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을 주신 하나님/전도서 4:7-12 (전4:7-12)
본문
가족을 주신 하나님/전도서 4:7-12
사람에게 공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 공기의 존재를 의식하지 못하고 삽니다. 마찬가지로 평소에 우리는 가족의 존재를 별로 의식하지 않고 삽니다.
가족은 필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아담 혼자 살도록 하지 않으시고 결혼 제도를 만드시고, 가족을 허락해 주신 것입니다. 가족은 소중합니다. 우리는 가족을 통해서 절대적 지지를 받고, 정을 나누며, 정서적인 만족과 친밀감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가족들이 늘 함께 지내다 보니 서로에 대해서 귀한 줄을 모르고 어떨 때는 귀찮게 생각할 때도 있습니다. 요즘은 오히려 가족들을 귀찮게 여겨 혼자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 인구가 늘지 않고 있는데도 계속 주택이 부족한 이유가 무엇인지 아실 것입니다. 혼자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혼자 살면 인간관계에서 비롯되는 갈등을 느낄 것도 없고 편안할 수 있습니다. 그 대신에 혼자 사는 사람에게는 고독과 허무가 있는 것입니다. 전도자는 이에 대해서 7-8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또 다시 해 아래서 헛된 것을 보았도다 어떤 사람은 아들도 없고 형제도 없고 홀로 있으나 그의 모든 수고에는 끝이 없도다 또 비록 그의 눈은 부요를 족하게 여기지 아니하면서도 이르기를 내가 누구를 위하여는 이같이 수고하고 나를 위하여는 행복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가 하여도 이것도 헛되어 불행한 노고로다.”
주위에 아들도 없고 형제도 없이 홀로 사는 어떤 사람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열심히 일을 해서 재산을 모았지만 그것이 눈에 차지 않고 행복을 누리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가족은 나의 울타리이고 든든한 버팀목입니다. 나만을 위해서 사는 인생은 재미가 없습니다. 부모의 기쁨은 자식을 위해서 수고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소중한 가족들을 위해 수고할 수 있다는 것은 생의 보람이고 기쁨이고 행복입니다.
혼자서는 사는 재미가 없습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더불어 살아야 삶의 기쁨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을 사회적인 존재라고 합니다. 우리 인간은 혼자 살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서로 도우며 살아야 합니다.
데일 카네기는 “자수성가한 사람이 있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또한 아인슈타인은 “나는 하루에도 여러 번씩 내 인생이 얼마나 많은 동료들의 노력으로 이루어졌는지를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들의 말은 현실에서는 한 사람의 노력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사람은 혼자의 힘으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저절로 큰 사람이 없습니다. 음으로 양으로 주변 사람에게 도움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겸손한 사람은 성공했을 때, 일이 잘 될 때 그 기쁨을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겸손한 사람은 부모님 덕분에, 아내 덕분에, 남편 덕분에, 가족 덕분에 잘 됐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더불어 사는 축복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부부에게, 그리고 확대해서 가족에게 적용시킬 수 있는 말씀입니다.
온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설날을 맞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가족이 좋은 이유를 생각하고 우리에게 소중한 가족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 축복을 누리기 원합니다.
첫째로, 가족이 좋은 이유는 서로 수고함으로 상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 9절을 보면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 협력할 때 상을 얻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상이라는 말은 두 사람의 협력으로 얻어지는 갖가지 유익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두 사람, 즉 부부가 협력함으로, 나아가 가족들이 협력함으로 얻을 수 있는 유익은 무엇일까요?
성경은 두 사람이 협력할 때 얻게 되는 유익에 대해서 여러 차례 언급을 하고 있는데, 그 최초의 말씀은 결혼에 대한 창세기 2장 18-24절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만드시고 독처하는 것이 좋아 보이지 않아서 하와를 돕는 베필로 주셨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도우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그 도움은 높은 수준의 도움입니다. 동물들 역시 아담을 도와주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도움은 낮은 수준의 도움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동등한 수준에서 아담을 도울 수 있는 베필을 허락하셨던 것입니다. ‘베필’이라는 말은 어느 쪽의 크고 작음이 없이 똑같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돕는’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에제르’(ezer)입니다. 이 말은 성경에서 하나님이 사람을 도와줄 때 쓰는 말로 여러 곳에서 사용되었습니다.
시편 33편 20절을 보면 “우리 영혼이 여호와를 바람이여 그는 우리의 도움과 방패시로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편 121편 1절을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도움이라는 말은 모두 이 에제르라는 낱말이 사용되었습니다.
정리하면 돕는 베필이란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는 이스라엘이 쓰러질 수밖에 없는 것처럼 여자가 없이는 남자는 쓰러질 수밖에 없다는 강한 의미로서의 존재를 말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남자들은 여자가 없으면 쓰러질 수밖에 없는 존재인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두 사람이 함께 하면 서로 의지가 됩니다. 용기가 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전도를 위해 제자들을 파송하실 때 둘씩 짝을 지워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신앙생활을 함에 있어서도 서로의 중요성에 대하여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마 18:19)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 18:20)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본적으로 두 사람은 부부이며, 세 사람은 가족입니다.
우리가 신앙의 길을 가는데 있어서 반드시 동행자가 필요합니다. 가족이야말로 좋은 동행자입니다. 가족들이 신앙 안에서 하나 되지 못하면 걸림돌이 되지만 온 가족이 연합하면 서로가 서로에게 신앙 성장과 발전을 위한 디딤돌이 될 수 있습니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함께 수고하며 바울의 선교 사역을 도왔던 부부로서 우리에게 이상적인 부부상을 보여주었습니다.
입이 뻣뻣한 모세를 위해 그의 형 아론이 대변자가 되어 주었습니다. 안드레는 그의 형 베드로를 전도하여 함께 주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나사로, 마르다, 마리아 삼남매는 믿음 안에서 서로 의지하며 살았고 예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부부가 합심하고, 가족이 한 마음 한 뜻으로 연합하여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자리에 함께 하시고 응답하십니다.
부부가 함께 수고하고, 온 가족이 함께 수고함으로 가정에 좋은 일들이 차고 넘치시기를 축복합니다.
둘째로, 가족이 좋은 이유는 서로 위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 10절을 보면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가끔 혼자 있고 싶어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잠시 뿐이고 결코 혼자 지내지를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과 어울리게 되고, 옳고 그름을 떠나 다수의 사람들을 좇아갑니다.
그런데 우리 성도들이 들어선 영생의 문은 좁은 문이고, 그리스도인들이 걸어가는 영생의 길은 좁은 길입니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은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라”(마 7:14)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종종 확신을 잃어버리고 넘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많은 사람들이 걸어가는 넓은 길을 뒤돌아보게 되고, 자신이 걸어가고 있는 좁은 길에 대해서 불안하게 생각합니다. 이 때 동행자가 있다면 얼마나 힘이 될까요?
이 세상은 놀이터가 아니라 전쟁터입니다. 전투하는 교회가 되어야 하고, 성도들은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해서 원수 마귀와 싸워 이겨야 합니다(엡 6:11). 그러나 확신을 가지고 걸어가다가도 어려움이 닥치면 두려워 떨며 의심하다가 넘어지는 것이 연약한 우리 인간입니다.
그러므로 갖가지 유혹과 실패로 인해 낙망하고 무의미와 회의감에 젖어 있을 때 옆에서 위로하고 붙들어 줄 수 있는 신앙의 동행자가 필요한 것입니다. 동행자가 있는 사람은 넘어져도 재기할 수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 많은 사람이 있어도 사실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인생길은 외롭고 고독합니다.
“여보, 힘내세요. 저는 당신을 믿어요.”,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우리에게는 위로와 격려가 필요합니다. 가족의 격려는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버팀목이 되는 것입니다.
서로에게 버팀목이 될 수 있는 좋은 동행자가 될 수 있는 부부, 서로에게 큰 힘이 될 수 있는 가족들이 됩시다.
셋째로, 가족이 좋은 이유는 서로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본문 11절을 보면 “또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팔레스틴 지역은 낮에는 온도가 높으나 밤에는 기온이 떨어져서 춥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밤에 잠을 잘 때 서로 바짝 붙어서 자면 한결 따뜻함을 느끼게 됩니다.
본문에서 두 사람은 동행하는 여행자일 수 있고 가정의 경우라면 두 사람은 남편과 아내를 말하는 것이고, 또한 함께 잠을 자는 가족들을 말합니다.
우리는 여행을 가서 숙소를 배정받을 때 싫은 사람은 피하고 기왕이면 친한 사람과 같은 방을 배정 받고 싶어 합니다.
사랑의 특성은 같이 있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사랑이 깊어지면 늘 같이 있고 싶어서 결혼을 합니다. 그리고 사랑의 열매로 가족들이 주어집니다. 가족들은 같이 삽니다. 때때로 의견이 맞지 않아 시끄럽기도 하지만 가족들은 서로 사랑하기 때문에 한 집에서 삽니다.
사람이 유난히 추위와 고독을 느낄 때가 언제일까요? 깜깜하고 고요한 밤입니다. 그러나 함께 잠을 잘 수 있는 가족이 있는 사람에게는 고독이 있을 수 없습니다. 추위도 이길 수 있고, 두려움도 물리칠 수 있습니다.
참으로 가족들이 사랑하며 산다면 아무리 세찬 고난의 바람이 불어온다 할지라도 능히 그 고난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서로 사랑하는 부부, 서로 사랑하는 가족들이 되어서 모든 세파를 이겨내고 따뜻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성도들이 됩시다.
넷째로, 가족이 좋은 이유는 서로 협력하여 승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 12절을 보면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 하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맹수들이 사냥을 할 때 표적은 무리에서 이탈해서 혼자 있는 짐승입니다. 마귀가 에덴동산에서 첫 사람을 타락시킬 때의 상황을 주목해 보십시오. 마귀는 홀로 있던 하와에게 찾아가 유혹했고 그 결과 아담까지 넘어뜨렸습니다. 홀로 있으면 유혹을 당케 되고 죄를 짓고 넘어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함께 있으면 승리할 수 있습니다.
세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습니다. 징기스칸이 말년에 세 아들에게 화살 하나씩을 주면서 꺾어 보라고 했습니다. 모두 다 쉽게 부러뜨렸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화살 셋을 모아 다시 꺾어 보라고 했습니다. 화살 셋은 부러지지 않았습니다. 이 때 징기스칸은 아들들에게 내가 떠나더라도 서로 연합하라고 교훈했다고 합니다.
신앙생활은 더불어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합심하여 일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이루려면 홀로 하려고 하지 말고 뜻이 맞는 사람들과 연합하며 함께 가야 합니다. 서로 돕고 서로 협력함으로 큰일을 이루고 승리할 수 있는 성도들이 됩시다.
정리하고 마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족을 우리 인생의 동행자로 주셨습니다. 우리는 본문에서 가족이 좋은 이유를 네 가지로 살펴보았습니다.
첫째로, 가족이 좋은 이유는 것은 서로 수고함으로 상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가족이 좋은 이유는 서로 위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가족이 좋은 이유는 서로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넷째로, 가족이 좋은 이유는 서로 협력하여 승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육신의 가족만을 가족이라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 앞에서 “누가 내 어머니며 동생들이야”(막 3:33)하시고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는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니라”(막 3:34-35)고 말씀하셨습니다.
육신의 가족은 이 세상사는 동안 한 가족입니다. 그러나 온 가족이 예수님을 믿어 구원을 받으면 천국에 가서도 영원한 한 가족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족을 하나로 보십니다. 하나님께서 노아를 구원하실 때 노아 부부 뿐 아니라 그의 여덟 가족을 함께 구원하셨습니다. 성경은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행 16:31)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되면 그로 말미암아 온 가족이 구원을 얻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도는 예수님 안에서 한 가족입니다. 우리는 한 가족입니다. 우리에게 가족을 주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야 합니다. 육신의 가족, 그리고 신앙의 가족들로 말미암아 저와 여러분의 인생길에 좋은 일들이 늘 함께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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