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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찾아오시는 것일까? (출3:1-22)

본문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찾아오시는 것일까?/출애굽기3;1-22


네. 없어요..... 아빠


 


마술 공연을 하던 마술사가 마술 도우미를 불러냅니다.


“자, 지금부터 전혀 모르는 사람을 객석에서 불러내 보겠습니다.


저기 앉아 있는 어린이, 앞으로 나와 주세요.”


마술사가 손짖을 하자 그 꼬마가 무대 위로 올라옵니다.


“안녕하세요? 저와 미리 만났거나 서로 짠 적이 없다는 사실을 여기 앉아 계신 분들께 말해주세요.”


그러자 꼬마가 순진한 표정으로 대답합니다.


꼬마의 대답은


“네. 없어요........... 아빠.”


그러자 모든 관객들이 다...뒤짖어지면서 호탕하게 웃습니다.


아무리 속이려고 해도 자녀들에게까지는 속이지 못합니다.


우리들은 누구에게도 속이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속아서도 안 되고, 속여서도 안 됩니다.


예수님을 믿는 성도님들은 오직 진실함, 성실함, 정직함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P4.


 


모세가 80세가 되어서 하나님께서 직접 찾아오시고 부르시기 전까지 여호와 하나님에 대하여 제대로 깨달아 알고 있었을까? 모르고 있었을까?


우리는 아주 쉽게 모세는 처음부터 대단한 믿음의 사람이었다고 단정해 버리는 경우가 있다.


모세는 아므람과 요게벳의 세 번째 아들로 태어나서 유모의 자격으로 친엄마의 젖을 먹고 자라면서 젖을 떼기 전까지 기도와 말씀의 은혜를 입으면서 자랐기 때문에 당연히 여호와 하나님에 대하여 정확하게 제대로 알고 있을 것으로 여길 수 있다.


그렇지만 과연 그럴까?


모세가 미디안에서 십보라와 혼인하여 둘째 아들을 낳고 “엘리에셀(Eliezer)”이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출애굽기18;4절에 보면 모세가 둘째 아들의 이름을 엘리에셀이라고 부르는 것은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 나를 도우사 바로의 칼에서 구원하셨다.”라는 의미라고 해석하고 있다.


둘째 아들의 이름을 엘리에셀이라고 부르면서 하나님께서 나를 도와주셔서 바로의 칼에서 구원하였다라고 고백하는 것을 보면 모세는 여호와 하나님에 대하여 어느 정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기는 한다.


그런데 모세가 살았던 환경은 여호와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믿는 믿음으로 신앙생활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모세는 40살이 될 때까지 태양신을 섬기는 왕궁에서 살았고, 미디안 광야로 도망 와서는 80세 될 때까지 미디안 족속들이 섬기는 바알신을 비롯하여 여러 신들을 섬기는 이드로 제사장의 집에서 처가살이하면서 살았다.


그러기 때문에 두 아들을 낳으면서도 두 아들에게 여호와 하나님과 맺는 피의 언약, 할례의 언약을 행해주지 않았다.


여호와 하나님과의 언약을 제대로 인식하고 깨닫는 삶을 살았다면 아무리 바알신에게 제사하는 제사장의 집에서 처가살이하면서 살았어도 여호와 하나님과 맺는 피의 언약, 할례의 언약을 행해 주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모세는 두 아들에게 할례를 행해주지 않는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가족들을 이끌고 애굽으로 돌아가는 길목에서 하나님의 사자를 만나면서 엄마 십보라가 두 아들에게 할례를 행해주는 모습이 등장한다.


80세까지 모세가 살아온 배경이 온전하게 여호와 하나님을 제대로 인식하고 깨닫고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처지가 못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의 영혼을 끝까지 붙들고 인도해 가시는 것이다.


 


1절에 보면 모세는 양 떼들을 몰고 광야 서쪽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렀다고 기록하고 있다.


실제적으로 이드로의 집에서 호렙산으로 가는 길은 서쪽 방향이 아니라 동북쪽 방향이다.


동북쪽 방향으로 양 떼을 몰고갔는데 성경에서는 서쪽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렀다고 기록하는 것이다.


그러면 왜 동북쪽 방향으로 양 떼들을 몰고 갔다고 기록하지 않고, 서쪽 방향으로 양떼들을 몰고 가서 호렙산에 이르렀다고 기록하는 것일까?


히브리문화에서 동쪽 방향과 서쪽 방향은 서로 의미하는 것이 다르다.


동쪽 방향은 하나님을 떠나는 방향인 반면에, 서쪽 방향은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방향을 의미한다.


창세기에서는 하나님을 떠나는 방향으로 대부분 동쪽 방향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분명히 동북쪽 방향으로 양 떼들을 몰고 갔지만, 성경에서는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는 과정을 설명해야 하기 때문에 서쪽으로 양 떼들을 몰고 갔다고 기록하는 것이다.


성경은 히브리문화에 맞추어서 기록하는 것이다.


출애굽기에서는 하나님을 만나야 하는 방향이기 때문에 서쪽 방향이라고 기록하는 것이다.


그러면 모세가 호렙산으로 양 떼들을 몰고 갔는데 모세는 어떻게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것일까?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어떤 모습으로 모세를 만나고 계시는 것일까?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를 만나주시는 모습은 오늘 우리 신앙인들에게는 어떤 모습으로 다가오는 것일까?


 


D4.


 


① 때가 되어 찾아오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모세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워서 애굽에서 종살이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어내어 조상들에게 약속한 가나안 땅으로 이끌어가려고 하신다.


하나님은 모세가 모든 부분에서 충분히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워질 때까지는 잠잠히 기다리고, 묵묵히 기다리고 계실 뿐이다.


아무런 일도 안 하시는 것처럼 침묵만 지키실 뿐이다.


하나님께서 아무런 일도 하지 않으시는 그 시간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전히 애굽의 바로의 악한 정권으로 인하여 큰 고통을 당하면서 신음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께서 움직이시기 시작하신다.


모세가 80세가 되는 해에 하나님께서 그 동안 묵묵히 참고 기다리시던 일을 시작하려고 하신다.


모세가 80세 되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때가 되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전폭적으로 전적인 하나님의 주권과 계획에 의하여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되었느냐 안 되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때가 되지 않았을 때에는 아무리 이스라엘 백성들이 종살이하면서 고통스럽게 살아도, 아무리 애굽제국의 정권에 의해서 압제를 당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전혀 움직이시려고 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악한 세상 정권 때문에 고통당하는 모습을 지켜봐야만 하시는 하나님의 심정도 너무너무 고통스럽기만 하다.


그래도 하나님은 끝까지 참으시면서 묵묵히 때를 기다리고 계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시각을 하나하나 체크하시면서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때가 되었을 때, 비로소 역사하시기 시작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도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되었을 때 찾아오셔서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사역을 진행시켜 나가고 싶어하신다.


우리들이 아무리 울고불고하면서, 금식하면서 기도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전혀 움직이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때가 되었을 때는 사람들이 울고불고하지 않아도, 그야말로 금식기도하지 않아도, 작정기도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주권을 따라서 움직이시고 역사하시기 시작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구원의 때, 은혜의 때, 축복의 때가 되어야만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기 시작하신다.


그러기에 우리 신앙인들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될 때까지 힘들고 고통스럽고 어렵더라도 묵묵히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신뢰하면서 믿음으로 기다려야 한다.


신앙인들은 믿음으로 기나긴 인내의 시간, 인내의 훈련을 감내해 내어야 하는 사람이다.


신앙인들이 인내하지 못하면, 인내의 훈련을 견디어내지 못하면 아무 것도 해낼 수 없다. 지금까지 애쓰게 쌓아올린 공든 탑이 맥없이 와르르 무너지게 된다.


신앙인들은 믿음으로 인내할 줄 아는 사람이다.


신앙인들은 인내의 결실을 맺는 사람이다.


 


② 일터로 찾아오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모세가 양 떼들을 이끌고 하나님의 산 호렙으로 이동하였을 때에 찾아오신다.


하나님은 모세가 집에 계실 때에 찾아오셔도 되는데, 하나님은 모세가 집에 있을 때에 찾아오시지 않으신다.


모세가 양 떼들을 먹이기 위하여 양 떼들의 목초지가 있는 호렙산으로 이끌고 갔을 때, 비로소 그 호렙산으로 찾아오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지금도 하나님의 일꾼들에게 맡겨주신 일을 충실하게 감당하고 있을 때 찾아오셔서 불러주신다.


하나님께서 다윗왕을 부르실 때에도 양 떼들을 열심히 치고 있을 때 부르신다.


하나님은 엘리사 선지자를 부르실 때에도 엘리사가 씨앗을 뿌리기 위하여 밭을 열심히 갈고 있을 때 찾아오셔서 선지자로 세우신다.


예수님은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가 아버지를 도와서 그물을 수선하거나 그물을 던지면서 충실하게 고기잡이하고 있을 때 찾아오셔서 제자로 부르신다.


마태에게도 열심히 세관에 앉아서 세금 거두는 일을 하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찾아오셔서 제자로 부르신다.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이 일률적으로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은 주님의 일을 감당해야 할 지도자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본래의 사명을 잘 감당하고 있을 때 찾아오셔서 새로운 하나님의 사명을 주시면서 부르시는 경우가 아주 많다.


하나님은 아무런 할 일도 없어서 빈둥빈둥거리고 있을 때 찾아가서 부르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맡겨주신 일을 열심히 최선을 다하여 감당하고 있을 때, 하나님의 사명을 맡기시기 위하여 우리들에게 찾아오셔서 하나님의 귀한 일을 전폭적으로 맡겨주시고 싶어하시는 것이다.


우리가 할 일이 없어서 빈둥빈둥거리고 있을 때 찾아오셔서 ‘000야 지금 할 일이 없지! 그러면 이거라도 해’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일을 맡겨주시는 분이 아니다.


간혹 어떤 이들은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이제야 주의 종이 되어서 목회자라도 되어야지 하는 이들이 있다.


세상적으로는 신학공부하고 목회자로 세움을 입을 수 있다.


그런 사람은 하늘 아버지의 측면에서 보면 주의 길을 가지 말아야 할 사람이 주의 일을 한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이런 이들 때문에 주님의 몸된 교회가 어지러워지고 다툼과 분란이 일어나고 각종 이단들이 속출하는 원인이 되는 것이다.


 


우리 하나님은 근본적으로 우리들에게 어떤 일을 맡겨주시든, 크고 작은 일을 맡겨주시든, 귀한 일이든 하찮은 일을 맡겨주시든,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일에 최선을 다하여 충성하며 살아가기를 원하시는 분이다.


하나님 앞에서는 귀한 일이 따로 있고, 하찮은 일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일들이 다 주님의 일이고, 모든 일들이 아주 귀한 일들이다.


작은 일에 충성하는 사람이라야 큰 일도 충성할 수 있다.


작은 일, 하찮은 일을 무시하는 사람은 크고 위대한 일을 맡겨주어도 크고 위대한 일을 감당할 재목이 되지 않는다.


모든 일들이 주님께로부터 주어진 일, 맡겨진 일이기 때문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주님께서 맡겨주신 일을 최선을 다하여 감당하는 것이다.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찾아오셔서 하나님의 귀한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역사해 주신다.


 


③ 이벤트 하시면서 찾아오시는 하나님.


 


호렙산으로 양 떼들을 몰고 온 모세를 만나러 오신 하나님은 평범하게 찾아오시지 않으신다.


아주 특별한 이벤트를 준비하시고 찾아오신다.


활활 타오르는 산불처럼 떨기나무에 불을 붙이면서 찾아오신다.


기후가 건조해지고 바람이 세차게 불면 나무들끼리 서로 부딪치면서 산불이 자연적으로 생겨날 수 있다.


산불이 자연적으로 발생한 것처럼 하나님께서 찾아오신다.


산불은 점점 타오르기 시작하면 삽시간에 주변으로 불씨가 날아가면서 온 산을 태워버린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찾아오신 떨기나무에 붙은 산불은 활활 타오르기는 하는데, 이상하게도 주변으로 퍼져나가지는 않는다.


산불이 발생했으면 주변으로 급속도로 퍼져나가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인데, 떨기나무에 타오르는 산불은 불은 활활 타오르는데 이상하게도 주변으로 옮겨가지는 않는다.


이 모습이 너무 신기하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해서 모세는 직접 자신의 눈으로 확인해 보려고 활활 타오르는 산불 근처로 나아간다.


모세가 불이 활활 타고 있는 떨기나무 근처로 오는 모습을 보신 하나님께서 “모세야 모세야”라고 모세를 부르시는 것이다.


모세를 부르시는 하나님은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라고 하면서 처음으로 모세에게 조상들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신다.


지금까지 모세는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분에 대해서 어릴 적에 친엄마가 젖을 물리면서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이름을 들어봤을 뿐이다.


어쩌면 80평생을 살면서 처음으로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분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모세는 80평생 살아오면서 여호와 하나님의 임재와 실존을 제대로 의식하면서 살아보지 못한 사람이다.


아주 어릴 때에 친가족들을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에 대해서 들었던 것이 전부이다.


그후에는 하렙슈트 공주의 양아들의 신분으로 궁궐에 들어가서 태양신을 섬기는 사람으로 살아왔고, 미디안 땅으로 가서는 이드로 장인이 섬기는 바알신을 섬기면서 살아온 사람이다.


그런데 호렙산 떨기나무에 활활 타오르는 산불, 그러나 꺼지지도 않고 주변으로 옮겨타지도 않는 신기하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한 산불 속에서 찾아오신 여호와 하나님을 처음으로 만나는 것이다.


80평생 살아오면서 여호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서 제대로 인식조차 하지 못하던 모세에게 하나님은 떨기나무에 불타는 모습으로 특별하게 이벤트를 준비하면서 아주 강렬하게 찾아오신다.


하나님의 전에서 잠자고 있는 사무엘에게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찾아오신다.


예수님의 부모님으로 등장하는 요셉과 마리아에게는 가브리엘 천사장을 보내면서 강렬하게 찾아오신다.


다메섹으로 예수믿는 사람들을 잡아가두기 위해서 가던 바울에게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직접 찾아가신다.


밧모섬에 유배당한 사도 요한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은 환상 중에 찾아오신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일꾼들에게 찾아오실 때 한 가지 방법으로 찾아오시지 않는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일꾼들에게 다양한 방법으로 찾아오신다.


하나님은 우리 신앙인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찾아오실까?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는 어떤 이벤트를 보여주면서 찾아오실까?


우리들이 우둔하고 어리석어서 하나님께서 찾아오셨는데도, 하나님께서 찾아오셨음을 깨닫지 못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하나님께서 어떤 모습으로 찾아오시든지, 우리들에게 가장 합당한 방법으로, 우리들이 인식하고 깨달을 수 있는 방법으로 찾아오시리라 믿는다.


하나님께서 찾아오셨을 때, “아멘, 아멘,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하겠습니다.”라고 고백하면서 주님을 영접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④ 스스로 계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12절에서 모세에게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라고 말씀하시면서 모세에게 애굽으로 돌아가서 종살이하는 이스라엘 민족들을 이끌고 호렙산으로 와서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이 될 수 있도록 하라는 말씀을 하신다.


그러자 모세는 “내가 애굽으로 돌아가서 종살이하는 백성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이 보내셨다.’라고 말하면서 백성들이 ‘여호와가 누구길래 당신을 보냈느냐?’라고 묻는다면 무엇이라고 대답해야 합니까?”라고 묻는다.


그러자 하나님은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라고 대답하신다.


하나님은 “I Am Who I Am”이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여호와 하나님은 누군가 제3자에 의해서 제작되었거나 형성된 신이 아니라 본래부터 하나님 스스로 계시는 분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세상의 잡다한 온갖 신들은 자기 스스로 있는 신이 아니다.


누군가에 의해서 제작되었거나 형성되어서 만들어진 신들이다.


본래부터 여호와 하나님은 스스로 계시는 분으로서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고,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서 사람을 만들어주시고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주시면서 생령이 되게 하신 분이다.


세상의 온갖 신들은 누군가 제3자에 의해서 만들어진 피조물에 불과하지만, 하나님은 스스로 계시는 분으로 창조주이시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애굽에서 종살이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스스로 계시는 하나님께서 나를 보내셨다.라고 선포하라고 말씀하신다.


지금까지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조상들에게도 스스로 계시는 분이라고 자기 자신을 소개하신 적이 없다.


그런데 이제는 하나님 자신을 스스로 계시는 창조주 하나님이시라고 자기 자신을 나타내고 있다.


우리 신앙인들이 믿고 따라가는 여호와 하나님이란 분은 누군가에 의해서 만들어졌거나 제작되어진 피조물과 같은 신이 아니다.


화려하고 웅장하고 찬란한 황금색으로 만들어진 불상들과 탑들, 사원들도 사람의 손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들이다.


우리나라 유명한 산에는 대부분 큰 사찰들이 많은데, 그 사찰들마다 커다란 불상을 만들어서 대단한 능력이나 갖고 있는 것처럼 자랑한다.


불교의 나라 태국에는 산을 인공적으로 반으로 깍아내어 절벽을 만들고 순금으로 커다란 불상을 만든 황금절벽사원이 있다.


이 불교사원은 67m의 커다란 불상을 순금 5-6톤을 들여서 만들었다고 한다.


이처럼 아무리 화려하고 웅장하고 찬란하게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사람의 손에 의해서 만들어진 피조물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우리가 믿는 여호와 하나님은 본래부터 지금까지도 계시는 분이고, 먼 미래까지도 계실 분이고, 영원히 살아계시는 분이다.


스스로 살아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부르시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삼아주시고, 제사드리는 백성으로, 예배드리는 백성으로 삼아주시는 것이다.


 


⑤ 확실한 목적과 의도를 가지고 찾아오시는 하나님.


 


호렙산으로 모세에게 찾아오신 하나님은 7-10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데려가려 하노라. 이제 가라.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히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하나님은 15-22절에서도 같은 의미와 목적과 의도의 말씀을 하신다.


호렙산으로 모세에게 찾아오신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성취하시려는 분명하고도 확실한 목적과 의도를 가지고 계신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찾아오신 확실한 목적은 애굽에서 종살이하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 이스라엘 백성들을 호렙산으로 이끌어내어 여호와 하나님께 제사드리는 백성으로 만들려는 의도가 담겨져 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람들, 믿음의 사람들, 주님의 제자들에게 찾아오시고 부르시는 것은 분명한 의도와 목적과 뜻과 계획을 갖고 계신다는 사실이다.


어느 누구도 목적없이, 할 일이 없어서 찾아오신 분은 아무도 없다.


그야말로 위대하고 큰 사역을 맡겨주신 사람들도, 아주 작고 보잘것없는 사역을 맡겨주신 사람들도 다 하나님께서 분명한 목적과 의도와 계획을 가지고 찾아오신 것이고, 부르셔서 하나님의 종으로, 일꾼으로, 사역자로, 제자로 세우시는 것이다.


 


L4 & B4.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찾아오신 분명한 목적과 의도는 무엇일까?


왜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찾아오신 것일까?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찾아오셔서 어떤 사명을 맡기시려고 하시는 것일까?


모세는 애굽제국에서 430년 동안 종살이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출애굽하여 하나님의 언약백성으로 세우기 위한 목적과 의도를 가지고 찾아오신다.


우리들은 출애굽해야 할 이유도 없고, 출애굽시켜야 할 대상도 없다.


우리들은 뛰어난 투사가 되어 치열하게 치러지는 전쟁터로 나가서 포로들을 구출해야 할 이유도 없다.


이러한 아무런 이유와 목적과 의도가 없는데도 우리들에게 찾아오실 것일까?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찾아오시고 부르시는 목적과 이유도 없이 찾아오신 것일까?


그렇지 않다.


여호와 하나님은 분명한 목적과 의도를 가지고 우리들에게 찾아오시는 분이다.


그러면 왜 찾아오신 것일까?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무엇을 시키시려고 찾아오시는 것일까?


그것은 영적인 죽음의 세상, 죄악된 세상, 심판받아 지옥으로 가야만 하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귀한 백성들, 하나님의 언약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우리들에게 찾아오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들만 구원하여 만족하시는 분이 아니다.


좀 더 많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어지고, 주님의 십자가 복음이 온 천하에 전해지기를 원하신다.


하나님께서 분명하고도 확실한 목적과 의도를 가지고 우리들에게 찾아오시기 때문에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찾아오신 목적과 의도를 믿음으로 시행해 드려야 한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찾아오신 분명하고도 확실하게 갖고 계시는 목적과 의도가 앞으로 모세가 감당해야 할 사명이라 한다면, 우리들에게 찾아오신 분명하고도 확실한 목적과 의도가 우리들이 감당해야 할 사명이라 할 수 있다.


우리들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과 보혈의 삶을 직접 보여주시기 위하여 우리들을 찾아오시고 부르시는 것이다.


우리들의 삶은 평범한 삶인 것처럼 보이지만, 절대로 평범하지 않다.


우리들의 삶 자체가 복음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증거하고 확장해 나가는 전도자의 삶이다.


우리들의 삶 자체가 예수그리스도의 빛이요 소금이요 향기요 편지요 좋은 소식을 들려주는 메신저이다.


우리들의 삶 자체가 어둠을 환하게 비추는 빛이요 부패하여 썩어가는 세상의 소금이요 악취나는 곳에 향기요 애타게 새로운 소식을 기다리는 이들에게 편지와 같은 삶이다.


그러기에 우리가 살아가야 할 믿음의 삶이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찾아오시는 분명한 목적과 의도를 따라서 믿음으로 사는 것이다.


우리들을 통하여 이루고 싶어하시는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을 위해서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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