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 깊숙히 뿌리박은 잡다한 신들을 뽑아내요 (출8:1-32)
본문
내면 깊숙히 뿌리박은 잡다한 신들을 뽑아내요 /출애굽기8;1-32
TS : 믿음이란 내면 깊숙한 곳까지 자리잡고 있는 잡다한 신들을 뽑아내는 것이다.
위에 하나님 말고 누구 딴 사람 안 계세요?
어떤 성도가 자기 혼자서 등산을 하다가 실족하는 바람에 절벽 밑으로 굴러떨어집니다.
성도는 위급한 상황에서도 용케 손을 뻗쳐 절벽 중간에 서 있는 소나무 가지를 움켜쥐었습니다.
간신히 목숨을 구한 성도는 절벽 위에 대고 소리를 지릅니다.
아주 다급하게 “사람 살려! 사람 살려! 위에 아무도 없습니까?”
그러자 위에서 온유한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아들아! 염려 말라. 내가 여기에 있노라!”
성도는 “누구십니까?”하고 다급하게 되묻습니다.
그러자 “나는 네가 믿는 하나님이란다.”라고 대답하는 것입니다.
성도는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 지릅니다.
“하나님, 저를 이 위험한 곳에서 구해주시면 주님을 위해 평생 목숨을 바치겠습니다.”
위에서 다시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좋다. 그러면 내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그 나무를 놓아라.”
성도는 “아니... 하나님. 이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전 이걸 놓으면 떨어져 죽습니다.”라고 항변합니다.
하나님은 “아니다. 네 믿음대로 이루어질 것이야. 믿음을 가지고 그 나무를 놓아라!”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자 성도는 아무 말 없이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다시 소리칩니다.
“위에 하나님 말고 누구 딴사람 안 계세요?”
지금 누구의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아십니까?
믿음 없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믿음으로 기도한다고 하면서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면 진짜 하나님의 응답이라고 믿지 못합니다.
어느 천주교 신부가 “하느님. 사랑합니다. 하느님. 사랑합니다.” 하면서 계속 사랑의 고백을 했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알았다. 네가 나를 사랑하는 줄 안다. 고맙구나”라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신부는 진짜 하느님께서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셨다는 것 때문에 그만 심장마비가 일어나서 죽었답니다.
신부는 진짜 하나님이 계시는 줄도 믿지 못했고, 더욱 자신의 기도를 듣고 계시고 응답하신다는 것을 믿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자신을 알고 있고, 기도를 듣고 있다고 하시니까 너무 놀라서 심장마비로 죽은 것입니다.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정말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듣고 계시고, 응답하실 분으로 믿고 있습니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고 말씀하시면서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어도 그 겨자씨만한 믿음으로 간구하면 안 되는 일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은 오늘 우리들에게도 동일하게 말씀하시는 말씀입니다.
믿음으로 기도할 때만이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과 축복을 체험하게 됩니다.
P4.
인간이란 존재는 어느 누구라도 거부하거나 부정할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다.
자신은 무신론이라고, 무종교라고 주장하면서도 어떤 존재인가를 믿고 의지하는 종교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자신이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인간이란 존재는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서 하나님께서 직접 만들어주시면서 생기를 불어 넣어주시고 생령이 되게 한 아담과 하와의 후손이기 때문에 인간이란 존재는 어느 누구나 가릴 것 없이 자기 나름대로의 종교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이란 존재는 반드시 세상에 드러난 신이든지, 숨겨진 신이든지, 자신만이 만든 신이든지 어떤 모습으로든 반드시 신을 섬기면서 살아야 한다는 존재라는 것이다.
자신은 무종교요 무신론이라고 주장하면서도 누군가에게 자신의 소원을 빌고 빌고 빌고 있다는 것이다.
바벨론의 전통종교에는 기본적으로 태양신과 달신과 별신들로 구성되어 있는 종교이다.
태양신은 니므롯, 달신은 세미라미스, 별신은 담무스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민족들은 이 세 가지 신을 가지고 자기 민족에게 맞는 형태를 따라서 나름대로 해석하고 변종시켜서 신의 이름을 만들어서 섬기면서 따라가는 것이다.
우리 한민족에게도 새해가 되면 해돋이를 보러 가서 떠오르는 태양을 보면서 소원을 빈다는 것은 이미 태양신을 섬기고 있다는 증거이고, 보름달을 보면서 특히 정월대보름날에 달을 보면서 소원을 빈다는 것은 달신을 섬긴다는 증거이고, 캄캄한 밤하늘에 총총이 떠 있는 북두칠성이나 각종 별들을 보면서 소원을 비는 것은 이미 별신을 섬기고 있다는 증거이다.
우리가 매일 요일을 말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일요일에서 토요일까지 이야기하는 것은 단순하게 요일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일요일은 태양신이고, 월요일은 달신이고, 화요일에서 토요일까지는 각종 별신들을 섬기는 것이라 보면 된다.
로마시대에 요일의 이름을 만들 때 태양신과 달신과 별신들의 이름을 활용하여 요일 이름을 만들어낸 것이다.
동양권에 있는 한자로 되어 있는 일요일에서 토요일까지 이름도 태양과 달과 별의 이름을 활용하여 요일의 이름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래서 무속신앙에는 무슨 요일인가 하는 것에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출생한 날자와 시간을 매우 중요시 여긴다. 이것은 곧 무속신앙, 토속신앙에 깊이 연루되어 있다는 증거이다.
태양신과 달신과 별신들은 인간들이 살아가는 삶에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430년 동안 지속되었던 애굽에서의 종살이를 끝내고 출애굽하여 하나님의 언약백성으로 세워가는 과정에는 어떤 신들과 피 터지게 싸우면서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려고 하시는 것일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시키기 위해서 각종 애굽의 신들과 피 터지게 싸우는 것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나일강을 비롯한 모든 물을 피로 변하게 하는 재앙은 애굽이 자랑하는 생명의 신이라는 하피(Hapi)신을 심판하고 징계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차례 차례로 하나씩 하나씩 애굽의 각종 신들을 심판하고 징계하는 재앙들을 내리면서 급기야는 태양신의 화신이라고 하는 바로의 아들까지도 심판하고 징계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출애굽하여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 삼아주시고,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하나님으로 우뚝 세워지게 된다.
하나님께서 애굽에 내리는 재앙들을 통해서 바로는 어떻게 변해 가고 있을까?
바로는 얼마나 완악해지고 더욱더 괴팍해지고 있을까?
하나님은 재앙들을 내리면서 어떤 능력을 행하고 있는 것일까?
D4.
① 다산과 풍요의 신을 심판하고 징계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 두 번째 카드로 내세운 것은 개구리 재앙이다.
하나님은 1-4절에서 모세에게 “너는 바로에게 가서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 네가 만일 보내기를 거절하면 내가 개구리로 너의 온 땅을 치리라. 개구리가 나일강에서 무수히 생기고 올라와서 네 궁과 네 침실과 네 침상 위와 네 신하의 집과 네 백성과 네 화덕과 네 떡 반죽 그릇에 들어갈 것이며, 개구리가 너와 네 백성과 네 모든 신하에게 기어오르리라 하셨다 하라”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면서 다시 모세에게 “아론에게 명령하기를 네 지팡이를 잡고 네 팔을 강들과 운하들과 못 위에 펴서 개구리들이 애굽 땅에 올라오게 하라 할지니라.”라고 말씀하신다.
모세와 아론이 바로 앞으로 나아가서 하나님께서 전하라고 하신 말씀을 선포한다.
바로는 모세와 아론이 전하는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아론이 바로와 신하들과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나일강을 향하여 손을 뻗는다.
그랬더니 어디서 그렇게 많은 개구리들이 있었는지 나일강에서 쉴 새 없이 우굴우굴 개구리들이 기어 올라오는 것이다.
나일강에서만 개구리들이 올라오는 것이 아니다.
애굽 전국에 있는 다양한 물에서 우굴우굴 개구리들이 기어 올라오는 것이다.
그야말로 기절초풍할 노릇이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이다.
애굽 전국이 개구리들로 뒤덮이게 된다.
왕궁은 말할 것도 없고, 애굽 전국에서 너무 놀라서 아우성을 질러댄다.
심지어는 빵 반죽에도 개구리가 올라오는 것이다.
식사하는 식탁에도 개구리가 올라와서 울고 있는 것이다.
잠자는 침실에도 개구리들의 천국이 된다.
온 애굽에는 개구리로 인해서 울부짖는 소리, 탄식하는 소리가 끊어지지 않는다.
바로는 급히 모세와 아론을 불러서, “여호와께 구하여 나와 내 백성에게서 개구리를 떠나게 하라. 내가 이 백성을 보내리니 그들이 여호와께 제사를 드릴 것이니라.”라고 하면서 비로소 바로의 입에서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이름을 부르게 된다.
전에는 “여호와가 누구냐. 난 여호와가 누군지 모른다. 여호와가 누군데 내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내야 하냐?”라고 노발대발하던 바로가 이제 그 여호와께 기도해서 개구리들을 없애달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내줄테니 개구리를 없애달라고 하는 것이다.
바로와 단단히 약속한 모세는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하여 개구리들이 나일강을 비롯한 물에 있도록 한다.
이 때 개구리들이 죽어서 무더기로 쌓아 올린다.
죽은 개구리들이 썩으면서 구데기가 우굴우굴 생겨나고 온갖 날 파리들이 날아오고 악취가 너무 심해서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을 처지가 된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 개구리 재앙을 내리는 것일까?
애굽인들은 개구리가 한 번 알을 낳으면 수천, 수만의 올챙이들을 낳게 되고, 이들이 개구리가 되기 때문에 개구리는 다산의 신으로 섬기는 것이다.
그래서 애굽인들은 개구리 머리를 한 헤크드(Hagt)라는 신을 섬기는 민족이다.
너무나 많은 개구리들이 우굴우굴 거리는 모습을 보면서 애굽인들은 ‘개구리야말로 애굽에 풍요와 축복을 가져다주는 신이로구나,’ 라고 여기면서 다산과 풍요의 상징으로 개구리신의 형상을 만들어 곳곳에 세워놓고 섬기는 것이다.
‘헤크드’라는 개구리신의 모양은 몸체는 여성의 모양이고, 머리는 개구리모양을 하고 있다.
이렇게 축복과 풍요의 신이라고 믿었던 '헤크드'라는 개구리신이 이제는 도리어 왕궁부터 신하와 백성들 집에까지 가득가득 채워지면서 더 이상의 풍요의 신이 아니라 도리어 원수가 되고 저주와 징계와 악취의 대상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② 흙의 신, 대지의 신을 심판하고 징계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16절에서 모세에게 “아론에게 명령하기를 네 지팡이를 들어 땅의 티끌을 치라 하라. 그것이 애굽 온 땅에서 이가 되리라.”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모세와 아론은 바로와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아론이 지팡이를 잡고 손을 들어 땅의 티끌을 친다.
그랬더니 애굽 온 땅의 티끌이 다 이가 되어 사람과 가축에게 올라오는 것이다.
그러자 애굽의 마술사들도 똑같이 해 보려고 했지만, 이제는 요술사들이 흉내조차 낼 수 없게 된다.
자신이 흉내 내려고 해도 도저히 흉내조차 낼 수 없는 마술사들도 이제는 “이는 하나님의 권능이니이다.”라고 하면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라고 인정하게 된다.
마술사들이 말하는 하나님의 권능이라는 것은 “the finger of God.”이라는 것이다.
곧 하나님의 손가락으로 만들어낸 능력이라고 인정하는 것이다.
이들이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라고 인정한다고 해서 하나님을 믿는 것은 아니다.
이는 가축들이나 사람들에게 옮겨붙어서 피를 빨아 먹는 곤충이다.
지금이야 이를 구경하기가 쉽지 않지만, 저가 어릴 때에만 해도 이가 너무 많아서 초등학교에서 이를 잡는 시간이 있을 정도였다.
머리카락이며, 옷에 이가 바글바글했었던 적이 있다.
지금도 북한에는 이가 많다고 한다.
이 때문에 얼마나 고통스러운 지 모른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 이의 재앙을 내리는 것일까?
온 땅에 있는 티끌이 갑자기 이로 변해서 생명체들에게 고통과 아픔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애굽인들은 농사하기 위하여 밭을 갈 때마다 대지의 신이라고 하는 게브(Geb)신에게 감사하면서 밭을 갈았다고 한다.
게브신은 땅의 신이기 때문에 대지 곧 흙이 생명과 풍요를 가져다준다는 것이다.
게브신은 남성신으로 누이동생이라는 누트(Nut)신과 쌍벽을 이루는 신이다.
풍요와 축복을 가져다준다는 게브신이 이제는 애굽 사람들에게 풍요와 축복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괴로움과 고통과 죽음으로 몰아가는 것이다.
이의 재앙은 땅으로부터 시작된 재앙으로 땅의 신으로 알려진 ‘게브(Geb)’라는 신을 심판하고 징계하는 것이다.
③ 바람과 공기의 신을 심판하고 징계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모세에게 20-23절에서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바로 앞에 서라. 그가 물 있는 곳으로 나오리니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을 보내라. 그러면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 네가 만일 내 백성을 보내지 아니하면 내가 너와 네 신하와 네 백성과 네 집들에 파리떼를 보내리니 애굽 사람의 집집에 파리떼가 가득할 것이며 그들이 사는 땅에도 그러하리라. 그 날에 나는 내 백성이 거주하는 고센 땅을 구별하여 그 곳에는 파리가 없게 하리니 이로 말미암아 이 땅에서 내가 여호와인 줄을 네가 알게 될 것이라. 내가 내 백성과 네 백성 사이를 구별하리니 내일 이 표징이 있으리라 하셨다 하라.”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모세와 아론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대로 한다.
그랬더니 24절에서 “여호와께서 그와 같이 하시니 무수한 파리가 바로의 궁과 그의 신하의 집과 애굽 온 땅에 이르니 파리로 말미암아 그 땅이 황폐하였더라.”라고 말씀하고 있다.
우리 한글 성경에 파리떼라고 번역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흔하게 볼 수 있는 파리떼처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우리들이 흔하게 볼 수 있는 파리떼라기보다는 야수들, 곧 야생짐승들이라고 한다.
온갖 종류의 야생 짐승들이 애굽 온 땅 여기저기서 급속하게 활동하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지금까지는 애굽 전국에 내리는 재앙으로 인하여 고센 땅에 거주하는 이스라엘 백성들까지도 그 재앙의 직접적인 피해자가 되었었다.
하지만 파리떼 재앙부터는 하나님께서 고센 땅을 구별하여 애굽 전국에 재앙을 내리는 과정에서 고센 땅을 구별하여 재앙을 내리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고센 땅을 구별하심으로 애굽인들에게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언약 백성들에게는 재앙에서 보전해 주시고 건져주시는 모습을 보여주시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명확하게 보여주려고 하신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 파리 떼, 야수 떼들을 심판하고 징계하는 것일까?
애굽에는 공기와 바람의 신이라는 슈(Shu)라고 하는 신이 있다.
헬리오폴리스 신화에 보면 최초의 신 '아툼'이 슈와 테프누트를 창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슈는 하늘의 여신 '누트'와 땅의 신 '게브'의 아버지이며, '오시리스', '세트'의 할아버지이고 '호루스'와 '아누비스'와 증조할아버지의 관계에 있다.
슈가 공기와 바람을 관장하는 신이었기 때문에, 그의 성격은 주로 조용하고 평화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슈라는 신은 땅과 하늘을 갈라놓는 대기, 즉 건조한 공기를 상징하는 신이다.
슈라는 신은 타조의 깃털을 꽂고 있는 모습이다.
이집트인들에게 타조의 깃털은 가벼움과 공허함을 의미했기 때문에, 공기의 신이었던 슈에게 타조의 깃털은 슈라는 신의 상징처럼 보이게 되었다.
애굽인들에게 공기와 바람이 있어서 농사에 많은 도움을 주어서 풍요와 축복을 가져다준다고 믿었는데, 파리떼, 야수떼들로 인하여 공기와 바람이 도움을 전혀 주지 못할뿐더러 오히려 고통과 죽음을 가져다주게 되는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리 슈라는 신이 높은 신이라 할지라도 무용지물에 불과하구나. 하는 것을 가르쳐주는 것이다.
더더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주하고 있는 고센 땅에는 파리떼도, 야수들의 떼도 얼신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과연 여호와 하나님은 대단한 하나님이시구나.’라는 것을 보여주고 계신다.
L4 & B4.
출애굽기 8장에서는 하나님께서 다산과 풍요의 신이라고 하는 개구리신으로 알려진 헤크드신과 땅과 흙과 대진의 신이라는 게브신과 공기와 바람의 신이라는 슈를 심판하고 징계하는 재앙을 내리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출애굽할 준비를 하고 계신다.
이런 잡다한 신들은 애굽인들의 내면의 세계에 깊숙하게 자리잡고 있는 신들이다.
이런 신들을 심판하고 징계하심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권능, 권세를 애굽인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여주고 계신다.
그렇다면 우리 신앙인들의 깊은 내면의 세계에 자리잡고 앉아서 우리의 영혼과 생각과 마음을 좌지우지하면서 호령하는 신들은 없을까?
우리 신앙인들은 정말 여호와 하나님을 우리의 영원한 하나님으로 믿고 섬기고 있는가?
각 나라와 민족들마다 자신들만이 섬기는 다양한 신들이 존재하고 있고, 그 신들을 섬기며 산다.
각 민족마다 사탄이 샤마니즘(Shamanism)이라는 토속신앙과 문화로 인간들의 깊은 내면의 세계에 사탄의 세상을 펼쳐 놓은 것이다.
샤마니즘이 바로 사탄을 왕으로 숭배하는 무속종교이다.
이 샤마니즘에는 우리 한민족도 예외가 아니다.
삼위 하나님만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신앙인들도 하나님이 아닌 다른 다양한 신들을 섬기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 한민족의 전통문화, 민속이라는 이름으로 여전히 신앙인의 마음과 영혼과 생각의 깊은 곳에는 다양한 신들이 자리잡고 있다.
토속신앙이라는 이름으로 샤마니즘에 빠져 있다.
국가와 민족의 신이 있고, 각 산들마다 산신이 있고, 마을을 관장하는 신이 있고, 동네를 관장하는 신이 있고, 가정을 관장하는 신이 있고, 토지를 관장하는 신들이 산재해 있다.
고조선을 건국한 단군 왕검을 국조신으로 섬기는 이들도 있다.
우리나라는 용을 왕으로 섬기는 용왕, 발이 세 개를 가진 까마귀라는 삼족오를 섬기는 민족이다.
우리 한민족과 땔래야 땔 수 없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12지신(至神)이다.
12지신은 바로 샤마니즘 중에 동물을 섬기는 토테미즘(Totemism)에 의해서 만들어진 사탄의 걸작품 중에 걸작품이다.
12지신의 모습을 보면 머리통만 그 짐승의 모습이고, 몸통은 사람의 모습으로 무속인들의 옷을 입고 있다.
경주에 있는 김유신장군묘에 가서 보면 묘 둘레에 12지신의 형상을 돌에 새겨서 묘를 장식하고 있다.
경주박물관에 가서 보면 12지신들이 변모해 가는 과정을 그림으로 설명해 놓은 곳이 있다.
12지신은 몸은 사람의 몸, 곧 무당의 모습인데, 머리만 그 짐승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러기 때문에 12지신이라는 것은 단순한 그 짐승이 아니라 그 짐승을 신으로 섬기고 있는 우상숭배요, 미신행위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12지신을 토속문화, 민속문화라는 미명으로 우리 신앙인의 깊은 내면의 세계에까지 그대로 점령하고 있는 것이다.
신앙인들의 모임에 가서, 저가 목사이기 때문에 목회자들의 모임에도 가면 서로 나이를 이야기할 때가 많은데 목사님들은 의래껏 자신은 00띠라고 서슴지 않고 당당하게 이야기한다.
저는 세상적으로 말하면 1960년생 경자년 쥐띠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저는 절대로 저 자신이 쥐띠라고 말하지 않는다.
굳이 띠를 이야기할 때는 “예수님띠”라고 말한다.
자신이 어느 동물의 띠를 이야기하는 것은 바로 자신이 그 동물의 신을 은연중에 믿고 의지하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
물론 그 띠를 이야기한다고 해서 그 동물이라는 신을 섬기는 것은 아니겠지만, 우리들의 깊은 내면의 세계에는 그런 잡다한 동물의 신을 띠라는 이름으로 섬기고 있다는 것이다.
현대사회는 특정 동물을 반려동물이라는 미명 아래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파괴하는 인본주의에 빠져서 그 동물들을 신성시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그 동물에게 자신의 재산을 상속하는 이들도 있고, 그 동물과 혼인하는 이들도 나타나고 있다.
지금 하나님은 애굽에 있는 바로 그런 동물의 신들을 하나씩 하나씩 부질없는 신들이라고 심판하고 징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들이 은연중에 내면의 세계에서 믿고 의지하는 그 잡다한 신들을 쫓아내든지, 아예 거절하는 선포를 해야만 하는 것이다.
정말로 삼위 하나님만을 믿는 믿음으로 신앙생활하는 신앙인이라면 마땅히 자신은 00띠라는 말은 입 밖에도 내지 말아야 한다.
자신은 00띠라고 말하지 못하면 마치 바보천치나 되는 것처럼 비난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 신앙인들이 은연중에 뱀이 꽈리를 틀고 앉아 있는 것처럼 우리의 영혼 깊은 내면의 세계에 꽈리를 틀고 앉아 있는 잡다한 신들을 주님의 십자가 복음으로 쫓아내어야 하는 것이다.
잡동산이 신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쫓아내지 못하면 결국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그 잡다한 신들을 심판하고 징계할 때 우리의 영혼이 깊은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 내면의 세계로 찾아오셔서 역사하시기 전에 우리가 먼저 알아서 잡다한 이방신들, 토속신앙과 문화라는 미명으로 자리잡고 있는 사탄의 세력들을 주님의 십자가 보혈로 미련없이 쫓아내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한국교회가 정말 성경에서 말하는 주님의 몸된 교회로 정결하고 거룩하고 온전하게 세워지려면 정말 뼈를 깎는 고통을 당하더라도 토속문화라는 미명으로 우리 한민족의 깊은 내면에 자리잡고 있는 12지신을 비롯하여 샤마니즘, 토테니즘의 뿌리를 뽑아내야 한다.
고통스럽더라도 토속신앙과 문화의 뿌리를 뽑아내고 그 자리에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채워놓아야 한다.
우리들에게는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믿는 믿음으로 우리 내면의 세계에 깊숙하게 자리잡고 있는 인본주의 사상들, 무속신앙의 모습들을 하나씩 하나씩 뽑아내는 결단이 필요하다.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과 복음을 믿는 믿음으로만 살아야 하는 것이다.
세상의 잡다한 이념들, 생각들, 문화들을 예수그리스도의 보혈로 치유하고 회복하여 우리의 영혼과 생각과 마음이라는 깊은 내면의 세계에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사랑과 은혜로 채워놓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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