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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더라 (행13:42-52)

본문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더라 (사도행전 13장 42-52절)


 


2월은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엡 5:10)라는 이달의 암송 말씀을 중심으로, “기쁨”에 대해 나누고 있습니다. 오늘은 사도바울의 전도여행 이야기를 함께 나눕니다. 사도 바울은 총 세 차례에 걸쳐 전도 여행을 했습니다. 나중에 재판을 받으러 로마에 압송되는 과정까지 포함해서 총 4번의 전도여행을 했다고 분류하기도 합니다.


 


이동 수단이 대부분 도보인 것을 감안 했을 때, 바울이 전도여행 중 이동거리가 무려 20,000km가 넘는다고 합니다. 20,000km, 상상이 가시나요? 한라산에서 백두산 까지 열 번을 왕복해야 도달할 수 있는 거리입니다. 사도 바울의 사역은 성령의 역사가 아니면,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 땅의 모든 믿음의 후배들은, 믿음의 대 선배인 사도바울의 헌신과 충성앞에 공경심을 가져야 합니다.


 


오늘 성경 말씀은 바울의 1차 전도여행 때의 이야기입니다. 1차 여행 때 동행 했던 인물은 바나바라는 인물이었는데, ‘바나바’라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바나바가 처음 성경에 등장한 내용은 이렀습니다.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 사람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라 (번역하면 위로의 아들이라)하니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그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행 4:36.37) 아멘.


 


구브로(현재지명, 키프로스) 출신이며, 레위 족속이고, 그의 본명은 ‘요셉’이었지만, 사도들은, ‘위로의 아들’ 이라는 뜻을 지닌 ‘바나바’라는 별칭으로 그를 불렀습니다. 성경에 그에 대한 인물 평을보면,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행 11:24)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다메섹의 길 위에서 예수님을 만나게되는 결정적인 회심을 경험하고, 기독교인이 되어 예루 살렘으로 돌아 왔을 때, 다른 사람들은 모두 바울이 거짓으로 회심한 척 하며, 자기들을 잡아 죽일 것이라고 두려워 했습니다. 이때 바나바가 나서서,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 완전하게 변화된 믿음의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변호해 주었습니다.


 


이런 면을 볼 때, 아마도 바나바는 초대 예루살렘 교회에서 12사도와 버금가는 중요한 인물이었을 것으로 추정 됩니다. 또한 오늘 본문이 있는 13장 1절을 보면, 바나바의 주 활동 무대였던 안디옥 교회의 섬기는 사람들을 소개 할 때, 바나바의 이름이 제일먼저 나옵니다. 그만큼 그의 위치나, 권위가 존경 받는 교회의 지도자였다는 것도 추측할 수 있습니다.


 


1차 전도 여행 때만 본다면, 바나바가 나이나, 신앙의 경험, 그리고 교회에서의 위치나 영향력에서 사도 바울 보다 앞섰던 인물이었습니다. 이 두사람을 파송한 곳은 예루살렘 교회가 아니라 수리아에 있는 안디옥 교회였습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교회의 시작인 본(本) 교회라면, 안디옥 교회는 이방인 개종자들이 중심을 이룬 대형 교회였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이 곳에서 사역을 함께 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이 두사람의 파송 상황이 2, 3절에 나와 있습니다.


 


2, 3절을 읽어 드립니다.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아멘. 이 본문에는 교회 사역의 중요한 내용이 담겨져 있습니다.


 


첫째는,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라고 되어 있습니다. 주를 섬긴다는 번역은 “예배(헬, 레이투르군콘, 예배한다는 뜻의 라틴어 ‘Liturgy, 리터지’가 이 단어에서 파생)한다”는 뜻입니다. “금식한다”는 것은 기도를 위한 금식입니다. 초대교회는 하나님으로부터 영적 감동을 받기 위한 자발적인 금식 기도가 일상화 되어 있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데 많은 성도가 열심을 냈습니다. 이렇게, 예배 중심, 기도중심이 가장 먼저 선행되어야 하는 곳이 교회입니다. 예배와 기도가 성공하는 교회가 가장 건강한 교회입니다. 우리 교회가 정말 예배가 즐겁고 기쁨이 되는 교회, 기도 하기 위해 교회로 찾아오는 발걸음이 많아지고, 기도 소리가 365일 끊이지 않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둘째는, “성령이 이르시되”라고 했습니다. 성령이 언제 역사 하십니까? 주를 섬기고, 즉 예배에 온 힘과 정성을 다할 때 성령이 강력하게 역사 하십니다. 또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간절한 기도(금식을 포함한)가 터져 나올 때 강력한 성령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성령이 이르시되”, 곧 우리가 올려 드리는 기도가 중보자 되시는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께 신속하게 전달되고, 하나님의 응답 하셔서 말씀으로 선포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성령이 역사하지 않으면 교회는 죽은 교회입니다. 성령이 역사하는 교회만이 곧 하나님의 교회요, 예수님의 교회가 됩니다. 우리 00교회가, 날마다 성령의 강력한 역사가 일어나는 하나님의 교회, 예수님의 교회, 성령님의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셋째는,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일할 사람을 준비 시키시고,준비 된 자들을 찾으십니다. 그리고 해당자들을, ① 불렀습니다.(소명) ② 시켰습니다(사명) ③ 따로 세웠습니다(직분-전도자) 성령의 역사로 교회는 부흥성장 하지만, 그에 알맞은 일꾼은 꼭 필요 합니다. 하나님이 마음대로 쓰시기에 합당한 일꾼들을 준비시키는 곳이 교회입니다. 준비된 자들이 화수분 같이 넘쳐 나는 곳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입니다. 우리 00교회가, 하나님의 마음에 기쁨을 드리는, 하나님이 찾으시는 미래의 일꾼을 양성하는 교회중의 교회로 부흥 성장하기를 소망합니다.


 


2~3절, 딱 두 절속에 교회의 역할과 나아갈 방향이 다 담겨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이 말씀에 충실하게 반응해서, 한 마음 한 뜻으로 함께 준비하면, 하나님은 우리 교회를 통하여 영광 받으시고, 성령이 강력하게 역사하시는 교회로 세워 가실 줄을 믿습니다. 우리 교회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시고, 소망을 가지시고, 예배와 기도에 전심을 다하는 우리 교회가 되기를 축복하고 축복합니다.


 


이렇게 선택 받은 바울과 바나바가 처음 도착한 선교 현장은 ‘구브로’라는 섬 이었는데, 이 섬은 현재 지명은 ‘키프로스’입니다. 이스라엘 서쪽에 지중해가 시작되는 곳에 위치한 아주 큰 섬입니다. 현재 인구는 120만명, 크기는 제주도의 4.5배나 된다고 합니다. 5절에, “요한을 수행원으로 두었더라”라고 되어 있는데, 이 요한이 곧 마가 요한입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마가 요한은 함께 있었습니다.


 


이 구브로 섬에는 유대인 거짓 선지자 ‘바예수’ 라는 마술사가 있었는데, 그가 마술의 힘을 믿고 바울과 바나바를 상대하려다가 얼마간 눈이 안보이게 되는 망신을 당하게 됩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이렇게 선교 초기에 강력한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복음을 거침 없이 복음을 전파해 나갔습니다. 성령이 함께 하시는데 마술사고 귀신이고 다 필요 없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거침없이 그리고 역동적으로 복음 전파 사역을 감당해 나갔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변수가 생겼습니다. 13절에 “바보에서 배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이르니 요한은 그들에게서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고 했습니다. 마가가 왜 중도하차 했는지도 뒤로 하더라도, 세 사람이 일하다가 갑자기 한 사람이 안 하겠다고 하면 기운이 빠지게 마련입니다. 직장일도, 가정일도, 교회일도 다 그렇습니다. 여럿이 함께 각자의 일을 분담해서 하다가 하나 둘 사람이 빠지기 시작하면, 남은 사람이 그만큼 힘이 듭니다.


 


자리를 끝까지 지키며 묵묵히 봉사하고 헌신하는 사람이야 말로 가장 칭찬을 받을 만한 분들입니다. 우리 교회 모든 분들은, 한 사람도 중도탈락하지 마시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그날 까지, 비가오나, 눈이오나, 바람이 부나, 결코 흔들리지 아니하고 자리를 지키시는 헌신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마가가 떠났다고 해서 바울과 바나바의 전도 여행은 멈춰지지 않았습니다. 이제 육지에 도착해서 본격적인 전도 사역에 돌입합니다. 13절에서 마지막 52절 까지의 전도 현장은 ‘비시디아 안디옥’이라는 도시입니다. 지금의 터키 중부 지역에 있는 도시로, 바울의 고향인 ‘다소’에서 약 250km 떨어진 거리에 위치한 도시라고 합니다. 두 사람은 회당에 들어가서 세 번에 걸쳐 복음을 전합니다.


 


첫째 안식일에 바울은 회당에서 긴 설교를 합니다.(16-41) 사람들은 처음 들어보는 예수, 구원자, 복음에 대해 어리둥절해 하고 긴가민가 했습니다. 별다른 반응이 없었습니다.


둘째 안식일에 복음을 전합니다. (42-43) 이제 일부 사람들(유대인과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이 믿음의 반응을 보이자, 두 사도는 그들에게 ‘은혜(믿음으로 구원을 주신 것)’를 잘지키라고 당부 합니다.


셋째 안식일에 복음을 전합니다. 이 내용이 오늘 본문입니다. 이 날에는 비시디아 안디옥 거의 모든 시민이 다 복음을 들었다고 합니다. 이방인들에게도 구원이 있다는 선포를 듣고, 많은 사람들이 기뻐했으며,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고,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었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폭발적인 반응이었습니다.


 


이렇게 복음의 역사는 하루, 이틀, 사흘... 꾸준하게 선포되고 들려 질수록 강력하게 역사하게 됩니다. 한 번 전해서 무반응 이라고 해서 포기하면 안 됩니다. 두 번 전해서 약한 반응만 보인다고 해서 실망하면 안 됩니다. 세 번 전해서 기쁨을 얻고, 찬송하며 믿음의 사람으로 돌아오기 까지 전하고 또 전해야 합니다. 가족 전도 대상자 위해 기도 잘 하고 계시죠? 포기하지 마시고 계속 시도 하십시오.


 


바울과 바나바와 같이 우리는 기쁨의 전달자들입니다. 그 기쁨은 믿음의 기쁨이요, 찬송의 기쁨이요, 구원과 영생의 기쁨입니다. 기쁨은 하나님이 주시지만, 우리는 그 기쁨을 모두에게 열어주는 축복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교회의 역할이요, 성도의 역할입니다. 지난 주 설교에서, 내가 먼저 기쁨을 받아야 된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내가 기쁨을 회복 했다면, 이제는 바울과 바나바와 같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기쁨을 전해 주는 복음 전도의 사명에 힘을 써야 합니다.


 


하나님을 최고로 만족하고, 그 분만을 기뻐하는,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이라면, 이제는 눈을 들어서 아직도 그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의 처지와 형편을 살피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단 한사람에게라도 기쁨의 좋은 소식을 전해 주시기 위해 십자가의 고난과 희생을 감수하신 우리 주님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나를 부르시고, 나에게 일(복음전도)을 시키시고, 나를 따로 세우셨음을 일깨워야 합니다. 그리하여, 나의 일상적인 삶의 자리가 바울과 바나바가 겪었던 비시디아 안디옥의 회당이 되어야 합니다. 성령께서 나를 첫째 안식일로, 둘째 안식일로, 셋째 안식일로 계속 파송하고 계십니다. 기쁨의 반응이 일어날 때까지 계속 기쁨을 선포하고 퍼트려야 합니다. 언젠가는 반드시 반응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안디옥에서 많은 사람들이 믿음의 기쁨의 반응을 보이자 시기, 질투하는 저항 세력이 일어납니다. 50절에, “이에 유대인들이 경건한 귀부인들과 그 시내 유력자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박해하게 하여 그 지역에서 쫓아내니”라고 했습니다. 어디를 가나 기쁨을 받아 들이는 자가 있는 반면에, 기쁨을 거부하고, 방해하는 자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두 사도는 소기의 성과를 달성 했음에도, 결국 박해를 받고 그곳을 떠나야 했습니다. 그러나 아름다운 열매가 맺어졋습니다. 52절입니다.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 아멘.


 


여기서의 제자들은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복음을 듣고 새롭게 신자가 된 사람들을 말합니다. 복음을 듣고 믿었더니 기쁨이 주어졌고, 영생을 믿었더니 성령 충만이 그들에게 임했습니다. 박해를 받고 떠난 두 사도의 헌신적인 노력의 결과물이 “기쁨과 성령” 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과 희생으로 우리가 기쁨과 성령을 얻은 것과 너무나도 똑 같습니다. 희생 없이는, 수고 없이는, 복음을 위한 박해 없이는,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게 역사하지 않습니다.


 


비시디아 안디옥의 전도 결과를 보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분명해 집니다. 우리는 이미 “기쁨과 성령을 충만하게” 경험하고, 소유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는 복음을 위한 박해, 고난, 수고, 헌신을 기꺼이 감수해야 합니다. 우리 가족 구원을 위해, 우리 자녀들의 미래를 위해, 우리 교회와, 한국교회, 나아가서 세계 복음화를 위해, 박해를 받는 것을 결코 두려워 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박해의 현장으로 뛰어 들어야 합니다.


 


내가 흘리는 땀과 눈물과 노력 만큼 우리 교회와 후손에게는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게 주어질 것입니다. “우리 00교회에는 기쁨과 성령이 충만 하더라”, “우리 00교회의 모든 가족과 자녀, 후손들에게는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더라” 우리가 이런 전도의 결과물을 만들어 내야 하지 않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이 시대의 바나바와 바울처럼 쓰시기를 원하십니다.


 


00교회 모든 성도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주어지는 기쁨과 성령을 충만하게 받으시고, 우리 이웃과 가족에게도 “기쁨과 성령 충만”을 경험하게 해주는 이 시대의 최고의 축복의 통로가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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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예수님으로 인해 기쁨과 성령을 충만하게 누리며 살아가는 구원의 은혜를 받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저희들이 하나님이 쓰실 만한 일꾼으로 잘 준비되게 하셔서, 모든 이에게 복음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축복의 통로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기쁨과 영생으로 이끌어 주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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