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은혜를 잊지 맙시다 (사17: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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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은혜를 잊지 맙시다 (사 17:4-11)
19세기 말 영국 유미주의(唯美主義) 운동의 대표주자인 아일랜드 출신의 천재 작가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 1854-1900)가 쓴 『지옥의 단편』이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이 소설은 예수님께서 과거에 은혜를 베풀어주셨던 몇 사람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우화적으로 그린 것입니다.
예수님이 길을 가시다가 한 알코올 중독자를 만났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보시기에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아 물었습니다. ‘내가 당신을 어디서 본 일이 없습니까?’ 그러자 알코올 중독자가 대답합니다. ‘아, 있었지요. 나는 본래 절름발이였는데 당신이 나를 고쳐주셔서 제가 이렇게 걷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절름발이였을 때에는 이렇게 저렇게 얻어먹고 살았는데 건강해지고 나니 할 일이 없어요. 또 누가 나를 환영하지도 않고요. 그래서 술로 세월을 보내다가 이렇게 알코올중독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또 길을 가시다가 거리를 방황하는 한 창녀를 만났습니다. 가만히 보니 알 만한 사람이었습니다. 간음 현장에서 잡혔다가 예수님의 도움으로 구출된 여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당황해 하시며 물었습니다. ‘그대는 어찌하여 창녀가 되었느냐?’ 그러자 그녀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주님, 주님께서 저를 그 때 구해 주셔서 너무 고마웠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나를 더럽다고 외면했습니다. 아무도 저를 사람으로 취급해 주지 않고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갈 데도 없고 할 일도 없고, 무엇보다도 외로워서 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힘들지만 다시 창녀가 되었습니다.’
또 예수님께서 한 저작거리에서 깡패 한 사람이 사람을 때리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역시 옛날에 본 적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물으셨습니다. ‘자네는 어떻게 하다가 깡패가 되었나?’ 깡패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예수님, 죄송하지만 저는 원래 시각장애자였는데 예수님께서 저의 눈을 치유해주셨지요. 그래서 감격하고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눈을 감고 있었을 때는 몰랐는데 눈뜨고 보니까 세상에 아니꼬운 사람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세상은 더럽고 치사하고 모순되고 부조리했고, 사람들은 부정부패와 타락에 빠져 있었습니다. 이런 세상에 울분이 터져서 주먹을 쓰다 보니 깡패가 되었습니다.’
오스카 와일드는 이 소설을 통해서 받은 은혜에 대한 감사와 감격을 잃어버리는 순간 우리의 삶은 지옥으로 변한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소설 제목을 ‘지옥의 단편’이라고 붙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늘 하나님의 은혜를 덧입어 살아갑니다. 그런데 우리가 받은 은혜를 잊어버리는 순간 받은 그 은혜가 오히려 우리의 삶을 찌르는 날카로운 비수와 같아서 우리를 더욱 비극으로 몰고 갈 수 있습니다. 받은 은혜를 잊지 않고 감사와 감격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그 삶이 천국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은혜를 잊어버리는 순간이 우리의 삶을 지옥을 만들어가는 시작이 될 것입니다.
성경은 그것을 역사적 사실에서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의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북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의 말씀입니다.
본문 4절에 “그날에 야곱의 영광이 쇠하고”라고 말씀하시는데, ‘야곱’은 북 이스라엘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북 이스라엘을 ‘야곱’이라고 부른 이유가 있습니다. 물론 북 이스라엘이 야곱의 후손 가운데 10지파로 이루어진 나라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야곱은 이삭의 아들로 에서와 쌍둥이 동생으로 태어났습니다. 그 이름의 뜻은 ‘속이는 자’ ‘발뒤꿈치를 잡는 자’입니다. 그는 장자로 태어나고 싶어 어머니 복중에서부터 형 에서와 싸운 사람이라고 기록될 정도로, 장자로 태어나지 못한 것에 큰 한을 품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로 에서는 버림받은 자가 되고 동생인 야곱이 아버지의 장자의 축복을 받게 되어 이스라엘의 조상이 됩니다.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총이 아니었다면 야곱은 평생 둘째로 태어난 것 때문에 이름도 없이 사라질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런 야곱을 택하셨고, 그 야곱에게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주신 복을 내려주셨습니다. 그러기에 야곱이 야곱이 될 수 있었던 것, 야곱이 이스라엘 12지파의 조상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이스라엘의 조상이 되었고, 하나님의 복주심 때문에 그의 자손이 이스라엘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북 이스라엘 역시 불신앙에서 출발했습니다.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 왕 때 하나님께서 여로보암을 택하셔서 르호보암이 잘못된 정치를 하는 것을 막으려 하셨습니다. 그런데도 르호보암은 백성을 생각하지 못하고 아집으로 정치를 이끌어가려다가 이스라엘의 10지파가 르호보암을 반역하고 여로보암을 중심으로 북 이스라엘을 세웠습니다. 북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 된 여로보암은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나라를 세운 이후 하나님께 제사하지 못하도록 벧엘과 단에 우상의 신전을 세우고 우상을 숭배하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로 나라를 세우게 되었고, 하나님의 인정으로 나라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여로보암은 그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북 이스라엘에 복을 주셨고, 북 이스라엘을 지켜주셨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우상숭배에 열을 올리던 북 이스라엘에 끊임없이 선지자들을 보내셔서 그들이 죄악의 길에서 돌아서도록 권고하셨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가장 위대한 선지자라고 하는 엘리야와 엘리사가 모두 북 이스라엘을 향해 말씀을 외치던 선지자들입니다. 특히 북 이스라엘의 열세 번째 왕인 여로보암 2세 때에는 최고로 부흥과 번영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백성에게 복을 주신 것입니다. 그것을 오늘 본문 4절에서는 ‘야곱의 영광’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나라가 부강하고 번영을 누렸는데, 이제 하나님께서 그 이스라엘을 심판하셔서 그 영광이 쇠하게 하실 것입니다. ‘살진 몸을 파리하게 하실 것’입니다. 거대한 나라를 이루고 부귀영화를 누리던 북 이스라엘을 바싹 마른 시냇물처럼 말라비틀어지게 하실 것이란 말씀입니다.
이어 나오는 말씀이 모두 그런 말씀입니다. 한 때는 남부러울 것이 없는 나라였습니다. 부귀영화를 누리던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입니다. 5절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추수하는 자가 곡식을 거두는 것처럼,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입니다. ‘르바임 골짜기’는 아주 비옥한 곳으로 유명한 지역입니다. 그곳에서 떨어진 이삭을 줍는 것처럼, 하나님의 심판은 약한 자들이라고 봐주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그 심판이 임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되면 이스라엘의 부귀영화가 하루아침에 사라질 것입니다. ‘바산의 암소’라 불리며 풍부했던 삶이 파리해질 것입니다. 9절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견고한 성벽들로 둘러 쌓인 요새화된 성읍이라 하더라도 초토화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땅은 황폐화될 것입니다. 마치 ‘옛적이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버린바 된 수풀 속의 처소와 작은 산꼭대기의 처소와 같이 폐허가 되고 말 것’입니다. 여기 ‘버린바 된다.’는 말은 옛적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을 점령할 때 가나안 족속들이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자신들의 모든 살림살이를 버려두고 도망치는 것을 연상시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심판하실 때 그들은 그렇게 두려움 속에서 모든 것을 버려두고 남은 것이 없을 정도로 다 잃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반석같이 요동치지 않을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었던 성읍들이 다 파괴될 것입니다.
한때 번창했던 이스라엘이 왜 그렇게 하나님의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예언되고 있는 것입니까? 그 이유를 본문 10절에서 아주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이는 네가 네 구원의 하나님을 잊어버리며 네 능력의 반석을 마음에 두지 아니한 까닭이라.” 그렇게도 번창했던 북 이스라엘이 심판으로 인해 멸망하게 되는 것은 왕권이 약화되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경제적 불황 때문도 아닙니다. 군사력이 약해졌기 때문도 아닙니다. 이유는 오직 하나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을 있게 하신 하나님,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하나님을 그들이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구원의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입니까? 400년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할 때, 그들을 애굽의 바로 왕 아래에 이끌어내신 하나님입니다. 당대 최강대국인 애굽에서 그들이 탈출할 수 있었던 것은 이스라엘에게 힘이 있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들에게 뛰어난 지도자가 있었기 때문도 아닙니다. 그들이 바로 왕을 위협할 정도로 어떤 세력을 규합했기 때문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애굽에서 건져내셨습니다.
애굽에서 탈출한 이후 그들이 광야 40년 동안 먹을 것 입을 것 걱정 없이 살 수 있었던 이유도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수많은 적군의 위협 속에서 이스라엘을 안전하게 지키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사막에 득실거리는 맹수와 전갈과 뱀으로부터 그들의 생명을 보호해 주신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먹을 것을 찾기 힘든 사막에서 40년 동안 먹을 것 걱정 없이 살 수 있었던 이유도, 또 마실 물을 찾지 못해 목말라 죽을 것만 같을 때 그들에게 물을 주신 것도 모두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반석이셨습니다. 능력의 반석이셨습니다. 광야 한 가운데서 반석은 사막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생명을 보존시켜주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광야 한 가운데 있는 반석은 뜨거운 태양 빛으로부터 서늘한 그늘을 만들어줍니다. 또 갑작스럽게 나타난 들짐승이나 약탈자들로부터 숨을 수 있는 피난처가 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그런 분이셨습니다. 그 반석을 ‘능력의 반석’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 반석 아래 피하는 자들을 다 살려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광야의 반석이 그곳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생명을 보호해주는 피난처이긴 하지만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닙니다. 반석 아래로 피하지만 들짐승이나 약탈자들의 시선을 피하지 못해 목숨을 잃는 경우도 간혹 있습니다. 그런데 능력의 반석이신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당신의 품으로 피하는 모든 생명을 보존해 주십니다. 어느 누구 하나 목숨을 잃지 않도록 철저하게 보호해 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능력의 반석이십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렸습니다. 약속의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시고, 그 땅에 거주하던 아낙자손을 물리치고 그들을 그 땅에 살게 하신 분도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여리고 성이 무너지지도 않았을 것이고, 그들을 두렵게 했던 아낙자손을 쫓아내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억압정치를 할 때 그들에게 새로운 나라를 세울 수 있도록 여로보암에게 은혜를 주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북 이스라엘이라는 나라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이 힘들 때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하나님께서 그들은 보호해 주셨습니다. 광야의 반석과 같이 그들을 안전하게 보호해 주셨습니다. 때로는 선지자를 보내셔서 그들에게 생명의 길을 보여주셨고, 그들에게 생명의 길로 돌아서도록 수도 없이 호소하셨습니다. 그들을 살리시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들에게 구원을 주시고, 그들에게 하늘의 복을 주시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잊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렸습니다. 그들은 있게 하신 하나님, 그들의 존재 자체이신 하나님을 잊어버렸습니다. 그들에게 능력을 베풀어주시는 하나님, 그들의 생명을 보존해 주시는 하나님을 잊어버렸습니다.
여러분, 그게 이스라엘 백성들만의 이야기일가요? 하나님을 잊어버린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을 잊는다는 것은 하나님께 관심두지 않고 산다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무시하며 산다는 것입니다.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 하나님 없이도 충분히 내 힘으로 살 수 있는 것처럼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무시하며 하나님께 관심두지 않아도 충분히 내 행복을 내가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며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아도 내가 하는 장사 내 장사수완으로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지 않고 장사하는 것입니다. 직장생활도, 가정생활도 하나님의 간섭이나 도우심 없이도 내가 잘 할 수 있기에, 하나님을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다. 지난 한해 살아오면서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혜가 아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어 은혜 베풀어주지 않으셨다면 오늘 우리가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의 건강을 지켜주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직장생활도, 가정생활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 베풀어 우리 가정을 지켜주지 않으셨다면 우리 가정이 어떤 어려움으로 곤란을 겪었을지 모릅니다. 우리 가정에 어려움이 있었을 때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지 않으셨다면 그 어려움 속에서 우리 가정은 산산조각이 났을지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직장을 지켜주지 않으셨다면 우리 회사는 부도가 나고 나는 실업자가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직장생활하는 것이 힘들지만 그럴 때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셔서 힘든 직장생활도 잘 견디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자녀들을 지켜주지 않으셨다면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을지 아무도 모릅니다. 요즘 뉴스를 통해서 접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라고 생각 들 정도로 상상 이상으로 험악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이 그런 일을 당하지 않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교회에 잘 다니고 있습니까? 주일 아침에 일어나기 싫어하면서 억지로 교회에 끌려나오는 것 같지만 그래도 부모님이 교회 가자고 할 때 교회 따라 나오는 것만도 얼마나 큰 은혜인지 모릅니다. 신앙생활 잘 하라고 권면해도 듣지 않는 자식들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런 자식을 그래도 사랑하시고 은혜 주셔서 큰 문제없이 살아갈 수 있게 된 것만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계속 기도하시고 권면하시면 구원의 반석이신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들을 구원의 자리로 이끄실 것입니다. 공부해야 할 자녀들, 손주들이 공부하지 않아 걱정이십니까? 건강을 잃어보면 공부 좀 잘 못해도 건강하게 살고 있는 것만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건강하게 자라게 은혜 주신 것만도 너무너무 감사한 일입니다.
우리가 살아온 삶의 면면을 깊이 생각해보면 하나님의 은혜가 미치지 않는 곳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너무 자주 하나님을 잊고 살지 않으셨습니까? 우리가 2020년 새해를 시작하면서 한 주 동안 특별기도회를 가졌습니다. 기도함으로 한 해를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우리의 삶을, 우리가 관계하고 있는 구석구석에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가 함께 하시기를 기도했습니다. 지구촌 구석구석에 하나님의 평강이 흘러넘치는 한 해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우리 힘으로 극복할 수 없는 문제가 있더라도 이겨나갈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주님 주신 힘으로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을 잘 감당하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기도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내 삶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는 우리 힘으로 한 해를 살아갈 수 없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더 궁극적으로 말한다면, 한 해를 살아가면서 하나님을 우리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고, 하나님을 잊지 않고 살겠다는 우리의 다짐이기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올 한 해는 하나님을 잊지 않고 사십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시는 은혜를 잊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매일매일의 삶속에서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고 은혜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을 잊지 않고 사십시다. 아무리 힘들어도 하나님의 손을 잡고 일어서는 한 해가 되십시다. 하나님께서도 우리 손을 꼭 붙잡아 주실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에게 남은 은혜가 있음을 말씀하십니다. 비록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잊고,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셨던 은혜를 잊었다 하더라도, 그래서 그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면치 못할 것임을 선포하시면서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은혜 베푸신다고 말씀하십니다. 6절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 안에 주울 것이 남으리니 감람나무를 흔들 때에 가장 높은 가지 꼭대기에 과일 두세 개가 남음 같겠고 무성한 나무의 가장 먼 가지에 네다섯 개가 남음 같으리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의 심판의 때는 감람나무를 흔드는 때와 같을 것입니다. 감람나무에 붙어있는 열매들이 모조리 땅에 떨어질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나님께서 감람나무를 흔들어 열매를 떨어뜨리시는 심판의 때라 하더라도 그 가지 꼭대기에 몇 개는 남겨주신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자비로 남겨두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올해 우리의 삶이 아무리 힘들지라도 ‘감람나무 가지 꼭대기에 과일 몇 개를 남겨놓으신 것’처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남은 은혜가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그 은혜를 기대하며 사십시다. 우리가 아무리 잘못했다 하더라도, 그래서 우리의 삶에 힘들고 어려운 문제가 생기더라도 하나님의 은혜는 결코 멈추지 않습니다.
지난 날 우리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할 뿐만 아니라, 지금 그리고 앞으로 우리에게 베푸실 은혜가 있음을 기억하며 사십시다. 은혜 베풀어주신 하나님, 그리고 은혜 베푸시는 하나님, 은혜 베풀어주실 하나님을 잊지 말고 사십시다. 은혜의 하나님께서 우리를 가장 선한 길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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