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절

TOP
DOWN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왕하20:1-7)

본문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왕하 20장 1-7절)


--------------------------------------------------------------------------------------


 


우리나라가 남과 북으로 분단 된지 74년이나 되었습니다. 하루속히 평화적인 통일 국가를 이루는 날이 오기를 기대하고 기도하여야 하겠습니다. 성경 역사속의 이스라엘도 솔로몬 왕 이후에 남과 북으로 나뉜 역사는 잘 아실 겁니다. 북 이스라엘은 208년 동안 19명의 왕이 다스렸고, 남 유다는 344년 동안 20명의 왕이 다스렸습니다. 왕의 숫자가 비슷한데 통치 기간이 100년 이상 차이나는 것은, 북 이스라엘은 반역하여 왕위에 오른 사건이 많아서 상대적으로 왕들의 통치 기간이 짧았습니다. 6개월(스가랴), 1달(살룸), 심지어 7일(시므리)동안 다스린 왕도 있었습니다. 반대로 남 유다는 정통적으로 왕위 계승을 이어나갔기 때문에 20~50년 이상 통치한 왕들이 많았습니다.


 


오늘 성경 본문의 주인공인 히스기야 왕은 “여호와는 강대하게 하심”이라는 이름 뜻을 가졌으며, 남유다 왕국의 13번째 왕이었습니다. 25살의 젊은 나이에 즉위하여 29년간 통치하였습니다. 히스기야가 통치하던 시대에 가장 큰 걱정거리는 앗수르 제국의 위협이었습니다. 앗수르 제국은 그야말로 거칠 것이 없는 당대의 초 강대국이었습니다. 히스기야가 즉위한지 7년 째 되던 해에 앗수르 제국은 북 이스라엘을 멸망시키고 수도인 사마리아 성을 불태웠습니다(주전 722년). 히스기야 당시 앗수르 왕의 이름은 ‘산헤립’이었는데, 히스기야가 다스린지 14년 째 앗수르의 대대적인 침공이 있었습니다.


 


이 때 다급해진 히스기야는 앗수르 왕에게 전령을 보내서 “우리가 잘못하였습니다. 철수만 해주시면, 요구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드리겠습니다.”(왕하 18:14, 표준새번역) 라고 굴욕적인 항복의 뜻을 말합니다. 앗수르 왕은 철수 조건으로 은 300달란트와 금 30달란트를 요구합니다. 히스기야 왕은 성전과 왕궁의 보물 창고를 열고, 자신이 직접 기둥에 입힌 금 도금 한 것을 다 벗겨서 앗수르 왕에게 바칩니다.


 


하지만 앗수르 군대는 철수 하지 않고 랍사게 라는 장군은 성을 포위한 채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모욕을 가합니다. “히스기야야! 너는 무엇을 믿고 그렇게 자신 만만 하냐, 너는 입으로만 전쟁을 하느냐? 내가 말 이천 마리를 주면 너희들에게 말을 탄 군사라도 있기는 하느냐? 너의 신에게만 예배 한다고 산당과 제단을 다 헐어 버렸으니, 이제 네가 믿는 신을 앞세워 앗수르 왕을 대적해 보아라, 너와 너의 백성은 너희들이 눈 대변을 먹고, 너희들의 눈 소변을 먹게 될 것이다”


 


이런 참을 수 없는 모욕을 들은 히스기야의 참모들은 옷을 찢고 통곡하였고, 히스기야도 옷을 찢고 굵은 베옷을 입고 전심으로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이때 왕궁에 있는 선지자가 한 명 있었는데 그 유명한 이사야입니다. 왕과 이사야는 오직 기도만으로 하나님을 뜻을 구하였고 하나님은 응답해 주셨습니다. “내가 나와 나의 종 다윗을 위하여 이 성을 보호하여 구원하리라”(왕하 19:34)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떨어지자, 여호와의 사자가 산헤립의 군대를 쳐서 18만 5천 명을 쓰러트렸습니다. 앗수르 군대는 도망갔고 이 일 이후에 산헤립 왕은 자신이 모시는 신전에서 암살을 당하는 비참한 최후를 맞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모욕하는 자는 반드시 심판을 받게 되고, 하나님의 자녀, 백성을 건드리는 악한 세력들은 진실한 기도를 통해 반드시 물리쳐 주신다는 역사적인 교훈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내용이 열왕기하 18~19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남, 북의 39명을 왕을 평가할 때, 북 이스라엘의 왕 중에서는 선한 왕이 하나도 없고, 남 유다 왕국의 왕 중에서는 히스기야와 요시야를 선한 왕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히스기야 왕에게는 앗수르 제국, 요시야 왕에게는 바벨론 제국 이라는 큰 나라의 침공 위협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들어 쓰시는 사람에게는 특별한 고난의 환경을 주십니다. 큰 고난을 주심은 큰 용기와 큰 믿음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앗수르와 바벨론이 없었다면, 히스기야와 요시야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 왕이 되었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의 현장에서 모욕당하고, 침입 당하는 상황이 밀려오면, 가장 먼저 골방으로 들어가서 무릎 꿇고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적들과, 문제들과 담대하게 싸울 각오를 하십시오. 하나님은 기도하는 자와 함께 하시며, 반드시 선한 자의 편에서 승리의 순간을 맞이하게 하실 것입니다. 00교회 모든 성도가, 이 시대의 앗수르, 이 시대의 산헤립과 랍사게를 대항하여, 완전하게 이기고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당당히 맛서 싸우는 강건한 믿음의 용사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히스기야에게는 외부세력의 침입도 문제였지만, 가장 큰 인생이 내적인 문제가 닥쳐왔습니다. 바로 질병으로 인해 죽음을 눈앞에 두게 되었습니다. 죽는 다는 것보다 더 큰 인생의 문제는 없습니다. 그것도 히스기야와 같이 낫지 않는 병에 걸려 있으면서 죽음을 기기다릴 수밖에 없는 사람에게는 그 두려움과 고통을 감당해내기 어렵습니다.


 


1절에서 히스기야가가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 이사야 선지자가 찾아 와서,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집을 정리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라고 하나님의 뜻을 말해 줍니다. 그야말로 청천벽력과도 같은 폭탄선언입니다. 당대 최고의 예언자인 이사야가 한 말이니 거의 죽음에 대한 판결이나 다름없었습니다. 히스기야는 참담하고 이루 말할 수 없는 심적 충격을 받았을 겁니다. 잔병치레 없이 건강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어찌 암 선고를 받고 시한부 삶을 살아가는 사람의 심정을 알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그저 상상할 뿐이지 40살 정도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하여야 하는 히스기야의 마음을 헤아릴 수조차 없습니다.


 


영어권 문학상인 푸스카트 상을 비롯해서 많은 상을 받았고, 10년 넘게 완화 치료 간호사로 일한 경력이 있는 ‘샐리 티스데일’ 이라는 여류 에세이스트가 쓴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이란 책이 있습니다. 2018년도 미국 뉴욕 타임즈 비평가들이 뽑은 올해의 책이라고 합니다. 책의 목차들을 보면 마지막 몇 달, 마지막 몇 주, 마지막 며칠, 마지막 순간, 이런 식으로 단계별로 죽어가는 사람의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책의 소개와 리뷰를 살펴보는데 이런 구절이 눈에 들어 왔습니다.


 


“고개를 돌리지 마라. 너희도 이러할 지니라, 우리는 남들과 다르기를, 남들보다 더 젊고 더 강하고 더 크고 더 늘씬하고 더 풍만하고 더 예쁘기를 바라며 한평생을 보낸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은폐할 수 없다. 숨기려 애썼던 부분이 드러나고, 숨기려 애쓰던 얄팍한 노력도, 실제와 달라 보이고 싶었던 갈망마저 다 들통 난다. 모든 게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이미 알던 것을 낱낱이 확인할 때가 온 것이다. 당신은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쪼그라진 몸을 마주한다.』


 


글을 읽으며 참 서글픈 마음이 들었지만, “숨은 것이 장차 드러나지 아니할 것이 없고 감추인 것이 장차 알려지고 나타나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눅 8:17)라는 예수님의 말씀도 함께 떠올랐습니다. 히스기야와 같이 한 나라의 왕이 되었다고 해도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우리의 현실입니다. 잘나고 못나고, 잘 배우고 못 배우고, 잘 가지고 못 가지고는 살아 있을 때나 따지는 겁니다. 죽음의 순간에 이르러서는 어느 누구도 차별도, 분리도, 선택의 여지도 없이 동일한 자리에 서게 됩니다. 우리는 다 참 좋은 죽음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것은 죽음 앞에서도 평안을 잃지 않는 것이고, 죽음의 순간에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을 보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그런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기 위해서 이렇게 예배하고, 믿음대로 살기위해 계속 노력하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히스기야는 하나님 앞에서 온전하고 믿음이 특별한 왕이었지만 죽음에 대해서는 준비가 안 되어 있었습니다. 인간이 가진 가장 기본적인 본능으로 “난 이대로 죽을 수 없다” 라는 강한 생존욕구가 발동했습니다. 그가 죽는다는 예언을 듣고 즉시 한 행동, 2절과 3절을 읽어 드립니다. “2. 히스기야가 낯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3.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께서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히스기야가 심히 통곡하더라” 아멘


 


이 기도는 히스기야 자신이 무엇을 했으니 당연히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해 주시라는 요구가 아닙니다. “기억하옵소서” 라고 기도했을 뿐, 원망하거나, 살려 달라고 떼쓰지 않았습니다. 저는 기도의 내용 보다 히스기야가 보인 특별한 행동 두 가지가 보입니다.


 


첫째는 “낯을 벽으로 향하고 기도한” 행동입니다. ‘낯’이라는 단어는 얼굴이죠. 얼굴을 뜻하는 히브리어는(파님)은 단순한 신체의 한 부위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생활 방식, 나아가서는 인격을 의미합니다. 옛 날 속담에 “얼굴값도 못한다, 얼굴값은 하네” 라는 말이 있고, 요즘 많이 쓰이는 말 중에는 “얼굴(관상)은 과학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얼굴만 봐도 그 사람이 나쁜 짓 하는 사람인지 좋은 짓 하는 사람인지 알 수 있다는 뜻입니다.


 


히스기야가 낮을 벽으로 향하여 선 행동은 습관적으로 몸에 배인 기민한 행동입니다. 벽을 바라보는 이 행동은 세상을 등지고 오직 여호와 한 분만 바라보겠다는 의미입니다. 히스기야는 매사에 중요한 일이 있을 때는 참모들에게 물어보지 않고 즉시 하나님과 일대일 대면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 나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그의 인격이 온전한 믿음 안에서 하나님과 좋은 소통의 관계를 이루었다는 뜻입니다. 마치 사자 굴에 던져질 것을 알고도 평소와 마찬가지로 정 자세로 기도했던 다니엘처럼, 히스기야도 평소 습관대로 하나님만 바라보는 행동을 보였던 것입니다. 성숙한 인격의 사람은 평소 때나 급할 때나 변함없이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접해 드리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둘째는 “심히 통곡 하였더라”라고 한 장면입니다. 통곡했다는 말을 표준새번역에서는 “한 참 동안 흐느껴 울었다”, 우리말 성경에서는 “매우 슬프게 울었다”라고 했습니다. 이 상황에 눈물이 안 나는 것이 이상하겠죠. 저는 이 통곡의 의미가 자신에게 닥친 슬픔의 표현에 앞서, 하나님이 정하신 운명을 순순히 받아들이겠다는 순종의 눈물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자신의 안위 보다 앗수르의 위협에 힘겹게 맞서고 있는 나라를 위해, 그리고 힘든 삶을 살아가는 백성들을 위해 흘리는 눈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죽더라도 좋으니,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 하나님이 세우신 다윗 왕가를 적의 손에서 막아 주옵소서”라고 긍휼을 구하는 통곡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믿음으로 온전케 되어 성숙함에 이른 사람은 죽음의 순간에 아름다운 눈물을 흘릴 수 있습니다.


 


제가 한 집사님을 소개합니다. 이 집사님은 고려대학교 전기전자전파공학부를 최우수 4년 전액 장학생으로 졸업하며 연구원으로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던 중에 ‘소연’이라는 예쁜 딸을 얻었습니다. 이 때 나이가 37살의 한창 때였습니다. 그런데 딸이 태어나고 얼마 후 집사님은 대장암 4기 진단을 받습니다. 절망적인 소식에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어머니가 충격으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납니다. 연이어 거짓말처럼 아내 집사님에게도 혈액암 4기 진단이 내려집니다. 그야말로 비현실적이고 상상도 할 수 없는 욥과 같은 고난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저희 가정 이러다 다 죽게 생겼습니다. 주님 살려주세요…” 점점 조여오는 고통 속에서도 집사님은 불평하고 좌절하는 대신 그 속에서 희망과 웃음, 믿음으로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오늘 나에게 주어진 하루가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고 가정을 한다면 그 하루를 누군가를 미워하고 증오하면서 보내고 싶지 않다.”고 말하며 육체적으로 고통스러운 나날 속에서도 맑은 정신으로 감사한 하루를 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2017년 KBS에서 방송된 <KBS 스페셜>의 ‘앎: 교회오빠’을 통해서 전해진 故, 이관희 집사님 가족의 이야기입니다. 집사님은 2018년 9월 16일 40번째 생일날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이후에 집사님의 이야기는 『교회오빠』라는 책과 영화로 우리에게 기억되고 있습니다. 잠시 『교회오빠』 영화 예고편을 보도록(영상) 하겠습니다.




죽음 앞에서 “고맙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라고 흐느끼며 고백하는 아내 오은주 집사님의 고백이 저에게는 마치 천둥소리와도 같이 크게 들립니다. 하나님에게도 그 소리가 또렷하게 들렸을 것입니다. 죽음까지도 받아들이는 순종의 눈물은 영원히 기억될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히스기야가 낯을 벽으로 향하고 통곡 할 때의 심정이나, 故, 이관희 집사님과 그 가족이 흐느끼며 흘리며 올려드린 기도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응답하여 주심을 믿습니다.


 


히스기야가 기도하는 중에, 이사야가 궁전 밖으로 나가는 중에 하나님은 히스가야에게 임하셔서 말씀 하십니다. “너는 돌아가서 내 백성의 주권자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왕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네가 삼 일 만에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겠고 내가 네 날에 십오 년을 더할 것이며 내가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구원하고 내가 나를 위하고 또 내 종 다윗을 위하므로 이 성을 보호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셨더라”(5, 6절) 아멘


 


“네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라” 아멘. 기도하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 죽음까지도 이겨내게 하시고 살려 주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 아버지 이십니다. 여러분, 죽기까지 힘든 고통이 있습니까? 하나님만 바라고 통곡하며 순종하는 마음으로 기도 하십시오. 제발 문제와 상황을 보지 마시고, 그 문제보다 훨~씬 크시고, 그 상황보다 훨~씬 크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오직 그분에게서만 생명이 나오고, 능력이 나오고, 눈물이 씻겨 지고, 치유와 회복이 일어납니다.


 


참 좋으신 우리 하나님의 크고도 넘치는 은혜가 저와 여러분의 기도하는 삶 위에, 통곡하는 삶 위에, 죽을 것 같은 불안과 두려움에 빠진 고달픈 인생위에“네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라” 즉시 응답하는 역사하심으로 나타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눈물을 닦아 주시고, 마음을 위로하여 주시고, 힘차게 살아갈 새 힘을 부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바라고, 기도함으로 이기고 승리하는 믿음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9,555 건 - 42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