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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신앙노선 으로 가라 (렘6: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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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신앙노선 으로 가라. (예레미야 6:16-17)


  


바른 신앙노선으로 가라.


빨리 가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른 길로 가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빨리 가도 헛수고에 불과하다.


2013 년도 영국 선덜렌드 마라톤 대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진행요원이 경로를 알려주는 잘못된 지점에 서 있었다. 


선두로 달리던 마크 후드는 미리 익혀 둔 바른 길로 달려갔다.


그러나 2 등으로 달리던 선수와 그를 뒤따르던 5천여명이 잘못 된 길로 가서 다 실격 당하고 말았다.


경기는 바른 길로 달려야 한다.


인생도 바른 길로 가야 한다.


신앙생활도 바른 노선으로 가야 한다.


  


신앙 노선은 마치 철로와 같고 신앙생활은 철로 위를 달리는 기차와 같다고 할수 있다. 


먼저 철로를 바르고 든든하게 놓아야 그 위를 기차가 힘있게 달릴수 있는 것 처럼


먼저 우리의 신앙 노선이 바르고 성경적이어야 한다.


바른 신앙 노선 위에서 열심을 내어 섬기고 봉사해야 한다.


  


오늘날 교회도 신앙인들도 바른 신앙노선을 벗어나 시대의 흐름에 따라 새 길을 가려고 한다.


이런 때에 우리 교회와 우리 성도들은 바른 신앙 노선을 걸어가기 위해서 힘써야 한다.


우리 교회를 방문하는 분들이 이 교회와 교인들에게서 깊이를 느낄수 있다고 하는 말을 종종 듣는다. 


나는 우리 교인들이 바른 신앙노선, 옛적 길로 가려고 하기 때문인줄 알고 감사한다.


언제인가 한 젊은 여성도가 어린 아기를 데리고 앉아서 울면서 교회를 위해 기도하기를


“하나님, 우리 교회가 백년이 지나고 이백년이 지나도 한결 같은 교회로 세워지게 해 주세요.”


하는 것을 듣고 받은 감동을 잊을수 없다.


  


오늘 본문이 신앙 노선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말씀하고 있다.


예레미야 6장은 예루살렘의 멸망이 임박한 것을 말씀하시며 그래도 “너희가 옛적 길, 곧 선한 길을 알아보고 그리로 가라. 그 길로 가면 평강을 얻을 것이라.”고 하셨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임박한 멸망과 재앙을 예언하시면서 지금이라도 너희가 옛적 길로 가면, 지금이라도 너희가 바른 신앙노선으로 간다면 내가 너희에게 재앙을 내리지 않고 평강을 주시겠다는 것이다.


그만큼 신앙노선이 중요하다. 이제 우리가 바른 신앙 노선에 대해서 말씀을 전하려 한다.


  


1. 바른 신앙 노선으로 가라. 


16절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고 가라.”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하신 말씀은 먼 길을 여행하는 자들이 목적지를 향해 바로 가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길에 멈추어 서서 물어보기도 하고, 지도를 들여다 보기도 하고, 방향도 살펴보는 것을 비유해서 하신 말씀이다. 


길을 잘못 들어서면 갈수록 목적지에서 멀어지기 때문에 지혜로운 여행자는 이렇게 한다.


우리는 다 영원이라는 목적지를 향해서 가고 있는 여행자들이다.


우리도 가끔 지금 바른 길로 가고 있는지 자신의 방향과 위치를 점검해야 한다. 


내가 지금 바른 길로 가고 있는가? 혹시 목적지와 점점 멀어져 가고 있지나 않는가?


자신의 가는 길을 점검하고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가야 한다.


  


* 바른 교리가 바른 신앙노선이다. 


바른 교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그대로 지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나 시대의 흐름에 좌우되지 않고 자기의 입장이나 감정에도 좌우되지도 않고


하나님 말씀 그대로 믿고 그대로 지키고 그대로 따르는 것이다.


  


교리가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아니지만 교리가 구원받는 바른 길로 인도한다. 


또한 구원받은 자가 신앙생활을 바로 하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바른 교리가 필요하다.


바른 교리를 따라서 가지 아니하면 성경도 각각 해석하고 자기 멋대로 적용한다.


그래서 이단이 생기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변화에 적응해야 하고 더 앞서가기 위해 도전하며 새 것을 추구해야 한다.


그러나 영원히 변치 말고 걸어가야 할 옛 길이 있다.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변해서는 안 될 하나님의 법칙이 있다.


하나님이 세우신 우주의 법칙은 변치 않는다.


지구가 태양을 중심해서 자전하면서 공전하는 이 법칙은 변하지 않는다.


자연계의 법칙도 변하지 않는다.  계절과 심음과 거둠의 법칙은 변하지 않는다.


이 법칙이 너무 고리타분 하다고 하면서 새로운 법칙을 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 법칙이 변하면 우주의 대 혼란이 올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도 진리도 하나님의 뜻도 영원불변 하다. 


롬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하는 옛 길은 우직해 보이고 답답해 보이고 새 길은 매력적으로 보일수도 있다.


그러나 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길이 가장 직코스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바른 교리에서 떠나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난 새 길은 멸망의 길이다.


  


* 바른 신앙노선은 우선순위를 바로 세우는 것이다. 


바른 노선은 교리 문제만이 아니다. 


교리가 뼈대와 같다면 신앙생활은 살과 같다고 할수 있다. 뼈대가 중요하지만 살도 중요하다.


교리적으로는 성경대로 바로 믿지만 생활은 자기가 원하는대로 우선순위가 잘못된 사람들이 많다.


  


신앙생활의 최우선은 예배다.


금년 우리 교회 표어도 “예배 합니다 전도 합니다”  이다.


예배 드리고 전도하는 것이 바른 우선순위다. 


예배 드리고 봉사하는 것이 바른 우선순위다.


예배 드리고 선교하는 것이 바른 우선순위다. 


  


어떤 사람은 스스로 속고 있다. 


신앙생활에 우선인 예배를 제대로 드리지 않으면서 주의 일을 한다고 하는 것은 스스로 속는 일이다.


예배에 목숨을 걸지 않으면서 주님을 위해 목숨도 아끼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스스로 속이는 일이다.


예배에 우선을 두지 않고 주님을 위해 큰 일을 한다고 하는 것은 영웅심리 일 수도 있다.


옛 성도들처럼 예배 철저하게 드리고, 기도생활 하고, 교회중심으로 살면서 


그 위에 주님을 위해 무엇을 해도 해야 한다. 


특별히 교회의 공적 예배를 잘 드려야 한다.


가정예배나 모든 예배가 다 중요하지만 교회의 공적 예배가 가장 중요하다.


우리의 삶 전체가 예배적인 삶이어야 하지만 먼저 교회의 공 예배를 제대로 드리지 않으면서 


삶의 예배에서 성공할 수가 없다.


  


* 교회 중심으로 사는 것이 바른 우선순위다. 


시 65:4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거하게 하시는 자는 복이 있나니” 하셨다. 


주의 뜰에 거한다는 것은 정착하기 위해 아예 주저앉은 상태를 말한다. 이런 사람은 복이 있다.


우리 한국의 기독교가 짧은 역사가운데서 이렇게 큰 복음화를 이루고 선교대국 까지 된 것은 처음부터 조선에 들어온 선교사들이 바르게 기초를 놓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있어 예수 믿는 것은 곧 교회 다니는 것이었다.


교회 다닌다는 것은 예수 믿는 것과 동일한 의미였다.


물론 교회 다니는 것과 예수 믿는 것은 다른 문제다.


교회가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다.


그러나 그만큼 교회가 신앙의 중심, 삶의 중심이 되었었다. 


그래서 한 마을에 예수 믿는 사람 몇 만 되어도 예배당부터 지었다.


그처럼 교회를 중요시하고 또 주일성수를 목숨처럼 지켰기 때문에 그 든든한 기초 위에서 한국에 기독교가 빨리 꽃피게 된 것이다.


  


70 년대부터 교회 밖에서 일어난 여러 가지 운동 때문에 교회를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시작되었다. 


이러한 운동들이 한편으로는 복음화에 기여를 했지만 그러나 교회를 약화시키는 결과도 가져왓다.


기독교 2천년 역사에서도 교회 밖에서 하는 모든 운동들이 다 일어났다가 무너지고 말았다.


그 어떤 기도운동, 선교운동도 교회를 중심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다.


옛적 길, 바른 길은 예배 중심, 교회 중심이어야 한다.


  


*  옛적 길이 바른 신앙노선이다. 


옛적 길은 신앙의 선조들이 갔던 길이다.


욥기 8:6 “옛적 길을 알아보고 옛 시대 사람들에게 물으며” 


구약의 믿음의 선진들이 간 길은 히브리서 11 장에서 보여주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에 대한 절대 순종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절대 신앙을 가지고 순종하며 걸어갔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왜? 냐고 묻지 않고 그대로 순종했던 길이다.


갈 바를 알지 못해도 떠나라고 하면 떠났고 사랑하는 독자라도 바치라고 하면 바쳤다.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기 위해서 사자굴에 던져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들의 삶의 중심은 오직 하나님, 오직 하나님의 말씀, 오직 하나님의 성전이었다.


구약성도들만 아니라 신약시대에 사도들과 초대교회 성도들이 걸어간 길이 옛 길이다. 


초대교회 사도들로부터 이어져 온 개혁주의 신앙노선을 따라가야 한다.


  


* 옛적 길은 우리 부모들과 우리 믿음의 조상들이 걸어간 바른 신앙노선이다. 


정말 우리 부모님 세대, 우리의 조상들은 하나님중심, 말씀중심, 교회중심으로 살았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축복을 누리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옛 길로 가지 않으려고 하는 사상이 많다.


하나님 중심 보다는 인간 중심으로 살려고 한다.


말씀 중심 보다는 자기 생각과 자기의 감정 중심으로 살려고 한다.


교회 중심 보다는 개인중심으로 살려고 한다.


이것은 다 옛적 길로 가지 않으려는 것이요 바른 신앙노선에서 벗어나고 잇는 것이다.


  


사사시대에도 여호수아가 죽은 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곧 옛적 길에서 떠났다.


사사기 2:17 “여호와의 명령을 순종하던 그들의 조상들이 행하던 길에서 속히 치우쳐 떠나서


그와 같이 행하지 아니하였더라.“ 


그래서 하나님은 그 백성을 채찍질 하셨고, 그러면 그들이 회개하고 옛적 조상들의 행하던 길로 들어서면 하나님은 또 회복시켜주셨다. 그러나 그들은 곧 그 길에서 떠나곤 했다.


  


우리들도 속히 옛 길에서 벗어나려는 경향이 있다.


왜 그런가? 왜 사람들은 바른 신앙노선 옛 길에서 벗어나려고 하는가?


옛 길은 시대에 뒤떨어져 보이고 새 길이 더 매력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의 신앙이나 교회가 옛적 길로 회복되어야 한다.


  


* 옛적 길은 개인적으로는 처음 마음이다. 


처음 은혜 받았을 때 주님을 향하여 가졌던 처음 마음이다.


처음 직분 받았을 때에 교회에 대하여 가졋던 처음 마음이다.


항상 이 마음을 가지고 한결같이 사는 것이 곧 옛적 길을 가는 것이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음에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했고 두려운 마음으로 경외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너희가 항상 이 같은 마음으로 나를 경외하고 섬기면 너희들 뿐 아니라


너희 후손들 까지 영원히 복을 주시겠다고 하셨다.


오늘 우리가 처음 하나님 만났을 때의 그 감격과 그 경외심을 가지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와 우리 후손들까지 영원히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다 함께 해 볼가요? “ 처음 마음으로 섬깁시다.”


  


2. 바른 신앙 노선으로 가면 축복이 있다.


16절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을 것이요 ”


  


하나님은 우리가 옛적 길, 곧 선한 길, 바른 신앙 노선으로 가면 평강을 주시겠다고 하셨다.


평강은 가장 큰 축복이다.  평강은 하나님만이 주실수 있는 축복이다.


평강은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가 잘 되고 강건할 때 누릴수 있는 너무도 축복이다.


이 평강을 누구에게 주신다고 하셨는가?


옛적 길, 바른 신앙노선으로 가는 자에게 평강을 주신다고 약속하셨다.


  


예수 안 믿는 사람들도 우선순위가 똑 바르고 삶의 질서가 바르게 서 있는 사람은 


우리 믿는 사람들이 누리는 평안과는 근본적으로 다르지만 그들은 다소 평안을 누린다.


그러나 우선순위가 바르지 못하고 질서가 무너지면 개인도 조직도 평강과 거리가 멀다.


  


실제적으로 우리 주변을 돌아보라.


예배 중심, 교회 중심, 옛 길로 가는 사람들은 신앙생활도 평안하고 삶도 평안하다.


그러나 옛 길을 버리고 무엇인가 새로운 것만 찾아다니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사람들은


심령의 평강도 삶의 평강도 신앙생활의 평강도 없다.


우리는 우직해 보여도 옛 믿음 그대로 지켜 가야 한다.


그러면 평강을 누린다. 그러면 승리한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을 이룬다.


  


* 바른 신앙의 길로 가지 않으면 재앙이 있다. 


17절 “ 내가 또 너희 위에 파숫군을 세웠으니 나팔 소리를 들으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듣지 않겠노라 하였도다.”


  


하나님께서 옛적 길, 곧 선한 길로 가면 평강을 주시겠다고 해도 그들은 그 길로 가지않겠다고 했다.


너희는 내가 세운 파숫군의 나팔소리를 들으라 하였으나 그들은 듣지 않겠노라고 했다.


파숫군은 하나님이 세우신 선지자를 말하고 나팔 소리는 그들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경고의 말씀이다.


파숫군은 적이 침략해 오는 것을 알리기 위해 나팔을 분다.


그런데 파숫군이 나팔을 불어도 듣지도 않고 대비하지도 않으면 적에게 망하고 말 것이다.


  


옛적 길로 가라고 하신 하나님의 권고의 말씀을 거절한 그들이 받을 재앙이 얼마나 무서운지 20절부터 말씀하시고 심지어는 예레미야에게 더 이상 그들을 위해 기도도 하지 말라고 하셨다.


선지자에게 중보기도 조차 하지 못하게 하셨으니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


우리는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신앙생활 해야 한다.


  


신앙노선은 평강이냐 재앙이냐 의 문제요 더 나아가 죽으냐 사느냐의 문제다. 


바른 신앙노선을 따라가면 그 길에는 반드시 평강과 축복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바른 신앙노선으로 가지 않으면 징계와 채찍이 있다.


또한 우리가 가는 길을 우리의 자녀들과 후대들이 그대로 따라오고 있다는 것도 기억하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하나님께서 저를 통해 여러분에게 나팔소리와 같이 경고하셨다. 


모두 믿음으로 받은줄 안다. 이제 말씀을 선포하겠습니다. 아멘으로 화답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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