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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스런 마침을 위해 (왕하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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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스런 마침을 위해 왕하2:1-11, 막13:28-37




우리가 사는 세기의 특징을 나타내는 말 중 하나가 ‘우주시대’라는 말입니다. 1960년 7월 2일 미국 정부의 건의와, 그로부터 27일 후 미 항공우주국(NASA)의 아폴로 발사계획 발표 후 머큐리(Mercury) 위성 계획이 본격화되었습니다. 그리하여 1969년 7월 20일에 아폴로 11호를 발사하여 암스트롱, 알드린, 콜린스 등이 달 정복의 첫 개가를 올렸습니다.


소련에서도 무인 우주선을 달에 착륙시켰습니다. 그리고 유인위성이 그 뒤를 이었습니다. 때를 같이하여 일본, 중국, 서독, 영국, 프랑스, 오스트리아 등 여러 나라들이 우주계획의 경쟁에 돌입하였습니다. 그 후 우주선인 인공위성을 타고 공간세계를 왕래하는 사람을 우주인이라 부르면서 모든 사람들은 그를 영웅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야흐로 우주여행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구약성경에 하나님과 동행하던 ‘에녹’이 죽음을 보지 않고 산채로 하늘에 들림을 받았습니다. 또 오늘 본문에는 선지자 엘리야가 회리바람과 불 수레와 불 말에 태워 하늘로 옮겼다는 기록을 보게 됩니다(왕하 2:11). 엘리야는 요단강 가를 우주발사기지로 하고, 하나님이 만드신 신공로켓트인 불 말이 이끄는 불 수레를 타고 회리바람을 추진 연료처럼 사용하시어 하늘나라의 새 세계로 올라간 내용이 기록 되어 있습니다. 이는 사람의 산물이나 방법이 전혀 아닌 하나님 자신의 초자연적이고 초 물리적인 방법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부활 후 승천이나 믿는 성도들에게 장차 일어날 공중에 들림 받게 될 휴거의 예표를 보여주는 사건이기도 합니다.


두 본문을 중심으로 인생의 피날레를 잘 장식하는 “영광스런 마침을 위해”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영광스런 마침을 위해,


 


1.깨어 경성하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 마가복음 13장은 마지막 때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깨어 있으란 말을 네 번이나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33절에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니라.”했고, 34절에 “가령 사람이 집을 떠나 타국으로 갈 때에 그 종들에게 권한을 주어 각각 사무를 맡기며 문지기에게 깨어 있으라. 명함과 같으니”했으며, 35절에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집 주인이 언제 올는지 혹 저물 때 엘는지 밤중 엘는지 닭 울 때 엘는지 새벽 엘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했고, 37절에 “깨어 있으라.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이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 하시니라”했습니다.


여기 깨어 있으라는 정신 차리고 신앙생활 잘 하라는 말씀입니다. 마지막 때에는 사람들이 더 악해집니다. 그래서 신앙생활 하기가 어려워집니다. 딤후3:1-5에 보면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정신 바짝 차리고 신앙생활을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미혹에 빠지게 됩니다. 예배 드리는 일, 기도 하는 일, 봉사 생활에 소홀히 하고, 마음이 나태하거나 대충 신앙생활해도 되겠지 하다가 어는 새 은혜는 다 떠나고, 미지근하고, 형식적인 신앙만 남아 있게 됩니다. 세속적 죄악 사상과 문화에 빠지게 됩니다.


또 마지막 때에는 사단이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고 각가지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사람들을 미혹하여 바른 믿음의 길에서 떠나게 하려고 힘씁니다. 깨어 있지 못하면 마귀가 주는 달콤한 말에 미혹당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요즈음성도들의 신앙을 노략질하려는 이단 사이비들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무료 성경공부 시켜준다는 말에 속아 참여했다가 이단에 빠진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이단에 빠지기 쉬운 사람의 유형을 보면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특별하다고 인정받고 싶어 하는 사람, *말씀보다 신비한 것을 추구하려는 사람, *사업에 실패한 사람, *욕심이 많은 사람이 미혹에 빠지기 쉽습니다.


살전 5:7에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근신할지라.” 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왜 깨어 있어야 되는 가에 대해 도둑이 밤에 잠 잘 때 오는 것처럼, 예수님이 오시는 날도, 성도가 휴거 되는 것도 영적으로 잠들어 있을 때 갑자기 임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세상일에 분주하여 세상에 메어 살다보면 영적인 일에 무관심해지기 쉽습니다. 욕심에 이끌려 육신의 일에만 치심 하여 삽니다. 그래서 로마서 8:6에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고 했고 10절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라고 했습니다.


깨어 있는 신앙의 사람은 주님을 사랑하면서 주님을 본받아 말씀에 순종하여 살기를 힘씁니다. 주님은 세상에서 즉 지금 내가 처하고 있는 내 가정, 내 교회, 내 직장, 내가 생활하는 그 곳에서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빛과 소금이 되어 살라고 하셨고, 바울사도는 그곳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로 살라고 하였습니다. 빛과 소금, 향기 이 세 가지 것에 공통분모가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희생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빛과 소금, 향기 이것들은 자기가 소모되면서 빛을 내고, 소금 맛을 내고, 향기를 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타고난 자연인인 우리는 그렇게 손해보고, 희생하고 살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그래서 성령의 도움 없이 성경 말씀대로 산다는 것이 너무 어렵습니다. 깨어 있는 성도만이 그렇게 살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깨어 경성하는 신앙의 사람으로 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2.사모하여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구약 본문 1절에 "여호와께서 회리바람으로 엘리야를 하늘로 올리고자 하실 때에"라고 했습니다. 엘리야의 마지막이 임박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회리바람으로 엘리야를 하늘에 올리고자 하실 때에 길갈로 보내고(왕하 2:1), 벧엘로 보내고(왕하 2:2), 여리고로 보내고(왕하 2:4), 요단으로 보내셨습니다(왕하 2:6). 하나님께서는 엘리야가 마지막으로 그의 사역 지를 둘러보고 엘리야로 하여금 이 세상을 떠나 영광의 승천을 하게 하신 것입니다.


엘리야가 사역했던 위의 장소들은 역사적 의미가 담겨있는 곳들이었습니다. *길갈은 요단 건너편 첫 거점으로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처음으로 유월절을 지키고, 마지막으로 만나를 먹었던 곳이었습니다(수 4:19, 5:10-12). *벧엘은 유명한 저들의 조상 야곱이 사닥다리 계시를 받았던 곳이었습니다(창 28:10-22). *여리고는 하나님의 기적이 나타나 요단강을 건넌 후 첫 승리를 맛본 곳이었습니다(수 3:, 6: ). 또 요단은 바로 엘리야 자신이 승천하고 엘리사에게 마지막 하나님의 사역을 계승하던 장소였습니다(왕하 2:6-11).


엘리야를 통해 선지학교에서 배우던 당시 선지생도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자기 스승 엘리야를 하늘로 취하여 가신다고 하는 사실을 예감하고 있었습니다. 엘리사 역시 그 사실을 직감하고 있었습니다. 엘리야가 자기를 따르지 말고 여기 머물라고 했을 때 다른 사람들은 다 머물러 있었지만 유독 엘리사만은 스승의 만류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결사적으로 그를 따랐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엘리사를 만류했지만 그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하나님의 사심을 두고 맹세까지 하면서 자기 스승 엘리야를 떠나지 않겠다고 소리쳤습니다(왕하 2:2, 4, 6).


그래서 두 사람은 요단을 건너기까지 동행하고 있었습니다. 요단강가에서 엘리야는 겉옷을 취하여 물을 쳤습니다. 그때 물이 이리저리로 갈라지고 말았습니다. 두 사람은 마른 요단강을 발로 밟으면서 육지처럼 건넜습니다(왕하 2:8). 이는 엘리야가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는 그의 선지자직의 권위요, 상징이었습니다(왕상 19:19). 모세가 홍해를 건널 때는 그의 지팡이를 사용하였습니다(출 14:16, 21). 여호수아가 요단강을 건널 때는 하나님의 법궤가 선행하였습니다(수 3:13). 그렇다면 모세의 지팡이, 여호수아가 앞세운 법궤, 엘리야의 두루마기는 그 자체에 무슨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권능을 나타내는 도구(수단)였음을 보여줍니다. 이 놀라운 장면을 선지생도 50명이 멀리서 친히 목격을 하고 있었습니다(왕하 2:7).


하나님의 기적으로 요단강을 건너온 엘리야는 엘리사에게 말을 합니다. “건너매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나를 네게서 취하시기 전에 내가 네게 어떻게 할 것을 구하라 엘리사가 가로되 당신의 영감이 갑절이나 내게 있기를 구하나이다.”(왕하 2:9)라고 하였습니다. 엘리사는 세상의 영화와 부귀를 구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을 구했습니다. 갑절의 영감을 구했습니다. 이는 장자가 받는 배(倍)의 기업을 뜻합니다(신 21:17). 엘리사는 스승이 남겨두고 가는 선지학교 교육에도, 자기시대에 자기에게 부여된 사명수행에도 하나님의 영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엘리사의 요구를 들은 엘리야는 ‘네가 어려운 것을 구한다.’고 하면서 하나님께서 나를 하늘로 올리실 때 나를 계속 바라보면 갑절의 영감을 주시리라고 약속합니다. 잠시 후 하나님께서 회리바람으로 둘을 갈라놓고 엘리야가 하늘로 올라갈 대 "내 아버지여!" 외치면서 쳐다보다가 선생님의 떨어진 옷을 받아 입고 갑절의 영감이 넘치는 사역을 하였는데 실제로 스승 엘리야가 행한 일과 제자 엘리사가 행한 일을 비교하여 보면 엘리사가 갑절이나 더 많은 일을 감당하였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 엘리사와 같은 성령 충만을 사모하는 믿음이 있어야겠습니다. 하나님은 사모하는 자들에게 성령 충만의 은혜를 주십니다. 주님의 제자들을 비롯한 120 문도 역시 사모하여 기도하다 성령 충만을 받았고, 백부장 고넬료의 집에 모인 무리들도 사모하여 성령 충만을 받았고, 자주 장사 루디아도, 빌립보 감옥의 간수도 사모하여 성령의 은혜를 받고 빌립보 교회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 사모하여 성령 충만을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3.영광스런 하늘 소망을 사모해야 합니다.


구약 본문에 나오는 엘리야나 엘리사는 세상의 영광을 위해 산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하며 우상 숭배와 악을 대적하여 싸우면서 오직 하늘 소망을 바라보고 살았던 분들입니다. 엘리야는 불같은 성령의 사람으로 살다가 불말, 불 수레를 타고 영광스럽게 하늘로 들림을 받았습니다.


신약 본문 막13:35-37에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집 주인이 언제 올는지 혹 저물 때일는지, 밤중일는지, 닭 울 때일는지, 새벽일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 그가 홀연히 와서 너희가 자는 것을 보지 않도록 하라/ 깨어 있으라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은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 하시니라”하셨습니다. 32절에는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하셨습니다. 그 날은 주님도 모르신다 했는데, 미혹하는 자들이 날짜를 정하여 사람들을 미혹합니다. 1992년에 우리나라에서 사회 문제를 일으킨 다미선교회라는 곳에서 "다가올 미래를 대비하라"를 줄인 말인데, 이장림이라는 사람이 10월 28일에 인류의 종말이 온다고 주장했습니다. 10월 28일 자정 12시를 기해서 예수님이 재림하신다고 선전하고 다니면서 전국적으로 조직을 만들고, 해외에도 지부를 만들고 야단법석을 떨었습니다. 여기에 혹해 가지고 2만 여명의 사람들이 따라다녔고 그 중에 5천 여 명은 일상생활을 포기하면서까지 따라다녔습니다. 지금도 우리나라 안에만 시한부 종말론 집단이 80여 개가 넘으며 신도 수는 15만 명에 이릅니다. 그리고 그들은 지금도 시한부 종말론에 빠져 성경의 가르침도 뒤로하고 잘못된 종말론 신앙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분명한 것 한 가지는 기독교적 종말론과 시한부 종말론은 엄연히 다르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종말은 ‘세계의 대파멸이 아니라 하나님이 약속하신 새 하늘과 새 땅의 희망에 대한 믿음’이며, ‘인간이 죄에서 해방되는 구원의 시간’입니다.


종말론의 주장은 한국에서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최근의 기록을 보면 1844년에 안식교에서 예수님이 오신다고 예언을 했습니다. 그 때는 온 세계 사람들이 야단을 했습니다. 그들도 집을 팔고 목욕 재개하고 흰옷을 입고 기다렸었는데 헛수고였습니다. 일찍이 프랑스의 예언가였던 노스트라다무스는 1999년 7월에 인류의 종말을 예언했습니다. "1999년의 일곱 번째 달에 하늘에서 공포의 대왕이 내려오리라." 그 외에도 여러 사람이 인류의 종말, 예수님의 재림을 이야기했는데, 그 시기는 이미 다 지나버렸고 종말은 오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신다는 것, 그 날이 있다는 것은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 기다려지는 일입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심판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성도들을 천국으로 인도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말씀이 약 1,500번 정도 나옵니다. 그만큼 예수님의 재림은 중요한 것이고 세상의 종말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주의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의 자세는 항상 깨어 근신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언제 주님이 오실지 모르기 때 문이다(35) 오늘이 그 날인 것처럼,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갑자기 오셨을 때에 우리가 잠자고 있는 것을 보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36) 주님 맞을 자격을 갖추기 위해 말씀을 따라 마땅히 할 일을 하면서 의의 예복을 준비해 주님 앞에 설 수 있는 성도가 되어야겠습니다.


우리 모두 영광스런 하늘 소망을 사모하여 살다가 믿음의 승리자로 주님 앞에 설 수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정리합니다.


 


두 본문을 중심으로 인생의 피날레를 잘 장식하는 “영광스런 마침을 위해”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영광스런 마침을 위해,


 


◈.깨어 경성하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사모하여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영광스런 하늘 소망을 사모해야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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