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종으로 삼을 본보기 (출32:1-10)
본문
경종으로 삼을 본보기 출32:1-10, 고전10:5-11
아라비안나이트라는 어린이 동화에 보면 알라딘이라는 아이가 마법의 램프를 얻게 되는데, 램프를 문지르기만 하면 마왕이 나와서 ‘주인님 부르셨습니까?’ 합니다. 마왕은 엄청난 힘을 가지고 알라딘이 할 수 없는 일을 척척해 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마왕이 주인이 아니라 알라딘이 주인입니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도와주는 능력이 있는 존재, 그러나 도와주는 그가 주인이 아니고 내가 주인인 것, 신앙의 측면에서 보면 그것이 바로 우상입니다.
또한 하나님 보다 더 사랑 하는 것, 그것이 돈이 될 수도 있고, 명예나 권세가 될 수도 있고, 사람이나, 철학, 이념, 세상 연락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오늘 두 본문에는 잘못된 신앙생활의 대표적인 본보기로 우상 숭배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주인 삼는 것 대신 알라딘처럼 내가 주인이 되거나,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하는 것이 우상입니다. 이런 우상숭배를 비롯한 잘 못된 신앙의 태도는 결국 신앙의 실패로 이어지기 때문에 반드시 경종으로 삼아 그런 자세를 버리고 바른 신앙을 가져야 구원에 이르게 되고, 주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습니다. 두 본문을 중심으로 “경종으로 삼을 본보기”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경종으로 삼을 잘 못된 신앙의 본보기는,
1.하나님만 경외하는 한결 같은 신앙 대신 우상 숭배 하는 것입니다.
구약 본문에 보면 모세가 시내 산에 올라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40일을 지내면서 증거 판을 받고, 여호와의 영광중에 음성을 듣고 있는 동안 모세가 지금까지 내려오지 않는 것은 그가 어찌 되었는지 모른다며 백성들은 아론에게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 것을 요구하여 그들의 금 부치를 가져오게 하여 각도로 새겨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우리를 인도할 신이라고 하며 그 앞에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이러한 행위에 대해 7절에 ‘백성이 부패하였도다.’라고 하셨고, 8절에 ‘자기를 위하여’라 하셨으며, 9절에서는 ‘이 백성을 보니 목이 곧은 백성이로다.’고 하시면서 10절에는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하셨습니다.
신약 본문 고전10:7에 구약의 이 사건을 떠올리면서 ‘너희는 우상숭배 하는 자가 되지 말라.’고 했습니다. 5절에 ‘그들 중 다수가 광야에서 멸망 받았다.‘고 했고, 이어서 6절에는 ’이러한 일은 우리의 본보기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그들이 악을 즐겨한 것 같이 즐겨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성도가 신앙생활 하면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바로 우상 숭배하는 것입니다. 우상 숭배는 꼭 신상을 만들어 놓는 것만이 아닙니다. 디모데후서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날이 갈수록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싫어하고 귀를 즐겁게 하는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 대신 즐겨듣는다는 겁니다.
더 큰 문제는 많은 교회 지도자들이 사람들의 기대에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포기하고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한다는 겁니다. 악한 일을 하는 사람에게 회개하라는 말 대신 축복을 해주고, 사람들에게 십자가 지고 주님을 따라 좁은 길로 가라는 말 대신 돈과 명예와 성공을 위하여 사는 것이 복 받은 자라고 가르칩니다. 세상 풍조를 따르는 자들에게 주님을 본받아 성결하게 살라는 말씀 전하는 것을 포기 합니다. 이 모습이 금송아지 만든 아론의 모습을 그대로 닮아 있다는 겁니다. 교회가 세상풍조를 따라다니고, 양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기도 하고, 세상의 비위를 맞추기에 힘쓰는 것도 우상 숭배의 모습입니다.
왜 하나님이 계명의 대표인 십계명의 1, 2 계명에 우상 숭배를 하지 말라고 강조 하셨을까요? 그것은 신상을 만들어 놓고 우리를 인도할 신이라고 하거나,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하는 것을 마음에 두고 신앙생활 하는 우상 숭배는 하나님이 없다는 선언이나 마찬 가지이기 때문 입니다. 즉 더 이상 하나님은 섬기지 않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동안 하나님과 있었던 일들은 모두 없던 일로 하자는 선언이나 같습니다. 믿다가 믿음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내게 당장 눈에 보이는 유익이 없다고 생각이 되면 십자가를 내 동댕이치고, 성경책을 찢어버리는 행위와 같습니다. 배로 하나님을 삼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이 없으니 무섭지도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죄악 가운데 하나님이 없다고 여기며, 하나님 대신 허무한 세상 것을 좇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우상을 섬기며 좋아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하나님의 진노를 격동시키는 죄악중의 죄악인 것입니다.
진심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 때문에 손해가 오고, 박해를 받아도, 죽음을 당해도 변함없이 한결같은 신앙으로 하나님만 섬기고, 말씀에 순종 하며, 주님 영광을 드러내고, 주님께만 소망을 두고 사는 자가 됩니다. 우리 모두 우상숭배를 버리고 한결 같은 마음으로 하나님만 경외하는 성도로 삽시다.
2.믿음과 순종으로 충성하는 신앙 대신 불순종과 반역 등의 죄입니다.
구약 본문 8절에 ‘그들이 내가 그들에게 명령한 길을 속히 떠나’ 했습니다. 그들은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가는 동안 어려운 일을 만나게 되면 믿음과 순종의 길 대신 불순종과 반역의 길을 갔습니다.
그 원인은 하나님에 대한 불신앙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기적적으로 애굽의 노예에서 해방이 되고, 홍해를 육지처럼 건너게 되고, 만나로 먹이시고, 불과 구름 기둥으로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는 은혜를 체험했음에도 불신앙으로 대적하고 반역하는 일을 자행했습니다.
신명기서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로 가나안으로 가지 못하고 40년을 광야에서 고생해야 하는 결정적인 사건이 발생했던 것을 봅니다. 12명의 정탐을 가나안에 파견하여 정복을 위한 마스터 푸랜을 짜려고 할 때 그만 이 정탐꾼들이 시험에 들어서 적들을 보고 지레 겁을 먹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 하니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레위 족속인 고라를 중심으로 반역을 한 사건입니다. 그 때부터 40년을 연단 받아야 했습니다.
이처럼 불신앙은 불순종과 반역으로 나타나게 되고, 부패하여지고, 그 목이 곧아서 자기 멋대로 살기를 택하여 결국은 하나님의 심판에 이르게 됩니다. 우리는 부패를 경계해야 합니다. 아무리 맛있고, 영양가 있는 음식이라도 부패하게 되면 쓸모 없게 되는 것처럼 사람이 부패하면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되고, 쓸모없는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사단은 우리를 부패하게 하려고 갖은 애를 다 씁니다. 세상 쾌락을 좇게 하고, 자신을 방임하여 온갖 죄에 빠져 타락하게 하여 멸망에 이르게 합니다.
신약 본문 고전 10:8에 ‘그들 중의 어떤 이들은 음행을 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었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음행하지 말자’고 했습니다. 그들은 모압 지방을 지날 때 그 곳 아름다운 여자들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간음죄를 저지르다가 하루에 23,000명이 죽는 끔찍한 일을 당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들로서 있을 수 없는 죄를 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사건을 우리의 거울로 삼아야 합니다.
9절에서는 ‘그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주를 시험 하다가 뱀에게 멸망 하였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시험하지 말자.’고 했습니다. 민21:5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차라리 애굽에서 죽었으면 좋았겠다.’고 하며 ‘어찌하여 이 광야에서 우리를 죽게 하는고?’하며 하나님을 시험했습니다. 하나님은 광야에서도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 주셨건만 물이 없다고, 만나가 박한 식물이라고 하며 시험하니 결국 하나님께서 그 보호의 손길을 잠시 떼시니 광야에 늘 도사리고 있는 불 뱀이 나와서 백성을 마구 물었습니다. 광야를 능력의 손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시험한 결과입니다. 우리도 때로는 하나님을 향하여 시험의 의미가 담긴 언사와 행동을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조심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할 것은 오직 어떠한 경우에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모세처럼,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순종하고 충성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불신앙으로 불순종과 반역, 음란과 시험하는 죄를 버리고 믿음과 순종으로 충성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3.감사하고 기도하는 신앙 대신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입니다.
모세오경에 가장 많이 기록된 광야의 실수는 역시 원망과 불평입니다. 원망이란 사람 또는 하나님께 대한 책임 전가 식 발언을 말하고, 불평이란 비교해서 더 나쁘다고 판단 내리며 뚜덜거리는 것을 말합니다. 아이들이 좋아하던 만화영화 가운데 개구쟁이 스머프라는 만화가 있습니다. 스머프는 파란색 피부를 가진 난장이들인데, 각자 특징대로 이름이 있습니다. 똘똘한 친구는 똘똘이 스머프, 남을 잘 웃기는 친구는 익살이 스머프, 덩치가 크고 힘이 센 친구는 덩치 스머프, 그런 식입니다. 그런데, 그 중에 투덜이 스머프라는 친구가 있습니다. 이 친구는 하루 종일 습관처럼 투덜댑니다. 무슨 일에 대해서든 일단 투덜대놓고 봅니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이 그랬습니다.
신약 본문 고전10:10에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 경고의 말씀의 대표적 사건이 신 16장 레위지파 제사장이었던 고라당의 사건입니다. 고라가 교만한 마음을 가지고 고라를 중심으로 250명이 당을 짓고 모세를 대항하여 원망하다가 땅이 갈라지고 땅속에 생매장이 된 사건입니다.
그런데 원망하는 자는 결코 하나님 앞에 문제의 해결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원망하는 자에게 재앙을 내려 엎친 데 덮친 격이 됩니다. 가뜩이나 힘들어서 원망했는데 재앙까지 내렸으니 멸망밖에 다른 길이 없습니다.
믿음의 성도는 힘들고 어려울 때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고, 해결의 길을 열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불편하고 아쉬운 일이 있으면 우리는 재빨리 그 사항에 대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원망하면 해결되지 않는 문제라도 기도하면 해결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기도하기 보다는 원망부터 먼저 하여 문제를 키웠지만, 믿음의 사람 모세는 기도하므로 하나님은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모세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100년 전 윌리엄 제임즈 홀 부부가 의료선교사로 와서 병원을 개업했습니다. 그러나 청일전쟁 이후 심한 전염병이 돌아서 서울의 영국 영사관에서 철수를 권고했으나, 두 분은 의사로서의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서 계속 일하다가 남편 윌리엄 제임즈 홀은 어린 아이를 남기고 결국 병에 걸리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때 그 부인 로제타 홀은 얼마나 낙심이 되고 더 나가서는 하나님을 원망하는 마음이 생겼겠습니까? “하나님, 아니 우리가 주를 위해 이렇게 헌신하는데 남편을 젊은 나이에 데려가시다니요? 하나님, 너무나 원망스럽습니다.”라는 말을 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부인 의사는 계속 의료 선교사로 활동했습니다. 더 나가서는 지금 ‘이대부속 병원’ 전신인 ‘동대문 부인 병원’을 경영하면서, 고대 의과대학의 전신인 ‘경성여자의학 전문학교’를 설립했습니다. 말할 수 없는 절망가운데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오직 주께 소망을 두고 더 묵묵히 충성했습니다.
이런 모습에 아들 부부도 감동을 받았는지 나중에는 의과대학을 졸업한 후에 자기도 의료선교사로 한국에 와서 헌신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광야 같은 세상 가운데 살면서 반드시 명심할 것은, 우상숭배와 불순종과 반역, 간음 죄, 하나님을 시험하고 원망하는 죄를 짓지 맙시다. 어떠한 환경 가운데서라도 변함없이 하나님만 경외하는 신앙으로, 믿음과 순종으로 충성하는 신앙으로, 감사하고 기도 하는 자들이 되심으로 하나님이 강하게 붙들어 주시는 믿음의 승리자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정리합니다.
두 본문을 중심으로 “경종으로 삼을 본보기”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경종으로 삼을 잘 못된 신앙의 본보기는,
◈.하나님만 경외하는 한결 같은 신앙 대신 우상 숭배 하는 것입니다.
◈.믿음과 순종으로 충성하는 신앙 대신 불순종과 반역 등의 죄입니다.
◈.감사하고 기도하는 신앙 대신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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