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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말아요 (출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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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말아요 /출애굽기18;27(211024)



자기 생일날 죽으면 이상하잖아


 


사오정의 친구가 사오정에게 “어이. 오정아...너는 몇 살까지 살고 싶냐?”라고 묻습니다.


그러자 사오정은 “응 난 백살하고 사흘만 더 살았으면 좋겠어.”라고 대답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그 친구가 “백살이면 됐지 왜 사흘 더 살고 싶다는 거냐?”라고 다시 묻습니다.


그러자 사오정은 “야... 자기 생일날 죽으면 이상하잖아.”라고 대답하는 것입니다.


사오정의 생일이 오일이라 오정이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생일날을 피해서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100세 아니, 더 오래 살고 싶어도 생명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셔야 합니다.


우리의 생명은 오직 하나님의 전능하신 손길에 놓여 있습니다.


우리의 생명, 영혼은 하나님의 전능하신 손길 안에 놓여 있음을 믿음으로 고백하면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사는 우리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아멘.


 


P4.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세움을 입은 사울 왕은 본래부터 왕이 될 욕망이 없었던 사람이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너무나 강력하게 자신들에게도 다른 민족들처럼 왕을 세워달라고 애원함에 따라서 사울을 왕으로 세우게 된다.


처음에는 서울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절대권자로 세워주셨다는 감사드리는 마음이 있었다.


그러나 권력의 맛을 알고 느끼면서 하나님께서 보잘것없는 자신을 왕으로 세워주셨다는 감사드리는 마음이 사라지고 없어진다.


처음에 가졌던 마음을 끝까지 가지고 초심견인하는 마음으로 철저하게 하나님께 충성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데 사울은 왕이 될 덕목도, 재목도, 신앙도 안 되는 사람이었다.


새롭게 떠오른 정적(政敵)인 젊은 청년 다윗을 죽이지 못해서 혈안이 되었던 사람, 왕으로서 국정보다는 개인적인 사욕에 눈먼 사람으로 결국에는 하나님께 버림당하고 만다.


사울은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헌신짝처럼 버린 어리석은 왕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왕이라는 기회를 잘 감당했더라면 두고두고 성군이었다고 칭찬이 자자했을텐데, 그런 기회를 스스로 놓쳐 버린 어리석은 왕이 되고 말았다.


어느 누가 사울왕을 거론하면서 성군이라거나 대단한 업적을 남긴 왕이라고 칭찬하고 있는가?


사울 왕을 향하여 하나님을 떠난 교만한 왕, 거만한 왕, 어리석은 왕이라고 이구동성으로 정죄하고 있지 않은가?


오늘 하나님은 어떤 사람에게 기회를 주시고 있는가?


그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를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가?


 


D4.


 


이드로는 모세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사람이다.


모세가 40세 되던 해에 살인사건에 연루되면서 애굽의 투트모세3세의 위협으로 애굽을 떠나서 미디안으로 도망쳐 왔을 때 받아준 사람이다.


모세는 이드로의 집에서 이드로의 딸인 십보라와 혼인하여 40년 동안 데릴사위의 자격으로 장인의 양 떼들을 치면서 살았다.


하나님은 모세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기 위해서 40년 동안 겸손과 인내를 배울 수 있도록 준비해 놓은 사람이다.


하나님의 산이라고 불리는 호렙산, 시내산, 그리고 시내광야는 어쩌면 이드로의 영향권 안에 있는 지역이다.


모세는 40년 동안 장인 이드로의 양 떼들을 몰고 수없이 왕래하면서 살았던 곳이 호렙산이요 시내산이요 시내광야이다.


모세는 지난 40년 동안 지냈던 이곳으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온 것이다.


이곳에서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제사를 드리고, 십계명의 돌판을 받고, 성막을 제작한 지역이 바로 이드로의 영향권 안에 있던 곳이다.


그래서 모세에게는 이드로가 누구보다 더 감사하고 고마운 사람일 수밖에 없다.


자신의 부인의 아버지요, 아들들의 외할아버지요, 자신이 의지했던 사람이기 때문에 모세는 이드로와 함께 어디까지나 함께 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모세는 이런 마음이었기 때문에 시내산에서 성막을 제작한 이후에 출발하면서 이드로에게 자신들과 함께 동행해 달라고 정중하게 부탁드리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드로는 모세의 기대, 모세의 간곡한 부탁에도 불구하고 자기 고향, 민족에게로 돌아가겠노라고 하면서 모세를 떠나버리는 것이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은 너무너무 안타까워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한 영혼을 바라보면서 너무나 안타깝게 여기신다.


이드로가 온전하게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되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우리는 이드로의 신앙에 관하여 깊게 고민해 봐야 한다.


이드로는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이었을까? 아닐까? 하는 문제이다.


이드로는 모세의 가족들을 데리고 모세가 진을 치고 있는 장막으로 찾아와서 모세에게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동안 출애굽 과정에 역사해 주신 사건들을 생생하게 들으면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큰 은혜를 베푸사 애굽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심을 기뻐하면서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너희를 애굽 사람의 손에서와 바로의 손에서 건져내시고 백성을 애굽 사람의 손 아래에서 건지셨도다. 이제 내가 알았도다. 여호와는 모든 신보다 크시므로 이스라엘에게 교만하게 행하는 그들을 이기셨도다.“라고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을 높이며 경배 한 사람이다.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혜롭게 통치할 수 있는 방법들을 제안해 주면서도 하나님께서 인도하실 것이라고 조언하기도 한다.


이드로의 입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높이고 찬양하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심에 놀라워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해서 과연 이드로가 온전하게 여호와 하나님만을 믿는 신앙인일까? 하는 문제이다.


아기 예수님께서 태어나심을 경배하기 위해서 예물을 가지고 찾아왔다고 해서 동방에서 온 박사들이 과연 신앙인일까? 하는 문제이다.


소위 말하는 동방박사들은 별을 보면서 점을 치는 점쟁이에 불과하다.


동방박사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이 아니다.


교회 일각에서는 동방박사들을 대단한 신앙의 위인이나 되는 것처럼 착각하지만, 전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이 아니다.


바벨론전통종교가 생생하게 살아있는 동방에서 온 박사들은 바벨론전통종교의 근간이 되는 태양신, 달신, 별신들을 섬기는 곧 일월성신을 믿고 점을 치면서 살아가는 점쟁이, 무당에 불과하다.


이런 것처럼 이드로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신학자는 이드로는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었고, 모세에게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신인지 알려준 사람이었다고 주장하는 신학자들도 더러 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모세에게 여호와 하나님을 가르쳐 주신 분은 이드로가 아니라 분명하게 여호와 하나님 자신이 호렙산으로 찾아오셔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직접 모세에게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하여 가르쳐 주신다.


이드로가 모세에게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가르쳐준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직접 모세에게 찾아오셔서 알려주신 것이다.


 


예수님을 믿지도 않는 권력을 가진 어떤 사람의 입에서 예수님이나 하나님에 대해서 이러니저러니 하면서 이야기한다고 해서 그 사람을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그들의 입에서 부활절이나 성탄절에 예수님 운운한다고 해서 과연 예수님을 믿는 신앙인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불교의 거승들이 성탄절이나 부활절에 예수님을 운운한다고 그들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다른 말로 우리가 석가가 태어났다고 하는 봉축일 뿐만 아니라 석가에 대해서, 부처에 대해서 이러니저리니, 불상과 보살에 대해서 이러니저러니, 유명한 고승들에 대하여 이러니 저리니 라고 말한다고 해서 우리가 석가를 믿는 사람, 불교인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우리나라의 유명한 산에는 유명한 사찰들이 자리 잡고 있다.


우리나라 사찰뿐만 아니라 중국이나 동남아를 여행하면서 석가에 대해서, 부처에 대해서 이러니 저리니 하는 말을 한다고 해서 우리가 불교를 믿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아니지 않은가.


이런 것과 똑같이 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여호와 하나님에 대하여 이러니 저리니 라고 말한다고 해서 이드로가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민수기 10;29-32절에 보면 모세가 장인에게 ”여호와께서 주마 하신 곳으로 우리가 행진하나니 우리와 동행하자. 그리하면 선대하리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복을 내리리라 하셨느니라.“라고 말씀하면서 자신들과 함께 가나안 땅으로 올라갑시다라고 제안한다.


그러자 이드로는 ”나는 가지 아니하고 내 고향 내 친족에게로 가리라.“라고 하면서 모세의 제안을 정중하게 거절한다.


모세는 거듭거듭 ”청하건대 우리를 떠나지 마소서. 당신은 우리가 광야에서 어떻게 진 칠지를 아나니 우리의 눈이 되리이다. 우리와 동행하면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복을 내리시는 대로 우리도 당신에게 행하리이다.“라고 요청하면서 자신들을 떠나지 말고 자신들의 눈이 되어주고 고문이 되어주어서 자신들과 함께 가나안 땅으로 올라가자고 제안함에도 불구하고 이드로는 자기 민족,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겠노라고 하면서 모세의 제안을 거절한다.


이드로가 자기 고향, 자기 친족에게로 돌아가겠다는 말에는 단순하게 자기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의미가 아니다.


지금까지 자기가 제사장으로 섬겼던 그 신을 떠나지 않겠다는 단호한 결단을 보여주는 것이다.


지금까지 자기가 제사장이라는 직함으로 살았는데, 어떻게 그 신을 버리고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새로운 신을 믿을 수 있겠느냐? 라고 말하는 것이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평생 유명 사찰의 거승으로 살아왔는데, 거승의 옷을 벗고 어떻게 예수님을 믿고 교회를 다닐 수 있겠느냐? 라고 반응하는 것과 똑같은 것이다.


이드로는 모세가 ‘우리를 떠나지 말고 우리와 함께 여호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으로 함께 갑시다. 우리가 잘해 드리겠습니다. 우리의 눈이 되어주세요. 우리가 가는 길에 고문이 되어주세요.’라고 부탁하면서 함께 동행하기를 간청했지만, 이드로는 자기의 고향, 자기 민족, 자기가 섬기는 신에게로 돌아가겠다고 하면서 돌아가 버린 사람이다.


이드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날마다 구름기둥으로, 불기둥으로 역사해 주시는 모습을 직접 목격한 사람이다.


이드로는 하나님께서 날마다 이른 새벽에 이슬과 함께 내려주시는 만나를 직접 보았고, 만나로 만든 음식을 먹었던 사람이다.


이드로는 르비딤 광야의 반석에서 솟아오르는 암반수를 직접 마시면서 여호와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직접 체험한 사람이다.


이드로는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직접 자신의 몸으로, 자신의 피부로 느꼈던 사람이다.


그런데도 이드로는 자신이 제사장의 직함으로 살면서 섬기던 신을 포기할 수 없어서 그 신에게로 돌아간 사람이다.


 


이드로가 자기의 고향, 친족에게로 돌아간 것은 모세의 가족들을 데리고 왔다가 곧바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한 지 3개월 만에 시내산에 도착하게 되고, 출애굽한 지 둘째 해 둘째 달에 시내산에서 출발하게 된다.


민수기 10;11-12절에 보면 ”둘째 해 둘째 달 스무날에 구름이 증거의 성막에서 떠오르매, 이스라엘 자손이 시내 광야에서 출발하여 자기 길을 가더니“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니 이스라엘 백성들은 근 1년 가깝도록 시내 광야에서 살았었다.


모세가 시내 광야를 출발하면서 이드로에게 자신들과 동행하자고 제안을 했던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이드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으로 이주하여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고 성막을 제작하고 봉헌하면서 제사드리는 일까지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동행했던 사람이다.


시내산에서 출발하여 가나안 땅을 향하여 본격적으로 출발할 때, 모세가 이드로에게 자신들과 함께 가나안 땅으로 올라가자고 제안했는데도 그 제안을 거절하고 자기 민족에게로 돌아간 것이다.


이드로는 십계명을 받는 장면이나 금송아지 사건이나 성막을 제작하고 봉헌 제사를 드릴 때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성막에 임재하는 모습을 직접 목격했던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섬기던 신에게로, 이방신을 섬기는 제사장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드로는 마음이 조금만 바뀌었다면, 모세가 ‘우리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문이 되어서 우리와 함께 가나안 땅으로 올라가 주세요.’라고 간청할 때 수락하여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광야 생활을 동행했더라면,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될 가능성이 매우 많았던 사람이다.


하나님께서 이드로에게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될 수 있는 충분한 기회와 시간을 주셨다.


모세와 아론과 미리암도 광야 생활에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지는 못했기 때문에 이드로도 가나안 땅에는 들어가지 못했을 것이다.


가나안 땅에는 들어가지 못하더라도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광야 생활을 했었다면 이드로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드로는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스스로 포기한 사람이다.


이드로는 자기 민족에게로 돌아감으로써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될 기회를 스스로 포기한 사람이다.


그러므로 이드로는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이 아니다.


사사기 1:16에 보면 ”모세의 장인은 겐 사람이라. 그의 자손이 유다 자손과 함께 종려나무 성읍에서 올라가서 아랏 남방의 유다 황무지에 이르러 그 백성 중에 거주하니라.“라고 기록한다.


사사기 4:11에서도 ”모세의 장인 호밥의 자손 중 겐 사람 헤벨이 떠나 게데스에 가까운 사아난님 상수리나무 곁에 이르러 장막을 쳤더라.“라고 기록한다.


사사기에 등장하는 모세의 장인은 실제로 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아니라 이드로의 친족이거나 외손자일 가능성이 많다.


출애굽기 2장에서 보면 이드로는 7명의 딸이 있었다고 기록한다.


7명의 딸 중에 하나는 모세의 아내가 된 십보라이고, 다른 6명의 딸들 중에서 다른 남자와 혼인하면서 겐 족속이 되었을 것이라고 추론해 볼 수 있다.


이드로의 외손자가 겐 족속이 되면서 이모인 십보라, 이모부인 모세, 이종 사촌들과 함께 동행했을 것이다.


그래서 겐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동행하여 가나안 땅으로 들어왔을 것이다.


겐 사람들은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 인정받게 된 것이다.


그런데 정작 이드로 본인은 얼마든지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될 가능성이 많았던 사람인데, 지금까지 자신이 살아온 길을 포기할 수 없어서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백성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포기한 사람이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드로의 영혼을 보면서 너무나 안타까워하는 것이다.


구원받아야 할 사람, 얼마든지 구원받을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었는데도 끝끝내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하고 구원받지 못하는 영혼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은 한없이 안타까워하는 것이다.


이드로가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몰라서 자기 민족이 섬기는 신에게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이드로는 이미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너무너무 잘 아는 사람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자기 민족, 자기 신에게로 돌아감으로써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몰라서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에 대해서, 성경에 대해서, 삼위 하나님에 대하여 너무너무 잘 알고 있는데도 끝끝내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지 않아서 구원받지 못하는 영혼들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마음이 찢어질 정도로 안타까워하시는 것이다.


 


L4 & B4.


 


흔히 사람에게는 평생에 세 번의 기회를 준다고 한다.


성공할 수 있는 기회가 세 번을 주시기도 하고, 죽을 기회가 세 번 주어진다고 말한다.


자신에게 찾아오는 기회를 최선을 다하여 붙잡으면 자신에게 축복이 되는 기회가 된다.


미스트롯2에서 진을 차지한 양지은씨는 처음에 준결승에서 탈락하였다.


그런데 진달래씨가 중학생 시절 학교폭력에 연루되면서 사퇴하게 되고 진달래씨 대신에 준결승 녹화 이틀 전에 추가로 뽑혀서 결국은 진으로 우승하게 되었다.


양지은씨는 추가로 뽑힐 때, 이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기회라고 판단했다고 한다.


그래서 준결승 녹화하기 전에 자신에게 주어진 20시간 동안 전혀 모르는 두 곡을 준비해야 하는데, 아는 노래도 아니고 전혀 모르는 노래였지만 죽을힘을 다하여 준비했다고 한다.


죽을힘을 다하여 준비하여 떨리는 마음으로 녹화하면서 좋은 반응을 받게 된다.


최종 7인의 결승전에 오르게 된다.


급기야는 진으로 우승하게 되어 인생 역전을 이루게 되었다.


양지은씨가 일생일대의 기회라고 판단하여 최선을 다하여 준비하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면, 우리들에게도 언젠가는 일생일대의 가장 좋은 기회가 주어질 수 있다.


자신에게 기회를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주시는 기회임을 깨닫지 못하고 놓쳐버리면 다시 언제 그렇게 좋은 기회가 찾아올지는 모른다.


하나님은 우리 신앙인들에게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회를 주신다.


이드로는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붙잡지 못하고 스스로 포기함으로서 하나님의 언약백성이 될 기회를 놓쳐버린 어리석은 사람이 되고 말았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 신앙인들에게 주시는 기회를 어리석게 놓치지 말고 붙잡아서 우리들을 위하여 준비한 기회로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①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에 대하여 민감해야 한다.


 


자신에게 어떠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항상 민감해야 한다.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눈치채지 못하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 가브리엘 천사를 통해서 나사렛 동네에 살고 있는 마리아에게 찾아가셔서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라고 말씀하실 때, 처음에는 두려움이 앞섰지만, 가브리엘 천사를 통해서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라고 하시는 말씀을 듣고, 마리아는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라고 고백하면서 순종하여 메시야의 어머니, 그리스도의 어머니, 주님의 어머니가 되는 은혜를 입게 된다.


마리아가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에 민감하지 못하여 순종하지 못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마리아가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에 민감하지 않았다면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에 기쁨으로 받아드리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우리 신앙인들은 자기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에 민감해야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회를 나를 위한 기회로 붙잡을 수 있다.


 


② 자신에게 주어지는 기회라는 확신이 들면 기필코 붙잡으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이 예전에 없던 아주 특이한 일이라고, 예사롭지 않은 일이라고, 뭔가 새롭게 자신에게 다가오는 뭔가가 있는 일이라고, 이번 일로 인해서 자기 자신에게 뭔가가 일어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면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시는 아주 특별한 기회임을 확신하고 반드시, 기필코 붙잡아야겠다는 결단을 해야 한다.


그 기회를 붙잡으려는 강한 의지로 그 일에 매진해야 한다.


긴가 민가 고민하고 방황하는 사이에 그 기회는 우리들 곁에서 소리소문없이 사라져버릴 수도 있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진주를 발견한 장사꾼이 그 진주를 살까 말까 고민하고 주저주저했다면, 고민하면서 갈등하는 사이에 세상에서 가장 좋은 진주는 다른 사람의 손으로 넘어가고 마는 것이다.


그런데 주저주저하지 않고 자신에게 있는 모든 재산을 털어서라도 그 진주를 사서 자신이 붙잡았을 때, 그 기쁨, 그 환희, 그 행복은 가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어느 누구에게도 빼앗기고 싶지 않은 기쁨과 환희와 행복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기회라는 확신이 들면 그야말로 물불 가리지 않고 반드시 그 기회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거기에는 반드시 결단과 의지가 동반되어야만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


 


③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감사함으로 받으면 배가 된다.


 


자신에게 그런 기회를 주셨음에도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받아야 한다.


‘세상에 세상에 이렇게 좋은 기회를 나같이 부족하고 연약한 나에게 주신단 말인가?’라는 마음으로 감사의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 감사로 배가 되는 은혜를 입게 된다.


감사가 또 다른 감사를 낳게 되고, 배가 되는 은혜를 입게 된다.


자신에게 은혜를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감사하지 않으면 은혜를 은혜로 받아 누리지 못하게 된다.


우리 신앙인들이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예의나 덕목은 늘 감사하는 마음의 자세로 사는 것이다.


하나님께는 말할 것도 없고, 가족들에게, 주변 사람들에게, 지인들에게, 함께 아파하고 기도해 주는 동역자들과 성도들에게 늘 감사하는 마음의 자세를 가지고 살아가면 자신에게 찾아오는 좋은 기회를 좋은 기회로 만들어갈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도 굉장히 좋은 기회를 주실 때가 있다.


이드로는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포기함으로 영원한 하나님의 축복을 놓쳐버리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었는가 하면, 마리아는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믿음으로 순종함으로 세상에서 가장 복된 여인이 되는 은혜와 축복을 받는다.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회를 잘 체크하고 붙잡아서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넘치게 받아 누릴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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