벧세메스로 가는 두 암소 (삼상6:10-16)
본문
벧세메스로 가는 두 암소./사무엘상 6장 10절 - 16절
(삼상 6:10-16) 『[10] 그 사람들이 그같이 하여 젖나는 소 둘을 끌어다가 수레를 메우고 송아지들은 집에 가두고 [11] 여호와의 궤와 및 금쥐와 그들의 독종의 형상을 담은 상자를 수레 위에 실으니 [12] 암소가 벧세메스 길로 바로 행하여 대로로 가며 갈 때에 울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블레셋 방백들은 벧세메스 경계까지 따라 가니라 [13] 벧세메스 사람들이 골짜기에서 밀을 베다가 눈을 들어 궤를 보고 그것의 보임을 기뻐하더니 [14] 수레가 벧세메스 사람 여호수아의 밭 큰 돌 있는 곳에 이르러 선지라 무리가 수레의 나무를 패고 그 소를 번제로 여호와께 드리고 [15] 레위인은 여호와의 궤와 그 궤와 함께 있는 금 보물 담긴 상자를 내려다가 큰 돌 위에 두매 그 날에 벧세메스 사람들이 여호와께 번제와 다른 제를 드리니라 [16] 블레셋 다섯 방백이 이것을 보고 그 날에 에그론으로 돌아갔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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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믿음의 해를 맞이하였습니다.
첫 주일 예배는 우리가 어떤 믿음을 가져야 하는가? 에 대하여
말씀을 묵상하였습니다.
올해는 소의 해랍니다.
오늘은 성경에 말씀하시는 소에 대한 모습을 묵상하면서
피차 은혜를 나누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0 서론 = 말씀의 배경이 되는 내용 .
1) 이스라엘은 사사 시대의 이야기입니다.(40년 동안 사사가 없음)
2) 이스라엘이 타락한 시대입니다.
3) 엘리 제자장 연로함. 자녀 홉니, 비느하스가 타락함.
4) 불레셋이 이스라엘을 침략함(이후 골리앗)
5)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패함(4.000 명이 전사)
6) 언약궤를 앞세워 전쟁 패함
(언약궤 빼앗기고. 삼만명. 엘리 두아들 죽음. 엘리 90세 죽음)
7) 불레셋이 언약궤를 아스돗에 가져감. (다곤 신전에 부서짐)
8) 가드로 옮겼으나 백성이 독종으로 고통.
= 인간이 일 하지 못할 때,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9) 불레셋이 의논하여 언약궤를 다시 이스라엘로 돌려보내가 의견일치.
10) 불레셋에서 가장 가까운 벧세메스 로 보내기로 결정함.
벧세메스는 22 KM 되는 지점. - 우리교회에서 양산 정도 되는 거리.
= 교훈 말씀 = 인간이 일 하지 못할 때,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이스라엘의 패배. 하나님의 언약궤 빼앗김. 많은 군사들이 죽음.
지도자도 죽음. 이스라엘은 더 이상 어떻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그러나 하나님은 일하십니다.
저들의 우상이 파괴되고, 박성들이 고통을 당합니다.
결과 불레셋이 언약궤를 돌려보내게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언약궤를 보냅니까 ?
1. 벧세메스로 가는 두 마리의 암소를 선택합니다.
(삼상 6:10) 『그 사람들이 그같이 하여 젖나는 소 둘을 끌어다가 수레를 메우고 송아지들은 집에 가두고』
이 세상에는 많은 소가 있습니다.
밭을 가는 소, 짐을 나르는 소, 먹이를 위한 소...
이 소들은 하나님의 법궤를 옮기기 위하여 선택 받은 소입니다.
세상일을 하기 위한 소가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한 소입니다.
많은 소들 중에 구별되고 선별된 소입니다.
역시 성도가 주님의 일에 쓰임 받기 위하여 선택된 소입니다.
모세나 바울처럼 베드로처럼,
오늘날, 우리가 주님의 사역에 선택된 것은 참으로 큰 축복인줄 믿습니다.
(딤전 1:12)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께 내가 감사를 드림은 나를 신실한 자로 여기사 내게 사역을 맡기셨음이니』
2. 벧세메스로 가는 이 암소는 사명의 멍에를 멘 소입니다.
(삼상 6:7) 『그러므로 이제 새 수레를 만들어 멍에를 메어 보지 아니한 젖내는 암소 두 마리를 끌어다가 수레에 묶고 』
'새 수레'는 한 번도 세속적 목적을 위하여 사용된 적이 없는
수레를 말합니다.
'멍에 메어 보지 아니한 소'는 세속적인 일에 사용되지 않은
짐승을 말합니다.
두 마리의 암소는 하나님의 법궤를 실은 수레를 끌고
블레셋에서 이스라엘의 땅 벧세메스로 가야만 하는 사명이 주어졌습니다.
빼앗긴 하나님의 궤를 이스라엘로 옮기는 위대한 사명을 받은 소입니다.
우리들도 이 사명의 멍에를 준 줄로 믿습니다.
이 세상에는 많은 멍에가 있습니다.
직장의 멍에가 있습니다. 사업의 멍에도 있습니다.
부모의 멍에가 있고, 자식의 멍에가 있습니다.
남편의 멍에가 있고, 아내의 멍에도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멍에는 무엇입니까?
각기 맡은 멍에가 있는 줄로 믿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멍에는 하나님이 주신 멍에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이끌고 가는 멍에입니다.
오늘 우리 모두는 참으로 영광스러운 이 멍에를 맨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일에 충성을 다해야 할 줄 믿습니다.
(고전 7:24) 『형제들아 너희는 각각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
3. 이 소들은 사명을 위해서는 자식들도 초월했습니다.
(삼상 6:10) 『그 사람들이 그같이 하여 젖나는 소 둘을 끌어다가 수레를 메우고 송아지들은 집에 가두고』
"...송아지들은 집에 가두고"
이 소에게는 젖먹이는 소가 있었습니다.
모성애는 사람이나 짐승이나 마찬가지인데
그 송아지는 떼어서 우리에 가두었습니다.
뒤에서는 어린 새끼의 어미 찾는 소리가 처량합니다.
아동 학대 뉴스 =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 소식만 들으면 가슴이 쓰립니다.
인간이 정말 잔인하다. 짐승도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정말 천벌을 받아야 마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두 암소는 사명 때문에 모정을 초월해야만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궤를 운반하는 성스러운 목적 때문에,
눈물을 흘리는 암소...
두 암소는 본능을 뿌리치고 하나님의 목적하심에 따라
벧세메스로 갔습니다.
아마도 송아지가 따라오면 가는 길에 방해가 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마 10:37) 『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
이 말씀은 가족을 등한히 하라는 말씀은 절대 아닙니다.
주의 일을 하다 보면 때로는 주의 일을 감당키 위해 인정을 초월해야
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우리 가정을 축복하실 줄 믿습니다.
(마 6: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4. 두 암소는 울며 길을 갔습니다.
(삼상 6:12) 『암소가 벧세메스 길로 바로 행하여 대로로 가며 갈 때에 울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블레셋 방백들은 벧세메스 경계까지 따라 가니라』
두 암소는 본능적으로 새끼들을 생각하며 울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십자가의 길은 눈물 없이는 갈 수 없는 길입니다.
십자가를 지고 가는 성도마다 눈물의 골짜기를 통과해야 될 시간들이
있을 것입니다.
(시 84:6) 『그들이 눈물 골짜기로 지나갈 때에 그 곳에 많은 샘이 있을 것이며 이른 비가 복을 채워 주나이다』
(계 7:17) 『...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임이라, 하더라.』
주님은 우리들의 눈물을 보시고, 축복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5. 사명의 두 암소는 좌우로 치우치지 않았습니다.
(삼상 6:12) 『암소가 벧세메스 길로 바로 행하여 대로로 가며 갈 때에 울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
여기 '치우치다'는 '빗나가다', '기울다', '떠나가다'의 뜻입니다.
좋은 시계
시계를 만드는 회사에 갓 입사한 젊은이가 오랫동안 시계를 만들어
온 상사에게 ‘좋은 시계가 뭔지 물었습니다’. 상사가 대답했습니다.
“좋은 시계란 일정하게 가는 시계입니다.
태엽이 많이 감겨 있다고 빨리 가고,
태엽이 풀려 있다고 느리게 가면 안 됩니다.
날이 춥든 덥든, 낮이든 밤이든, 누가 보든지 보지 않든지 시계를
어디에 두더라도 일정하게 가는 시계가 좋은 시계랍니다.”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다'라는 말은 참으로 귀한 말씀입니다.
이들의 목적지는 벧세메스입니다.
벧세메스라는 말은 태양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지역적으로는 제사장의 성읍으로 지정된 유다 지역의 땅입니다.
두 암소는 의견 충돌도 없이 협력하여 정해진 코스로만 갔습니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았습니다.
■ 그런데 동행자는 세 가지가 일치되어야 됩니다.
①목표가 일치되어야 됩니다.
②뜻이 일치되어야 됩니다.
③보조가 일치되어야 됩니다.
이리 치우치고 저리 치우치는 것은 참다운 신앙인의 모습이 아닙니다.
우리는 오직 푯대를 향하여 묵묵히 순종의 걸음만을 걸어야 합니다.
(마 10:22)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고, 똑바로 한 길로 걸어가는 좋은 시계같은
산상교회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7. 암소 두 마리는 희생제물이 되었습니다.
(삼상 6:14) 『수레가 벧세메스 사람 여호수아의 밭에 이르러 서매 거기에 큰 돌이 있더라. 그들이 수레의 나무를 쪼개고 그 암소들을 번제 헌물로 주께 드리고』
비록 소이지만 그 법궤를 메고 마지막 도착했을 때,
법궤를 메고 온 소를 잡아다가 수레를 장작으로 삼고 소를 잡아서
그 위에 번제물로 희생의 제물로 드렸습니다.
이것은 단번에 제물로 바쳐진 예수님의 모형인 동시에
사명자들에게 보여준 순교자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 벧세메스로 가는 소는 영광을 받은 것이 아니라
제물로 죽었습니다.
아것이 바로 십자가의 길, 십자가의 신앙입니다.
■ 적게 할 것과 많이 할 것이 있습니다.
말은 적게 하고 기도는 많이 해야 합니다.
TV는 적게 보고 책은 많이 읽어야 합니다.
불평은 적게 하고 감사는 많이 해야 합니다.
검색은 적게 하고 사색은 많이 해야 합니다.
비판은 적게 하고 다른 사람을 세우는 것은 많이 할수록 좋습니다.
“지갑은 열고 입은 닫으라. 그러면 존경받는 사람이 된다”는
영국 속담이 있습니다.
말을 적게 하고 지갑을 많이 여는 사람은 존중받습니다.
(눅 17:10)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받은 것을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결 론 =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오늘 우리도 벧세메스로 올라간 암소처럼,
주님 주신 사명으로 십자가를 지고 앞만 보고
달려가는 신앙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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