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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데로 나아갈지니라 (히5:1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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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데로 나아갈지니라(히브리서 5장 11절 - 6장 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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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의 창시자이면서 한 때는 혁신의 아이콘이라고 불렸던 스티브 잡스는 (Steve Jobs)는 2005년 스탠포드 대학의 졸업식에서, “Stay hungry, stay foolish-항상 갈망하고, 끝없이 무모하십시오”라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Stay hungry’는, 항상 새로운 것들을 배우고 현실에 안주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Stay foolish’는, 스스로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무언가 새로운 것을 찾으라는 의미입니다. “현실에 안주하지 말라, 무언가 새로운 것을 찾으라”이 두 마디 말은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을 중단하지 말라는 뜻으로 압축됩니다. 나태함과 게으름에 빠진 사람들에게는 도전이 되는 말입니다.


 


중국 은나라의 탕왕은 대야에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 날마다 새로워지고 또 날마다 새로워진다) 이라는 글귀를 새겨두고 얼굴을 씻을 때마다 이를 마음에 새겼다고 합니다.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나는 조금 더 나아지고 좀 더 새로워질 준비가 되었는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자아를 성찰하는 사람은 성숙함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인간의 일생은 ‘끊임없이 이전보다 나은 사람이 되어가는 것’, 이것을 추구하는 일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됩니다.


 


나이 드신 노인의 얼굴에는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이 담겨져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우리 모두는 주님과 다시 만날 시간이 점점 가까이 되어 갈수록, 우리의 얼굴의 표정과, 말본새와(말하는 태도나 모양새),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고결하고 아름다워야 합니다. 존경 받고 칭찬 받을 만하여야 합니다. 이러한 모습들은 곧 예수님을 닮아가는 과정에서 자연적으로 나타나는 모습입니다.


 


사순절이 지나고 부활절의 영광과 감동도 지나갔습니다. 그 동안 우리의 믿음은 회복되었고, 다시 새롭게 자리 잡은 줄로 믿습니다. 이제는 그 믿음을 지키는데 힘써야 합니다. 부활절 이후에 우리 모두의 신앙은 더욱더 견고해지고 풍성해 져야 합니다. 지난 날 보다 더 새롭고 나은 신앙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자라나고 또 자라나서 어느 자리에 있든지, 외면과 내면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품격과 인성을 나타낼 수준에 이르러야 합니다. 00교회 모든 성도가 부활의 믿음과 소망을 확실하게 붙잡고,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가는 온전하고 성숙한 믿음의 진보를 이루어 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믿음’은 무한한 능력을 제공해 줍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믿음의 능력은 자라나게(온전하게, 완전하게)하는 능력입니다. 오늘 설교의 제목이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입니다. “완전한데로 나아가라”는 것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아서 예수님의 인격과 겸손을 닮아가는 과정을 말합니다.


 


예수님 중심으로 생각하고, 예수님 방향으로 나아가고, 예수님 뜻대로 행동하고, 예수님처럼 죄와 불의에 맞서 싸우고, 예수님처럼 죽기까지 순종하는 것이 완전한데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부활을 경험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완전한데로 나아가는 것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야 말로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의 은혜를 헛되게 하지 않는 믿음의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완전한데로 나아가는 삶이, 부활절 이후에 우리 00교회 성도들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최고의 좋은 것들을 주시고 싶어 하십니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돈과 명예를 얻고, 그리고 자녀들이 잘 되는 것이 우리가 누리는 가장 큰 복이라고 여기고, 그것들을 열심히 구하는 것이 올바른 신앙생활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사실 부수적인 것들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구하고 누려야 할 것들은 세상에서 얻는 것들이 아니라 하늘에서 내려 주는 것들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깨달음과 충만함에서 오는 좋은 것들입니다.


 


오랫동안 신앙생활 하면서도, 영적인 무지 속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하나님 나라의 신비한 비밀과, 하나님이 이루시고자 하는 은밀한 일들에 대해 깨닫지 못합니다. 세속적인 것을 취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믿음 생활, 그리고 현실에 안주하는 고정된 믿음 생활은 아주 낮은 수준에 머무르는 것입니다. 마치 고급 뷔페식당에 가서 값싼 군만두 한 접시만 먹고 돌아오는 것 같은 경우입니다.전능자의 풍성하심이 무궁무진 함에도,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고, 누리지 못하는 것은, 우리를 완전한데로 나아가게 하시는 십자가의 능력, 부활의 능력을 거부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히브리서의 저자도, 히브리 성도들이 가지는 영적인 무지를 매우 안타까워했습니다. 5장 11절에, “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너희가 듣는 것이 둔하므로 설명하기 어려우니라”라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예수님이 왜 모든 구원 받은 사람의 대 제사장이 되시는지, 아브라함 시대의 ‘멜기세덱’이라는 인물과 연결하여 설명을 해 주고 싶었습니다. 대 제사장 되시는 예수님을 통해서만 은혜의 보좌(하나님 존전)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가 있는데도, 믿음을 가졌다 하는 성도들이 대 제사장 되시는 예수님이 누구신지에 대해서 이해를 하지 못했다는 겁니다.그 이유는, 히브리 성도들이 둔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는 영적인 무지가 너무 커서 설명을 해줘도 건성으로 흘려들었다는 뜻입니다.


 


“둔하였다”(헬, 노드로이)는 말은 동작이 굼뜨고 게으른 것일 수도 있지만, 여기에서는, 이해력이 둔하고, 마음의 움직임이 둔하고, 재치가 부족하여 감수성이 둔하고, 돌같이 굳어져 무감각할 정도로 둔한 사람을 뜻합니다. 이 모든 것이 영적인 지각과 감각이 멈추어져 있는 상태, 마치 전자기기의 전원이 꺼져 있는 'OFF'. 상태와 같았습니다. 둔해서 설명하기 어렵다는 말을 들을 때, 믿음을 지녔다고 하는 사람이라면 자존심이 상해야 합니다. 예수님 앞에 부끄럽게 여기고, 치욕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5장 12절이 둔한 상태에 있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들어 보시고 내 자신의 상태는 어떠한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제가 표준새번역으로 읽어 드립니다. “여러분은 지금쯤 선생이 돼 있어야 마땅한데 누군가 다시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 원리들을 가르쳐야 할 형편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젖만 먹고 단단한 음식은 먹지 못하는 사람들이 됐습니다.”아멘.


 


누가 우리 보고, “너는 국어 자음 모음도 모르냐? 너는 가서 엄마 젖 좀 더 먹고 와라!”라고 말한다면, 무시당하는 마음에 분노해서 한바탕 싸움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런데, 믿음의 수준으로 볼 때 초보딱지를 떼지 못하고 매번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 10~20년쯤 신앙생활 했으면, 가르치는 선생이 되었어도 모자랄 판에, “예배 빠지지 마세요, 헌금 생활 잘하세요, 기도 좀 하세요, 성경 좀 읽으세요” 이런 초보적인 이야기만 계속 하게 된다면, 얼마나 속이 터지고 답답하겠습니까? 예수님이 제자들의 믿음 없음을 보시고, “아! 믿음이 없고 비뚤어진 세대여, 내가 언제까지 너희와 같이 있어야 하겠느냐? 내가 언제까지 너희에게 참아야 하겠느냐?”(마 17:17, 표준새번역) 호통 치시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마커스 예배에서 김남국 목사님이 설교 중에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성도들은 성경의 ‘레위기’를 읽을 때마다 ‘내 위기’를 느끼나 봅니다. 그래서 다시 창세기로 돌아가서, 내 인생에 하나님은 영원히 창조만 반복 하시는 하나님으로 묶어 놓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듣고 웃픈(웃기고 슬픈) 마음이 들었습니다. “둔해서 설명하기 어렵다, 맨 날 믿음의 초보 원리만을 가르쳐야할 형편이다” 오늘 말씀이 우리가 지닌 영적인 ‘내 위기’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예수님이 구원자라는 사실은 너무나도 명백하게 알고 있고, 또한 믿고 있습니다. 웬만한 신앙고백은 우리가 수도 없이 고백하는 ‘사도신경’안에 다 담겨져 있습니다. 사도 신경만 제대로 이해하고 고백해도 믿음의 초보는 이미 다져진 것입니다. 그렇지만, 사도 신경은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나야 하는 믿음의 전제입니다. 이를 통해 믿음의 영적 성장을 이루어 가는 것은, 단순히 고백한다는 것과는 아주 다른 문제입니다.


 


5장 13, 14절에는 초보적인 신앙을 ‘젖을 먹는 어린아이’로, 자라난 신앙을 ‘단단한 음심을 먹는 장성한 사람’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 몸이 자라서 완전한 성인이 되었고, 머리에 지식도 있고, 사회적인 관계에서 고급 정보를 교류하고, 옳고 그름을 어느 정도 판단 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러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들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어느 누구라도 소유하고 있는 보편적인 모습입니다.


 


우리는 육에 속하였지만, 영적인 것을 추구하며, 그리스도의 영(거룩한 성령)으로 인도함을 받는 특별한 존재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세상이 주는 지식과 정보들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는 전혀 얻을 수 없는 하늘 양식, 하늘의 고급정보들을 구해야 합니다. 얻어내야 합니다. 채워야 합니다. 하늘에서 내려 주시는 고급 정보들을 날마다 습득 할 때, 그 신령한 양식을 먹고 마실 때, 우리의 내면은 성장하고, 드디어 완전한(온전한)데로 나아갈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완전한 데로 나아가는 믿음의 성장(성숙)을 이루어 갈 수 있겠습니까? 5장 13, 14절에서 두 가지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첫째, 13절에서와 같이, “의의 말씀을 경험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양식이라고 합니다. 먹지 않는데 자라지 못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합니다. 말씀은 예배 순서용으로 제작된 책이 아닙니다.읽고, 묵상하고, 깨닫고, 기도하는 용도입니다. 말씀을 읽고, 배우기는 하나도 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믿음이 좋다고 자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절대, 100% 거짓입니다.


 


성경책을 예배 시간에만 찾아보기용으로 활용하는 사람은 100년을 신앙생활 한다고 해도 여전히 젖을 먹는 어린아이일 뿐입니다. 말씀 안에서 살아 역사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찾고, 만나고,인도하시는 것을 듣고 따라가는 사람만이 믿음의 영적 성장을 이루어 갈 수 있습니다. 내 신앙의 진보가 안 되는 원인을 다른데서 찾지 마십시오. 말씀의 부재, 말씀에 무감각함, 말씀을 가볍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둘째, 믿음이 완전한데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14절에서와 같이,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선과 악을 지배하는 것은 영의 세계입니다. 하나님도 영적인 존재, 사탄의 무리도 영적인 존재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보이지 않는 존재들과 싸워야 합니다. 그들과 대적하기 위해 우리 안에 성령이 오셨습니다. 성령을 의지하지 않고는 우리는 악한 것(죄, 불의, 거짓, 욕망,돈..)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성령이 아니고서는 세상에서 밀려오는 온갖 유혹을 이겨낼 수 없습니다.


 


14절 앞부분에서 ‘지각’과 ‘연단’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지각’은 생각하고 판단하는 일입니다. 이것은 지적인 감각이 아닌 심령의 감각을 말합니다. 내 마음대로 지각하는 사람은 악을 선택합니다. 그러나 성령이 주는 지각을 의지하는 사람은 선을 선택합니다. 성령께 나의 판단을 맡기는 삶의 습관이 악을 행하지 않는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연단’이라는 말은 경험을 의미합니다.신앙은 어떤 상황에 부딪쳤을 때, 져 보기도 하고, 손해 보기도 하고, 상처 받아 보기도 하는 것이 오히려 유익합니다. 성령과 동행하면 성공, 단독 생활은 실패라는 것을 뼈저리게 깨닫는 경험은 인내심을 길러줍니다. 인내가 풍부한 사람이 선악을 분별하고 완전한데로 나아갈 수가 있습니다.


 


말씀과 성령, 완전한데로 나아가기 위해서 중요한 두 가지를 말씀 드렸습니다. 이 두 가지 기준에 근거해서, 여러분들은 완전한데로 나아가고 계십니까? 아니면, 무관심과 게으름으로 현실에 안주하고 계십니까?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둔한자로, 어린 아이와 같은 초보 신앙으로 살아가는 것을 매우 안타까워하십니다. 완전한데로 나아가는 것은 곧 구원의 길을 완주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이 시간에 신앙의 방향전환이 필요합니다. 새로운 결단이 필요합니다. 세상과 사람 중심에서 예수님 중심으로 돌이켜야 합니다. 반드시 그렇게 하셔야 합니다.


 


6잘 1절에, “그러므로” 라고 했습니다. 이 접속사가 우리의 초보신앙, 젖 먹이 신앙, 말씀을 멀리하는 신앙, 성령을 의지하지 않는 신앙을 인정하고 전환하는 기준점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미숙하고 불완전한 신앙을 인정하고, 새롭게 결단하는 마음으로 6장 1-3절을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1.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2.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 3.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우리가 이것을 하리라” 아멘,


 


지금 읽은 구절을 요약하자면, “우리가 초보 신앙에 머물러 있었음을 인정합니다. 이제 완전한데로 나아가기 위해, 반복되는 과거의 나쁜 행실, 습관, 죄악을 회개합니다. 믿음 잃지 않고, 말씀의 인도함과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내 안에 사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구원과 영생의 길을 똑바로 걸어가겠습니다”라고 다짐 하신 것입니다.


 


3절에,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우리가 이것을 하리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새로운 믿음의 결단을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고, 우리를 굳건한 믿음으로 세워주셔서 완전한 가운데로 나아가도록 인도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00교회 모든 성도가 말씀 충만, 성령 충만함으로, 오직 예수, 오직 구원을 바라며, 완전한데로 나아가는데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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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부활 신앙과 소망으로 우리의 믿음을 더욱 굳세게 붙들어 주셔서, 완전한데로 나아가는 구원의 성도가 되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말씀과 성령으로 인도하여 주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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