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혹속에서 살아가는 인생 (마4:1-11)
본문
유혹속에서 살아가는 인생(마4:1-11)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주님께서 하신 두 가지 큰 일이 있습니다.
하나는,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일입니다.
세례를 받으실 때 주님은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라는 하늘 아버지의 인정을 받으셨습니다.
비록 인간의 몸을 입고 있지만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정체성의 인정은 공생애를 시작하는 주님에게 얼마나 큰 힘과 자신감을 주었는지 모릅니다.
또한 ‘네가 하고자 하는 일을 나는 기뻐한다.’ 는 말씀도 공생애 사역에 대한 하나님의 인정이라는 측면에서 첫발을 내 딛는 주님에게 엄청난 힘과 자신감을 주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거기에 성령께서 임하심으로 하늘의 능력을 힘입게 되었을 때 공생애 사역을 위한 모든 준비는 갖추게 됩니다.
이런 준비가 끝났을 때 주님은 다시 한 번 큰일을 결단하는 자리에 서게 되는데 금식하며 기도하는 일입니다.
인간을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뜻을 내가 어떻게 이룰 수 있느냐하는 것은 마지막 남은 주님의 고민이었습니다.
그 일을 위하여 금식하며 기도하고 있었을 때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합니다.
우리 성경에는 시험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만 공동번역을 보면 유혹했다고 번역하고 있는데 이것이 더 정확한 표현인 것 같습니다.
이런 저런 방법을 제시하면서 이렇게 하라는 마귀의 유혹은 너무나 현실성 있게 다가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런 마귀의 유혹을 물리치고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십자가의 방법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공생애를 시작하셨습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은 시작부터 마귀와의 싸움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을 세상적이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이끌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고 유혹을 한 것입니다.
이러한 마귀의 유혹은 여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공생애 내내 계속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을 통하여 왕으로 삼으려고 한다든지 제자들을 통하여 십자가가 아닌 다른 길을 가도록 하고 나중에는 십자가의 고난을 회피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 못하도록 끈질기게 유혹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은 마귀의 유혹과 치열하게 싸워 이긴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이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시작부터 마지막 끝날 때까지 악한 마귀와의 싸움입니다.
제가 목사 안수식 때 후배 목사님들에게 권면하는 내용이 있는데요,
제 개인의 독창적인 권면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목사님들 사이에서 내려오는 평범한 권면의 말씀입니다.
목사가 되어서 목회할 때 3가지, 돈과 여자와 명예욕을 조심해야한다는 말입니다.
참으로 평범한 말인 것 같은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것이 참으로 진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목사가 되면 유혹이 없겠거니 생각할 수 있는데요, 그것을 참으로 큰 오해입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목사에게는 목사에게 해당되는 유혹이 있고요 평신도에게는 평신도에게 해당되는 유혹이 있습니다.
남자에게도 있고 여자에게도 있고 젊은 사람에게도 있고 늙은 사람에게도 거기에 해당되는 유혹이 있습니다.
그 유혹에 넘어가면 인생을 망칠 수 있고 신앙생활을 망칠 수 있습니다.
악한 마귀는 우리를 어떻게든지 유혹하여 잘못된 길을 가고 영생의 길을 가지 못하도록 신앙생활을 하는 내내 유혹하고 있습니다.
보르네오 섬의 네펜세스와 북미 대륙의 시라세니아라는 식물은 벌레를 잡아먹는 명수로 꼽힙니다.
네펜세스는 아름다운 꽃을 피워 벌레를 유인합니다.
그 꽃잎의 아름다움에 취한 벌레가 꽃잎에 끌려드는 순간 벌레의 목숨은 끝장이 납니다.
특수한 소화액을 내뿜어 벌레를 녹여 버리는 것입니다.
시라세니아의 무기는 꽃이 아니라 잎이라는 점에서 네펜세스와 조금 다른데요,
잎에서 단 꿀을 내뿜어 벌레를 유인하는 것인데 그 꿀의 유혹에 말려들면 벌레는 목숨을 건지지 못하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사람 사는 세상에 이러한 네펜세스와 시라세니아가 없다는 보장은 하지 못합니다.
겉으로는 마냥 화려하고 풍기는 냄새는 더 없이 향기롭지만 이웃을 절망과 죽음에 이르는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는 어떻게든지 마귀의 유혹을 물리치며 믿음으로 승리하여야 합니다.
마귀의 유혹에 넘어지면 신앙을 잃어버리고 잘못된 신앙에 빠지게 되고 영혼은 죽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유혹 속에서 사는 인생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신앙의 싸움은 유혹과의 싸움이며 신앙의 승리는 마귀의 유혹을 이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마귀의 궤계를 물리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말씀하고 있고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악한 마귀와의 싸움에서 승리해야 하고 그렇게 할 때 영생을 얻고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을 수 있고 주님으로부터 면류관을 받아 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본문, 예수님이 유혹 받으신 사건 그리고 그 유혹을 이기신 사건을 통하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이 지금도 끊임없이 다가오는 마귀의 유혹을 잘 이기며 승리하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면 마귀의 유혹은 무엇이며 어떤 방식으로 우리를 유혹하고 있을까요?
먼저, 마귀의 유혹은 그리스도의 정체성을 시험하는 것으로 다가옵니다.
오늘 본문에서 마귀는 예수님을 시험하면서 두 번이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이라고 말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3절, 6절)
예수님은 이미 세례를 받으시면서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하나님 아버지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 음성을 통하여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다시 한 번 분명히 깨달았는데,
마귀는 다시금 ‘네가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냐?’고 정체성을 의심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네가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들로 떡을 만들어보라. 그러면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겠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여기서 뛰어내려보라. 그래서 네가 죽지 않으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인정하겠다.’
마귀가 왜 이렇게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의심하게 만들려고 했을까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면 주님께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삶을 살아갈 필요가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인간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 엄청난 고통과 수치를 받으며 죽지 않아도 되고 그저 평범하게 인간의 삶을 살아가면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면 중요한 결단의 순간에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보다는 그것을 외면하거나 회피할 가능성이 훨씬 더 많았던 것이지요.
그러면 하나님의 뜻이 어긋나게 되었기에 마귀는 어떻게든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의심하게 만들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마귀의 유혹은 우리 하나님의 백성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시험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원치 않은 질병과 고통과 환난 속에서 살아갈 때 마귀는 항상 우리 곁에 와서 속삭입니다.
‘네가 하나님의 자녀냐? 네가 하나님의 사랑받는 백성이냐?
그러면 왜 이렇게 고통을 주느냐? 왜 환난을 해결해주지 않느냐?
그런 것으로 보면 너는 하나님의 구원받은 백성이 아닌 것 같다.
하나님이 너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런 의심을 부추길 때 자칫하면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 주님을 떠나고 신앙을 떠나는 잘못을 범할 수 있게 됩니다.
그것이 욥이 당한 시험이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어떠한 경우에도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요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심을 의심하지 않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과 우리가 자녀 됨을 의심하고 주님을 떠나면 그것을 좋아할 존재는 마귀밖에 없습니다.
비록 내가 원하는 바대로 이루어주지 않아도 하나님 아버지는 더 좋은 계획을 갖고 계시고 더 좋은 길로 인도하신다는 확신을 갖고 끝까지 주님을 믿고 섬겨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평생 마귀와 싸워서 쟁취해야 할 우리의 믿음입니다.
두 번째로, 마귀의 유혹은 각자가 처한 형편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것으로 다가옵니다.
주님께서 40일 동안 금식기도하시면서 주리셨을 때 마귀는 돌로 떡을 만들어먹으라는 유혹을 합니다.
배가 고플 때 어떻게든지 배를 채우고 싶다는 것이 인간의 본능입니다.
그런 본능이 주님에게도 있었기에 마귀의 유혹은 참으로 넘어가기 쉬운 유혹이었습니다.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렸는데 정말 하나님의 보호 속에서 죽지 않고 안전하게 내려왔다고 하면 얼마나 환호성을 받겠습니까?
한 순간 모든 사람에게 알려지는 영웅이 될 수 있는 길이 아니겠습니까?
그것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싶은 마음이 공생애를 시작하는 주님에게 얼마든지 있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런 마귀의 유혹을 물리칩니다.
그것은 일시적이고 진정한 구원의 길이 아님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플라톤의 제자인 토로킬러스는 바다에 배를 띄워서 놀기를 좋아하는 사람인데 한번은 갑자기 풍랑을 만나서 배가 다 깨어져 죽을 뻔하고 겨우 살아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후로 바닷가로 향하는 창을 다 막았습니다.
친구가 와서 왜 막았느냐고 묻자 ‘지난 번 일을 계기로 바다에 가지 않기로 했는데 이 창을 그냥 두었다가 바다를 보면 또 나가고 싶은 생각이 들까봐 아예 창문을 막았다’ 는 것이 그의 대답이었습니다.
사람마다 자기 마음을 시험하는 창이 있습니다.
이 창을 내다보면 우리가 언제 어떤 시험에 빠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이 약점, 이 시험의 창을 미리 알아서 아예 그 방면을 단단히 막아 버리는 것이 유혹을 이길 수 있는 지혜로운 길입니다.
우리 마음을 더럽게 하는 서적의 창을 피하고 영상의 창을 막아버리고, 오락을 피하고, 우리를 더러운 데로 인도하는 친구가 있으면 과감히 끊어버리는 결단을 해야 합니다.
닫아야 할 창문을 닫을 뿐 아니라 마땅히 열어야 할 창문을 활짝 열고 주님과 교제하며 기도하며 찬송하며 말씀 묵상하며 성령 충만할 때 마귀의 유혹을 이기고 승리하게 될 줄 믿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혹시나 유혹의 길을 은근히 바라면서 닫을 창문을 오히려 슬쩍 열어놓고 열어 놓아야 할 창문을 굳게 닫고 살지는 않는지요?
마귀의 유혹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그 유혹에 빠진 삶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엄청난 고난과 대가가 있음을 아시고 그 유혹의 창문을 굳게 닫고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세 번째로, 마귀의 유혹은 은밀하게 다가옵니다.
마귀의 세 번째 유혹은 예수님을 지극히 높은 산으로 데리고 가서 천하영광을 보여주며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유혹은 몇 가지 중요한 특징이 있는데요,
먼저는, 천하만국과 영광을 보여주었다는 점이고요
두 번째는, 이 모든 것을 네게 주겠다는 것이고요
세 번째는, 그것을 얻는 방법이 아주 쉬었다는 것입니다.
그저 마귀에게 엎드려 딱 한 번만 절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거기다가 그곳에는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달콤하고 은밀한 유혹입니까?
아무도 보는 사람도 없는 곳에서 딱 한번만 절을 하면 천하만국과 그 영광이 주어지는데 솔깃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러한 유혹에 많은 사람들이 넘어가서 올바르게 곧이곧대로 사업을 하고 인생을 살아가서는 성공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적당하게 속이기도 하고 부정한 방법도 써야 돈을 벌 수 있고 사업도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도 딱 한 번만 하는 유혹에 빠져서 한 번만을 외치다가 패가망신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솔깃한 유혹은 절대 진짜가 아니라 거짓된 마귀의 속임수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먼저, 천하만국과 영광은 마귀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으로서 당연히 마귀가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고 역사를 주관하시는 유일하신 분이십니다.
마귀는 한 번만 절하면 된다고 했는데 그것은 절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마귀에게 코를 꿰여서 마귀의 종노릇을 하게 되고 마귀가 시키는 대로 살아가게 됩니다.
공생애를 시작하시는 주님은 마귀의 그럴듯한 유혹에 넘어가지 않으시고 하나님이 원하시고 바라시는 십자가와 고난의 방법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 길이 비록 힘들고 인기가 없고 외로운 길이었지만 그것이 인간을 구원하는 길이심을 믿었기에 주님은 그 길을 향하여 나아가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세상의 수도 없이 많은 유혹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유혹이 많으니까 어쩔 수 없이 유혹에 빠져서 유혹에 넘어가서 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마귀의 유혹에 빠지면 주님을 떠나게 되고 영생의 길에서 벗어나게 되고 실패한 그리스도인이 되고 맙니다.
마귀의 유혹을 이기고 승리하신 주님을 바라보면서 주님이 주시는 은혜로 유혹 속에서 비록 살아갈지라도 늘 승리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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