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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들도 덩달아 받아야 하는 고통의 순간 (출7: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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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들도 덩달아 받아야 하는 고통의 순간 /출애굽기7;1-30


엄마 마음에만 들어도...


 


일곱 살 난 아들이 잠을 자다가 이불에 지도를 그려놓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왜 이렇게 오줌을 많이 싸느냐고 회초리로 아들 녀석을 때렸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엄마가 회초리를 안 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들 녀석이 “엄마, 오늘은 왜 안 때리세요?”라고 묻습니다.


엄마는 “오늘은 지도를 아주 훌륭하게 잘 그렸구나!” 하면서 도리어 칭찬하는 것입니다.


아들은 멍했습니다.


아니 뭔 지도를 잘 그렸단 말인가?


엄마는 “넌, 매일 일본 지도만 그리더니 오늘은 우리나라 지도를 기가 막히게 그렸구나. 그런데 아슬아슬했다!”


아들은 “아슬아슬하다니 뭐 말예요?”라고 묻습니다.


엄마는 “만약, 독도를 안 그렸으면 넌 오늘 맞아 죽었다!”


오줌을 싸도 엄마 마음에 들면 용서가 됩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마음에 들면 모든 죄가 용서됩니다.


우리들이 아무리 많고 험악한 죄악 중에 살고 있다 해도 하나님 앞으로 나와서 하나님의 마음에 감동을 드리는 삶을 살면 예수그리스도의 보혈로, 십자가로 용서해 주십니다.


그것을 믿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P4.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별되어 살아가는 고센 땅도 애굽제국 안에 있는 땅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애굽을 징계할 때에 고센 땅에 살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직간접적으로 많은 영향을 받으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특히 고센 땅은 나일강 근처에 있는 큰 도시이고, 나일강 물을 식수로 사용하기 때문에 나일강에서 일어나는 각종 사건들은 고센 땅에 살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직접적으로 영향을 입게 되어 있다.


천재지변이든, 인재이든 어떤 사건들이 발생했을 때에는 비신앙인이든, 신앙인이든 동일하게 그 영향권 안에서 크고 작은 사고에 연루될 수밖에 없다.


우리들 주변에서 수많은 사건들이 일어날 때, 종종 극적으로 구조되거나 사건을 피해가는 경우도 있다.


그것은 몇몇 사람들에 불과한 것이지 대부분 사람들에게 일반적으로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앙인이든, 비신앙인이든 일반적으로 크고 작은 사건에 연루되어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입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하나님은 이제 본격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출하려는 작업을 시작하려고 하신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출하여 출애굽시키는 작업을 진행하면서 여호와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능력과 권능을 직접 보여주려고 하신다.


사실은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이스라엘 백성들도 여호와 하나님에 대하여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상태이다.


이들은 지난 430년 동안 애굽에서 살았기 때문에 이미 애굽백성화 되어 있는 상태이다.


명목으로는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백성이요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백성이라고 하지만, 실제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심정 속에서는 이미 애굽 백성화 되어서 애굽인들이 믿고 섬기는 신들을 그대로 답습하여 믿고 섬기는 백성들이 대부분이다.


그러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은 애굽인들에게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여호와 하나님이란 분이 어떤 신인지, 어떤 권능과 권세를 지니신 분이신지를 보여주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과연 우리가 앞으로 믿고 의지해야 할 여호와 하나님은 애굽의 잡다한 신들을 능히 이기고도 남는 위대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구나.’ 하는 것을 스스로 깨우치고 깨닫고 인식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하여 하나님은 애굽에 심판하고 징계하는 일에 이스라엘 백성들도 똑같이 겪을 수 있도록 역사하시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은 애굽인들과 아울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어떤 능력의 하나님으로 보여주고 싶어하시는 것일까?


하나님은 애굽인들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어떤 고통의 시간을 동일하게 보내도록 하시는 것일까?


 


D4.


 


① 하늘만큼 높여주시는 하나님.


 


모세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신 하나님은 모세에게 애굽의 절대지존이라고 하는 바로에게로 나아가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출애굽기 6:29에서 “나는 여호와라. 내가 네게 이르는 바를 너는 애굽 왕 바로에게 다 말하라.”라고 말씀하신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모세는 “나는 입이 둔한 자이오니 바로가 어찌 나의 말을 들으리이까? 이스라엘 백성들도 내 말을 귀담아 들어주지 않는데, 애굽의 절대지존이라는 바로 왕, 태양신의 화신이라고 하는 바로 왕이 내 말을 들어주기나 하겠습니까?”라고 하면서 반항하는 것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볼지어다. 내가 너를 바로에게 신 같이 되게 하였은즉 네 형 아론은 네 대언자가 되리니, 내가 네게 명령한 바를 너는 네 형 아론에게 말하고 그는 바로에게 말하여 그에게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내보내게 할지니라.”라고 말씀하시면서 모세를 마치 여호와 하나님이신 것처럼 높여주겠다고 하신다.


신은 신의 뜻과 의지를 대언자에게 전해주면 신의 뜻과 의지를 받은 대언자가 그 신을 섬기는 백성들에게 신의 뜻과 의지를 선포하며 알려주는 것이다.


바나바와 바울이 안디옥교회에서 선교사로 파송을 받아서 루스드라성에서 선교를 하게 된다.


루스드라성에서 주님의 복음을 전하려고 하는데, 그 성에는 나면서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걸어본 적이 없는 앉은뱅이가 있다.


그 사람은 전혀 발을 쓰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바나바와 바울이 열심히 주님의 십자가 복음을 전하고 있는데 그 사람이 경청하면서 귀담아듣는 것이다.


바울은 그 사람을 유심하게 관찰하며 살펴본다.


바울은 그 사람에게서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있음을 직감하고는 큰 소리로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라고 외친다.


그러자 나면서부터 한 번도 일어서거나 걸어본 적이 없던 그 사람이 벌떡 일어서서 걷는 것이다.


이런 모습을 본 루스드라 성의 사람들은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오셨다.”라고 하면서 바나바를 ‘쓰스’이라고 부르고, 바울을 ‘허메’라고 부르면서 제물을 가지고 와서 제사드리려고 하는 모습이 사도행전14장에서 기록하고 있다.


연장자인 바나바는 가만히 서서 지켜보면서 기도하고 있고, 젊은 바울이 주로 주님의 십자가 복음을 전했기 때문에 루스드라성의 사람들은 바나나는 쓰스신 곧 그 당시 최고의 신이라는 제우스신이라고 하였고, 바울에게는 제우스신의 뜻과 의지를 받아서 인간세계에 선포하는 허메신이라면서 제사를 드리려고 하는 것이다.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은 모세는 제우스신처럼, 아론은 제우스신의 뜻과 의지를 백성들에게 선포하는 허메신처럼 보이도록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를 높여주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모세와 아론을 최고의 신과 그 신의 뜻과 의지를 대언하는 자로 높여주어야 바로가 되었든, 애굽의 대소신료들이 되었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되었든 어느 누구라도 모세와 아론을 함부로 대할 수 없도록 하늘의 권위를 부여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신다.


바로왕은 자기 스스로 태양신의 화신이라고 자처하고 있었기 때문에 모세가 여호와 하나님이 화신인 것처럼 보여야 바로가 모세를 함부로 할 수 없는 것이다.


바로가 모세와 대항하는 것은 바로를 내세우고 있는 태양신과 모세를 내세우고 있는 여호와 하나님과의 대결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은 앞으로 태양신의 화신이라고 하는 바로와 한판 싸움을 하면서 차례 차례로 애굽의 신들을 심판하고 징계한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출애굽하게 되고,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고,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하나님이라는 공식을 세우려고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세우시고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사람들, 일꾼들, 지도자들을 신처럼, 하늘처럼 영권과 영력을 주시고 높여주시면서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시려고 하신다.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일꾼들, 지도자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대리하여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감당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일꾼들의 권위를 높이 세워주시는 것이다.


사도행전에 보면 하나님께서 사도들의 권위를 세워주시면서 마치 예수님께서 이적을 베풀어주시는 것처럼 사도들의 손에서 놀라운 치료와 회복의 이적들을 행할 수 있는 권위를 부어주신다.


병든 자를 치료해 주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귀신들을 쫓아내고, 심지어는 죽은 자도 다시 살려내는 권세까지 부여해 주신다.


베드로의 그림자만 스쳐 지나가도 온갖 질병들이 고침을 받는 기적이 일어난다.


바울이 쓰던 손수건으로 병든 자에게 얹기만 해도 병든 사람이 고침을 받는 기적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처럼 사도들의 행적을 통해서 살아계신 하나님, 부활의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이다.


모세와 아론과 사도들의 권위를 하늘만큼 높여주시는 하나님은 오늘날에도 주님의 일꾼들, 사역자들의 영적인 권위를 높여주시면서 주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하시는 분이다.


사역자들의 입술을 통해서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이 마치 하나님께서 직접 자신들에게 선포하시는 말씀으로 들릴 수 있도록 성령 하나님께서 감동을 주시는 것이다.


 


② 능히 세상을 한판승으로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모세와 아론은 바로 앞으로 나아간다.


바로 앞으로 나아간 모세에는 아론에게 지팡이를 던지라고 한다.


아론이 들고 있던 지팡이를 던졌더니 매서운 맹독을 가진 코브라로 변하게 된다.


애굽의 바로도 이에 질세라 애굽의 마술사들과 박사들을 불러서 마술로 뱀을 만들라고 한다.


그러자 애굽의 마술사들과 박사들도 지팡이로 뱀을 만들어낸다.


그런데 이상한 광경이 벌어진다.


아론의 지팡이에서 만들어진 커다란 코브라가 애굽의 마술사들, 박사들이 만들어낸 코브라들을 모조리 잡아먹고 마는 것이다.


지팡이로 뱀을 만들어내는 싸움에서 모세와 아론이 한판승으로 끝나고 만다.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가 애굽의 모든 권세와 권위와 권력을 한판승으로 이기는 것이다.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는 두 번 싸울 것도 없이 세상의 모든 세력들을 한판승으로 이기게 하신다.


우리 신앙인들은 세상을 한판승으로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이다.


세상을 한판승으로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신앙인이기 때문에 세상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세상의 어떤 권세도, 권력도, 악의 세력들도, 죽음의 권세도, 죄악의 권세도, 어둠의 세력들도 문제없이 이기시는 분이다.


우리 신앙인들이 세상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살아가야만 하지만, 세상의 공중권세를 잡고 있는 사탄의 세력들이 아무리 패악하더라도 세상을 이기신 하나님의 권세를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세상의 악한 세력들과 영적인 싸움에서 능히 이기는 싸움을 싸울 수 있는 것이다.


우리들 자신이 이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 하나님께서 직접 싸우면서 이겨주시는 것이다.


성령 하나님께서 직접 싸워 이겨주시고는 우리들에게 “네가 이겼다.”라고 칭찬해 주시는 것이다.


 


③ 물의 신을 심판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모세에게 바로 앞으로 나아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라고 하신다.


17-18절에서 “내가 내 손의 지팡이로 나일 강을 치면 그것이 피로 변하고, 나일 강의 고기가 죽고 그 물에서는 악취가 나리니 애굽 사람들이 그 강 물 마시기를 싫어하리라 하라.”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19절에서도 “아론에게 명령하기를 네 지팡이를 잡고 네 팔을 애굽의 물들과 강들과 운하와 못과 모든 호수 위에 내밀라 하라. 그것들이 피가 되리니 애굽 온 땅과 나무 그릇과 돌 그릇 안에 모두 피가 있으리라.”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모세와 아론은 바로와 대소신료들이 보는 앞에서 지팡이를 가지고 나일강을 친다.


그랬더니 나일강이 순식간에 피로 변하고 만다.


나일강이 순식간에 피로 변하면서 21절에서 “나일 강의 고기가 죽고 그 물에서는 악취가 나니 애굽 사람들이 나일강 물을 마시지 못하며 애굽 온 땅에는 피가 있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19절 말씀을 다시 읽어보면 나일강뿐만 아니라 애굽의 구석구석에 있는 하천, 계곡, 호수, 강들, 운하, 연못 등등 물이 있는 곳이라면 다 피로 변한다고 말씀하신다.


심지어는 그릇에 담겨 있던 물조차도 피로 변한다고 말씀하고 있다.


그러니 물이라고 하는 모든 물은 순식간에 피로 변하는 것이다.


물이 피로 변했기 때문에 물 속에서 살아가는 모든 물고기들을 비롯한 생명체들은 죽어서 악취가 진동하는 것이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 애굽에 내리는 첫 번째 재앙을 물을 피로 변하게 하는 재앙을 내린 것일까?


 


나일강은 애굽을 대표하는 강으로 애굽의 젖줄이 되는 강이다.


애굽에는 나일강만 있는 것이 아니라 크고 작은 많은 강들이 있다.


강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크고 작은 계곡들과 하천들과 호수들과 연못들, 우물들이 많이 있다.


물이 있는 곳이라면 그것이 어디든, 무엇이 되었든 피로 변해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나일강을 비롯한 모든 물 근원들은 애굽인들에게 생명을 주고 있었는데, 이제는 죽음으로 몰아가는 강이 되는 것이다.


나일강을 비롯하여 모든 물 근원들은 애굽인들에게 더 이상 생명을 살리는 강이 아니라 죽음을 재촉하는 강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각자들의 집에 있는 우물에도 피, 금방 마시려고 떠 놓은 물잔에도 피, 아침에 끓여놓은 국이든 찌개든 무엇이든 피로 변해버렸다면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는가?


 


나일강이 애굽인들의 생명줄과 같은 강이요, 모든 생명의 근원이 되는 강이기 때문에 애굽인들은 나일강을 신성시하면서 신봉하게 되었다.


애굽인들은 나일강에는 하피(Hapi)라는 신이 있어서 애굽인들의 모든 삶을 주관하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나일 강이 범람하여 넘치게 되면서 양질의 토양이 같이 들어오기 때문에 농업의 신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애굽인들은 나일강이 범람하면 “하피가 오셨다.”라고 생각하였다고 한다.


하피라는 신은 얼굴은 여인의 모습인데, 몸체의 모양은 독수리와 같은 모습이기 때문에 여성신으로 알려졌다.


이 하피라는 신은 여성신임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남성신으로 변하기도 한다.


여성신이기 때문에 유방(乳房)이 있고, 때로는 온몸에 푸른 파상(波狀;파도모양)의 수문(水紋)이 덮인다고 한다.


그가 소지한 파피루스, 연화(蓮華)의 2종 식물(植物)은 나일강 산하 유역 여러 나라의 통일을 상징한다고 알려져 있다


하나님께서 나일강을 피로 만드는 재앙을 내리는 것은 바로 나일강을 주관하는 하피신을 심판하여 징계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애굽의 잡다한 신들을 차례로 심판하고 징계하면서 결국에는 가장 높은 태양신의 화신이라고 하는 바로의 아들까지 심판하여 징계하는 것이다.


 


물은 모든 생명체들이 살아갈 수 있는 생명줄이다.


물이 없으면 생명체들은 살아갈 길이 없다.


생명체는 반드시 물을 먹어야만 살아갈 수 있다.


그런데 그 물이 피로 변해버렸기 때문에 생명체는 더 이상 살아갈 수가 없다.


 


우리 자유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강이 있다면 한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한강만 있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크고 작은 강들과 수많은 하천들과 계곡들과 호수들, 연못들이 있다.


우리 한반도에는 금강, 낙동강, 영산강, 대동강, 압록강, 두만강 등등 많은 강들이 있고, 많은 개천들이 있고, 소양호, 대청호와 같은 호수들이 많다.


이렇게 많은 모든 것들이 한순간에 피로 변해서 전혀 마실 수 없게 된다면 우리들은 어떻게 살 수 있겠는가?


정수기에도 피, 생수통에도 피, 커피잔에도 피, 국 찌개 냄비에도 피로 변해버렸다고 생각해 보면 과연 우리들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겠는가?


이렇게 물이 피로 변한 것은 하루로 끝난 것이 아니라 1주일 동안 계속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단 하루라도 마실 물이 없으면 살기 힘들고 너무너무 고통스러운데, 1주일 동안 마실 수 있는 물이 없다면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는가?


그래서 살아갈 수 있는 물을 찾을 길이 없어서 나일강 주변 땅을 파서 겨우겨우 지하수를 찾아서 살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고 징계하시게 되면 그야말로 끔찍하기 짝이 없다.


조금의 긍휼이나 자비도 찾아볼 수 없다.


우리들과 우리 자녀들, 후손들이 살아가는 이 시대에 하나님께서 내리는 심판과 징계의 회초리가 내리지 않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소망할 뿐이다.


그런데 더욱 더 시간이 흘러가면 흘러갈수록 온갖 것들로 교만의 바벨탑을 쌓으면서 여호와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기본질서마저 깨트리려고 발악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언제 어떻게 심판과 징계의 회초리를 들려고 하실지...


정말 두렵고 무섭기만 하다.


이 두려움이 이대로 두려운 마음과 생각으로 끝나버리면 좋으련만, 실제적으로 우리들이 살아 있는 생전이나 우리 후손들이 살아가는 현실에서 나타난다면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하루라도 빨리 하나님 앞으로 돌아와서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구하며 믿음으로 살아야 하는 것이다.


 


L4 & B4.


 


여기서 우리들이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 하는 것이 하나 있다.


나일강을 비롯하여 애굽에 있는 물이라고 하는 모든 물은 하나도 남기지 않고 피로 변해버렸기 때문에 애굽인들만 고통을 당하는 것일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고센 땅에 살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까지도 애굽인들과 똑같이 고통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파괴하는 이들의 죄악 때문에 소돔과 고모라성을 심판할 때, 소돔성에 살았던 롯의 가족들도 그 심판의 범주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여호와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파괴하는 이들, 동성애를 주창하고, 차별금지법을 만들려고 하고 심지어는 교회에서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예배를 금지시키고 주님의 몸된 교회를 강제로 패쇄시키려는 정신 이상자들로 인해서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고 징계한다면 그들만 골라서 하나님께서 심판하고 징계하는 것이 아니라 신실한 신앙인들까지도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심판과 징계의 테두리 안에서 좋지 않은 영향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들만 고르고 골라서 확인하여 심판하고 징계하신다면 좋을텐데, 그들과 동일한 시간에 동일한 지역에서 살고 있다는 것 때문에 신실한 신앙인들까지도 좋지 않은 영향을 받게 되는 슬픔과 고통이 뒤따라가는 것이다.


 


겨울철에는 고구마를 삶거나 구워서 먹으면 아주 좋다.


간식으로 먹든지, 한 끼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서 먹든지, 다이어트하기 위해서 먹든지 고구마를 먹으면 우리 몸에 아주 좋다고 한다.


먹을 양식이 많지 않던 어린 시절, 고구마는 매우 소중한 양식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이 고구마가 싱싱한 그대로 남아 있으면 좋으련만 많이 썩는다.


고구마가 썩은 부분이 있으면 마땅히 버려야 하지만, 먹을 양식이 없던 시절에는 마냥 버릴 수가 없다.


썩은 부분을 칼로 도려내어 삶거나 구워서 먹는 것이다.


칼로 썩은 부분을 도려낼 때, 썩은 부분만 도려낼 수 있을까?


물론 썩은 부분만을 도려내어야 하지만, 썩지 않은 부분도 같이 덩달아 도려내게 되는 것이다.


병원에서 조직검사를 하고 암이나 각종 좋지 않은 부분을 수술해야 할 때, 그 암세포만 도려내어야 하지만, 그 암세포를 둘러싸고 있는 암세포가 없는 부분까지도 덩달아 도려내어야만 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간사회 곳곳에 퍼져 있는 죄악의 덩어리들을 도려내기 위해서는 죄악의 덩어리 근처에 있는 이들도 덩달아 피해를 입으면서 그 죄악의 덩어리들을 도려낼 때 피해를 입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려고 할 때, 하나님은 마땅히 하나님을 대적하는 이들을 향하여 심판과 징계의 회초리를 들어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럴 때에 죄 없는 사람들에게까지도 직간접적으로 하나님의 심판과 징계의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이다.


물이 떨어지는 곳에 가까이 가면 떨어지는 낙수물에 맞아 옷이 젖을 수 있다.


화재 난 곳에 가까이 가 있으면 덩달아 불씨가 날아와서 불에 탈 수 있다.


도박장에 가서 구경하다가 도박 단속에 걸려서 도박범으로 몰릴 수 있다.


죄악된 곳에 가까이 가면 갈수록 죄악에 물들고 빠져들어 갈 위험성이 많아진다.


그러면 그 죄악으로 인하여 영혼은 타락하게 되고, 하나님의 심판과 징계를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 신앙인들은 가야 할 곳과 가서는 안 되는 곳을 구별하고 올바르게 분별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여기저기 구별하지 않고 기웃기웃거리다가 몰매를 당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면서 자기는 아니라고, 나는 그런 적이 전혀 없다고, 나는 그럴 의도가 전혀 없었다고 변명 아닌 변명을 하더라도 이미 엎질러진 물이 되고 만다.


그러기에 우리 신앙인들은 가도 되는 곳인지, 가서는 안 되는 곳인지를 분별할 수 있어야 하고, 가서는 안 되는 곳이라면 절대로 가서는 안 되는 것이다.


디모데후서2:15-17에서 하나님은 바울을 통하여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망령되고 헛된 말을 버리라. 그들은 경건하지 아니함에 점점 나아가나니, 그들의 말은 악성 종양이 퍼져나감과 같은데 그 중에 후메내오와 빌레도가 있느니라.”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을 믿는 이들은 가야 할 곳과 가지 말아야 할 곳을 분별하여 가지 말아야 할 곳에는 가지 말라고 하시는 말씀이다.


 


우리 신앙인들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기본적인 창조질서 마저 깨뜨리고 자신들만의 바벨탑을 높이 높이 더 높이 더 높이 쌓아 올리면서 하늘 아버지의 심판과 징계를 내리려고 할 때, 그들과 동일한 시, 동일한 지역에 살고 있다는 것 때문에 우리들도 덩달아 고난과 역경과 시련을 당할 수밖에 없다.


그러더라도 우리 신앙인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신실함을 믿는 믿음으로 고난과 시련의 시간을 잘 극복하고 이겨내어야 한다.


우리 하나님께서 능히 이겨낼 수 있는 믿음과 은혜와 능력을 베풀어주시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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