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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음질하는 신앙생활 (빌3: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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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음질하는 신앙생활(빌3:12-16)


오늘 본문은 복음을 전하다가 로마 감옥에 갇힌 사도 바울이 빌립보 교회에 보내는 편지의 일부입니다.


이 편지에서 사도 바울은 비록 감옥에 갇혀있지만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앞으로도 계속해서 전진할 것을 다짐하고 있습니다.


그 다짐 속에 주목해야 할 말씀이 ‘달려간다.’는 말인데요, 이 말이 두 번 반복해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하나는, 12절 하 반절에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는 말씀이고요,


다른 하나는, 14절에 나오는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자신의 인생을 달려가는 인생, 달음질 하는 인생이라고 표현하면서 지금까지도 잘 달려왔지만 앞으로도 계속해서 달려갈 것을 결단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인생을 달려가는 것으로 표현한 것은 당시에 흥행했던 운동경기 특별히 마라톤을 비롯한 달리기 경주에서 차용한 말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편지 곳곳에서 운동경기를 통하여 신앙의 귀한 교훈을 하는데요,


오늘 본문 외에도 고린도전서 9장에서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말년에 이르러서는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말씀들을 보면, 그는 평생 신앙생활을 달리기 경주로 생각하며 부름의 상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여 달음박질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운동경기와 믿음의 생활은 정말 많은 면에서 비슷합니다.


먼저는, 상을 위하여 한다는 공통점이 있고요,(고전9:24)


두 번째는, 법대로 해야 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딤후2:5)


세 번째는, 절제를 해야 승리할 수 있다는 점도 비슷합니다.(고전9:25)


그 외에도 많은 점에서 비슷하겠습니다만 그럼에도 한 가지 분명한 차이점이 있는데,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는 점입니다.(고전9:25)


여기에서 사도 바울이 강조하는 것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위해서도 그렇게 애쓰고 노력하는데 하물며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는 우리가 그들만큼 애쓰고 노력해야 않아서 되겠느냐? 는 것입니다.


 


오늘 송구영신예배를 드리면서 지난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우리가 깊이 성찰해야 할 부분이 바로 이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성도 여러분, 사도 바울이 말씀한 대로 우리 인생은 정말 달려가는 인생, 달음박질 하는 인생입니다.


그런 인생을 여러분, 지난 일 년 간 잘 살아오셨습니까?


아니면 힘들다고 그늘에 앉아 달음박질을 쉬고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면서 신앙의 경주를 등한히 하지는 않았는지요?


특별히 지난해에는 코로나 19가 기승을 부리면서 그것에 핑계를 대고 거기에 편승하면서 신앙의 달음박질을 중단하거나 게을리 하지는 않았는지요?


여러분, 우리의 신앙의 경주는 어떤 일이 있어서도 결코 쉬어서는 안 됩니다.


달리기를 포기하거나 등한히 하거나 적당히 해서는 안 됩니다.


어디까지 이르렀던지 그대로 행해야 합니다.(16절)


신앙의 연조가 오래 되었어도 계속해야 되고 나이가 많고 귀한 직분을 맡았어도 계속해야 합니다.


신앙의 경주에서 ‘이제는 되었다, 할 만큼 했다.’고 중단하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나이가 많든 적든, 남자든 여자든, 어린이든 어른이든, 직분이 있든 없든 누구를 막론하고 계속해서 달려가고 전진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전진하고 달려가는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겠습니까?


 


먼저는,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려야 합니다.


 


13절 말씀을 보면,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했습니다.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는 것이 은혜이고 이것이 전진하기 위한 중요한 비결이 됩니다.


지난날을 뒤돌아보면 정말 잊고 싶은 일들이 왜 그렇게 많은지 모릅니다.


지난날은 그만두고 지난 일 년만 생각해보아도 ‘왜 그런 일을 했을까? 왜 그런 일을 하지 못했을까?’ 후회되는 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각종 죄라고 생각되어지는 일들을 서슴지 않았고 용서하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고 더 잘해주지 못했던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다 잊어버려야 합니다.


정말 생각하면 창피하고 몸 둘 바를 모르게 하는 여러 가지 실수와 잘못된 일들을 다 잊어야 합니다.


우리를 실망시켰던 사람들과 일들을 잊어버려야 합니다.


전진하고 달음질하는 우리의 발목을 잡는 것 중에 하나가 자책감입니다.


물론 ‘내가 왜 그런 일을 했을까?’ 스스로 자책하면서 반성하는 것은 전진 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지만 그것에 계속해서 매어있으면 그것은 전진을 방해하는 요소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요셉의 형제들의 발목을 잡았던 것 중에 하나가 동생을 애굽 사람들에게 팔았다는 자책감이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오래갔는지 나중에 요셉을 만날 때까지도 그들을 괴롭혔고 어려운 일을 만나면 그 잘못 때문에 우리가 이런 어려움을 당한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형제들은 또 너 때문에 그렇다고 하면서 한바탕 소동을 벌이지 않았겠습니까?


잊고 싶은 것들을 과감하게 잊어버릴 때 달음박질 하는 삶을 잘 살아갈 수 있습니다.


 


또한 잊고 싶지 않은 것들을 잊어버려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한 일을 잊어버린다고 했을 때 거기에는 자신의 자랑과 업적을 잊어버린다는 의미가 있었습니다.


3장 1절 이하에서 바울은 자신의 육체적인 자랑을 솔직하게 하고 있는데요,


육체적인 자랑 속에는 다른 사람들이 따라올 수 없는 일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가말리엘의 문하생이라든지, 로마의 시민권자라든지,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는 것들은 절대 잊고 싶지 않고 끝까지 간직하고 싶었던 자랑거리가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문제는 그런 자랑과 업적이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아들이고 주님을 따르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런 것들을 내세우면 내세울수록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격은 사라지고 자신을 내세우는 율법주의가 점점 더 올라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잊고 싶지 않고 오래 동안 간직하고 싶었던 자랑거리들을 다 잊어버리기로 작정합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지난날의 업적이나 자랑거리를 다 잊어버리시기 바랍니다.


그것 때문에 안일에 빠지고 안주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귀한 직분을 갖고 있거나 신앙생활을 오래 동안 했던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 정도면 되지 않았나?’ 하는 자만심이 앞으로 전진 하고 온전하게 성장하는데 많은 방해를 하게 됩니다.


‘나만큼 충성하고 헌신한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하는 비교의식이 달음박질하는데 큰 방해가 됩니다.


빨리 잊어버리고 싶은 것도 잊어버려야 하겠지만 잊고 싶지 않고 간직하고 싶은 자랑거리나 업적도 빨리 잊어야 합니다.


잊어버릴 것을 과감하게 잊어버리는 것이 전진 하고 달음박질하는 올바른 자세임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해야 합니다.


 


12절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릴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붙잡아야 할 앞에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부름의 상입니다.


14절 말씀에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신앙의 달음박질을 하는 목표는 부름의 상입니다.


부름의 상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것은 죄와 사망에서 구원을 받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일을 위하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고 그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히도록 하셨고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하도록 하셨습니다.


이제 그를 믿는 자는 주님과 함께 부활하게 됩니다.


이것이 구원이요 영생이요 천국의 삶이요 성도들의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에서 “만일 그리스도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라고 말하면서


그러나 우리에게는 이 부활이 있기에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힘쓰는 자들이 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나 우리에게 이 부름의 상보다 더 소중하고 더 귀한 것은 없습니다.


이 부름의 상을 위하여 계속해서 전진하고 또 전진해야 합니다.


 


앞에 있는 우리의 목표는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12절 하 반절의 말씀을 보면,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사도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자신을 만나 사명을 주신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을 구원하신 주님께서 주신 사명, 땅 끝까지 이르러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증거 하라는 이 사명을 평생 동안 잊지 않고 그 사명을 위하여 달음박질하는 삶을 살아갔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나 어떤 목적으로든지 그리스도께 붙잡혀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나를 향하신 그리스도의 사명과 뜻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붙잡아준 목적과 사명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하여 전 생애를 걸고 추구하면서 달음박질해야 합니다.


 


우리가 잡아야 할 것은 그리스도의 온전한 형상을 이루는 것입니다.


12절에서 사도 바울은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내가 온전함을 향하여 달려가고 있다는 말인데요, 그것은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는 삶을 말합니다.


당시 빌립보 교회에는 도덕 폐기론자들이 있어서 은혜로 구원받은 자들에게는 어떤 율법도 필요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중에 있기 때문에 무엇을 해도 상관없고 하나님은 언제나 용서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들에게 율법을 지키고 온전해지기 위해 더 이상의 훈련이나 노력은 필요가 없었습니다.


이런 도덕 폐기론자들을 향하여 사도 바울은 ‘아니다 우리는 이미 얻은 것도 아니고 온전히 이룬 것도 아니기에’ 그리스도의 완전을 향하여 끊임없이 애쓰고 노력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도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처럼 온전하게 살 수는 없지만 그러나 주님의 형상을 닮아가는 목표를 향하여 끊임없이 애쓰고 노력하고 전진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달음질하는 목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021년을 시작하는 여러분들 앞에 있는 푯대는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무엇을 바라보고 무엇을 이루기 위하여 무슨 목표를 향하여 1년을 살아가기로 작정하셨습니까?


이 새해에 다짐하고 결단하는 것이 참으로 많겠습니다만 한 가지 분명히 해야 할 것은 부름의 상과 맡겨준 사명을 이루고 그리스도의 온전한 성숙을 이루는 일을 향하여 올 한해도 끊임없이 노력하고 달음질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내가 세운 목표나 비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 즉 주님께서 주신 목표와 비전과 꿈을 향하여 달려가야 합니다.


성경에서는 자기가 정해서도 안 되고 다른 사람이 정해준 것도 안 되고 하나님이 정해주신 것만이 진정한 인생의 목표가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만이 헛되지 않고 썩지 않을 면류관이 되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로, 우리가 전진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잘 달려가야 합니다.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달려가노라.”


여기에서 ‘달려간다.’는 말은 이미 위에서 말씀드렸습니다만 운동선수가 목표를 향하여, 상을 위하여 힘차게 뛰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앞으로 달려가기 위하여 우리는 결코 뒤를 돌아보아서는 안 됩니다.


롯의 처가 뒤돌아보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뒤를 보다가 소금기둥이 되고 말았습니다.


뒤를 돌아보지 않을뿐더러 좌우를 기웃거리지도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시선은 오직 앞을 향하여 주님을 향하여 고정시키고 믿음의 경주에만 신경을 써야 합니다.


달려가는 일에 있어서 어떤 일이 있어도 중단되어서는 안 되고 게을러서는 안 되고 딴 짓을 해서도 안 됩니다.


우리에게는 끊임없이 달려가는 전진만이 있을 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씨 뿌리는 비유를 통하여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환난이나 박해를 넘어서야 하고 또한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을 이겨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달음박질 하는 인생의 길에도 이런 많은 방해요소들이 있습니다.


이런 것에 넘어지지 않고 이런 것에 한 눈 팔지 않고 이런 것에 유혹받지 않고 끝까지 믿음의 경주를 잘 감당하는 2021년 새해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20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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