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라델비아 교회-작은 능력을 굳게 잡음으로 (계3:7-13)
본문
빌라델비아 교회-작은 능력을 굳게 잡음으로(요한계시록 3:7-13)
처세술
힘이 센 사자가 살았습니다. 어느 날 사자는 늑대와 고양이 그리고 개와 여우를 불러다 잡은 고기를 다섯 짐승이 먹을 수 있도록 갈라놓으라고 명령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늑대가 나와서 갈랐습니다. 사자는 갈라둔 고기조각을 가만히 보더니 괜한 트집을 잡아서는 늑대를 잡아 먹어버렸습니다. 이번에는 고양이가 나누었습니다. 물론 늑대는 없으니까 네 등분을 했습니다. 이번에도 나누어진 고기를 보더니 느닷없이 너는 왜 나와 닮았느냐고 잡아 먹어버렸습니다. 이번에는 개의 차례입니다. 물론 늑대와 고양이가 없으니 3등분 했습니다. 괜히 화가 난 사자는 너는 왜 사람들에게 살살 거리느냐며 재수가 없다고 잡아 먹어버립니다.
맨 나중까지 남은 여우는 이것을 보고는 자기 차례가 오자 많은 양의 고기를 듬뿍 갈라 사자 앞에 놓아두고 자기에게는 아주 조그마한 고기 덩어리를 놓아 이등분을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사자님, 똑같이 나누었습니다." 그때서야 사자는 기분이 좋아서 여우를 칭찬하고는 "그래, 누가 이런 것을 가르치더냐?"하고 묻자 여우는 "예, 제 앞에 죽은 세 친구의 죽음이 가르쳐 주었습니다"하고 대답했습니다.
이 우화는 진실하게 살면 죽는다는 것, 진실 보다는 삶의 요령이 더 중요하고, 그렇게 살아야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정글과 같아서 진실하게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잘 알게 됩니다.
거룩하고 진실하신 예수님
빌라델비아 교회에 나타나신 예수님은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분’이라고 했습니다. 7절에 다윗의 열쇠로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다고 했습니다. 다윗의 열쇠가 가진 권세와 능력을 보게 됩니다. 다윗의 열쇠를 가진 예수님에 대해서 거룩하고 진실하신 분이라고 말 합니다.
예수님은 거룩한 분입니다. 예수님이 거룩한 분이 된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마리아에게 성령이 임하시고 잉태할 때 누가복음 1:35절에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본질은 거룩한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벳새다 들판에서 오병이어의 기적 후에 예수님께서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셔야 하며,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니라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는 말씀을 하자 사람들은 이 말씀이 어렵다면서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떠납니다. 그때 예수님은 열 두 제자에게 너희도 가려느냐고 묻습니다. 이때 베드로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요한복음 6:68-69절에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가에게로 가오리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신 줄 믿고 알았삽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다윗의 열쇠
예수님이 가지신 다윗의 열쇠란 무엇입니까? 이사야 22장에는 다윗의 열쇠가 무엇인지 잘 말해줍니다. 하나님은 왕궁에서 국고를 맡은 자 셉나에게 심판을 선언합니다. 그리고 엘리야김에게 셉나가 입던 옷을 입히고 그 띠를 그에게 주어 네 정권을 엘리야김에게 맡긴다고 말합니다. 또 엘리야김은 예루살렘 주민과 유다의 아버지가 될 것이며 내다 또 다윗의 집의 열쇠를 그의 어깨에 두리니 그가 열면 닫을 사람이 없겠고 닫으면 열 자가 없으리라 못이 단단한 곳에 박힘 같이 그를 견고하게 하리 그가 그의 아버지 집에 영광의 보좌가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국고를 맡은 자, 장관인 셉나가 엄청난 권세와 영광을 가졌지만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셉나 보다 한참 낮은 서기관인 엘리야김에게 국고를 맡기겠다는 합니다.
천국 국고를 맡은 예수님
이 말씀은 바로 예수님에게 적용되어, 예수님은 보잘것없는 나사렛 출신이라고 조롱을 받았지만 하나님은 바로 나사렛 예수에게 천국 국고를 맡기는 책임을 주셨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예수님께 천국 국고를 맡긴 것은 예수님께서 거룩하고 진실하게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죄인의 몸을 입히시고, 십자가의 고난, 죽음과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보좌에 앉았다는 말은 천국 열쇠를 가졌다는 말이다.
히브리서 12:2절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라고 했고, 베드로전서 3:22절에 “그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그에게 복종하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요한계시록 1:18절에 “곧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라고 했습니다. 다윗의 열쇠, 천국 국고를 맡으신 분이 예수님 인줄 알고, 오직 예수님만 의지해야 되겠습니다.
열린 문 교회
8절에 보면 예수님은 빌라델비아 교회를 향해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니 능히 닫을 사람이 없다고 말합니다. 열린 문이란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예수님이 빌라델비아 교회를 위해 열어 놓으신 천국 문입니다. 예수님이 열어놓았으니 누가 닫겠습니까? 우리 교회가 열린 문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가정이 열린 문 가정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문이 활짝 열렸으니 들어가고 나오며 영생의 꼴을 먹기를 바랍니다.
작은 능력
예수님이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열린 문을 주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작은 능력이란 무엇을 말합니까? ‘작다’라는 말은 ‘크다’의 반대말이고, 적다는 ‘많다’의 반대말입니다. 작다는 부피나 키, 도량, 규모 등이 보통에 미치지 못할 때 쓰는 말입니다. 작은 키, 작은 연필, 작은 구두입니다.
작은 믿음이란 예수님이 생각하는 기준에 못 미치는 믿음을 말합니다. 하지만 이 믿음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않았다고 칭찬합니다. 성경에는 큰 믿음을 강조하지 않습니다. 작은 믿음은 있지만 큰 믿음은 없습니다. 이만한 믿음은 있습니다. 백부장의 믿음입니다.병든 하인을 고치기 위해 예수님 앞에 온 백부장, 예수님이 그래 갑시다. 할 때에 저는 군대의 장입니다. 말씀만 하면 그대로 됩니다. 그러니 저의 집 종을 고치려 일부러 저희 집에 오실 필요가 없습니다. 말씀만 하시면 됩니다. 이때 예수님은 백부장을 칭찬하면서 이스라엘 중에서 이만한 믿음은 보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다리우스와 알렉산더 대왕
페르시아의 유명한 장군이자 대왕이었던 다리우스 황제가, 유럽을 정복하기 위해 알렉산더 대왕이 이끄는 군대와 전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다리우스 황제는 알렉산더 대왕에게 선전포고하면서 병사를 통해 선물을 하나 보냈습니다. 그 선물은 참깨가 잔뜩 들어 있는 부대였습니다.다리우스 황제는 그의 군대는 이렇게 많으니 너희는 승산 없는 싸움을 하지 말고 항복하라는 의미에서 그 참깨를 보냈습니다.
깨가 가득 들어 있는 부대를 받은 알렉산더 대왕은 답장으로 작은 봉투에 작은 겨자씨 하나를 넣어서 다리우스 황제에게 보냈습니다. 그 선물에는 이런 의미가 담겨 있었습니다. “우리의 수가 적다고 무시하지 말라. 우리는 작지만 무섭고 놀라운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너희들을 맞이해서 충분히 싸울 준비가 되어 있고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그리고 결국 이 전쟁에서 알렉산더가 승리했습니다.
작은 믿음과 작은 능력
왜 큰 믿음은 없고 작은 믿음은 강조하는가?를 한번 생각해 봅니다. 예수님께서는 최고가 아닌 최저의 믿음인 작은 믿음으로도 예수님이 주시는 복과 은혜, 천국에 들어가기에 합당하다고 말씀하신 것으로 생각합니다. 즉, 겨자씨와 같은 믿음입니다. 천국은 작은 겨자씨에 비교했습니다.누가복음 17:6절에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고 했습니다.
작은 능력으로도 살 수 있습니까? 작은 능력으로도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며, 예수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충분합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않았다고 칭찬합니다. 지금 여러분이 가진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작은 믿음입니까? 큰 믿음입니까? 여러분이 믿음이 있다면 작은 믿음일 것입니다. 이것이 아니라면 믿음 자체가 없는 것입니다. 내 스스로 작은 믿음이라고 인정한다면 충분합니다.
그런데 작은 믿음을 가졌는데 실패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능력이 작아서가 아니라 불순종 때문입니다. 나의 욕심과 정욕 때문입니다. 그래서 거짓과 우상에 굴복하고, 타협합니다. 여우의 지혜로 살아갑니다.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기도할 제목이 있다면 사도들처럼 “우리에게 믿음을 더 하소서”라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눅 17:5).
두 가지 상급
예수님은 작은 능력으로 승리한 빌라델비아 교회를 위해 큰 상급으로 갚아 주십니다. 9절에 사탄의 회당, 곧 자칭 유대인이라고 하나 그렇지 아니하고 거짓말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그들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작은 능력을 가지고 예수님을 말을 지키고, 예수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았으니 이런 사랑을 받을 만합니다.
또 10절에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고 했습니다. 첫 번째 상급은 사랑이고, 두 번째 상급은 환난 날에 구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우리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이기는 자
이기는 자는 누구인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며 예수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는 일에 굳게 잡은 사람입니다. 작은 능력의 속성은 거룩과 진실입니다. 12절에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성전의 기둥
하나님 성전에 들어가는 것만도 영광인데 성전의 기둥이 된다고 약속합니다. 작은 능력으로 산 자가 천국에서 받는 특급 대우입니다. 우리 교회에서도 천국에서 기둥 역할을 할 분, 한분이라도 나온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세상에서도 대학이 다 똑같은 대학이 아니듯이 천국에 들어갈 뿐 아니라 천국에서 기둥 노릇할 사람 한 명이라도 배출한다면 우리 교회의 영광입니다.
세상 교회에서는 교회의 기둥이라고 생각하는 중직자들이 나름 충성하다가, 여러 가지 사정으로 교회를 옮기는 일이 생기지만, 천국 성전의 기둥은 결코 나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전 자체가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작은 능력으로 믿음을 지킨 사람에게 영원히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보장한다는 말씀입니다.
세 가지 이름
또 그 기둥에 세 가지 이름을 적어 놓습니다. 하나님의 이름, 새 예루살렘의 이름, 예수님의 새 이름입니다. 예수님은 버가모 교회의 이기는 자에게 감추었던 만나와 흰 돌을 주고,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했는데 받는 자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다고 했습니다. 버가모 교회에게는 구원받은 개인의 새 이름을 기록한 흰 돌을 받는다면, 빌라델비아 교회에게는 성전 기둥에 새로운 세 가지 이름이 새겨짐으로 완전한 구원을 확증했습니다.
작은 능력을 굳게 잡음으로 승리
빌라델비아 교회는 어떤 교회입니까? 작은 능력으로 큰 일을 한 교회입니다. 큰일이란 바로 복음을 순수성을 지킨 믿음입니다. 거룩하고 진실된 그리스도의 복음을 붙잡고, 끝까지 살아갔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되겠습니까? 예수님처럼 거룩과 진실함으로 가득찬 작은 능력을 굳게 잡음으로 승리하기를 원합니다.
(대림동 예일교회 이동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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