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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아봐요 (출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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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아봐요 /출애굽기2;1-25(210110)


며느리 대신에 임신한 시어머니


 


한 시어머니가 자식이 없는 며느리를 데리고 교회에 갑니다.


시어머니는 며느리에게


“아가야. 목사님께서 기도 하실 때 무조건 ‘아멘’ ‘아멘’ 해야 된다. 그러면 원하는 것이 다 이루어진단다.”라고 신신당부합니다.


목사님의 기도가 이어졌지만, 며느리의 입에서는 전혀 “아멘”이라는 말이 나오질 않는 것입니다.


다급해진 시어머니는 며느리 대신에 연신 “아멘! 아멘!” 하면서 기도합니다.


결국 기도가 응답이 되었는데 시어머니가 임신을 해 버렸다고 합니다.


감사함으로 아멘 아멘 하면 하나님께서 아멘하는 입술에 복을 주셔서 기도가 응답됩니다.


아멘은 간절한 소망이 있을 때 더욱 더 아멘 아멘 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도 아멘 아멘 하면서 들으면 그 말씀이 나에게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아멘에는 하나님의 놀라운 응답의 능력이 담겨져 있습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아멘 아멘 아멘 아멘 하면서 말씀 듣고, 기도하고, 찬양하는 성도들이 되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축복, 하나님의 마음에 감동을 드리고 싶은 사람은 아멘하는 성도입니다.


 


P4.


 


‘일꾼이 만사다.’라는 말이 있다.


하나님께서 추진하시는 구령 사역에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일을 추진해나갈 사람을 세우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일을 맡겨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지도자를 세우는 일이 무엇보다 가장 중요하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이방에서 나그네 삶을 살면서 400년 동안 고통스런 삶을 살다가 4대 만에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라고 이미 말씀하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말씀을 시행할 수 있는 지도자를 세워야만 하나님께서 예언하신 말씀을 성취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출애굽기 2장은 바로 그 지도자를 세우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예비해 가시는 과정을 설명하는 말씀이다.


그러면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하여 구체적으로 어떻게 예비해 나가고 계시는 것일까?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종살이하고 있는 이스라엘 민족들을 이끌어갈 지도자를 세우시기 위하여 어떻게 하고 계시는 것일까?


 


D4.


 


① 한 가정을 예비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구원을 준비하면서 레위 가문을 선택하여 예비하고 있다.


사실 레위지파는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나올 수 있는 가문이 아니다.


야곱이 임종하기 전에 12아들들에게 축복해 주실 때, 레위에게는 별다른 축복다운 축복을 해 주시지 않았다.


어쩌면 이스라엘의 지도자는 유다지파 또는 요셉지파에서 나왔어야 정상적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하나님은 유다도 아니고 요셉도 아닌 레위지파에서 이스라엘의 지도자를 세우시려고 하신다.


하나님께서 레위의 후손을 통해서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시려고 하는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요 주권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구원할 때, 전폭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주권과 강력한 권능으로 구원하시려고 레위의 후손을 선택하는 것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아므람과 요게벳에 대해서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아므람은 레위의 손자이고, 요게벳은 레위의 딸이다.


곧 아므람과 요게벳은 고모 조카가 되는 사이이다.


고모 조카가 혼인하여 3남매를 낳게 되고, 이들 3남매가 이스라엘의 지도자 가정으로 세워지는 것이다.


아므람과 요게벳이 낳은 3남매 중에 막내인 모세가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어 출애굽을 단행하는 지도자가 된다.


모세보다 3살이 많은 아론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께 제사드리는 민족으로 세워져 갈 때, 제사장 가문이 된다.


큰 누나인 미리암은 여성지도자, 여선지자가 되어 이스라엘 여인들을 이끌고 출애굽과 광야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가는 지도자가 된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귀한 구원의 사역을 실행해 나감에 있어서 소위 잘나가는 좋은 가문, 대단한 가문에서 일꾼을 세우는 경우도 많다.


소위 말하는 대단한 가문에서 대단한 일꾼이 나올 확률이 더 많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간혹 그야말로 별 볼 일 없는 나약한 가문에서, 몰락한 가문에서, 어느 누구도 기대하지 않는 가문에서 정말로 위대한 하나님의 일꾼, 지도자를 세우시는 경우가 더러 있다.


예수님의 부모님으로 등장하는 요셉과 마리아의 가정도 마찬가지이다.


요셉이나 마리아는 다윗 왕가의 후손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몰락한 가문이고, 그 당시에 알아주는 이가 아무도 없는 별 볼 일 없는 가문에 불과하다.


다윗 왕의 고향인 베들레헴에서도 살 수 있는 처지가 못 되어서 이스라엘의 북부 지방의 나사렛이라는 동네에서 살아야만 되었던 가문이다.


우리나라식으로 말하면 우리나라 최북단인 함경북도, 양강도, 자강도와 같은 곳으로 쫓겨나서 살아야만 되었던 가문이다.


하나님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그런 가문에 강권적으로 찾아가서 인류의 구원자, 메시야,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는 것이다.


오늘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를 보내시기 위하여 하나님은 레위지파의 어느 한 가정을 예비하시고 계시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 가정이나 가문이나 교회가 세상적으로 볼 때, 별 볼 일 없다고 낙심하거나 좌절하지 않아도 된다.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의 권능이 임하느냐 임하지 않느냐 하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아무리 별 볼 일 없어 보여도 여호와 하나님의 권능과 주권과 은혜가 임하면 우리 가정도, 우리 교회도, 우리 자녀들도 얼마든지 하나님의 위대한 사역에 동참할 수 있는 일꾼으로 세워져 갈 수 있다.


아무리 대단해 보여도 하나님의 은혜와 주권과 권능이 임하지 않으면 아무리 용을 써봐도 하나님께서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일에 쓰임받는 일꾼이 되어질 수 없다.


우리 신앙인들은 모든 것들의 주인이시고 왕이신 하나님 앞에서 어떤 자세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가정으로, 교회와 자녀들로 살아간다면 언젠가 하나님께서 은혜와 주권과 권능으로 함께 해 주시리라 믿는다.


 


② 안전지대를 예비해 주시는 하나님.


 


고센 땅에서는 남자아이를 낳으면 나일강에 던져 죽이라는 바로의 지엄한 명령 때문에 수많은 가정들이 매일 울음바다를 이루고 있다.


누가 생생하게 살아있는 어린 아들을 나일강에 던져서 죽이고 싶겠는가?


할 수만 있다면 자신이 죽더라도 어린 아들을 살리고 싶은 게 부모의 애끓는 심정이 아니겠는가?


아들을 낳아 품에 안고 젖을 물리고 있는 애미의 심정은 오죽하겠는가?


갓난아이가 엄마의 젖을 쪽쪽 빨아 먹을 때의 힘은 대단하다고 한다.


엄마의 젖가슴이 아플 정도로 세차게 빨아먹는다.


그래서 흔히 젖 먹던 힘까지 낸다고 하지 않던가.


그런 아들을 바로 왕 투트모세1세의 명령 때문에 나일강에 던져서 죽여야 하는 현실이다.


가슴을 치고 땅을 쳐도 아들을 죽여야 하는 부모의 심정을 누가 이해해 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어쩌겠는가?


아들을 나일강에 던져서 죽이지 않으면 온 가족들이 몰살당할텐데...


온 가족이 몰살당하면 딸까지도 죽을지 모르는데...


이 일을 어쩌면 좋단 말인가?


그래서 아이를 낳은 가정도 통곡 소리가 끝날 줄을 모르고, 앞으로 아이를 낳아야 할 가정들도 혹시 아들을 낳게 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과 두려움, 염려, 걱정이 앞을 가려서 잠을 제대로 잘 수 없다.


나일강에는 죽은 히브리 남자아이들의 시체들이 나딩글고 있다.


주변에는 온갖 맹수들, 까마귀들, 독수리들, 악어들이 남자아이들의 시체들을 뜯어먹으려고 발광을 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아므람과 요게벳의 가정도 다른 가정들과 마찬가지로 근심 걱정이 태산이다.


요게벳도 딸을 낳았으면 좋았겠는데, 아들을 낳은 것이다.


아들을 낳아서 젖을 물리고 있는 요게벳의 마음에 어떻게 해야 아들을 지키고 살릴 수 있을까? 생각하면 잠을 제대로 잘 수 없다.


매일매일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면서 요게벳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아들을 품에 안고 젖을 물리면서 기도하는 것밖에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아무리 왕의 명령이라 해도 어떻게 아들을 죽일 수 있단 말인가?


아므람과 요게벳과 식구들은 어린아이를 살리기 위해서 3개월 동안 숨겨서 키운다.


3개월 동안 아이를 남몰래 숨겨서 키웠지만, 아이가 점점 커가면서 울음소리도 더 커지게 되고, 가족들은 늘 조마조마하면서 살얼음길을 걸으면서 하루하루 겨우 버티면서 살고 있다.


요게벳 가족들은 더 이상 아이를 숨기고 키울 수 없다는 판단을 하게 된다.


중동지역, 나일강에서 자라는 갈대나무는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갈대와는 전혀 다르다.


중동지역, 나일강에서는 자라는 갈대나무는 우리나라의 대나무와 똑같지는 않지만, 비슷하다.


요게벳 가족들은 나일강변에서 많이 자생하고 있는 갈대나무를 잘라 와서 상자를 만들고 최대한 강물이 들어오지 않도록 역청과 나무진으로 구석구석을 바른다.


온 가족들이 함께 모여서 전능하신 하나님께 아이를 올려드리는 기도를 하면서 한잠도 못 자고 요게벳은 기도하면서 아이에게 젖을 물린다.


동녘에서 아침 해가 솟아오를 때 온 가족들은 아이를 포대기에 꽁꽁 싸서 갈대상자에 넣고는 나일강으로 나아간다.


갈대상자를 강물이 빠르게 흘러내리지 않은 앓은 곳을 찾아서 띄운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아이를 건져주시고 지켜주시고 구해 주세요. 라고 기도하면서 갈대상자를 나일강에 띄우면서 가슴은 통곡한다.


하나님은 바로 그 시간에 바로의 딸이요 여왕이었던 하셉슈트 공주를 그 나일강변으로 요양차 보낸다.


하나님은 하셉슈트 공주의 마음에 감동을 주시면서 갈대 상자를 쳐다볼 수 있도록 하신다.


갈대 상자를 발견한 공주는 시녀에게 갈대 상자를 건져오라고 한다.


갈대 상자를 가져다 열었더니 3개월쯤 된 사내아이가 앙앙하면서 우는 것이다.


공주는 직감적으로 히브리 아이임을 안다.


아버지 투트모세1세의 엄중한 명령에 따라서 히브리인이 버린 아이임을 직감적으로 느끼면서 한편으로는 너무나 측은하고 불쌍한 마음을 가지도록 하나님께서 역사하신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공주의 마음에 아이를 자신의 아들로 키우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게 하신다.


사실 하셉슈트공주는 투트모세2세와 혼인하였지만, 후사를 낳지 못하고 투트모세2세가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만다.


그래서 히브리민족들이 살고 있는 고센 땅이 있는 나일강으로 시녀들을 데리고 요양하러 와있는 처지이다.


하나님은 하셉슈트 공주의 남편인 투트모세2세의 생명을 후사도 남기지 않고 일찍 거두어 가시고, 요게벳이 갈대상자를 가져다 놓는 바로 그 곳으로 그 시간에 요양하러 오도록 감동을 주시는 것이다.


그런가하면 하셉슈트 공주의 마음에 갈대상자 안에 있는 아이를 자신의 양자로 삼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도록 감동을 주시는 것이다.


때마침 동생을 담은 갈대 상자가 어떻게 되어 가나? 하는 모습을 지켜보려던 미리암이 당돌하게도 공주에게 찾아가서 “아이를 젖먹일 수 있는 유모를 모셔올까요?”라고 묻는다.


이미 하나님의 감동을 받은 하셉슈트 공주는 미리암에게 유모를 데리고 오라고 한다.


미리암은 엄마 요게벳을 공주 앞으로 모시고 온다.


공주는 미리암이 모시고 온 요게벳이 아이의 친엄마임을 직감적으로 알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주는 요게벳에게 아이에게 젖을 물리라고 하면서 요게벳에게 아이를 키우는 품삯도 주겠다고 하면서 유모의 자격을 부여해 준다.


요게벳은 하셉슈트 공주의 명령으로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양육하면서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백성으로 양육해 나간다.


아이를 양육함에 있어서 엄마의 헌신과 기도는 절대적인 영향력을 끼치게 된다.


요게벳은 아이를 애굽 아이가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 양육해 나가는 것이다.


아이에게 젖을 뗄 때까지, 아이가 2-3살이 될 때까지 아이의 유모라는 자격으로 아이를 양육하면서 요게벳은 눈물로 통곡하고 기도하면서 “너는 애굽인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야. 너는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 태어난 거야.”라고 수없이 말해주면서 키웠을 것이다.


이제 아이는 엄마의 젖을 떼고 공주의 아들로 입궁하게 된다.


공주는 이 아이의 이름을 모세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모세라는 이름은 “물에서 건짐을 입었다.”라는 의미이지만, 애굽 왕궁의 왕손이라는 의미가 더 강하다.


제18왕조를 건국한 아하모세로부터 시작하여 왕손에게는 모세라는 이름을 붙여주었기 때문이다.


이제 모세는 왕궁으로 들어가서 왕손의 교육을 받고, 왕손이 누릴 수 있는 모든 특권, 권한을 누리면서 살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모세를 남자아이를 낳으면 죽이든지, 나일강에 던져서 죽이라는 정책을 시행하는 바로의 딸, 공주의 아들이라는 신분으로 바로의 궁궐 안으로 들어가게 하면서 바로의 궁궐을 가장 안전한 안전지대로 사용하는 것이다.


모세는 40세가 될 때까지 하셉슈트공주의 양아들이라는 신분으로 바로의 궁궐에서 애굽의 모든 학문, 철학, 문학, 언어와 기술들을 배우고 누릴 수 있는 은혜와 축복을 받는다.


흔히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을 하곤 한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은 등잔 밑이 가장 안전하다는 말이 되기도 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지도자를 예비함에 있어서 가장 포악한 정권을 가장 안전한 안전지대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애굽 왕궁을 가장 안전한 안전지대로 사용하는 것은 어느 누구도 상상하지도 못하는 일이다.


이제 모세는 왕손이라는 신분이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함부로 모세를 위협하지 못하게 된다.


더더구나 하셉슈트 공주의 아들이라는 신분은 대단한 신분이다.


투트모세2세가 죽은 이후에 하셉슈트공주는 애굽의 여왕이라는 신분으로 전 애굽을 섭정하면서 통치했던 여왕이다.


모세는 그 여왕의 아들이라는 신분이기 때문에 대단한 권력과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것이다.


이처럼 사람이라면 상상할 수도 없는 기상천외한 방법을 하나님께서 사용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모세가 가장 안전한 곳에서 애굽의 모든 학문을 배우고 누릴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시면서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될 일꾼을 양육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지금도 하나님의 백성들의 안전을 위해서, 하나님의 사람, 일꾼을 키워서 세우시기 위하여 일반인들이 상상하지도 못하는 일들을 사용할 수 있다.


여호와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고 온 세상의 주인이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어떤 일이든 가장 좋은 방법으로, 가장 안전한 방법으로 하나님의 사람들을 지켜주실 것이다.


 


③ 더 안전한 곳으로 도망갈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가시는 하나님.


 


모세가 왕궁에서 왕손의 자격으로, 왕위계승권자의 자격으로 너무나 좋은 호화로운 삶을 살면서도 갓난아기 때 일을 어렴픗하게라도 기억이 나면서 어린 시절을 되뇌이곤 한다.


친엄마 요게벳이 젖을 물리면서 기도해 주고, 하나님의 언약백성임을 수없이 일깨워주었던 그 어릴 적 기억이 어렴픗하게 되살아나면서 종으로, 노예로 살고있는 히브리인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히브리인들이 사는 모습을 살펴보던 중에 어느 히브리인을 괴롭히는 애굽인들을 쳐 죽이고 모래로 덮어버리는 일이 발생하게 된다.


그 뒷날에도 마을로 나갔는데, 어제 애굽인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그 사람이 이번에는 같은 동족, 히브리 사람을 괴롭히는 것을 보게 된다.


모세는 그 사람에게 “네가 어찌하여 동포를 치느냐?”라고 하면서 만류하려고 한다.


그러자 그 사람은 모세를 향하여 “누가 너를 우리를 다스리는 자와 재판관으로 삼았느냐? 네가 애굽 사람을 죽인 것처럼 나도 죽이려느냐?”라고 하면서 모세가 애굽인을 쳐 죽인 사건이 들통나게 된다.


이 사건을 전해 듣게 된 바로는 모세에게 살인죄에 대하여 책임을 물으려고 한다.


그 당시에는 하셉슈트 공주의 아들인 모세와 투트모세3세가 왕위계승권을 가지고 다투던 시절이다.


투트모세 3세는 모세가 애굽인을 죽었다는 살인사건을 빌미로 아예 정적(政敵)인 모세를 제거하기 위해서 혈안이 되어 있던 시절이다.


그래서 모세는 살아남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애굽을 떠날 수밖에 없게 된다.


급하게 애굽을 떠난 모세는 미디안족들이 정착하고 있는 미디안광야로 피신하게 된다.


모세가 애굽을 떠났기 때문에 투트모세3세도 더 이상 모세를 추격하지 못하게 된다.


모세는 어쩔 수 없이 미디안 광야로 피신하였지만, 하나님은 거기에서 가장 중요한 가족을 만나게 하신다.


미디안의 제사장 이드로의 가정을 만나게 된다.


하나님은 이드로의 딸인 십보라를 아내로 맞이할 수 있도로 감동을 주신다.


십보라와 혼인하여 두 아들을 낳으면서 40년 동안 처가살이하는 가운데 말없이 양을 치는 삶을 산다.


애굽에서 한때 잘나가던 사람이 40년동안 처가살이하면서 양을 치는 삶을 산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모세는 쉽지 않은 삶을 살고 있지만, 하나님은 묵묵히 모세를 지켜보면서 이스라엘의 구원을 추진해 나가고 계신다.


 


만약에 모세가 애굽인을 죽인 살인죄가 들통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투트모세3세와 왕위계승권을 다투었던 사람이기 때문에 투트모세3세는 언제든지 정적인 모세를 없애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러기 때문에 모세는 쥐도 새도 모르게 투트모세3세에 의해서 죽임을 당할 수 있다.


그런가하면 애굽여인과 혼인하여 애굽인으로 살아가는 애굽의 왕손으로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아가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 모세는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움을 입을 수 없다.


하나님은 모세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워야 하기 때문에 애굽을 떠날 수밖에 없도록 하시기 위하여 애굽인을 죽인 살인죄가 들통나도록 하시고, 투트모세3세의 위협을 받으면서 애굽을 떠나도록 하는 것이다.


애굽을 떠난 모세는 애굽보다 더 안전한 미디안 광야에서 이드로의 사위가 되고, 40년을 이드로의 사위로, 십보라의 남편으로, 두 아들의 아버지로, 평범한 목자로 살아가면서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될 수 있는 인격을 다듬으면서 훈련하는 것이다.


목자로 살아가면서 양떼들을 어떻게 이끌어야 하는지, 수많은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나가야 하는지, 얼마나 겸손하고 인내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몸소 직접 배우고 익히도록 하시는 것이다.


 


사실 모세 당사자나 그의 가족들이나 이스라엘 백성들도 왜 이런 일을 당하고 있는지 제대로 깨닫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쩌면 하나님께서 추진하고 계시는 구원의 계획을 깨닫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 애굽 제국으로 인하여 당하는 고통이 너무 힘들고 어렵다고 생각하면서 원망하고 불평하면서 살아갈 뿐,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시려고 뜻을 세우고 그 뜻과 계획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일꾼, 지도자가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에 사람을, 지도자를 양육하고 있음을 깨닫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모세 당자사도 왜 자신에게 이런 일들이 일어나야만 하는지 제대로 깨닫거나 인식하지 못한다.


사람은 아무도 깨닫지 못하는 어두움의 세계를 살아가고 있지만, 여호와 하나님은 하나하나 준비하고 예비하고 인도하고 역사하면서 추진해 나가고 계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꾼, 지도자를 양육하기 위하여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어느 누구도 눈치채거나 깨닫지 못하는 방법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일꾼을 세워나가신다.


오늘날에도 주님의 몸된 교회를 올바르게 세워가기 위하여 하나님은 어디에선가 가장 중요한 일꾼을 남몰래 가장 안전한 곳에 숨겨서 양육하고 있으리라 믿는다.


주님의 몸된 교회와 신앙인들은 점점 더 힘들고 어려운 고난과 역경과 시련의 시간들을 보내게 될지도 모른다.


이렇게 가다가는 주님의 몸된 교회가 영영히 사라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염려와 걱정으로 눈물이 범벅될 정도이다.


그렇지만 우리 하나님은 어디에선가 우리들이 미처 깨닫지 못하는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추진해 나가기 위해서 구체적으로 준비하고 계시리라 믿는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교회,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서 자신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까지도 내어주시면서 구원의 계획을 실현해 나가셨지 않은가?


그러니 아들을 내어주신 하나님께서 그 무엇인들 하지 못하는 일이 있겠는가?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지도 않았던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한국교회와 신앙인들과 선교사님들의 안전과 사역의 열매를 맺어갈 수 있도록 예비하시고 이끌어가시리라 믿는다.


 


L4 & B4.


 


하나님은 애굽에서 종살이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일꾼, 지도자를 예비해 가고 계신다면 오늘날 우리나라와 한국교회와 선교사님들의 사역 처소와 생업 터전을 안전하게 지켜주시고 구원해 주시기 위하여 어떤 방법으로 예비해 나가고 계실까?


미련하고 우둔한 우리들은 미처 하나님의 계획과 추진하고 계시는 기상천외한 방법을 깨닫지 못한다.


인간들이 미련하고 우둔하여 미처 깨닫지 못한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추진하고 계시는 방법을 포기하지 않으신다.


사람들은 깨닫지 못하더라도 우리 하나님은 우리들을 온전하게 지켜주시고 보호하시고 막아주시고 건져주시기 위하여 반드시 누군가를 예비하시고, 어떤 방법을 추진해 나가고 계실 것이라 믿는다.


우리 신앙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님께서 인도해 가시는 과정을 믿는 믿음으로 꾸준하고 신실한 신앙인의 삶을 살아가면 된다.


우리 신앙인들은 지금 우리들 앞에 펼쳐진 갖가지 사건들과 상황들을 잘 이해되지 않더라도 지금까지 신실하게 인도하시고 도와주시고 지켜주시고 건져주시고 막아주신 하나님께서 우리들이 전혀 상상할 수 없는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우리나라를 지키시고 교회를 지키시고 생업터전을 지켜주시고 가정을 지켜주시고 자녀들을 지켜주시면서 이끌어가실 것이라고 믿는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우리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들을 결코 실망시키지 않으시는 분이다.


우리 하나님은 언제나 하나님께서 갖고 계시는 의지와 뜻과 계획을 실현해 나가시는 분이다.


우리 하나님은 오직 하나님의 방법과 의지와 계획과 뜻을 따라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신앙인들을 이끌어가시는 위대하신 분이다.


오직 하나님만을 신실하게 믿음으로 바라보며 하루하루 우리들에게 주어진 삶의 현장에서 최선을 다하여 순종하며 살아가면 된다.


그런 신앙인의 삶을 살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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