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얼마만큼 하나님을 알고 있을까? (출6:1-30)
본문
우리는 얼마만큼 하나님을 알고 있을까?/ 출애굽기6;1-30
”난 양반김이야!!“
전국에서 한가닥씩 한다는 유명한 김밥들이 모여서 100M 달리기 시합을 했습니다.
출발신호가 울리고 김밥들이 가문의 영광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여 달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김밥이 달리다가 옆구리가 터져버리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밥, 단무지, 시금치, 계란, 맛살, 햄, 참깨는 시합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달리는 것입니다.
한참을 달리다가 단무지가 뒤돌아보니 김이 달리지 않고 바닥에 주저 앉아 있는 것입니다.
단무지가 다급한 목소리로
”김아!! 빨리 뛰어, 빨리 뛰란 말이야!!“라고 외쳤습니다.
그러자 김이 ”안돼~! 난 양반김이야!!“라고 했다고 합니다.
옛날에 양반들은 앉아서 ”에헴.“하면서 체면 차리기에 바빴습니다.
요즘 양반들이 이렇게 하면 당장 쫓겨나기 일보 직전입니다.
이번 주간에는 설명절이 있는 주간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 신앙인들은 이제는 체면 차리지 말고 우리가 먼저 밥상도 차리고, 설거지도 하고, 집안 정리도 하면서 온 가족이 화목하고 행복한 설 명절이 되었으면 합니다.
P4.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로 나아갔다가 혹 떼러 갔다가 도리어 더 많은 혹을 붙여서 돌아온 격이 되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더욱 더 큰 고통의 나락으로 빠지게 된다.
너무나 큰 고통의 짐을 져야 하는 백성들을 보면서 모세는 몸들 바를 모른다.
괜히 애굽제국의 절대지존이라는 바로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더 고통스런 삶을 살아가게 만든 것 같아서 모세는 쥐구멍이라고 있으면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다.
더욱 더 크고 많은 시련을 당하는 백성들을 바라보면서 자신이 아무 일도 할 수 없음을 보면서 모세는 자책한다.
모세는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서 “주여, 어찌하여 이 백성이 학대를 당하게 하셨나이까? 어찌하여 나를 보내셨나이까? 내가 바로에게 들어가서 주의 이름으로 말한 후로부터 그가 이 백성을 더 학대하며 주께서도 주의 백성을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라고 하면서 하소연한다.
모세가 하소연하는 소리를 들으신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제 내가 바로에게 하는 일을 네가 보리라. 강한 손으로 말미암아 바로가 그들을 보내리라. 강한 손으로 말미암아 바로가 그들을 그의 땅에서 쫓아내리라.”라고 말씀하시면서 앞으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바로를 비롯한 애굽제국에 어떻게 심판하고 징벌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어내는 지를 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냥 보내주시는 정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긋지긋해서 ‘빨리 빨리 빨리 빨리 어서 나가라.’라고 하면서 급하게 쫓아 보낼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제 좀만 기다려봐. 좋은 구경하게 될 거야. 앞으로 일어날 일은 다시 일어나지 않을거야. 세상에 이런 일은 처음이자 마지막일 거야. 그러니 기대하고 좀만 참고 견디어내도록 하렴.”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러시면서 이제 온 세상이 놀랄 수밖에 없는 놀라운 일을 진행시켜 나갈 여호와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지 상세하게 가르쳐 주신다.
모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미디안 광야에서 돌아왔고,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서 애굽의 절대지존이라는 바로, 태양신의 화신이라는 바로에게로 들어갔다 왔지만, 그 여호와 하나님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자신을 부르신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자기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로 보내시고, 바로에게로 보내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긋지긋한 종살이에서 구출해 낼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그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제대로 알아야 그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지 않겠나. 그런데 어렴풋하게 아는 것처럼 보이기는 한데, 정확하게, 명확하게, 확실하게, 자기 가족들을 아는 것처럼 여호와 하나님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여호와 하나님 자신에 대하여 좀 더 상세하게, 좀 더 정확하게, 좀 더 명확하게, 좀 더 확실하게 알려주시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러면 모세에게 하나님은 자기 자신에 대하여 어떤 분이라고 명확하게 알려주고 계시면서 하나님 자신을 알려주고 계시는 것일까?
하나님은 모세에게 어떤 하나님에 대하여 알아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일까?
D4.
① 하나님 자신을 상세하게 소개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모세에게 처음으로 하나님 자신의 이름을 알려주신다.
“나는 여호와이니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의 하나님으로 나타났으나, 나의 이름을 여호와로는 그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였고”라고 말씀하시면서 하나님 자신의 이름을 알려주고 계신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조상인 아브라함에게도, 이삭에게도, 야곱에게도 지금까지는 “여호와(JEHOVAH)”라는 하나님 자신의 이름을 알려준 적이 없다라고 말씀하시면서 이제 비로소 하나님 자신의 이름이 “여호와”라고 알려주고 계신다.
하나님은 매우 다양한 이름들을 가지고 계신다.
지금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하나님 자신의 이름을 “여호와”라고 가르쳐 주시고 계시는데, “여호와”라는 이름은 “항상 살아계시며 스스로 존재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의미이다.
우리 신앙인들은 기본적으로 하나님에 대하여 제대로 알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신앙생활해야 한다.
우리가 믿는 신앙의 대상이신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도 제대로 모르면서 올바르게 신앙생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에 대하여 아는 만큼 우리 신앙의 수준도 향상 되어지고 성장하고 성숙해져 가면서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신앙인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
② 언약을 기억해 주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4-5절에서 모세에게 “가나안 땅 곧 그들이 거류하는 땅을 그들에게 주기로 그들과 언약하였더니, 이제 애굽 사람이 종으로 삼은 이스라엘 자손의 신음소리를 내가 듣고 나의 언약을 기억하노라.”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430년 전에 야곱을 애굽으로 내려보내면서 창세기 46:3-4절에서 “나는 하나님이라. 네 아버지의 하나님이니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고 반드시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며 요셉이 그의 손으로 네 눈을 감기리라.”라고 말씀하시면서 안심하고 애굽으로 내려가라고 말씀하시면서 언약을 맺은 적이 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는 창세기15;13-14절에서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라고 말씀하시면서 언약을 맺어주신 적이 있다.
지금 하나님은 모세에게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 야곱과 맺은 언약을 애굽에서 430년 동안 살면서 고통당하는 신음의 소리를 듣고 그 언약을 기억하고 있다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사람들은 몇 년 전에 맺었던 약속도 까마득히 잊어버린다.
몇 년이 아니라 몇 달 전, 아니 몇 일 전에 맺었던 약속도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이들이 수도 없이 많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은 500년도 훨씬 지난 언약이고, 야곱과 맺은 언약은 430년이 지난 언약이다.
이처럼 아주 먼 옛날에 맺은 언약이기 때문에 까마득하게 잊어버려도 누가 탓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
그런데도 여호와 하나님은 신실하게 그 먼 옛날에 조상들과 맺은 언약을 생생하게 기억하면서 이제 그 언약을 실행해 나갈 때가 되었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우리 신앙인들은 약속을 잘 기억하며 그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며 살아가고 있는가?
사람들과의 약속은 말할 것도 없고, 신앙생활하면서 하나님과 맺은 언약, 약속을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나 몰라라 하고 있지는 않는가?
우리들은 까마득히 잊어버려도 우리와 약속을 맺은 그 사람은 그 약속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을지 모른다.
십수년이 지난 이야기이지만, 부산에 계시는 어느 목사님께서 저에게 렘브란트가 그린 “탕자의 귀환”이라는 그림을 액자에 넣어주시겠다고 약속한 적이 있다.
몇 달이 지나도 아무런 연락이 없기에 저가 그 목사님께 전화를 걸어서 약속한 그림을 왜 안 주시느냐? 그림을 보내주시면서 고맙겠다라고 했더니 그 때도 곧 보내주시겠다고 대답했었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그 분은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
아마도 그 분은 저와 맺은 약속을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있을 것이다.
기억조차 못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저는 그때 했던 약속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렇다고 그 목사님께 다시 전화를 걸어서 그때 했던 약속대로 그림을 보내달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이런 일은 그분에게만 있겠는가?
저에게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저도 어느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약속했을텐데 기억조차 하지 못하고 까마득히 잊어버린 약속들이 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나는 까맣게 잊어버렸지만 아마도 그 사람은 그 약속을 기억하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다.
우리 신앙인들은 누군가와 맺은 약속이든 약속을 가볍게 여기고 쉽게 깨뜨려버려서는 안 된다.
신앙인의 삶은 그 신앙인의 삶으로 끝나지 않는다.
신앙인의 삶을 통해서 예수그리스도의 복음과도 깊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신앙인의 삶 자체가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지름길이 될 수도 있는가 하면 복음 전도의 길을 가로막는 방해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우리 신앙인들은 약속을 신실하게 지킬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신앙안에서 우리의 하늘 아버지와 맺은 언약, 약속은 하나님께서 결코 잊어버리지 않고 생생하게 기억하고 계신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언젠가 우리들의 마음과 생각과 영혼 속으로 찾아오셔서 그 약속을 꺼내어 보여주신다.
하나님께서 우리 신앙인들에게 찾아오셔서 그 옛날 맺은 약속을 생각해 내도록 감동을 주시기 전에 우리들이 먼저 하나님께 올려드린 약속을 잊어버리지 말고 잘 기억하여 그 약속을 지켜드릴 수 있어야 한다.
③ 뚜렷한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계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모세에게 6-8에서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나는 여호와라. 내가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내며 그들의 노역에서 너희를 건지며 편 팔과 여러 큰 심판들로써 너희를 속량하여, 너희를 내 백성으로 삼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니, 나는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낸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지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으로 너희를 인도하고 그 땅을 너희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라 하셨다 하라.”라고 말씀하시면서 왜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밝히면서 430년 동안 종살이하던 애굽에서 이끌어내어 가나안 땅으로 이끌어가려고 하는지를 분명하게 말씀하고 계신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하나님이 되어주시는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계신다.
중동지역에는 어느 민족은 어떤 신이 주인이라는 의식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그 민족에게는 그 신이라는 공식이 정해져 있다.
애굽은 라 또는 레 라고 하는 태양신, 블레셋은 다곤신, 모압은 그모스신, 암몬은 몰렉, 밀곰신, 가나안의 족속들에게는 바알신이 그 민족과 그 신이라는 공식으로 인정되었던 시절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새로운 공식을 만들겠다고 하나님께서 선포하는 것이다.
물론 여호와 하나님은 아주 좁게 이스라엘 민족만을 위한 하나님이 아니라, 온 우주계, 온 지구촌의 하나님이시다.
여호와 하나님은 온 우주의 하나님이요, 온 지구촌의 하나님이시지만, 고고고고시대에 중동지역에 공식화되어 있는 민족과 신과의 관계를 이용하여 여호와 하나님에게는 이스라엘 백성이라는 공식,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공식을 세워서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온 세계로, 온 지구촌으로, 온 우주계로 펼쳐 나가시려는 하나님의 근본적인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있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을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고, 온 우주계에 구원의 세계를 펼쳐 가시려는 목적과 의도를 가지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출애굽하려는 것이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 자유대한민국이라는 나라와 한민족을 위해서도, 우리 한국교회와 선교사님을 위해서도, 우리 교회와 우리 가정과 우리 자녀들과 우리 생업터전을 위해서도 분명한 목적과 의도를 가지고 계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분명한 목적과 의도를 가지고 여호와 하나님만이 가지신 심정과 주권으로 우리들을 이끌어 가시고 하나님의 신령한 영의 세계로, 영원한 천국의 세계로 이끌어 가시려고 하신다.
④ 지금 당장 당면한 문제를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해결해 주시려는 하나님.
하나님께서 6절의 말씀을 통하여 “내가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내며 그들의 노역에서 너희를 건지며 편 팔과 여러 큰 심판들로써 너희를 속량하여”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이다.
하나님은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430년 동안 지긋지긋한 종살이에서 해방시켜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시겠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금 당장 해결해야만 되는 당면문제라는 것이다.
지금 당장 해결해야만 하는 문제에 하나님께서 나 몰라라 방관하지 않으시고, 적극적으로 개입하셔서 해결해 주시겠다고 하시는 하나님의 강한 의지를 보여주시는 말씀이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 신앙인들이 지금 당면하고 있는 문제들, 지금 당장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문제들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셔서 해결의 길을 열어가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지금 우리들이 당장 해결해야만 하는 문제들은 어떤 것들이 있는가?
코로나19바이러스문제와 건강과 질병의 문제, 진학과 진로와 진급의 문제, 취업의 문제, 경제와 물질의 문제, 관계 회복의 문제, 사역의 문제 등등 각자에게 해당되는 문제들이 있을 수 있다.
사람들마다 각각 다른 문제들이 있겠지만, 문제가 없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우리들이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든지 간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직접 찾아오시고 간섭해 주시고 해결의 방법을 찾아가겠다고 말씀하고 계신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시면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고, 아주 쉽게 해결될 수 있다.
우리들의 능력이나 지혜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은 문제들도 하나님은 얼마든지 해결해낼 수 있다.
그러므로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⑤ 언약의 가계도를 형성시켜 주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면서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이방의 땅으로 가서 나그네 삶을 살면서 400년 동안 이방인의 압제와 시련을 당하다가 4대 만에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도록 이끌어서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시겠다고 언약을 맺어주셨다.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에 따라서 정확하게 4대가 가나안 땅으로 돌아와서 가나안족속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차지하게 된다.
일반적인 지파에는 4대라는 계산이 서로 맞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레위 지파를 중심으로 계산해 보면 정확하게 4대가 되는 후손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된다.
레위가 낳은 아들은 3형제이다.
레위는 게르솜과 고핫과 므라리라는 3형제와 딸들을 낳는다.
레위는 아들을 3형제 낳았지만, 딸은 몇 명을 낳았지는 알 수 없다.
성경에 딸들의 이름이 기록되지 않았다고 해서 레위가 딸을 낳지 않은 것은 아니다.
분명히 레위도 딸을 낳았다.
미리암과 아론과 모세를 낳은 아므람과 요게벳의 가계도를 상세하게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아므람은 고핫의 아들이고, 요게벳은 아버지의 누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요게벳이 아버지의 누이라고 소개하는 것은 아버지 고핫의 누이동생이 되는 것이다.
요게벳에 고핫의 누이동생이기 때문에 레위의 딸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아므람과 요게벳은 고모와 조카 사이가 되는 것이다.
아마도 요게벳은 레위가 애굽으로 이주한 이후에 낳았을 것이다.
아므람도 아버지 고핫이 애굽으로 내려온 이후에 낳았을 것이고 아므람과 요게벳은 나이 차이도 많이 나지 않고 엇비슷하여 혼인하지 않았을까 싶다.
오늘 본문에 보면 아므람과 요게벳이 아론과 모세를 낳았다고 소개하는 것이다.
애굽으로 내려간 레위의 후손들을 중심으로 계산하면 고핫이 1대가 되고, 아므람이 2대가 되고, 모세와 아론이 3대가 되고, 모세와 아론의 아들들이 4대가 된다.
결과적으로 모세와 아론의 아들들이 광야 40년 생활을 마치고 가나안 땅에 들어간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모세와 아론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고 싶은 소망은 너무나 간절하였지만, 3대에 불과하기 때문에 가나안 땅에 들어갈 자격이 안 되는 것이다.
그래서 모세와 아론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모압 평지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영원한 천국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하나님은 400년 동안 종살이하게 된 후에 하나님께서 이방 민족을 징계하면서 4대 만에 돌아오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430년을 살았는데, 처음에는 종살이한 것이 아니다.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의 후광을 받으면서 너무나 평안하게 자유인이 되어 자유롭게 살면서 번창하였었다.
그러나 요셉이 죽고 난 이후에 요셉과 함께했던 힉소스 왕조가 무너지고 애굽인의 제18왕조가 들어서면서 본격적으로 종살이하는 것이다.
그래서 430년 만에 출애굽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맺은 언약을 정확하게 계산하여 실행으로 옮기신다.
하나님은 우리들과 맺은 언약도 정확하게 계산하여 우리들을 비롯하여 우리 후손들에게 맺은 언약을 실행에 옮겨가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정확하게 계산하여 우리 한민족과 맺은 언약, 우리 가정과 맺은 언약을 실행해 나가시려고 할 때, 우리들이 지름길이 되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혹시나 걸림돌이 되어 있다면 우리들은 후손들에게 크나큰 죄와 빚을 지고 살아가는 꼴이 된다.
그러기에 우리들이 살아가는 삶 하나하나가 너무나 중요하고 값진 삶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L4 & B4.
하나님은 어떤 일을 계획하고 추진하더라도 하나의 빈틈도 없이 정확하게 추진하고 실행에 옮겨가신다.
그렇다면 우리 신앙인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신앙생활하며 하나님께서 추진해 나가시는 사역에 동참하는 일꾼이요 동역자요 사역자로서 얼마나 정확하게 하나님의 주권과 의지와 계획을 따라서 순종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우리 신앙인들은 얼마나 하나님의 주권과 의지와 계획을 믿음으로 순종하며 실행해 나가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가?
우리들이 세상에서 이루고 싶은 욕망의 의지와 계획을 세워놓고는 하나님께서 하시려는 뜻과 의지라고 착각하고 포장하여 우리의 의지와 계획을 이루어가려고 하는 욕망에 빠져 있지는 않을까?
수많은 신앙의 지도자들이 자신이 세워놓은 욕망의 테두리를 하나님의 뜻과 의지라고 떠벌리면서 자신의 욕망을 세워가려고 하는 이들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동안 하늘 아버지의 의지와 뜻과 계획과는 전혀 무관한 일을 하나님의 일이라고 떠벌리면서 성도들을 미혹하고 유혹하고 강압적으로 추진하는 일들이 한국교회에 많은 폐단을 끼쳐온 것이 사실이다.
주님의 나라와 복음을 위해서,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서 하는 일이라고 하면서 정작 주님의 복음과 교회를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지도자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었던 사례들이 허다하다.
그래서 사회에서 주님의 교회들이 비난과 조롱과 야유와 같은 욕을 먹어야 하고,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지름길이 아니라 걸림돌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어떻게 살아야만 하는 것일까?
① 쉽게 하나님의 뜻과 의지와 계획이라고 속단하지 말아야 한다.
전능하신 하나님만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신앙인들도 근본적으로는 무지몽매한 인간이요, 죄인으로 태어나서 죄인의 굴레에서 성장한 죄인이라는 사실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
인간이란 존재는 절대로 전능하신 하나님의 온전한 뜻과 의지와 계획을 깨닫거나 알지 못한다.
인간이 하나님의 뜻과 의지를 깨달아 알 수 있는 수준은 그야말로 조족지혈에 불과하다.
10000/1도, 아니 1000/1도 하나님의 뜻과 의지를 제대로 깨닫지 못한다.
조족지혈에 불과한 너무나 얄팍한 지식을 가지고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을 제대로 깨닫고 있다고 떠벌리는 것은 어불성설에 불과하다.
끊임없는 자아성찰과 하나님의 말씀 앞에 엎드려서 하나님께서 들려주시는 세미한 음성을 귀담아듣고자 하는 겸손의 자세가 없으면 언제 어떻게 어둠의 세력, 악의 세력, 사탄의 세력에게 미혹당할는지 모르는 것이 무능한 인간이라는 실재이다.
자신이 몇 일 금식기도했기 때문에, 자신이 어떤 어떤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정확하게 깨닫고 계시해 주신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틀림없이 문제가 많은 사람들이라 단언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신에게만 하나님께서 특별히 계시해 주었다고 주장하는 이들 때문에 한국교회는 혼란에 빠지게 된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
아직도 그런 류의 사람들 때문에 주님의 몸된 교회는 혼란을 겪고 있다.
그러기에 근본적으로 죄인이고, 인간이라는 신분이기 때문에 항상 최선을 다하여 겸손하게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서 들려주시는 세미한 음성을 들으려고 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②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의 말씀이신 성경 묵상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성경을 피상적으로 읽거나 대하지 말고 성경을 기록하도록 감동을 주신 분이 성령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성령 하나님께서 왜 그 성경을 그 시대에, 그 작가에 의해서 기록하게 하셨는지를 정말 심각하게 묵상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그 성경을 그 시대에, 그 작가에 의해서 기록하게 하실 때에는 분명한 의도와 계획과 주권을 가지고 계시면서 그 성경을 기록하도록 감동을 주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면서 그 말씀 속에 담겨진 진짜 하나님의 의도와 계획과 주권과 심정을 우리들의 온 몸으로, 온 인격으로, 온 맘으로 느끼고, 만지고, 맡으면서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깨닫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로 피상적으로 읽고 공부하고 연구하라고 주신 말씀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영혼의 생명으로 주신 말씀이다.
우리 영혼에 생명으로 주신 말씀이기 때문에 우리들의 피부로, 우리들의 오감(五感)으로 인지하고 고백하면서 하나님의 임재를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눈으로 읽을 수 있는 말씀이 전부가 아니다.
성경은 생략과 압축의 원리를 따라서 기후와 문화와 지역의 특성을 따라서 기록하였기 때문에 성경 속에 숨겨져 있는 생명의 말씀도 찾아서 읽어낼 수 있어야 하고, 보이지 않는 말씀도 찾아서 읽어낼 수 있어야 하고, 지금 귀에 들려지지 않는 말씀도 귀담아들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깊이 묵상해야 한다.
그러기 위하여 우리 신앙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일에 목숨을 걸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호세아서 6:1-3절의 말씀을 통하여,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라고 밀씀하신다.
하나님을 아는 일에 힘써서 매진해야만 하나님을 제대로 알고 하나님을 제대로 알아야 하나님 앞에서 올바르게 신앙생활할 수 있고,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신앙인으로 살아갈 수 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