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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 (눅2: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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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눅2:22-39)




 


오늘은 2020년을 마지막으로 보내는 송년주일입니다.


교회력으로는 성탄절 후 첫 번째 주일입니다.


일 년을 보내면서 각종 매스컴에서는 지난 일 년에 일어났던 주요뉴스를 뽑아서 보도하고 있는데요,


어느 방송과 신문을 막론하고 첫 번째 뉴스는 코로나 19 팬데믹 상황입니다.


특별히 요즘에 코로나 감염병이 더 기승을 부리고 있어서 우리 모두를 긴장시키고 있고 감염된 환자들과 의료진들은 물론이고 일반 국민들이 얼마나 큰 고통을 당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무증상 감염자가 속출하면서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서 감염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우리를 두렵게 하고 있습니다.


정말 간절한 우리 모두의 소망은 코로나 사태가 올해로 끝나고 내년에는 새롭게 회복되었으면 하는 바람인 줄 압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인류에게 집단감염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대표적인 사건은 1348년부터 1353년에 있었던 5년간의 흑사병 사태인데요,


유럽, 중앙아시아, 북아프리카를 휩쓴 검은 쥐의 몸에 사는 벼룩이 사람에게 옮겼던 이 병으로 약 2억 명의 사람이 죽고,


유럽 인구가 절반 이상으로 줄게 되는 엄청난 일이 일어났습니다.


문제는 이 흑사병이 5년간 창궐하고 말끔히 끝이 난 것이 아니고 그 이후 2차 대유행, 3차 대유행으로 이어지면서 19세기 후반까지 여전히 인간의 삶을 위협했다는 점입니다.


집단감염이 결코 쉽고 간단하게 이겨낼 수 있는 사건이 아니고, 그래서 이 2020년 코로나 19의 위력도 언제까지 이어질지 알 수 없다는 짐작이 우리의 마음을 더 짓누르게 합니다.


 


1차 흑사병이 겨우 한풀 꺾일 즈음, 이탈리아 플로렌스에서 조반니 보카치오 라는 대문호가 ‘데카메론’이라는 한 권의 책을 내놓습니다.


이 책은 흑사병이 도는 시기, 젊은 남녀 10명이 플로렌스를 떠나 외곽 전원의 대 주택에서 병을 피해 보름 동안 머물렀던 이야기입니다.


오늘날 ‘자가 격리’와 같다고 할 수 있는데요, 매일 밤, 한 사람씩 이야기의 주제자가 되어 각자가 만들어 낸 유머, 해학, 교훈이 담긴 100개의 이야기를 담은 책입니다.


이 데카메론이 시대적 상황 탓인지 최근 영어권 국가들에서 다시 인기를 누리고 있다고 합니다.


유럽에 데카메론이 있다면 이슬람 문명권에서는 8세기에서 14세기 사이의 구전으로 내려오던 이야기를 모은 ‘1001의 아라비안나이트’가 있습니다.


사랑을 믿지 않는 왕은 새로운 왕비를 맞이하자마자 죽이는 일을 저지르는데,


제물처럼 바쳐진 세에라자드라는 새로운 왕비가 살아남기 위해 매일 밤 재미난 이야기로 왕을 달래서 죽음의 위기를 이겨낸다는 책입니다.


이상한 것은 이 두 책의 설정이 모두 언제 죽을지 모르는 두려움 속에서 하루하루의 삶을 이어가기 위해 재미난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는 점입니다.


더불어 이 이야기들은 그냥 재미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삶의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예측할 수 없는 위험을 안고 살고 있습니다.


어제 말씀을 준비할 때 시청에서 보낸 문자를 하나 받았는데 목사님들 모임에서 코로나 19가 발생하였으니 모든 모임을 자제하여 주시기를 바란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정말 코로나 19가 다른 사람이야기가 아닌 바로 우리들 코앞에 다가왔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됩니다.


그러나 지난 일 년을 생각해보면, 코로나 19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일상 속에서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불안함속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금 비약해보면 우리의 삶 자체가 흑사병 속에서 하루하루를 이어가던 자가 격리자의 삶이기도 하고, 매일 처형을 늦춰야했던 셰에라자드의 삶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을 어떻게 잘 보낼 수 있을까요?


이것은 정말 우리 앞에 놓여 진 아주 중요한 질문이며 앞으로 2021년을 살아가야 하는 우리에게 새로운 좌표가 되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오경아 작가의 백세시대 참고)


두 책에서 교훈하는 대로 삶의 유머와 해학과 즐거움을 누리며 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되겠습니다만 그것이 전부는 아닐 줄 압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으로서 우리의 삶의 방식은 여기에서 끝나면 안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을 보면 예수님이 난지 40일이 되어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 결례를 행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본문은 레위기서에 나타난 규례대로 행하는 모습인데, 그 규례에는 네 가지가 있습니다.


먼저는, 남자아이가 태어나면 여덟째 날에 할례를 행하라는 것이고,


둘째는, 남자 아이를 낳은 산모는 출산 후 사십 일 동안은 부정한 상태에 있으므로 성물을 만지지도 말며 성소에 들어가지도 말라는 것이고,


셋째는, 사십 일이 차면 산모는 번제를 위하여 일 년 된 어린 양을 가져가고 속죄제를 위하여 집비둘기 새끼나 산비둘기를 가져가서 하나님 앞에 드리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번제는 아들을 주신 감사제의 성격이 있고 속죄제는 출산에 따른 부정을 씻는 의미가 있습니다.


넷째는, 만일 어린 양을 바치기에 힘이 미치지 못하면 산비둘기 두 마리나 집비둘기 새끼 두 마리를 가져다가 하나는 번제물로, 하나는 속죄 제물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이 모든 규례에 따라 요셉과 마리아는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 결례를 행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어머나 마리아와 아버지 요셉은 아들 예수께 구약에서 말씀하신 규례들을 잘 행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육신의 부모뿐 아니라 예수 주변의 사람들이 다 말씀대로 행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의 모습을 통하여 우리는 구세주의 탄생이 구약부터 계획하신 하나님의 섭리임을 알게 됩니다.


성경은 예수님의 탄생이 구약의 예언이 이루어진 일이라고 한결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구약에서 오래 동안 예언되고 그 예언대로 하나님께서 보내신 구세주는 예수님이 유일하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만이 하나님이 보내신 유일한 구세주이시고 그 예수님을 믿어야 누구든지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구원받는 구원의 시대가 성탄으로 말미암아 도래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규례를 행하는 모습을 보면 지금 아기예수는 태어난 지 40일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직 어린아이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그 어린아이가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라는 사실을 알아본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시므온과 안나라고 하는 여선지자입니다.


당시에 결례를 행하러 온 아이가 어찌 예수하나뿐이었겠습니까?


많은 아이가 있었을 것이고 설령 아이가 많지 않다고 할지라도 그 아이가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라는 사실을 알기는 결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당시 예수의 가정을 가난해서 양을 드릴 수 없는 아주 평범한 가정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시므온과 안나는 아기 예수가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임을 알아보고 메시아이신 아기를 보고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25절에 시므온을 소개하면서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고 했습니다.


시므온은 참 어려운 시절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로마의 식민지 지배는 날이 갈수록 더 포악해졌고 그와 비례하여 생활은 더 곤핍해졌습니다.


육신의 나이가 먹어가면서 개인적으로도 점점 더 힘들고 어려운 삶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나 시므온은 의롭고 경건한 삶을 포기하지 않고 어려움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고 말씀대로 살아가는 일에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여 선지자 한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결혼하여 일곱 해 동안 남편과 살다가 과부가 되어 지금 84세가 되기까지 얼마나 어려운 삶을 살았겠습니까?


그러나 한나는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하였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주변 환경이 어렵고 힘들다는 것은 아무렇게나 살아도 괜찮다는 허락이나 용인이 절대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어렵고 힘드니까 괜찮겠지. 하나님도 이해하시고 받아 주실 거야.’ 그렇지 않습니다.


어렵고 힘들어도 그래서 믿음으로 말씀으로 살기가 쉽지 않아도 우리는 경건하게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언제나 어려움 속에서 믿음을 지켰고 그 믿음으로 하나님의 인정을 받고 귀하게 쓰임 받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윗이 사울 왕에게 쫓기는 그 어려운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를 손대지 말라는 말씀에 끝까지 순종하였습니다.


다니엘이 다른 신에게 기도하면 사자 굴에 들어간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어놓고 늘 기도하였습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고 한 것은


모이면 고통을 당하고 살아가기가 힘들지만 그렇다고 모이고 예배하는 일을 폐하지 말고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모이기를 힘써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의 삶이 아무리 바쁘고 곤고하더라도 모이는 일에, 기도하는 일에, 예배하는 일에 등한히 하면 안 됩니다.


그런 때 일수록 더 모이기를 힘쓰고 예배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시므온과 안나는 시대적 상황이 어려웠지만 개인적으로는 점점 더 나이가 많아졌지만 의롭고 경건한 삶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한 가지 소망이 있었으니 메시아가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고 위로해주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어렵고 힘든 상황을 해결해주실 분은 오직 하나님,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 한 분임을 믿고 그 메시아를 간절하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느 기업의 성공한 CEO가 대학교에서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게 되자 학생들과 교수들이 그 강의를 듣기 위해 모였습니다.


그는 등장하자마자 칠판에 ‘1,000억 원’이라고 적고 강의를 시작합니다.


“저는 재산이 아마 천억 원은 훨씬 넘을 것입니다.


이렇게 많은 부를 거두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000억 원 중에 첫 번째 0은 바로 노력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0은 믿음입니다.


세 번째 0은 관리입니다. 이것들은 부자가 되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들입니다.”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럼 앞에 있는 1은 무엇일까요? 1은 건강과 사랑입니다.


여러분! 만약에 1을 지우면 1,000억이 어떻게 됩니까? 바로 0원이 되어 버립니다.


인생에서 아무리 노력하여 많은 돈을 가졌어도, 건강과 사랑이 없다면 바로 ‘0’이 되는 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이 이야기를 조금 바꾸어서 그렇다면 우리 신앙인에게 1이란 무엇일까요?


바로 예수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이 계시지 않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아무것도 아니고 0이 됩니다.


반대로 예수님이 계시면 예수님은 우리에게 길이 되시고 생명이 되시고 진리가 되시고 평강이 되시고 기쁨이 되시고 치료가 되시고 구원이 되시고 행복이 되시고 모든 것이 되시는 줄 믿습니다.(한 목사님 예화인용)


 


여러분, 우리가 메시아 예수님을 기다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아기 예수님이 바로 모든 것이 되시는 구세주 메시아이기 때문입니다.


시므온은 아기 예수를 주의 구원이라고 했고, 만민 앞에 예비한 것이라고 했고,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코로나 19의 엄중한 상황에서 우리는 모든 것이 되시는 메시아 예수님을 기다리게 됩니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기다리며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이 상황이 진정되기를 기다립니다.


요란하고 어려운 이 시대를 평화롭게 하실 분은 구세주 되신 주님밖에 없는 줄 믿습니다.


 


시므온과 안나는 그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고 드디어 성전에서 그 메시아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궁금한 것은 그 메시아가 되시는 아기 예수를 어떻게 알아볼 수 있었을까요?


여기에는 무엇보다도 성령의 역사하심이 있었습니다.


성령께서 이미 죽기 전에 그리스도를 보리라는 지시를 하셨고 그런 믿음을 갖고 기다리던 중 오늘 본문에 나오는 대로 아기 예수를 알아보았던 것입니다.


시므온과 안나가 받은 축복은 메시아가 되시는 아기 예수를 만나는 축복이었습니다.


이 축복은 결코 개인의 노력이나 경견으로 된 것이 아니고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눈동자처럼 돌보시는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살다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소망을 두며 살아가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인 줄 믿습니다.


성령의 역사 속에서 복음을 듣게 되었고 복음을 믿게 되었고 중생하였고 하나님의 자녀로 인침을 받았습니다.


성령 하나님의 이 은혜는 지금도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는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처한 상황은 결코 쉽지 않은 엄중한 상황인 줄 압니다.


이 어렵고 힘든 시대를 어떻게 살아야하겠습니까?


이 시간 우리를 위로하고 지키시고 인도하실 분은 우리 주님밖에 없습니다.


그 주님이 우리에게 오셨고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자녀 삼으셨고 우리를 눈동자처럼 지키시고 인도하십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그 주님의 은혜를 구하며 기다리며 믿음으로 말씀으로 살아야 합니다.


코로나 19의 상황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험한 인생길을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어려운 시대 속에서도 의롭고 경건하게 살았고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며 살았던 시므온과 안나를 그냥 버려두지 않았고 메시아 아기 예수님을 만나는 축복과 기쁨을 주셨습니다.


그들의 삶이 비록 힘들었을지라도 메시아 되시는 아기 예수님을 만남으로 처음보다 나중에 훨씬 좋은 인생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과 헌신과 기도와 소망을 외면하시는 분이 결코 아니십니다.


우리가 보인 것보다 더 많고 더 좋은 것으로 축복하시는 좋으신 하나님이신 줄 믿습니다.


여러분, 시므온과 안나처럼 믿음으로 말씀으로 살아가기를 힘쓰시기 바랍니다.


메시아 주님 한 분을 기다리며 그 한분에게 소망을 두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응답과 축복이 여러분들과 함께 하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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