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갈 길 다 가도록 (삼상6:10-16)
본문
나의 갈 길 다 가도록/사무엘상 6 : 10 - 16
할렐루야!!
오늘은 참으로 의미 깊은 날입니다. 2019년의 마지막 주일 밤입니다 금년이 앞으로 꼭 이틀 남았습니다. 이 시간에도 하나님은 변함없이 우리들에게 그의 이름을 부르는 성도들에게 한량없는 은혜를 주십니다. <아 멘>
금년 한 해를 다 보내고 마지막 종지부를 찍어야 하는 이 시간 우리는 지난 한 해를 돌이켜 보면서 과연 한 해를 얼마나 후회 없이 살아왔는지 한 번 돌이켜 보아야 하겠습니다.
나는 지난주일 1년을 권투경기 12라운드에 비유해서 말씀드린바 있습니다. 우리는 금년 1년 중 1달을 1라운드로 보며 30일을 3분으로 비유해 볼 때 우리들의 지나온 삶이 꼭 권투경기와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권투선수가 12회전의 경기를 다 끝내고 자기 코너에서 기진맥진한 중에 심판의 판결을 기다리는 그 순간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권투 경기에는 어느 한 선수가 일방적으로 잘 할 수도 있고 또는 자신이 얻어맞아 다운이 되기도 하며 어려운 상황에 처할 때도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지난 1년 간 우리들은 쓰러져 다운이 되었을 때도 있었으며 완전히 패색이 짙어지다가 기사회생한 적도 있습니다. 금년 1년의 경기를 다 끝내고 이제 주님 앞에 심판을 기다리는 심정은 어떠하신지요? 주님께서 과연 여러분의 손을 들어주면서 여러분의 승리를 인정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우리 성도들의 신앙생활을 운동선수에 비유한 적이 있습니다.
(딤후4:7-8)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사도 바울과 같이 우리들은 금년 1년 동안 선한 싸움을 잘 싸워왔으며, 그 싸움에서 승리를 하였는지, 1년간을 잘 달리면서 믿음을 지켰는지, 과연 의의 면류관을 얻을 수 있을는지,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 삼상6:10-16절의 말씀은 4장에서부터 읽어야 연결이 되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나라의 사사시대 엘리 제사장이 나라를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엘리와 그의 아들들은 하나님 보시기에 부족함이 너무나 많이 있었습니다. 엘리 제사장의 무력과, 그의 아들인 홉니와 비느하스의 패역한 악행은 급기야 하나님의 진노를 자초하고 말았습니다.
불레셋나라의 침략으로 인하여 이스라엘 나라는 참패를 당하고 나라는 온통 수라장이 되었습니다. 엘리 일족이 멸문지화를 당하고 하나님의 선민의 상징인 법궤를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이 됩니다.
이스라엘 나라의 법궤를 빼앗아간 불레셋나라에 하나님의 재앙이 내려 법궤를 두는 성읍마다 독종이 퍼져서 수백, 수천 명씩 죽는 재앙이 일어서 불레셋나라의 방백들이 의논 끝에 이 나라의 재앙이 이스라엘 나라에서 빼앗아온 법궤 때문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그 법궤를 이스라엘 나라로 돌려보내기로 작정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새 수레를 만들고 수레를 메어보지 않은 소중에 새끼 갖은 소를 택하여 송아지는 떼어놓고 수레에 메워 법궤를 싣고 이스라엘 나라 벧세메스를 향하여 내몰았습니다.
이 소들은 젖 먹는 새끼들을 떼어놓았지만 수레를 끌고 이스라엘 나라를 향하여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곧바로 벧세메스까지 달려왔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곡식을 거두다가 수레에 법궤가 실려 오는 것을 보고 맞이하여 그 소를 잡아 제물로 드렸습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들은 2019년의 마지막 주일을 맞이하여 법궤를 실은 수레를 끌고 불레셋에서 이스라엘 벧세메스까지 달려온 이 소들을 통하여 오늘의 우리들이 지나온 1년을 돌이켜 보면서 과연 나는 지난 1년을 어떻게 달려왔는가를 생각하면서 신년을 맞기 전에 새로운 각오와 결심을 하시기 바랍니다.
1. 그 소들은 수많은 소들 중에서 선택을 받은 소들입니다.
불레셋 나라의 소가 어찌 이 두 마리뿐이겠습니까? 수를 셀 수 없는 많은 무리 중에서 특별히 사명을 띠고 선택받은 소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도 이 소들과 같이 사명 받은 성도입니다. 이 세상에, 아니 이 동리에 사는 사람들이 어찌 여러분들뿐이겠습니까? 여러분들은 분명히 이 소들과 같이 이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의 섭리와 뜻이 계셔서 큰 사명을 띠고 부름 받은 자들입니다.
군인은 나라의 부름을 받으면 나라의 명령에 따라 살고 죽는 것이 군인이듯이 하나님의 성도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살고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서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2. 소들은 젖 먹는 송아지를 집에다 떼어놓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수레를 끌고 가는 소는 송아지가 젖을 먹기 위해 어미 소의 다리 사이로 왔다 갔다 하면 수레를 끌고 갈 수가 없습니다. 어미가 새끼를 떼어놓고 갈 때에 그 마음이 어떠하였겠습니까?
사명을 위해서는 모든 거치적거리는 것들을 과감히 끊어버려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천성을 향하여 가는 길에 거치적거리는 걸림돌이 있으면 과감하게 모두 끊어버려야 합니다.
창22장에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모리아산에서 제물로 드리는 내용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3일 길을 걸어서 모리아산에 도착하였을 때에 함께 동행한 하인들을 산 아래에 머물게 하고 이삭에게 나무를 지워서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만약에 그의 하인들이 끝까지 따라갔다면 아브라함의 하는 행동을 보고 가만있었겠습니까? 그래서 아브라함은 일찍이 걸림돌이 되는 하인들을 산 아래에 머물게 하였던 것입니다.
세상의 미련도 끊어버리지 못하고 하나님의 나라도 포기하지 못하고 중간에서 머뭇머뭇 해서는 안 됩니다.
3. 이 소들은 무거운 수레를 끌고 벧세메스 길로 바로 행하였습니다.
신앙생활은 마치 이 소들과 같이 우리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지고 바로 행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마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은 지난 1년 동안 주님의 십자가를 얼마나 지고 왔습니까? 무겁다고 벗어 던진 적은 없습니까? 그리고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곧바로 잘 달려왔습니까?
다 같이 복음 성가를 부르겠습니다.
눈물의 참회록
지금껏 내가 한일이 주를 위한 것이었는지
지나간 세월 돌이켜 주님 앞에 아룁니다.
이 한몸 주를 위하여 목숨 버린다 했으나
주의영광 뒤로하고 나의 자랑 앞세웠으니
내가 가는 이 길이 주를 위한 것보다
예수 이름을 파는 가롯유다와 같습니다.
한평생 주를 위하여 변함없이 살겠다던
베드로 같은 믿음이 내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내 맘속엔 허영과 교만만 있고
주님지신 십자가는 짐이 된다 벗었습니다.
내가 가는 이 길이 주를 위한 것보다
율법을 앞세우는 바리새인과 같습니다.
이때는 마침 밀을 거두는 때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곡식을 거둘 때에 길가의 한 이랑은 거두지 않고 그냥 놔두어서 지나가는 객이나 가난한 사람들과 짐승들을 위해 거두지 않았습니다. 길가에 얼마든지 먹을 것이 있어도 앞만 보고 걸어온 소들의 모습은 장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한 번도 메어보지 않던 수레멍에를 메고 쉬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려온 이 소들처럼 여러분들은 지난 1년 간 세상의 온갖 유혹과, 손만 뻗치면 얼마든지 잡을 수 있는 세상의 향락 다 버리고,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오직 앞만 보고 달려왔는지 한 번 돌이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때로는 환란의 바람에 쓰러지기도 하고, 유혹의 손길에 솔깃해서 나태하기도 하고, 뒤를 돌아보면서 게으름도 피우고, 하며 힘들다고 쉬엄쉬엄 걸어서 오늘에 이르지 않았는지요?
4, 이 소들은 울면서 울면서 갔다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고 믿음의 멍에를 메고 십자가를 지고 영원한 벧세메스인 하늘나라를 향해 갈 때에 울어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우리들도 믿음을 지키기에 너무 힘이 들어서 울고, 억울해서 울고, 구원받지 못한 영혼들을 생각하며 불쌍해서 울고, 은혜 받고 감격해서 울고, 자신의 지은 죄를 인하여 회개하며 울고, 울어야 할 일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예수님도 이 세상에 계실 때에 울으신 적이 성경에 세 번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소들은
①새끼들을 집에다 떼어놓았습니다.
②한 번도 끌어보지 않던 수레를 끌고 갑니다.
③쉬지도 못하고 앞만 보고 앞날을 알 수 없이 가야만 합니다.
그러기에 이 소들은 울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도 이 세상에 사랑하는 자식들을 떼어놓고 자신들만 천성 길을 가야 할 때 울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를 향해 올라가실 때 통곡하며 뒤따라오는 예루살렘의 여인들을 향하여 하신 말씀이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눅23.28) 고 하셨습니다.
운다는 것은 간구 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어린 아기들은 우는 것으로서 의사 표시를 합니다. 배가 고파 울고, 몸이 아파 울고, 어디가 불편해서 울고, 똥오줌 싸고도 울고, 이렇듯 우리 성도들의 울음은 곳 하나님을 향한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눈물의 기도가 없으면 안 됩니다.
예레미야는 장차 이스라엘이 멸망할 것을 알고 눈이 상하도록 울고,
히스기야는 죽음의 예고를 듣고 벽을 향하여 돌아 누어서 심히 통곡할 때 그의 간구와 부르짖음이 하나님께 상달이 되었습니다.
또 브엘세바 광야를 방황하던 하갈은 자기의 아들 이스마엘을 위하여 방성대곡 할 때 하나님은 그의 눈을 밝혀 샘물을 발견하게 하셨습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신앙생활 하기가 어렵습니까? 괴롭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울며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지나간 1년 동안 우리들은 얼마나 하나님께 간구하며 기도하여 왔는지 이 시간 돌이켜 보시기 바랍니다.
(욜2:12-13)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 하시나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5. 먼 길을 달려온 그 소들은 마침내 희생의 제물이 되었습니다.
힘들여 쉬지도 못하고 애써 수레를 끌고 오니까. 물 한 모금, 여물 한 바가지 주지 않고 오히려 잡아서 각을 떠서 여호와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성도들의 마지막 신앙의 피날레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오직 주님 앞에 무익한 종들입니다. 종들은 아무리 일을 잘해도 그 영광은 주인에게 돌아가고 칭찬도 듣지 못하고 누가 알아주지도 않습니다. 우리들의 모습이 바로 이와 같습니다.
(눅17:10)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그런데 어떻습니까? 지금까지 우리들 바로 나의 모습은 외형적인 것에 치우쳤고, 남에게 드러나기를 원했고, 주님이 알아주기보다는 사람들이 알아주기를 바랐으며, 하늘나라의 상급보다는 세상의 칭찬을 더 원했던 것입니다.
모름지기 참 성도는 이 소와 같이 마지막 희생의 제물이 될 때까지 주어진 사명을 다한 후에 “주여 나는 무익한 종입니다. 내가 하여야 할 것을 한 것뿐입니다” 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찬 355장 3절>
존귀영광 모든 권세 주님 홀로 받으소서
멸시 천대 십자가는 제가 지고 가오리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기리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기리다.<아 멘>
결 론 : 오늘의 말씀을 마칩니다.
선택받은 소들은 불레셋나라에서 유다나라의 벧세메스까지 달려갈 길을 모두 마쳤습니다. 여러분들도 1년간의 달려갈 길을 마쳤습니다. 이제는 오직 번제를 위한 희생제물이 될 일만 남았습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 모두 주님 전에 희생의 제물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
바울 사도는 관제와 같이 내가 부음이 되었다(딤후4:6)고 말하였습니다.
예수님도 이 세상에 오셔서 나와 여러분을 구원하시려고 십자가에 달리시고 물과 피 한 방울 남김없이 다 쏟으시고 하나님 앞에 희생의 제물이 되셨습니다.
우리 모두 이 시간 내 자신을 드려 주님 앞에 희생의 제물이 되시기 바랍니다.
양초는 자기의 몸을 불태워 어둠을 밝힙니다.
한 알의 밀알은 썩어야 많은 열매를 맺듯이 오늘 이 시간 우리들은 2019년의 한 해의 달음박질을 마치고 주님 앞에 심판을 받는 심정으로 희생제물이 될 때에 분명히 여러분들은 한 알의 밀알이 되어 100배 천 배의 많은 열매를 맺게 될 줄로 믿습니다.<아 멘!>
지난 1년 동안 살아온 길을 돌이켜 생각하면 구비 구비 아슬아슬한 고비도 많았으나 그럴 때마다 주님의 손길이 붙들어 주시고 인도해 주심을 감사하면서 부족한 것은 회개하면서 마지막 여력까지도 주님 전에 바치는 희생의 제물이 되어서 밝아오는 2020년의 새해에는 더 큰 은혜와 은총이 충만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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