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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지팡이를 가지고 살아가요 (출4:1-31)

본문

하나님의 지팡이를 가지고 살아가요/출애굽기4;1-31


 


웃는 놈도 나쁘지만, 계속 웃기는 놈이 더 나빠요!


 


어느 날 선생님께서 수업 중에 칠판에 필기하려고 뒤돌아서는데 학생들이 정신없이 웃기 시작합니다.


선생님의 바지가 터져서 속옷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모르고 계속 학생들이 웃자 선생님은 몇 번 “조용” “조용”이라고 말합니다.


그래도 학생들은 계속 웃습니다.


그러자 선생님께서 근엄하게 한 마디 말씀하십니다.


“웃는 놈도 나쁘지만, 계속 웃기는 놈이 더 나빠요!”


2021년에는 우는 날보다 웃는 날이 더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2021년에는 불행하다고, 슬프다는 생각보다 행복하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주님의 백성들, 자녀들이 행복하게 웃는 모습을 더 좋아합니다.


웃을 때 엔돌핀이 나와서 건강해집니다. 웃을 때 행복해집니다.


 


P4.


 


모세가 40년 동안 처가살이하며 살았던 미디안 족속의 이드로 제사장의 마을은 라오즈산이 있는 지역이다.


라오즈 산이 새롭게 각광을 받고 있는 시내산 또는 호렙산이라는 산이다.


흔히 성지순례를 가서 올라가는 시내산은 5세기 경에 로마교회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조작되어진 산에 불과하다.


여기에는 성캐더린수도원(Monastery of St. Katherine)이라는 수도원이 자리잡고 있는데, 로마교회에서 순례자들이 순례하는 이 수도원이 있는 산을 시내산이라고 부르기 시작하면서 마치 모세가 십계명을 받은 시내산인 것처럼 알려지게 되었다.


1948년5월24일에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독립하고 건국되면서 아랍세계와 7일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대승을 거두면서 시나이반도를 이스라엘이 점령하게 된다.


시나이반도를 점령한 이스라엘은 급하게 시내산을 조사하게 된다.


이스라엘은 시나이반도에 있는 시내산은 모세가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와서 십계명을 받고, 성막을 제작했던 바로 그 시내산이 아니라는 최종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그래서 이스라엘 정부가 인정하지 않는 시내산을 아랍인들이 모세가 십계명을 받은 바로 그 시내산이라고 안내하면서 돈벌이에 나선 것에 불과하다.


최근에 라오즈산을 탐방하면서 사우디아라비아 북부지방이 미디안 족속들이 살았던 바로 그 지역이고, 라오즈산이 모세가 십계명을 받고 최초로 성막을 제작하여 봉헌했던 바로 그 시내산이요 호렙산으로 알려지게 된다.


라오즈산 지역에는 라오즈나무가 많이 자생하고 있다.


이 라오즈나무가 우리 한글성경에 살구나무라고 잘못 번역되어진 아몬드나무이다.


양 떼들을 몰고 다니는 목자들은 라오즈 산에 아주 흔한 라오즈나무로 지팡이를 만들어서 양 떼들을 거느리고 목초지를 찾아다니는 것이다.


모세도 라오즈나무로 만든 지팡이를 들고 호렙산을 중심으로 장인 이드로의 양떼들을 이끌고 목초지를 찾아다니는 것이다.


모세가 들고 다니던 지팡이는 라오즈나무 곧 아몬드나무로 만든 지팡이이다.


하나님은 모세가 들고 다니면서 양 떼들을 치던 바로 그 지팡이로 어떤 사역을 이루어가고 계실까?


하나님께서는 어떤 능력을 행하시면서 430년 동안 애굽에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출애굽하면서 히브리민족 대이동을 이끌어가게 되실까?


 


D4.


 


① 이적을 보여주시는 하나님.


 


호렙산으로 모세에게 찾아오신 하나님은 모세가 가지고 있는 지팡이를 가지고 이적을 보여주시려고 하신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라고 물으신다.


‘지팡이입니다.’라고 대답하는 모세에게 하나님은 “그것을 땅에 던지라.”라고 말씀하신다.


모세가 지팡이를 땅에 던졌더니 상상하지도 못한 일이 벌어지고 만다.


분명히 깡마른 나무 지팡이이었는데, 그 지팡이가 갑자기 무서운 맹독을 가진 코브라로 변해서 모세를 물려고 달려드는 것이다.


코브라는 맹독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코브라에 물리면 즉사당할 수 있을 정도로 위험하다.


그러니 모세는 당연히 피할 수밖에 없다.


모세는 40년 동안 양 떼들을 몰고 다니면서 수없이 맹독을 가진 코브라를 보았던 적이 있기 때문에 코브라가 얼마나 무섭고 두려운 뱀인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코브라를 피해 도망가려고 하는 모세에게 하나님은 한술 더 떠서 꼬리를 잡으라고 하신다.


코브라는 꼬리를 감추고 둘둘 말아서 머리를 쳐들고 상대방을 물려고 혀를 낼름낼름 내밀면서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코브라의 꼬리를 잡을 수 있단 말인가?


코브라의 꼬리를 잡다가 자칫 잘못하면 코브라에게 물릴 수 있다.


코브라에게 물리는 즉시 모세는 맹독에 의해서 죽어서 저 세상으로 가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니 도저히 코브라의 꼬리를 잡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코브라의 꼬리를 잡을 수 있도록 믿음을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코브라의 꼬리를 잡으라. 내가 코브라에게 너를 물지 못하도록 해 줄테니까 안심하고 코브라의 꼬리를 잡으라고 감동을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감동을 입은 모세는 담대하게 믿음으로 코브라가 감추고 있는 꼬리를 드러낼 수 있도록 코브라가 움직이게 한다.


코브라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감추었던 꼬리가 드러난다.


모세는 잽싸게 꼬리를 잡는다.


그랬더니 본래대로 지팡이로 바뀌는 것이다.


다시 지팡이를 잡은 모세에게 하나님은 5절에서 “이는 그들에게 그들의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나타난 줄을 믿게 하려 함이라.”라고 말씀하시면서 지팡이로 맹독을 가진 코브라로 만드는 이적을 보야준 목적을 알려주신다.


그런가 하면 하나님은 다시 이적을 보여주시려고 하신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네 손을 품에 넣으라.”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자신의 손을 품에 넣었다가 꺼내 보았더니 너무나 깜짝 놀랄 일이 벌어지고 만다.


자신의 손이 문둥병, 나병에 걸리고 만 것이다.


지금이야 나병, 한센인병이 전염병이 아니라고 판명이 되었지만, 과거에는 지독한 질병으로 알려졌던 병이다.


더더구나 중동지역에서는 신의 저주로 발생하는 병이 나병, 문둥병으로 인식하는 무서운 질병이다.


그렇게 무서운 질병이 자신의 손에 발병한 것이다.


그러니 모세는 소스라치게 놀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한술 더 떠서 “네 손을 다시 품에 넣으라.”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지금 손에 나병이 발병한 것만으로도 무섭고 놀라워서 죽을 지경인데, 나병에 걸린 손을 품에 넣으라는 말은 나병이 온몸에 퍼지게 하란 말이지 않은가.


지금 한 손에 걸린 나병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죽을 지경인데 온 몸이 나병으로 퍼지면 난 어떻게 살란 말인가.


그래서 모세는 나병에 걸린 손을 품에 넣을 수 없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모세에게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나병에 걸린 너의 손을 품에 넣어라. 내가 막아주고 지켜주고 치료해 주고 회복시켜 줄거야.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넣어.”라고 감동을 주시는 것이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감동을 따라서 믿음으로 나병에 걸린 손을 자신의 품에 넣는다. 그리고 꺼낸다.


그랬더니 본래의 온전하고 정결한 손으로 돌아와 있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하나님은 지팡이로 코브라뱀을 만드는 이적과 손이 나병에 걸리는 이적을 통하여 앞으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각종 이적을 베풀어주시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능력과 권세를 부어주시겠다고 감동을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8-9절에서 “만일 그들이 너를 믿지 아니하며 그 처음 표적의 표징을 받지 아니하여도 나중 표적의 표징은 믿으리라. 그들이 이 두 이적을 믿지 아니하며 네 말을 듣지 아니하거든 너는 나일강 물을 조금 떠다가 땅에 부으라. 네가 떠온 나일강 물이 땅에서 피가 되리라.”라고 말씀하시면서 얼마든지 더 놀라운 이적들을 베풀어줄 것을 약속해 주신다.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을 보여주는 것에는 이적만큼 중요한 사건도 없다.


사람들은 아주 작은 이적에도 놀라워하고 신기해하고 두려워하는데, 이런 큰 이적들을 보여주면 그 만큼 하나님의 큰 능력을 믿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믿음을 주시기 위하여 이적을 보여주신다.


 


② 동역자를 붙여주시는 하나님.


 


모세는 하나님께서 두 번에 걸친 큰 이적은 말할 것도 없고, 얼마든지 그것보다 더 크고 놀라운 이적을 보여주겠다고 말씀하시면서 이제는 애굽으로 돌아가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출하는 사명을 감당하라고 촉구한다.


그런데도 모세는 할 수만 있다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맡겨주신 사명을 피하고 싶어한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맡겨주신 사명을 피해갈 수 있다면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피해 가려고 온갖 핑계와 이유로 거절하려고 한다.


모세는 하나님께 10절에서 “오 주여, 나는 본래 말을 잘하지 못하는 자니이다.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령하신 후에도 역시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라고 하면서 지난 40년 동안 말을 제대로 해 본 적이 없어서 백성들을 이끌어갈 자신이 없습니다. 백성들과 완악한 애굽의 바로를 설득시키려고 하면 말을 조리있게 할 수 있어야 하고, 설득력을 가지고 조근조근하게 말을 잘해야 하는데, 저에게는 그럴만한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을 택하여 그 일을 시키세요. 나는 못합니다.“라고 하면서 거절하려고 한다.


그러자 하나님은 11-12절에서 모세에게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냐? 누가 말 못 하는 자나 못 듣는 자나 눈 밝은 자나 맹인이 되게 하였느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라고 말씀하신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직접 너의 입이 되어주어서 조리있게 말을 잘 할 수 있도록 해 줄테니 걱정하지 말고 애굽으로 돌아가라고 하신다.


그럼에도 모세는 ”오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라고 하면서 아무리 수없이 고민하면서 생각해봐도 ”나는 그럴만한 그릇이 못 됩니다. 그러니 그 일을 할 만한 사람에게 맡기세요.“라고 하면서 계속 거절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드디어 모세를 향하여 진노하시면서 ”레위 사람 네 형 아론이 있지 아니하냐? 그가 말 잘 하는 것을 내가 아노라. 그가 너를 만나러 나오나니 그가 너를 볼 때에 그의 마음에 기쁨이 있을 것이라. 너는 그에게 말하고 그의 입에 할 말을 주라. 내가 네 입과 그의 입에 함께 있어서 너희들이 행할 일을 가르치리라. 그가 너를 대신하여 백성에게 말할 것이니 그는 네 입을 대신할 것이요 너는 그에게 하나님 같이 되리라. 너는 이 지팡이를 손에 잡고 이것으로 이적을 행할지니라.“라고 말씀하시면서 반드시 같이 일할 수 있는 동역자를 세워주겠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면서 애굽의 바로와 싸우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출애굽시키는 일에 모세 혼자서 그 엄청난 일을 시키지 않고 반드시 그 일에 동참할 수 있는 동역자를 붙여주시겠다고 약속하신다.


 


어떤 일이든 자기 혼자서 모든 일들을 해내는 독불장군(獨不將軍)은 있을 수 없다.


어떤 일이든 그 일을 같이해 나갈 동역자들이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을 잘하고 언변이 좋은 형 아론을 동역자로 붙여주시겠다고 한다.


그런데 아론은 모세의 친형님이기 때문에 동생으로서 일을 주도적으로 추진해 나가기가 쉽지 않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은 아론에게 모세를 동생으로만 여기면서 함부로 할 수 없도록 모세를 마치 하나님처럼 보일 수 있도록 여호와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을 입혀주시면서 높여주시겠다고 하신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도 하나님의 위대한 복음의 사역, 구원의 사역을 맡기셨다면 우리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누군가를 동역자로 반드시 붙여주시면서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붙여준 동역자들과 조화롭게 동역하면서 하나님나라의 복음과 십자가의 보혈을 전하면서 주님의 구원을 선포해 나가야 한다.


하나님께서 붙여주신 동역자들과 잘 협력하면서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복음의 사명을 잘 감당하는 것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다.


 


③ 하나님의 지팡이를 가지고 애굽으로 돌아가게 하시는 하나님.


 


이제 모세는 더 이상 여호와 하나님께 어떤 핑계와 이유로 거절할 명분이 없다.


모세는 양 떼들을 몰고 집으로 돌아가서 이드로 장인어른에게 ”내가 애굽에 있는 내 형제들에게로 돌아가서 그들이 아직 살아 있는지 알아보려 하오니 나로 가게 하소서.“라고 하면서 애굽으로 돌아가겠다고 한다.


이드로는 모세에게 ”평안히 가라.“라고 하면서 허락해 준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애굽으로 돌아가라. 네 목숨을 노리던 자가 다 죽었느니라.“라고 하면서 애굽으로 돌아가는 길에 주저주저하지 말라고 하신다.


모세는 아내 십보라와 두 아들을 나귀에 태우고 애굽으로 돌아가는 길에 오르게 된다.


모세는 가족들을 이끌고 애굽으로 돌아가는 길목에 40년 동안 양 떼들을 치면서 갖고 다니던 지팡이를 그대로 가지고 떠나게 된다.


그런데 20절에 보면 ”모세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았더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모세가 평소에 양 떼들을 치면서 사용하던 지팡이를 그대로 가지고 애굽으로 돌아가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출애굽할 때 사용하던 지팡이는 특별한 지팡이가 아니다.


모세가 들고 다니는 지팡이는 어느 목자든지 누구나 다 가지고 다니는 나무 지팡이이다.


목자들이라면 누구나 다 갖고 다니는 똑같은 아몬드나무로 만든 지팡이였지만, 하나님은 모세가 들고 다니는 지팡이를 하나님의 지팡이로 바꾸어주신다.


모세가 들고 다니는 지팡이가 특별한 기능공에 의해서 특별한 재료를 가지고 특별한 목적으로 만들면서 제작된 지팡이가 아니라는 것이다.


어느 누구나 아주 쉽게 아몬드나무를 가지고 특특 만들어낼 수 있는 그렇고 그런 지팡이이다.


아주 평범하게 만들어진 나무 지팡이에 불과하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은 모세가 들고 다니는 그 지팡이를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대리할 수 있는 지팡이로 탈바꿈시켜 주시는 것이다.


모세는 이 지팡이로 당당하게 이스라엘 백성들 앞으로 나아가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내셨다고 전하기도 하고, 바로 앞으로 나아가서 이적을 행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떠나겠다고 당당하게 선포하게 된다.


모세가 가진 나무 지팡이는 하나님께서 10재앙을 내리고 백성들을 이끌고 홍해를 건너고 40년 동안 광야생활을 이끌어가는 지팡이로 사용하면서 수많은 이적의 주인공으로 사용한다.


 


④ 가족들을 만나게 하시는 하나님.


 


모세가 애굽으로 돌아가는데 하나님께서 모세의 형인 아론에게 찾아오셔서 ”광야에 가서 모세를 맞으라.“라고 말씀하신다.


27절에 보면 아론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그가 가서 하나님의 산에서 모세를 만나 그에게 입맞추니“라고 기록하고 있다.


모세와 아론이 만난 장소가 하나님의 산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의 산은 어디일까?


성경에서 하나님의 산은 호렙산을 두고 하시는 말씀이다.


출애굽기 3;1에서 호렙산을 하나님의 산이라고 말씀하신다.


곧 이드로의 집에서 모세가 가족들을 이끌고 애굽으로 돌아가려고 할 때, 하나님은 이미 아론을 미디안 광야에 있는 호렙산으로 불러오시는 것이다.


이드로의 집에서 호렙산으로 가는 길에 두 아들에게 할례를 행하는 사건이 있었고, 할례를 받고 이동하려고 하면 적어도 1주일 이상 걸리기 때문에 그 시간에 하나님은 아론에게 호렙산으로 보내주시는 것이다.


호렙산에서 모세는 아론을 만나서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애굽으로 돌아가서 미리암 누나를 만나고 아론의 아들들, 곧 조카들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고센 땅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만나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내셨다는 말씀을 전하게 되는 것이다.


고센 땅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내셨다는 말을 전했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비로소 여호와 하나님께서 지긋지긋한 애굽의 종살이에서 구원하시겠구나. 하면서 하나님을 믿으면서 경배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어쩌면 모세는 어릴 적에 친엄마의 젖을 먹으면서 자랄 때에 고센 땅에서 살았었지만, 그 후에 80세 될 때까지 고센 땅에서 살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근 70-8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와서 가족들과 자신의 민족을 만나는 것이다.


거의 80평생을 고향과 가족들과 민족들을 떠나서 나그네 삶을 살다가 이제야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고향과 가족들, 민족에게로 돌아온 것이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할 때, 가장 가까운 가족들이 가장 가까이에서 협력해 주는 것이 큰 힘과 용기가 된다.


가족이 아닌 사람들은 언제든지 떠날 수 있다.


피를 나눈 가족들은 끝까지 남아서 협력해 주면서 힘을 준다.


가족들이 끝까지 함께 해 주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어준다.


 


L4 & B4.


 


이스라엘 백성들이 430년 동안 종살이하던 애굽을 떠나서 조상들에게 약속한 가나안 땅으로 올라가는 길에 하나님은 모세를 지도자로 세워서 위대한 사명을 감당하도록 하신다.


그러면서 지난 40년 동안 장인어른의 양 떼들을 치면서 사용하던 지팡이를 그대로 가지고 떠나도록 하신다.


전에는 양 떼들을 치는데 사용하던 지팡이이었다면, 이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출애굽할 수 있는 하나님의 지팡이로 사용하는 것이다.


모세가 가지고 하나님의 능력의 지팡이로 사용한 지팡이는 특별한 지팡이가 아니라 늘 모세가 지니고 있던 아주 편하고 손에 익어서 익숙한 지팡이이다.


운전사가 운전을 하더라도 자기 손에 익은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이 사고가 덜 나게 된다.


너무너무 좋고 고급의 차량이라도 운전사가 운전하는데 손에 익지 않아서 운전에 익숙하지 않으면 돌발 사건이 벌어질 때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많아진다.


그러기 때문에 모세가 가지고 있던 지팡이는 모세의 손에 잘 길들여지고 익어서 마음대로 사용하기에 아주 편하고 익숙한 지팡이이다.


우리들에게도 손에 잘 길들여지고 익어서 아주 익숙한 무언가가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모세는 손에 익어서 익숙한 지팡이를 가지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는 것일까?


가령 40년 동안 가지고 있으면서 손에 익은 지팡이가 아니라 다른 지팡이를 가질 수도 있고, 지팡이가 아니라 다른 무언가를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에 모세가 지금까지 들고 다니던 지팡이 말고 다른 무언가를 가지게 되었을 때,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할 수 없다면 모세에게 지팡이는 하나님보다 더 소중한 우상이 되고 만다.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지팡이 말고 다른 무언가를 가지고도 얼마든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출애굽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다.


왜냐하면 지팡이가 무슨 신비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지팡이를 사용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권능과 권세로 출애굽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다.


지팡이는 모세가 하나님의 권능곽 권세로 출애굽의 사명을 감당하는 하나의 도구에 불과한 것이다.


도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도구를 사용하는 하나님의 권능과 권세와 주권이 중요한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는 어떤 하나님의 지팡이를 주시고, 그 지팡이로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귀한 복음의 사명을 감당하게 하시고 계실까?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은 특별한 것이라고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어쩌면 너무 평범해서 이상하게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너무나 평이한 것이지만, 여호와 하나님께서 능력을 입혀주시고, 은혜를 입혀주시고, 하나님께서 직접 사용하시면 놀라운 권능의 지팡이로 바뀔 수 있는 것이다.


이미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맡겨주신 재능, 은사, 기술, 기능들을 하나님의 손에 맡겨져서 사용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놀랍도록 역사하셔서 하나님의 귀한 복음의 사명을 감당하게 하신다.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들에게 주신 것들 중에서 무엇이 되었든 주님의 나라와 교회와 복음을 위하여 사용할 수 있다면 그것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팡이가 될 수 있다.


모세가 하나님의 위대한 사명을 감당하기에 손에 익숙한 지팡이보다 더 뛰어난 무언가가 있었으면 더 훌륭할 수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다윗이 골리앗을 죽이기 위하여 달려갈 때, 당연히 칼이든 창이든, 화살을 가지고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어떻게 돌맹이 다섯 개로 큰 골리앗을 죽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돌맹이를 던져서 사람을 맞추어서 고통을 줄 수는 있겠지만, 죽이기에는 말도 안 되는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무기를 가지고 가야만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다윗은 지금까지 양 떼들을 치면서 칼도, 창도, 화살도 사용해 본 적이 없다.


다윗은 돌맹이와 물매로 수없는 맹수들을 물리치고 양 떼들을 구출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돌맹이와 물매가 손에 익어서 익숙한 것이다.


사울 왕을 비롯하여 모든 이스라엘의 군사들이 염려하는 눈으로 바라보는 가운데 다윗은 물매와 돌맹이 다섯 개를 가지고 가서 보기 좋게 골리앗을 때려죽이고 만다.


만약에 다윗이 손에 익숙하지 않은 칼이나 창이나 화살을 가지고 골리앗을 죽이려고 나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골리앗이 죽는 것이 아니라 다윗이 죽었을지 모른다.


 


지금 모세가 가진 지팡이도, 다윗이 가지고 갔던 물매와 돌맹이도 잘 길들여져서 손에 익어서 아주 익숙한 것이다.


어쩌면 싸움터로, 전쟁터로 나가는 장수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다.


어울리지 않는 것이지만, 모세에게는 지팡이가, 다윗에게는 물매와 돌맹이가 가장 좋은 무기가 되는 것이다.


그런 것처럼 우리들에게도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하기에 특별한 무언가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어떤 특별한 것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하찮고 보잘것없어 보여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것을 사용하는가? 아닌가?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어떤 특별한 스펙들로 인하여 어떤 일을 해냈다면 그 어떤 스펙들이 하나님의 능력보다 더 유능하고 뛰어나서 그 특별한 스펙 때문에 위대한 일을 했다고 떠벌리지 않겠는가?


그러나 하찮고 보잘것없는 것을 가지고 위대한 일을 해냈을 때, 비로소 하나님의 이름이 높여지고 하나님의 은혜와 권능으로 위대한 일을 이루어냈다고 하면서 모든 것들을 하나님께 영광 돌리지 않겠는가.


그러기 때문에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서 진솔하게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와 주권을 인정하고 높여드리면서 오직 하나님의 위대함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높여드리는 삶을 살아갈 때, 하나님은 우리들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의 사역을 성취해 나갈 수 있다.


그러기에 오늘 우리 신앙인들이 찾아야 할 믿음이란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으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것이다.


비록 보잘것없고 별 볼 일 없는 것이라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능력을 입혀주시면 얼마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사용할 수 있는 것이고, 악한 영들, 마귀, 사탄의 영과 죄악과의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는 도구, 무기가 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지팡이가 되어 주님의 나라와 복음을 위하여 사용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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