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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로 회개 하셨습니까? (행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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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로 회개 하셨습니까? (사도행전 3장 1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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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당시 부패한 카톨릭 교회 권력를 비판하는 대자보를 독일의 비텐베르크 성당 문에 붙였습니다. 이 내용을 ‘루터의 95개조 반박문’이라고 이름 합니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종교개혁 운동의 발단이 되었습니다.


 


종교 개혁하면 ‘면죄부(혹은 면벌부, 免罰符)’를 생각 하실 겁니다. 교황과 카톨릭 교회가 돈을 받고 면죄부를 판매 한 것도 종교개혁의 큰 이유 중의 하나였지만, 루터가 말하고 싶은 종교개혁의 가장 중요한 이유는 죄에 대한 성도 개인의 자각과 회개 운동 이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95개조 반박문의 첫 내용도 ‘회개’를 강조합니다. 우리 다 같이 95개조 반박문 중에 맨 앞의 4개 항목을 읽어 보겠습니다.


 


  1. 만유의 주님이시며 영원한 지도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회개하라고 선포하신 그 골자는 이 땅의 성도들의


     전 생애가 항상 참회가 되어야 함을 의미하노라.


  2. 회개라고 하는 말은 사제의 직권으로 수행하는 고해성사와 그에 따른 만족과 같은 성례 (Sakrament)로


    이해 되거나 되어 질 수 없다.


  3. 오늘의 선언은 내적인 회개만을 뜻한 것도 아니고 그럴 수도 없는 법이다. 만약 육신의 내적인 회개가 정욕


    까지도 정복하지 못한다면 그 회개는 무가치한 것이다.


  4. 그런 이유로 성도가 자기 자신을 버리지 않는 한 참회의 가치는 무용이며 징계 또한 계속될 것이며 성도의


    생명이 끝날 때까지 괴로움은 계속될 것이다.


 


어떻습니까? 루터가 비록 거대한 교회권력과 교황의 잘못된 권위에 도전하는 종교개혁을 부르짖었지만, 그 내면에는 죄에 대한 우리 자신들의 냉철한 자기 성찰과 그 죄를 끊어 내려는 처절한 영적 전쟁을 선포한 것입니다. 종교 개혁운동의 구호 중 하나는 “근본으로 돌아가자(Ad Fontes-라틴어 아드 폰테스- , to the fountain)”는 것이었습니다. 근본(근원)은 성경을 말합니다. 곧 “성경대로 믿고, 성경대로 행동하고, 성경대로 천국에 가자” 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성경은 말씀이고, 말씀은 곧 예수님이시죠. 곧 종교 개혁 운동가들이 말했던 근본은 예수님에게로 돌아가자, 예수님이 살았던 삶으로 살아가자는 운동이었습니다. 예수님 믿고 죄 사함 받아 구원 받았음을 평생 감사하고, 예수님처럼 복음을 위해 한 세상 열심히 살아가다가, 예수님처럼 죽음 가운데서 부활하여 영생에 참여하는 것, 이것이 곧 우리가 살아가는 근본적인 삶의 태도이어야 합니다. 이렇게 근본, 근원으로 돌아가는 가장 큰 핵심 키워드가 ‘회개’입니다. 회개는 구원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습니다.


 


우리가 한 번 생각해 볼 것은, 회개해야 구원 받을 수 있을까요? 아니면 회개하지 않으면 구원 받지 못하는 것일까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오해 하고 계시는 분들은 회개하지 않으면 구원 받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분명하게 말씀 드리면, 우리가 회개했기 때문에, 회개한 그 행위를 보시고 구원받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구원은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로만 주어지는 것입니다. 행위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그럼 회개는 왜 해야 합니까? 이미 예수님이 죄를 다 용서하셨는데 회개가 꼭 필요합니까? 라고 의문을 가지실 수 있습니다.


 


회개라는 것은 죄를 죄로 느낄 때 일어나는 행동입니다. 죄가 내 자신의 삶을 철저하게 파괴하고 망가트리고 있다는 것을 실감나게 깨달을 때 일어나는 것이 회개입니다. 죄를 죄로 느끼지 못하면 회개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럼 우리가 죄를 느끼는 것은 언제일까요? 그것은 말씀과 접촉하고 그 말씀이 내 안에 들어올 때입니다. 말씀은 거울과 같아서 내 자신의 내면을 비춰 줍니다. 자신이 지은 죄들이 거울에 비춰 지듯이 속속들이 들어나고 만 천하에 공개 되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부끄럽겠습니까?


 


부끄러움도 잠시 일 뿐, 그 죄들로 인해 내 자신이 마지막 날에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말할 수 없는 두려움이 찾아옵니다. 이처럼 말씀을 접촉하게 되면, 죄를 느끼고, 두려움을 알기 때문에 회개의 행동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회개는 내가 지은 죄를 용서해 주실 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리고 회개를 통하여 내 몸과 영혼이 자유함을 얻게 된다는 알게 되었을 때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행동입니다. 곧 회개는 죄를 용서해 주시는 예수님을 알고 있을 때에만 일어나는 특별 현상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 볼까요? 왜 회개가 필요 합니까? 내가 현재, 말씀을 접촉하며 살아가고 있고, 내 곁에 나의 죄를 용서해 주시는 예수님이 계시다는 사람이 회개를 하게 됩니다. 내가 회개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예수님이 나와 함께 하고 계시다는 증거입니다. 곧 나는 구원 받은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회개 하지 않고 내 멋대로 계속 살아가는 사람은 말씀의 거울을 비추지 않기 때문에, 죄를 죄로 느끼지도 못하고, 죄를 용서해 주시는 예수님을 필요하지 않다고 여깁니다. 평생토록 회개하지 않는 삶이 지속 되는 사람은 곧 구원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정리해 드리면, 구원받은 사람은 말씀 이신 예수님이 거울이 되어 주셔서 죄를 부끄럽게 여기고 회개를 계속 합니다. 그러나 구원 받지 못한 사람은 죄가 감춰져 있기 때문에 회개할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왜 회개가 필요하냐고요? 사람이 죄를 회개 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곧 구원받은 증거요 징표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루터가 말한 것처럼 구원받았다면 회개는 우리 삶의 전 인생에 걸쳐 뚜렷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구원자 예수님으로 인해, 죄 사함 받고 구원 받았다는 사실을 굳게 믿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럼 이 시간에 우리 한 번 진지하게 우리 자신들에게 설교의 제목으로 질문을 던져보겠습니다. “진짜로 회개 하셨습니까?” 루터의 반박문에 의거해서 제가 한 마디 추가해서 질문 드리면, “진짜로 전 인생에 걸쳐 회개하며 살아가고 계십니까?” 저도 이 질문에 확실한 대답을 하기가 꺼려 집니다. 그만큼 자신이 없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회개라는 것이 단순하게 죄를 고백하는 행위로 그치지 않는다는 것을 들려줍니다. 우리 함께 본문 말씀을 읽어 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아멘.


 


이 말씀은 오순절 성령 충만함을 받은 베드로가 솔로몬행각에서 유대인을 향해 선포한 말씀입니다. 베드로는 분명하게 말하기를, “회개하고 돌이켜 죄 없이 함을 받으라” 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이 진정한 회개를 담고 있습니다.


 


1. 먼저 “회개하라”는 것은 자백(고백, 토설, 인정) 한다는 뜻입니다. 2. 두 번째 “돌이키라”는 것은 회개하며 고백한 죄의 행동을 다시는 반복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3. 세 번째 “죄 없이 함을 받으라”는 것은 죄 사함의 주체가 되시는 예수님으로부터 용서함의 선언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 아는 내용인 것 같은데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닙니다. 이 말씀에 비추어서 믿는 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부류의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첫째는, 도무지 회개할 줄 모르면서, 자신은 너무나 신앙생활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하거나, 다른 사람은 다 아는데도 자기 자신만 죄를 죄로 여기지 않는 사람입니다. 죄의 고백은 털끝만큼도 하지 않으면서 구원받았다고 외칩니다. 스스로 구원에 이르렀다고 오판하는 사람이야 말로 제일 불쌍한 사람입니다.


 


둘째는, 눈물도 흘리고 입술로 고백하는 회개는 자주 하지만, 삶의 방식에서는 전혀 개선의 여지가 없이 계속 죄를 범하는 사람입니다. 다슨 사람을 정죄하고, 거짓말 하고, 언행이 불손하고, 신앙생활은 게으르고, 맡은 일은 대충 합니다. 그러면서도 자기 자신이 거룩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라고 자랑합니다. 행동이 돌이켜지지 않는 회개는 하나님을 기만하는 행위입니다.


 


셋째는, 죄와 죽기까지 피 흘리며 싸우는 영적 전쟁을 결행하는 사람입니다. 루터가 말한 것처럼, 자신의 내면에 있는 정욕을 제거하지 못하면 회개가 무가치한 것으로 여기고, 온전한 죄 사함에 걸맞게, 자기 자신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가려는 삶을 일생토록 지속하려는 사람입니다.


 


이 세 번째에 이를 때에야 진정한 회개가 완성이 됩니다. 회개의 최종 목표는 근본으로 돌아가자는 것처럼, 세상을 향하던 나의 시선, 마음, 행동을, 예수님께로 맞추고 일평생 그렇게 살아가려는 진정성 있는 태도를 취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진정한 죄 사함의 은혜 안에 거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집니다. “진짜로 회개 하셨습니까?”


 


오늘 본문 마지막에 “이같이 하면(곧 진정한 회개를 이루며 살아가는 사람)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에 이른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많은 해석이 나올 수 있습니다. 기본적로 평안을 얻고 기쁨 가운데 지내는 것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회개를 통해 찾아오는 진정한 새로움은 하나님 나라를 날마다 경험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회개의 능력이요, 회개를 통한 복 주심의 은혜입니다. 진짜로 회개 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 나라가 여러분의 삶에 충만하게 임하여 주실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 “회개하라, 돌이키라, 죄 없이 함을 받으라”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이제 좀 이해가 되시나요. 회개는 마음을 통해 입으로 고백하며, 몸을 통해 의지적으로 행동하고, 영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종합적인 회복운동입니다. 일생동안 한 순간도 쉬지 말고 일어나야 하는 신앙의 부흥 운동입니다.





영국의 국교인 성공회에서 세례를 베풀 때 이렇게 선언 한다고 합니다. “내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노라. 이 아이가 앞으로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고백하기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깃발 아래서 죄와 세상과 마귀를 대적하여 용감하게 싸우고, 그 목숨이 다하기까지 그리스도의 신실한 군사와 종으로 살아갈 것이라는 표시로, 내가 이 아이에게 십자가의 성호로서 축복하노라”


 


성공회 교인이든 아니든 간에 분명한 한 가지는, 그리스도인의 싸움은 엄청난 실재이며, 가장 중요한 신앙의 주제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싸워야 합니다. 반드시 이겨야 합니다. 이미 승리하신 주님이 계시기 때문에 우리도 반드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제가 회개에 대해 많이 말씀드린 내용이 있습니다. 회개라고 할 때 한자로 ‘회(悔)’자는 후회한다, 탄식한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구약에서 회개를 뜻하는 “나함”이라는 단어는 탄식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회개를 뜻하는 또 다른 히브리어 “슈브”는 돌아간다는 뜻입니다. 돌아간다는 것은 곧 고친다, 한자로 ‘개(改)’를 뜻하는 것입니다. 개인의 강한 의지가 반영된 단어입니다. 이렇듯 회개(悔改)는 후회하고 탄식함을 바탕으로 돌이며 고치는 행동에 이르는 것입니다.


 


죄를 짓고 후회만 반복하는 사람은 진정으로 회개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하나님도 후회만 할 뿐 전혀 행동의 변화가 없는 사람의 회개는 들어주지 아니 하십니다. 진짜로 회개하셨습니까? 라고 어느 누가 물어 보시더라도, “네, 제가 진짜로 회개했습니다. 고백했습니다. 돌이켰습니다. 죄 사함의 은혜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만 살아갑니다” 힘차게 고백하며 살아가시는 사순절 기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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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에게 회개할 수 있는 후회하고 탄식하는 마음을 주시고, 돌이키고, 고치려는 굳센 의지로 인도하여 주옵소서. 회개하는 자에게 새 삶을 허락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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