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백성의 삶 (수8:3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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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백성의 삶 (수 8:30-31)
30. 그 때에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에발 산에 한 제단을 쌓았으니 31. 이는 여호와의 종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한 것과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쇠 연장으로 다듬지 아니한 새 돌로 만든 제단이라 무리가 여호와께 번제물과 화목제물을 그 위에 드렸으며
오늘은 "천국백성의 삶"이라는 제목입니다. 우리가 천국 백성으로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말씀입니다. 감리교를 만든 존 웨슬레의 유명한 일화입니다. 존 웨슬레가 기도하다가 잠이 들어 꿈에 천국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가 천국에 들어서기 전에 천국 문을 지키고 있던 천사에게 “저 위대한 메도디스트 운동을 하던 감리교인들이 얼마나 천국에 들어와 있습니까?” 그러자 천사는 잠깐 기다리라고 한 후 명부를 한참 뒤지더니 “미안하지만 감리교인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깜짝 놀란 웨슬레는 다시 물었습니다. “아니 그럼 내 신앙이 잘못된 모양이군요. 그렇다면 영광스런 칼빈의 5대 교리를 강조하던 장로교인들이 다 천국에 온 모양이지요? 그들은 몇 명이나 왔습니까?” 천사는 한참을 뒤져보더니 “미안하지만 장로교인은 한사람도 오지 않았습니다.” 이 말을 들은 웨슬레는 “그렇다면 아무래도 우리 종교개혁은 대단한 실수였나 보군요. 그러면 천주교인들이 다 온 모양인데 그들은 얼마나 들어와 있습니까?” 이번에도 천사의 대답은 똑같았습니다.
웨슬레는 천사의 대답에 큰소리로 되물었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천국에 들어왔단 말이오?” 천사는 방긋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습니다. “이 천국에는 감리교인도 장로교인도 천주교인도 아니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의 구주로 믿는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들만 와 있습니다.” 그러더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알아야 합니다. 예수 믿어도 하나님 나라의 풍성함을 누리는 것은 동일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풍성하게 누리고 어떤 그렇지 못하고 삽니다. 천국백성으로 합당한 믿음을 갖고 살아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이 그것을 보여줍니다. 본문은 아이성 전쟁 직후 이스라엘이 에발산에 여호와의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제사하며 두 산에 나누어 서서 축복과 저주의 말씀으로 맹세하며 약속한 말씀입니다. 이 일은 신명기 27장과 28장에서 모세가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꼭 해야 할 일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그렇게 한 이유는 가나안은 약속의 땅으로 그 땅의 주인이 되려면 하나님과 약속한 대로 반드시 하나님을 경외하고 죄를 두려워하는 거룩한 삶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아이성을 정복한 후에 더 깊숙이 북쪽으로 30km지점으로 나가 에발산에 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며 하나님 앞에 약속했습니다.
즉 이 약속을 어기면 가나안에서 쫓겨나는 것입니다. 이걸 구원에서 취소된다고 적용하면 교리적으로 잘못된 주장이고 하나님 나라의 풍성한 은혜를 누리지 못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천국 백성으로서 하나님 나라의 풍성함을 누리려면 갖추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 갖추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1. 늘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천국생활의 기본입니다. 누구를 위한 제단이었습니까? 30-31절에 “그 때에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에발 산에 한 제단을 쌓았으니 이는 여호와의 종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한 것과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쇠 연장으로 다듬지 아니한 새 돌로 만든 제단이라” 아주 조건이 특별합니다. 귀한 진리가 담겨 있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여호와를 위한 제단이었다는 점입니다. 우리를 위한 제단이 아닙니다. 예배하면 은혜 받는 것은 사실이지만 내가 은혜 받기 위해서 예배하면 예배의 목적에 위배됩니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예배해야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십니다.
분석해 보면 은혜 받으려는 마음도 일종의 욕망입니다. 나쁜 욕망이 아니지만 한 편으로 이 마음이 온갖 문제를 일으킵니다. 체험이 없으면 불만을 품게 되고 무언가 바라는 마음 때문에 하나님 앞에 마음이 활짝 피지 못합니다. 예수 안에서 주시지 않은 것이 없는데 무엇을 얼마나 어떻게 해주셔야 화평한 마음으로 나갈지 이 욕망들이 우리의 기도를 방해하고 찬양을 방해합니다. 복음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목적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18:3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엡1: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우리를 택해 주시고 거룩하게 해주시고 자녀 되게 하시고 영광스런 은혜를 주셨다고 했습니다.
자녀 삼아주시고 예수 안에서 영광스럽게 해주신 것만 생각해도 찬송이 나옵니다. 이처럼 어린이처럼 하나님을 나의 전부로 삼고 하나님 때문에 기뻐하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천국은 예배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위한 예배가 되지 않으면 그 은혜를 누릴 자격이 없습니다.
2.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어야 합니다.
어디에 쌓은 제단입니까? 30절 하 반절에 “에발 산에 한 제단을 쌓았으니” 이것 역시 특별합니다. 거기에는 나란히 에발산과 그리심산이 있습니다. 에발산은 저주의 산이고 그리심산은 축복의 산입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제단은 에발산에만 쌓았습니다. 축복의 그리심산이 아니라 왜 에발산이었을까요?
여기에 대해서 성경학자 매튜헨리는 ‘이는 율법으로는 우리가 마땅히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는 그곳에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희생시키며 그리고 우리의 중보를 통해서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게 되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했습니다. 매튜헨리는 상당히 은혜로운 학자이기 때문에 본문을 구속사적으로 해석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살 수 없습니다.
성지를 소개한 사진을 보면 그리심산은 푸른 풀로 가득한데 에발산은 풀 한 포기 없고 황량하기 짝이 없는 바위과 자갈로만 된 산이었습니다. 지진이라도 지나간 듯 폐허를 보는 듯했습니다. 이게 바로 죄악된 우리들의 원래 모습입니다. 이처럼 하나님 없이는 한 순간도 살 수 없고 생명 한 점도 없는 황폐한 심령인 것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거기에 제단을 쌓았듯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다고 날마다 사모하는 심령으로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예배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황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멀리하면 죽는다는 절실한 마음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세요. 천국은 게으른 자의 나라가 아닙니다.
이 노래 기억하시지요? “새 나라의 어린이는 일찍 일어납니다. 잠꾸러기 없는 나라 우리나라 좋은 나라” 우리가 어릴 때 불렀던 윤석중 작사, 박태준 작곡의 추억의 노래입니다. 이 분들이 다 예수 믿는 분들입니다. 어쩌면 이렇게 복음적인지 하늘나라, 땅의 나라 다 통하는 노래입니다. 게으르면 천국의 복을 누리지 못합니다. 하나님 없으면 에발산 같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3. 말씀 안에서 변화해 나가시기 바랍니다.
또 특별한 규정이 보입니다. 31절에 “이는 여호와의 종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한 것과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쇠 연장으로 다듬지 아니한 새 돌로 만든 제단이라”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쇠 연장으로 다듬지 아니한 새 돌로 만든 제단이어야 합니다.
여기 율법책이란 출22:25에 “다듬은 돌로 쌓지 말라 네가 정으로 그것을 쪼면 부정하게 함이니라” 했고, 또 신27:6에는 “또 화목제를 드리고 거기에서 먹으며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하라” 했던 말씀을 가리킵니다.
그것은 정으로 쪼다 보면 돌 위에 올라가게 되어 하체로 인해 제단이 부정하게 되고, 철은 전쟁의 상징으로 거룩함에 합당하지 않으며, 이미 썼던 헌 돌은 새로운 은혜를 상징하기에 합당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 앞에서 우리 마음이 부정한 마음, 악한 마음, 불신의 마음이어서는 안 됩니다.
믿음이 어릴 때는 봐주시지만 장성할 때가 되었는데도 어린 짓을 하면 봐주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갈5:21에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했고, 롬12:1에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했습니다. 아무리 큰 은혜를 받았어도 옛 날로 돌아가면 그 은혜 다 쏟아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벧후2:20-22에 “만일 그들이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 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그들에게 나으니라 참된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그들에게 응하였도다” 했습니다.
그 심령에 타오르는 정죄의 불길을 누가 피할 수 있겠습니까? 그게 현세에서 경험하는 1차 마음의 지옥입니다. 답답하고 괴로워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666을 받은 자처럼 심령에서 끝없는 고통과 타오르는 불길이 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학자들은 '666은 모든 죄악의 총체를 가리킨다.' 라고 했습니다. 보혈의 공로를 모르거나 회개하지 않거나 그것이 그렇게 두려운 것입니다. 성도의 마음에 이런 괴로움이 올 수 있지만 그러나 성도는 회개할 수 있습니다.
4. 몸과 마음을 드리고 속죄의 은총을 늘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31절 하 반절에 “무리가 여호와께 번제물과 화목제물을 그 위에 드렸으며” 신27:7에 보면 “또 화목제를 드리고 거기에서 먹으며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하라” 했습니다. 번제는 전체를 태워 드리는 헌신의 제사요, 화목제는 하나님과 화목, 그리고 이웃과 화목의 은혜를 감사하며 먹고 마시며 즐거워하는 제사입니다.
이처럼 몸과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며 사세요. 그리고 화목제와 같이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신 예수님의 구속의 은총을 날마다 즐거워하고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롬5:1에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너 구원해 주신 은혜를 찬양했던 것처럼 우리가 날마다 예수 안에서 허락하신 온갖 은총을 찬양하며 사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은혜를 누리는 비밀입니다. 나는 죄인이지만 아버지의 용납하시는 사랑과 예수님의 보혈로 용서 받았음을 믿고 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회개하더라도 용서 받은 그 화평의 믿음 안에서 하시기 바랍니다. 보혈의 확신이 없으면 은혜가 사라집니다.
이 누리는 믿음의 훈련을 열심히 하세요. 그 뿐 아니라 우리를 택하여 주시고 자녀 삼아주시고 하늘의 복을 주신 것을 영광의 찬송으로 영광 돌려 드리시기 바랍니다.
1. 샘물과 같은 보혈은 임마누엘 피로다 이 샘에 죄를 씻으면 정하게 되겠네 정하게 되겠네 정하게 되겠네 이 샘에 죄를 씻으면 정하게 되겠네 2. 저 도적 회개하고서 이 샘에 씻었네 저 도적같은 이몸도 죄 씻기 원하네 죄 씻기 원하네 죄 씻기 원하네 저 도적같은 이 몸도 죄 씻기 원하네 3. 속함을 얻은 백성은 영생을 얻겠네 샘 솟듯 하는 피권세 한없이 있도다 한없이 있도다 한없이 있도다 샘 솟듯 하는 피권세 한없이 있도다 4. 날 정케하신 피 보니 그 사랑 한없네 살동안 받는 사랑을 늘 찬송하겠네 늘 찬송하겠네 늘 찬송하겠네 살동안 받는 사랑을 늘 찬송하겠네 5. 이후에 천국 올라가 더 좋은 노래로 날 구속하신 은혜를 늘 찬송하겠네 늘 찬송하겠네 늘 찬송하겠네 날 구속하신 은혜를 늘 찬송하겠네. 이와 같은 찬양과 영광이 바로 그 복을 누리는 길이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예수 믿어 천국 백성입니다. 아버지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생각하면 몸과 마음을 다 드려 날마다 하나님을 찬송하며 살아도 부족한 우리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에발산에서 하나님께 제사하며 약속의 땅의 백성으로서 살기로 약속했듯이, 우리 모두 날마다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예배하고, 사모하고 갈망하고 가까이하고, 늘 회개하며 정결하게 하고, 그리고 날마다 화평한 마음으로 구속의 은총을 찬양함으로 하나님 나라의 은혜의 풍성함을 영원히 누리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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