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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하디흔할지라도 하나님께 드리며 살아봐요 (출38: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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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하디흔할지라도 하나님께 드리며 살아봐요/ 출애굽기38;1-20(210919)


 


 


감사하는 인생


 


어떤 사람이 아직 동이 채 뜨기 전 강가로 산책을 나갔습니다.


어둠 속에서 강가를 거닐던 중에 그는 무언가 자루 같은 것에 걸려 넘어졌습니다.


넘어진 채로 자세히 보니 그건 가방이었습니다.


호기심에 그 가방을 열어보니 돌들로 가득 차 있는 것입니다.


심심하던 차에 그는 강가에 앉아서 가방 속에 있는 돌들을 하나씩 하나씩 꺼내서 강 속으로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던질 때마다 어둠 속에서 “첨벙첨벙”하고 들려오는 물소리를 즐기면서 해가 떠오르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한 개의 돌을 무심코 던지려는 순간에 그는 깜짝 놀랐습니다.


손에 들고 있는 돌멩이가 떠오르는 태양 빛에 반짝이고 있는 것입니다.


너무나 놀란 그는 돌을 들여다보고 나서 가슴을 치며 통곡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마침 아침 산보객들이 모여들어 물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습니까? 누가 강물에 빠져 죽었습니까?”


그가 통곡하며 이렇게 대답합니다.


“여보시오! 이게 뭔지 아시오? 다이아몬드요. 조금 전만 해도 이 가방 속에 수백 개의 다이아몬드가 들어있었는데, 나는 그게 다이아몬드인 줄 모르고 한 시간 넘도록 강물에 다 던져 버렸소. 그래서 이젠 한 개밖에 남지 않았소.”라고 하면서 그는 계속 통곡했습니다.


사람들은 수많은 감사의 조건들, 수많은 행복한 순간들을 무심코 떠나보내고 흘러가는 세월이라고 하는 강물에 다 던져 버리고 후회하는 것입니다.


매일 가족들이 건강해서 감사할 수 있고, 내가 만나는 주변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고, 내가 대접받기보다 내가 먼저 섬길 수 있어서 감사한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 있는데도, 우리들은 늘 원망, 불평 속에 하루라는 시간의 다이아몬드를 강물에 던져 버리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시간이라는 다이아몬드를 주셨음에 감사드리면서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은혜를 따라서 성령 충만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P4.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성막과 지성소와 성소에 들어가는 성물만 만든다고 해서 온전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향한 신앙인 종적인 사랑만 있다고 해서 완전한 사랑은 될 수 없다.


십계명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계명만 있다고 해서 완전한 계명이 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계명이 있다면 그 하나님을 높이고 경배하고 찬양을 올려드리는 인간에 대한 사랑도 필요하고 인간을 향한 계명도 있어야 하는 것이다.


첫째 계명에서 넷째 계명까지 하나님을 향한 종적인 계명이라면, 다섯째 계명부터 열 번째 계명까지를 인간을 향한 횡적인 계명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하나님을 향한 종적인 계명과 사람을 향한 횡적인 계명이 서로 만나서 완전한 십자가의 계명이 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첫째 되는 사랑이라고 말씀하시고, 이웃을 향한 사랑이 둘째 사랑이라고 말씀하셨듯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한 성물, 죄인을 위한 성물들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브살렐과 오홀리압이 지금까지 하나님을 향한 성물들을 만들었다면 이제 인간을 위한 성물들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성막과 지성소와 성소가 하나님을 향한 성물들을 만들었다면, 이제 인간을 위한 성물들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브살렐과 오홀리압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죄인들을 위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하여 어떤 성물들을 만들도록 하시는 것일까?


그 성물들을 만들기 위하여 어떤 재료들을 사용하고 있을까?


 


D4.


 


37장에서 소개하는 증거궤, 분향단, 금등대, 진설병 빵상은 성막 안에 설치하는 것이다.


지성소와 성소에 설치하는 것들이다.


지성소와 성소는 전폭적인 여호와 하나님의 영적인 분야라고 할 수 있다.


지성소와 성소에 해당하는 하나님의 분야, 영적인 분야를 먼저 만들었고, 이제는 하나님께 제사드리는 이스라엘 백성의 입장에서, 죄인의 입장에서 번제단, 물두멍, 성막 뜰은 만들도록 하고 계신다.


번제단과 물두멍과 성막 뜰, 울타리는 성막 밖에 설치하는 것이다.


번제단과 물두멍과 성막 뜰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한 성물이다.


번제단에서 제물을 드리면서 제사를 드려야만 죄를 대속 받고, 물두멍에서 정결례를 행해야만 하나님께서 계시는 성소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번제단에서 제물로 제사를 드리면서 대속함을 입지 않으면 절대로 하나님께서 계시는 성소로 나아갈 수 없다.


반드시 제물로 제사를 드리면서 대속함을 받아야만 성소를 향하여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뜰과 울타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호하고 지켜주시는 방어벽이 되어주시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번제단과 물두멍과 성막 뜰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한 성물, 죄인들을 위하여 만들어지는 성물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성막 안에 설치하는 성물들은 조각목으로 기본적인 틀을 만들고 금으로 싸서 만들었다.


그리고 은으로 받침을 만들고 있다.


성막 안에 설치하는 성물들의 기본 재료는 조각목과 금, 그리고 은이다.


이제 성막 밖에 설치하는 번제단과 물두멍과 성막 뜰을 만드는 재료는 조각목과 놋 그리고 은으로 받침을 만들고 있다.


조각목으로 기본적인 틀을 만들고 그 틀에 놋을 입혀서 만드는 것이다.


번제단과 물두멍의 부속품들도 놋으로 만들고 있다.


그리고 성막 뜰을 만들고 받침을 은으로 만들고 있다.


이처럼 성막 안과 밖에 설치하는 성물들의 재료들은 동일하게 사용하는 재료들도 있고, 서로 다르게 사용하는 재료들도 있다.


 


① 흔하디흔한 것을 아주 귀하게 사용하시는 하나님.


 


성물들의 기본적인 틀을 만들고 있는 조각목은 미디안 광야에서 흔하게 널려 있는 목재라고 볼 수 있다.


조각목은 싯딤나무라고 한다. 조각목을 아카시아나무라고 번역한다.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아카시아, 우리들이 흔하게 알고 있는 아카시아 향이 나고 아카시야 꿀을 따는 아카시아나무가 아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조각목, 아카시아나무, 싯딤나무는 중동지역 특히 광야, 사막지대에 자생하는 나무이다.


광야, 사막지대에서 자생하는 나무이기 때문에 아주 단단하고 질긴 나무이다.


그래서 성막과 성물들을 제작하는 데에 아주 좋은 목재라고 할 수 있다.


광야에서 흔하게 찾을 수 있는 싯딤나무, 조각목을 하나님께서 아주 귀하게 사용하고 계신다.


하나님은 광야에 널려 있는 흔하디흔한 조각목으로 하나님의 영광과 임재의 상징인 성막을 만들고 지성소를 만들고 성소를 만들고 각종 성물들을 만들고 있다.


하나님께 제사드리는 번제단을 만들고 세상과 구별하는 성막 뜰을 만들고 있다.


 


하나님은 하나님 앞에서 귀한 것, 매우 귀한 것, 하찮은 것, 너무너무 하찮은 것을 가리지 않고 사용하고 계신다.


하나님은 고가의 금과 은과 놋과 보석들도 사용하지만, 형편없는 해달의 가죽, 조각목들도 사용하고 있다.


너무 평범해서 값어치가 없어 보이는 것들도 사용하고 계신다.


투박하고 거친 것들도 사용하고, 아름답고 곱고 우아한 것들도 사용하고 계신다.


그러고 보면 하나님은 하나님 앞에서 곱고 우아하고 예쁘고 착하고 순진하고 멋진 사람만 사용하지 않으신다.


때로는 투박하고 못나고 거칠고 사나운 성격을 지닌 사람들도 사용하신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 앞에서 어떤 사람도 가리거나 구별하지 않고 필요한 곳, 적재적소에 세워서 하나님의 사역을 맡기고 계신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못나고 부족하고 연약하고 보잘것없는 것들도 얼마든지 사용하여 하나님께서 필요한 그곳, 적재적소에 세워서 하나님의 거룩한 사역에 동참시킬 수 있다.


그곳이 어디이건,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사역이 어떤 사역이든,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필요로 하셔서 사용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사명을 감당하기를 원하신다면, 주님의 십자가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귀한 영혼들을 구원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일에 우리들을 사용하신다면 우리들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기꺼이 순종하며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가장 못난 인생으로 태어나서 지금까지 우리 잘난 맛에 살아온 우리들을 하나님의 거룩한 사역에 우리 신앙인들을 사용하시기를 원하신다면 이 또한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이겠는가.


그러니 조금도 망설이거나 주저주저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성막과 성물들과 부속물들과 성막 뜰에 사용되고 있는 온갖 재료들은 얼마나 영광스러운가.


다른 조각목들, 금들, 은들, 놋들, 보석들, 실들은 하나님께 쓰임받고 싶어도 자신들에게는 기회조차 주시지 않는데, 창조주 하나님께 선택받아서 쓰임받고 있고, 영광과 찬양을 받고 있으니 이 얼마나 기쁘고 행복한 일이겠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 신앙인들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이들은 아무리 쓰임받고 싶어서 발버둥을 쳐도 하나님께서 거들떠보지도 않는데, 세상에서 가장 보잘것없고 연약하고 모자라고 낮고 천한 우리들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사역에 동참시켜 주시니 이 얼마나 뜨겁고 기쁘고 좋은 일인가 하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들은 하나님 앞에서 꺼억꺼억 울면서 감사의 눈물을 흘려도 부족하지 않겠는가.


 


② 여인들에게 헌신하도록 감동을 주시는 하나님.


 


물두멍은 번제단에서 제사를 드린 제사장들이 성소에 들어가기 전에 물두멍에서 대야에 물을 떠서 손과 발을 씻는 정결례를 행한 후에 성소에 들어가야 하는 장치이다.


정결례를 행하지 않으면 절대로 성소에 들어갈 수 없다.


브살렐과 오홀리압은 물두멍을 만들면서 회막에서 수종드는 여인들이 사용하던 놋거울을 녹여서 만들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우리는 흔히 거울이라고 하면 유리거울을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유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후 2-3세기 후에 발견된 물질이다.


그러니 성막을 제작할 당시에는 유리라는 물질은 있는 지도 몰랐던 시절이다.


지금은 놋그릇을 구경하기가 쉽지 않지만, 저가 어릴 때에만 해도 놋그릇이 많았는데, 놋을 모래나 잿물로 박박 닦으면 반질반질해지고 마치 거울처럼 우리들 얼굴이 보이곤 했던 기억이 있다.


놋을 반질반질하게 닦으면 투명하게 되면서 자신의 얼굴을 볼 수 있다.


여인들은 자신의 미모를 단장하기 위하여 놋으로 거울을 만들어 사용한 것이다.


여인에게 있어서 거울이란 자신의 자존심, 자신감, 자존감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회막에서 수종드는 여인들은 그렇게 소중한 놋거울을 하나님의 성막 제작을 위해서 기꺼이 내어드리는 것이다.


브살렐과 오홀리압은 여인들이 기꺼이 헌신하며 내어놓은 놋거울을 녹여서 물두멍을 만드는 것이다.


 


시내산에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놋으로 물두멍을 만들라고 말씀하시면서 어느 정도의 크기로 만들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오늘 브살렐과 오홀리압도 놋으로 물두멍을 만들면서 어느 정도의 크기로 만들었다고 기록하지 않고 있다.


그러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크기로 물두멍과 그 부속품들인 대야와 물바가지를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다.


어느 정도의 크기로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다른 성물들에 비견하여 충분한 크기로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회막에서 수종 드는 여인들은 한두 여인이 아니었을 것이다.


많은 여인들이 수종 들고 있었을 것이고, 이 여인들은 자신들이 사용하던 놋경을 하나님께 드림으로 그 놋경을 녹여서 물두멍을 만드는 것이다.


제사장들이 성소에 들어가기 전에 반드시 물두멍에서 정결례를 행한 후에야 비로소 성소에 들어갈 수 있었기 때문에 여인들은 자신들이 헌신하여 만든 물두멍으로 제사장들이 정결례를 행하고 성소로 들어가는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면서 얼마나 하나님께 감사하고 감동을 받았는지...


은혜받은 사람은 자신이 헌신한 작은 것 하나가 하나님께 쓰임받는 모습을 보면서 은혜받고 감동을 받고 감격스러워한다.


우리들의 작은 헌신이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우리들 자신에게는 놀라운 은혜의 도가니로 다가오는 것이다.


우리들의 자그마한 헌신이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세우고 주님의 십자가 복음을 전하고, 세상에서 그 무엇으로 바꿀 수 없는 가장 귀한 영혼들이 주님의 품 안으로 돌아오는 커다란 능력으로 바뀔 수 있는 것이다.


우리들이 드린 화분에 예쁘고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서 강단을 아름답게 만들고 향긋한 향기가 온 교회를 가득 채워주고 있다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우리들이 가진 그 무언가를 헌신하여 주님의 교회와 복음을 위하여 사용하기를 원하고 계신다.


 


③ 동서남북 어디에서라도 구별되고 보호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성막과 성물들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주변 맹수들과 자연환경과 이방인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성막 울타리, 뜰을 만들고 있다.


동쪽에 있는 출입구에는 휘장으로 막고 있고, 다른 것들은 직사각형으로 울타리, 뜰을 만들어서 세상과 구별하고 온갖 맹수들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하고, 이방인들의 출입을 막으면서 온전하게 여호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키게 하고 있다.


울타리, 뜰은 구별과 보호라는 두 가지 목적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은 성막 뜰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악된 세상과 구별되는 삶을 살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성막에 임재하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어떤 처지에서도, 어떤 환경에서도, 어떤 고난과 역경과 시련과 환난과 핍박 가운데서도 든든하게 지켜주고 보호해 주실 것이라고 확신을 보여주는 것이다.


어떤 맹수들, 어떤 원수들, 어떤 종류의 악한 영적인 존재들이 침범하고 공격해 들어온다 해도 전능하신 하나님, 엘샤다이의 하나님께서 권능으로 지켜주시고 막아주시고 건져주시고 이겨낼 수 있도록 힘과 능력을 주실 것이라고 확신시켜주는 것이다.


성막 뜰은 직사각형의 동서남북으로 울타리를 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동서남북 어디에서건 든든하게 하나님의 백성들, 신앙인들을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시고, 구별해 주신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은 마치 암탉이 자기 병아리들을 품에 고이 품어주듯이 신앙인들을 고이 품어주신다.


유등천변을 걷다 보면 청동오리 떼들을 볼 때가 종종 있다.


애미 청동오리가 병아리 청동오리 떼들을 거느리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 모습이 너무 예쁘고 좋아서 사진이라도 찍으려고 가까이 가면 애미 청동오리가 자기 새끼병아리를 해치려고 하는 줄로 알고 병아리들을 지키려고 괵괵 소리지르는 광경을 본다.


애미가 자기 새끼들을 끝까지 지키려고 하는 것처럼 우리 하나님께서 어디에서건, 어떤 상황에서건, 어떤 처지에서건 우리 신앙인들을 주님의 십자가 보혈의 품안으로 품어주신다.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천국에 들어갈 때까지 눈동자처럼 신앙인들을 지켜주시겠다는 확고한 하나님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L4 & B4.


 


사람들의 판단 기준에 의하면 귀한 것, 너무너무 귀한 것, 하찮은 것, 너무너무 하찮은 것과 같이 존귀하게 여기는 것들도 있을 수 있고, 귀찮게 여기는 것들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귀한 것들도 따로 없고, 너무너무 귀한 것들도 따로 없고, 너무너무 하찮은 것들도 따로 없다.


모두가 다 하나님께서 귀한 것들이라고 여기셔서 창조해 주신 피조물들이다.


잡초 하나도, 아주 귀찮게 구는 벌레 하나도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가 귀한 존재들이라는 사실이다.


지구촌에 존재하는 온갖 종류의 생명체들도, 비생명체들도 하나님 앞에서 너무너무 귀한 존재들이란 사실이다.


이 모든 것들이 다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고 하나님의 다스림과 통치를 받으면서 우주계가 돌아가는 것이다.


우리 신앙인들은 지구촌 자체가, 우주계 자체가 창조주 하나님의 거룩한 손길에 의해서 관리되고 통치되고 있음을 인정하고 고백하며 여호와 하나님의 거룩함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사람이란 존재는 흔하디흔한 것은 별로 중요한 것처럼 여기지 않고 귀찮은 것으로 치부해 버리는 경우가 많다.


값나가는 것, 귀중해 보이는 것들도 얼마든지 하나님의 나라와 주님의 복음을 위해서 헌신하고 쓰임받을 수 있지만, 그 흔하디흔한 것들도 얼마든지 하나님의 나라와 주님의 복음을 위해서 헌신하고 쓰임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하나님 앞에서는 소중한 사람, 귀찮은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가 소중한 사람이고,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을 위하여 귀하게 쓰임받을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확신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우리들 자신을 드리고 헌신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들 자신마저도 우리들 자신을 믿어줄 수 없고, 예뻐해 줄 수 없고, 미워하면서 자기 자신을 학대하는 이들이 많다.


자기 자신을 학대하고 자기 자신을 비하시키고, 자기 스스로 포기해 버리는 이들이 많다.


그러면서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결정을 해 버리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아무리 우리들 자신이 자신감이 없고, 자랑할 것이 하나 없어 보여도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면서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면서까지 구원해 주시고 사랑해 주신 사랑의 대상이라는 점을 명심하고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잘 극복하고 이겨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아주 사소하고 하찮고 흔하디흔한 것일지라도 주님의 교회와 복음을 위하여 기꺼이 하나님께 헌신하여 드리고, 주님께서 마음껏 사용하셔서 영광을 받으셨으면 좋겠다.


우리들 자신을 드리고,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것들을 드리면 하나님은 하나님나라와 복음을 위하여 기꺼이 사용하시면서 영광과 찬양을 받으시리라 믿는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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