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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마음에 합한 신앙생활 (왕하23:1-7)

본문

하나님 마음에 합한 신앙생활


열왕기하 23:1-7


 


하나님 마음에 합한 신앙생활은 사도 바울의 설교에서 나온 말입니다.


사도 바울이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설교할 때 이스라엘 역사를 언급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다윗 왕이 등장합니다.


다윗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사도 바울은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고 소개합니다.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행13:22)


이 말은 원래 사무엘 선지자가 했던 말입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사울이 자기 마음대로 정치를 하고 하나님께 제대로 순종하지 않자 이렇게 말을 합니다.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령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여호와께서 그를 그의 백성의 지도자로 삼으셨느니라.”(삼상13:14)


사무엘 선지자가 말한 ‘그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바로 이스라엘의 두 번째 왕인 다윗입니다.


 


여러분, 다른 분도 아니고 온전하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된다는 것이 인간으로서 얼마나 어렵고 또한 귀한 일이겠습니까?


이기심과 욕심에 충만하여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는다는 것은 정말 너무나 소중하고 놀라운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신앙은 날마다 주님의 마음에 합한 모습으로 변화되고 새로워져야 합니다.


주님의 마음에 합한 모습으로 변화되는 것이 우리의 신앙의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미국의 링컨 대통령이 남북 전쟁을 하면서 하나님께 열심히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참모들이 ‘대통령께서 그렇게 열심히 기도하시니 하나님이 대통령의 편이 되시고 우리가 전쟁에서 승리할 것입니다.’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자 정색을 하면서 링컨이 하는 말이 ‘하나님이 내 편이 되다니요,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나는 내가 하나님 편이 되려고 부단하게 노력하고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 편이 되려고, 내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려고 애쓰고 노력하는 것이 올바른 신앙의 자세인줄 믿습니다.


 


저는 목회를 하면서, 또한 말씀을 전하면서 이 일에 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려고 합니다.


우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이 하나님 마음에 합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최고의 목표로 삼고 그 신앙으로 인도하기 위하여 올바른 목회를 하고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그러기에 어느 때는 성도들이 듣기 싫은 말도 전하게 됩니다.


어느 때는 성도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씀도 전하지 않게 됩니다.


성도들의 마음에 합한 목회가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목회를 해야 하기에,


성도들이 원하는 신앙생활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신앙생활을 해야 하기에 성도들의 생각과 다른 말씀을 전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들은 내 마음에 맞는 신앙생활을 해서는 안 되는 줄 압니다.


내 마음에 합한 신앙생활이 일시적으로 즐거움과 만족을 줄지 몰라도 그것은 올바른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내 마음에 합한 신앙생활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유다의 요시야 왕이 종교개혁을 단행하는 말씀입니다.


요시야 왕은 성전에서 발견된 언약 책을 보면서 당시의 신앙생활이 얼마나 하나님 마음에 맞지 않았는가를 깨닫고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신앙생활을 위하여 철저히 종교개혁을 단행합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은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일으킨 종교개혁기념주일입니다만 이러한 기념주일에 우리는 얼마나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신앙생활을 하는지 늘 살펴보면서 잘못된 것을 바르게 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것이 오늘의 종교개혁이고 종교개혁의 전통에 세워진 우리 교회가 지향해야 할 방향이며 목표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겠습니까?


 


먼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23장 2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성전에서 발견한 율법 책을 왕이 모든 사람을 모아 그들 앞에서 읽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왕이 여호와의 성전 안에서 발견한 언약책의 모든 말씀을 읽어 무리의 귀에 들리고’


요시야 왕이 종교개혁을 위하여 제일 먼저 한 일은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읽어서 들리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도 무엇보다도 말씀을 읽어야 합니다.


말씀을 읽을 때 그 말씀이 근거가 되어 무엇을 잘 못하고 있는지, 무엇이 부족한지, 무엇이 비뚤어져 있는지를 알게 됩니다.


그래서 올바른 모습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고 하나님 마음에 합한 모습으로 살 수 있게 됩니다.


요시야 왕이 읽어주는 말씀을 듣고 있었을 때 그들은 정말 우리가 너무나 잘못하고 있구나, 우리가 하나님의 뜻과는 너무나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구나, 하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철저한 개혁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백성들이 이렇게 잘못된 신앙생활을 하게 된 것은 말씀을 읽지 않고 듣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22장에 보면, 요시야가 왕이 된지 10년이 지났을 때 대제사장 힐기야가 성전을 수리하다가 율법 책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말을 바꿔 이야기하면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 책이 어디에 있는지 관심도 없고 찾지도 않고 그저 성전 한 쪽 구석에 쳐 박아 두었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성경책은 어디에 쳐 박아 두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성경책을 얼마나 보고 읽고 아끼고 있습니까?


예전에는 교회에 올 때 필수적으로 성경과 찬송가를 갖고 왔는데 요즘에는 갖고 오지를 않습니다.


대부분의 교회에는 성경찬송가가 다 비치되어 있고 웬만한 교회는 성경을 자막으로 보여주고 있고 젊은이들은 휴대폰에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성경책이 어디에 있는지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교회에 올 때도 있으면 갖고 오지만 찾다가 없으면 그냥 옵니다.


자막으로 다 보여주고 아니면 비치된 것을 보면 되니까요.


많은 성도들의 경우는 성경책을 차에 놓고 다니다가 주일날 교회 올 때에 갖고 오고 예배 끝나면 차에 던져 놓고 한 주간을 보내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이 정도가 되니까 생명의 양식으로 우리가 성경을 대하고 읽고 묵상하는 일이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주위에 가까이 있는 것 같은데 실상 말씀은 거의 보지 않습니다.


거의 읽지 않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읽고 듣고 묵상하고 그래서 말씀에 의지하여 여러분 자신을 살피면서 하나님 마음에 합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늘 말씀을 읽고 묵상할 때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잘못된 것을 제거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요시야 왕과 백성들은 말씀을 듣고 자기들이 지금 얼마나 잘못하고 있는가를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잘못된 모습들을 하나하나 철저하게 개혁해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제일 먼저 혼합신앙을 제거합니다.


 


4절 말씀을 보면, ‘바알과 아세라와 하늘의 일월성신을 위하여 만든 모든 그릇들을 여호와의 성전에서 내다가 예루살렘 바깥 기드론 밭에서 불사르고 그것들의 재를 벧엘로 가져가게 하고’ 말씀이 있습니다.


여호와의 성전에 바알과 아세라와 하늘의 일월성신을 위하여 만든 모든 그릇들이 있다는 것이 웬 말입니까?


이 말은 하나님을 섬기는 여호와의 성전에서 다른 신들과 우상들을 겸하여 섬겼다는 말입니다.


하나님도 섬기고 바알과 아세라도 섬기고 하늘의 일월성신도 섬겼다는 말입니다.


일찍이 하나님은 나는 질투하는 하나님이라고 하시면서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어떤 형상이든지 만들거나 절하거나 섬기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제2계명)


이러한 것들이 하나님을 미워하는 것이고 그런 자에게 죄를 갚되 3, 4대에 이르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요시야 왕의 시대에 백성들은 성전에서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우상들을 섬겼다는 것입니다.


성전뿐만이 아니라 오늘 본문을 계속 읽어보면 전국 각지에서 얼마나 광범위하게 우상숭배가 만연하였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백성들이 이렇게 우상숭배에 몰두하였던 것입니다.


이것들을 철저하게 제거하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신앙생활을 위하여 먼저 살펴보아야 할 것도 혼합신앙입니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행여 다른 것들을 섬기고 숭배하고 있지는 않는지? 우리 자신을 냉철하게 살펴보아야 합니다.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을 바알과 아세라로 생각해서 그저 잘 살고 풍요하게 살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무당종교처럼 그저 열심히 기도해서 잘 살면 그것으로 다 된 것처럼 생각하지는 않는지요?


잘사는 것을 위해서라면 방법은 어떻든 상관없다는 생각으로 온갖 부정과 부패를 일삼으면서 나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는지요?


우리는 이런 혼합주의 신앙을 빨리 제거하고 오직 하나님 오직 예수님 오직 성령님만을 섬기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또한 남창의 집을 제거합니다.


 


7절 말씀을 보면, “또 여호와의 성전 가운데 남창의 집을 헐었으니 그곳은 여인이 아세라를 위하여 휘장을 짜는 처소였더라.”고 했습니다.


남창은 우상 숭배를 거행할 때 종교의식상 성관계를 맺거나 아니면 남색 하는 자들의 상대역할을 했던 사람들인데 그 남창의 집이 성전에 있었습니다.


율법으로 볼 때 남색 하는 자들은 사형에 해당되어 금지되어 있었지만 유다 백성들은 여호와의 전 한쪽에 남창의 집을 만들어 우상을 숭배하고 남색을 즐겼다는 것입니다.


이 남창들은 아세라를 위하여 휘장을 짜는 여인들과 함께 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어떤 설교자(남포교회 박영선 목사)는 현대 교회가 갖고 있는 문제 중에 대표적으로 두 가지를 꼽고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세속성인데요(또 다른 하나는 실용성) 세속성은 세상이 추구하고 갖고 있는 가치관을 교회가, 그리스도인들이 그대로 따라간다는 말입니다.


세상이 어떻게 나아가든 우리는 기독교 신앙의 고유한 가치관을 갖고 살아가야하는데 그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의 가치관을 그대로 수용하여 그것이 기독교 가치관인양 따라간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속성의 문제는 세상의 가치관에 만족할 때 신앙생활을 잘 하는 것으로 축복받는 것으로 착각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의 가치관은 ‘지금 여기에서 어떻게 만족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사는 날 동안 즐겁게 쾌락을 누리며 사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요 최고의 가치입니다.


문제는 이것이 기독교 신앙에도 그대로 들어와 신앙생활의 목표가 되었고 최고의 가치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마음에 합한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세상의 가치관을 우리 안에서 빨리 떨어내야 합니다.


즐거운 것이 꼭 선일 수 없고 지금 여기에서 행복한 것만이 최고가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세상의 즐거움을 뛰어넘는 목표가 있고 여기에서 지금 살아가는 것을 뛰어넘는 영원한 삶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또한 여로보암이 벧엘에 세운 제단과 산당을 제거합니다.


 


15절에 나오는 말씀인데요, 이것이 왜 중요한가 하면 지금까지 크고 작은 종교개혁을 하면서도 이것만큼은 건드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요시야 왕은 이것마저 헐어버리고 개혁을 합니다.


얼마나 철저한 개혁인지 모릅니다.


저는 이것을 오래된 관습과 전통을 제거해야 한다고 해석을 합니다.


오래된 전통과 관습은 우리에게 이미 익숙하였기 때문에 정말 제거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마음에 합한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아무리 오래되고 그래서 익숙하고 친근할지라도 잘못된 것은 과감하게 제거하고 버려야 됩니다.


 


제가 사는 봉명동(청주)에 봉황제라는 축제가 있습니다.


수령 500년이 넘은 소나무를 봉황송이라고 이름붙이고 주변 행사를 곁들여서 봉황제라는 축제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번에 봉황제와 다른 초청장을 하나 받았는데요, 500 몇 주년 봉황송 기념식을 한다고 해서 깜짝 놀란 적이 있습니다.


가보지 않아 행사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째든 일개 소나무를 가지고 기념식을 한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오래되었어도 그래서 아무리 친숙하고 익숙하다고 할지라도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이고 그것을 우리는 과감하게 제거해야 합니다.


하나님 마음에 합한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 우리는 잘못된 가치관과 제도와 관습과 전통을 제거해야 합니다.


 


마지막 세 번째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고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키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요시야 왕과 백성들은 여호와 앞에서 언약을 세우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가기를 약속합니다.


그 언약의 결과로 우상 숭배의 잔재를 다 청산하고 잘못된 습관과 관습을 청산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마음의 청결도 중요하지만 그 마음에 말씀을 채우는 것의 중요성을 말씀하셨습니다.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 나갔을 때에 있을 곳을 찾지 못하자 예전에 있던 집으로 다시 돌아갑니다.


그 집이 청소되고 수리되었을 때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악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마12:45)


깨끗하게 청소하고 수리되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적극적으로 우리 심령을 성령으로 말씀으로 채울 때 악한 것이 엿보지 않습니다.


하나님 마음에 합한 모습으로 신앙생활하기 위하여 우리 심령을 예수님으로 말씀으로 성령으로 채우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하여 항상 기도해야 하고 성령의 충만을 간구해야 하고 말씀을 늘 읽고 묵상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이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가 되어서 주님의 칭찬을 받고 인정을 받고 주님의 축복을 누리는 신앙생활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2019.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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