면 또 다른 근심이 생기고, 이 근심을 해결하며 또 다른 근심 속에 빠져 살아가는 것이 오늘의 세상입니다.
코로나 19가 백신을 통하여 진정되는가 싶었는데 여러 가지 변이 바이러스가 생기고 있습니다.
이 바이러스가 진정돼도 얼마 있지 않아 또 다른 바이러스가 인류를 위협할 것이라고 학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세상 속에서 기쁨을 모르고 근심가운데 살아갈 수밖에 없다면 인생은 얼마나 괴롭고 힘들겠습니까?
그런데 참으로 감사한 것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근심 대신에 기쁨을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근심이 변하여 기쁨에 되게 하시고 그 기쁨을 빼앗기지 않게 하신다니 이 얼마나 놀라운 축복입니까?
이 축복이 모든 성도들 가운데 임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근심을 극복하고 기쁨으로 충만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먼저, 이 기쁨은 근심을 극복하는 자가 누리게 됩니다.
20절 하 반절에 보면,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했습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이 우리를 근심이 없고 문제가 없는 세상으로 인도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여도 세상의 근심은 똑같이 찾아오고 느끼게 되고 겪으면서 살게 됩니다.
세상에 살면서 근심하지 않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신앙생활은 우리를 근심 없는 신비한 세계로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겪는 근심을 극복하게 하는 은혜가 있는 줄 압니다.
근심이 변하여 도리어 기쁨이 되게 하는 것이 신앙생활의 축복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하실 때까지 제자들의 관심을 온통 예수님이 언제 왕이 되어 권세를 잡느냐에 있었습니다.
로마의 권력을 물리치고 왕이 되면 우리도 한 자리씩 하게 될 것이라는 부푼 꿈을 갖고 주님을 따르고 있었습니다.
이 생각이 얼마나 그들을 사로잡고 있었는지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도 버리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승천하실 때에 했던 질문이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였습니다.
주님이 부활하시고 승천하실 때까지도 제자들은 자기들의 욕망을 버리지 못하였습니다.
중요한 것은 제자들이 세상 욕심과 욕망을 갖고 있는 한 그들은 참된 기쁨과 평안을 누리며 살 수 없었습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세상 속에서 살아가면서 필요한 것들이 많이 있고,
그것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것이 잘못도 아니고 그것을 누리며 살아가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입니다만
그러나 세상의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고 그것에 얽매이는 삶을 살아가면 진정한 기쁨과 평안을 누리며 살아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신기한 그릇이 하나 있었습니다.
누구든지 마음에 갖고 싶은 것을 생각하고 그릇 앞으로 나가면 말도 하기 전에 그릇에 그 물건이 가득 담기는 그런 그릇이었습니다.
그릇은 자기 앞에 나오는 사람의 마음을 읽어서 원하는 것을 가져가게 하였습니다.
그릇은 쉴 새 없이 물건을 쏟아 놓았고 사람들은 저마다 값나가는 물건을 가지고 돌아갔습니다.
어느 날, 꾀죄죄한 차림의 소년 하나가 그릇 앞으로 다가갔는데 그릇에는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여태까지 신통하던 그릇이 갑자기 아무것도 내지 않자 큰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소년과 그릇을 번갈아 보며 사람들은 말했습니다.
"재수 없는 놈 같으니라고."
그때 그 그릇이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너희들은 고작해야 썩어 없어지는 물건을 원했으나 이 아이는 아무것도 욕심을 품지 않고 내게 나왔다.
이 세상에서 이 아이의 마음이 제일 깨끗한 마음이고, 하늘과 같이 빈 마음이다.
나는 본래 하나님이 이 세상 인간들의 마음을 비춰보라고 보낸 하늘의 천사였다."
물질의 욕심, 권력의 욕망, 명예의 욕심을 가지고 살아가면 절대 만족할 수 없고 행복할 수 없고 기쁨으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지금 제자들이 기쁨으로 살지 못한 것이 바로 이 잘못된 목표를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근심이 변하여 기쁨이 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세상의 욕망 속에서 우리가 갖게 되는 근심을 물리치고 세상적인 것을 극복해야 합니다.
세상적인 욕망을 버리고 깨끗한 마음으로 살아가게 될 때 근심이 변하여 기쁨이 되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두 번째로, 부활을 경험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한 가지 특이한 구절이 여러 번 반복해서 나오는데요,
‘조금 있으면’ 이라는 구절입니다.
먼저 주님이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말을 들은 제자들이 이게 무슨 뜻인가? 이해가 되지 않으니까 서로에게 물어봅니다.
물어보지만 그렇다고 다른 제자들이 이 말의 의미를 시원하게 대답해줄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궁금해 하던 차에 주님이 말씀하시는데, 주님의 말씀 속에서도 그 의미가 분명하게 나타나지 않습니다.
다만 주님은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리라’고 말씀하시고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고 하십니다.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 고도 말씀하십니다.
여기에서 7번이나 쓰인 ‘조금 있으면’ 말을 성경학자들은 크게 3가지로 설명을 합니다.
먼저는, 부활하신 주님을 다시 보게 된다는 의미로 설명하고요,
두 번째는, 오순절 성령 강림을 통해서 영적으로 그리스도를 다시 보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세 번째는, 재림의 때에 다시 보게 된다는 말이라고 합니다.
이 세 가지 해석 중에서 첫 번째와 두 번째가 가장 합당하다고 생각됩니다.
주님은 여기에서 분명히 제자들을 향하여 자신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말씀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예수님을 정치적인 메시아로 생각하며 따랐기 때문에
그들의 관심을 언제 주님께서 로마를 물리치고 왕이 되시는가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주님이 아무리 십자가에서 내가 죽게 되고 사흘 만에 살아날 것이라고 해도
그 말씀이 이해가 되지도 않았고 받아들이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고 받아들일 때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기쁨, 세상이 빼앗을 수 없는 기쁨을 누리며 살 수 있는 것은 주님의 부활을 믿고 부활의 소망을 가질 때 인줄로 믿습니다.
부활이 주는 기쁨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 일이겠습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 그것을 멀리서 바라보는 제자들의 실망감은 참으로 컸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라는 선생님 한 분에게 모든 것을 다 걸고 여기까지 왔는데
로마의 세력과 기존의 세력들을 물리치기는커녕
그들에 의해 잡혀 죽었을 때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조금 있다가 주님이 부활하셨고 죽었던 주님이 살아계시고 역사하시는 것을 보았을 때의 그들의 기쁨과 놀라움은 얼마나 컸겠습니까?
죽은 자가 살아나는 기쁨, 죽음의 권세까지도 정복하였다는 기쁨, 영원히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이것은 세상의 어떤 일과도 비교할 수 없는 일이었고 세상의 어떤 기쁨보다 차원이 다른 기쁨이었습니다.
이 기쁨을 돈이 주는 기쁨에, 자식이 주는 기쁨에, 세상 권세, 명예가 주는 기쁨에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글자 그대로 세상이 줄 수 없는 하늘의 기쁨인 줄 믿습니다.
우리가 세상이 빼앗을 수 없는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부활의 신앙을 갖고 믿고 소망할 때 인 줄 믿습니다.
이 기쁨이 여러분 가운데 충만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로, 기도의 특권을 활용할 때 이 기쁨이 주어집니다.
23절에서 주님은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했고,
24절에서는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했습니다.
지금은 하늘과 땅의 권세를 받지 아니하여서 내 이름으로 기도할 수 없지만
조금 있으면,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부활 승천하셔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게 될 때는 내 이름으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버지께서 무엇이든지 주신다는 것이고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다는 것은 모든 역사의 주관자가 되신다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이 되시고 생명이 되시고 진리가 되신다는 말씀입니다.
인간이 전능하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축복인지 모릅니다.
이 기도의 축복, 기도의 특권을 활용하여 하나님께 나아갈 때 우리는 근심이 많은 세상에서 기쁨을 누리며 살게 되는 줄 믿습니다.
성도 여러분! 문제가 생길 때 기도하실 수 있기 바랍니다.
문제는 내가 근심한다고 해결되지 않습니다.
걱정한다고 해결되지 않습니다.
문제는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할 때 해결되고 참 기쁨과 평안이 회복되는 줄 믿습니다.
빌립보서 4:6-7절에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나신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염려가 있지만 계속해서 기도하기 시작하면 평안이 찾아오게 되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을 체험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 가운데 문제가 있습니까? 기도하라는 뜻인 줄 믿습니다.
기도하여서 마음에 평안과 기도의 능력을 체험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인 줄 믿습니다.
그렇게 기도할 때 근심이 물러가고 기쁨이 넘쳐나는 은혜가 있을 줄 믿습니다.
무엇이든지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기도를 가려서 듣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기도가 서툴어도, 잘 하지 못해도 기도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로마서 8장 26절처럼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여 주심으로
응답되게 하며, 기쁨을 경험하도록 하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겠고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고 그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이 말씀하신 ‘조금 있으면’의 때가 바로 지금인 줄 믿습니다.
지금 주님은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셔서 우리에게 부활의 소망을 주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승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고 역사를 주관하고 계십니다.
하늘과 땅을 연결하시고 우리가 담대하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기도의 길이 되어 주셨습니다.
그 주님을 믿고 의지하며 소망할 때 우리는 참 기쁨을 누리며 기쁨을 빼앗기지 않는 삶을 살아가게 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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