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으로 후손들의 축복자로 살아봐요 (창48:1-22)
본문
진심으로 후손들의 축복자로 살아봐요 /창세기48;1-22(201129
아빠가 6살 난 딸에게 “우리 딸..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라고 묻습니다.
그러자 딸은 당연하다는 듯이 “아빠!”라고 대답합니다.
잠시 후 이번에는 엄마가 “우리 딸.. 아빠가 얼마만큼 좋아?”라고 묻습니다.
그러자 잠시 생각하던 딸이 엄마 품에 안기면서 “엄마만큼!”이라고 대답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당연하지요. 부모자식은 생명을 주고받은 관계이기 때문에 무조건적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같은 핏줄이기 때문에 사랑합니다.
사랑은 조건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조건 때문에 하는 사랑은 참사람이 아닙니다.
예수그리스도와 우리들도 피로 맺어진 구원의 관계이기 때문에 무조건적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무조건적으로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성도님들 간에도 무조건적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P4
야곱은 애굽의 총리로 있는 요셉과 바로의 초대로 130세에 모든 식솔들을 이끌고 애굽 땅 고센으로 이주하여 17년을 산다.
17년 사는 동안에 7년 대흉년은 끝이 났고, 이제는 모든 것들이 회복되어 생업이 번창하고 후손들도 더 많이 태어나면서 번영하게 된다.
야곱은 고센 땅에서 17년 사는 동안에 요셉을 비롯한 아들들과 손자들의 극진한 봉양을 받으면서 건강하고 행복한 노후를 보내게 된다.
비록 애굽 땅 고센이라는 곳이었지만, 아들들의 생업이 번창하고, 손자들이 건강하게 자라주는 모습들을 보면서 하나님께 감사드리면서 하루하루 행복하고 즐겁고 기쁘게 사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이젠 하나님의 나라로, 천국으로, 조상들에게로 돌아갈 때가 서서히 다가오고 있음을 직감하게 된다.
야곱은 본향으로 돌아갈 때가 서서히 다가오고 있음을 직감하면서 어떻게 본향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을까?
애굽의 총리로서 국사(國事)에 너무나 바쁜 요셉은 아버지 야곱을 위하여 어떻게 하고 있는가?
여호와 하나님은 야곱과 요셉을 어떻게 인도해 가고 계시는가?
D4.
① 요셉에게 맹세하도록 요구하게 하시는 하나님.
야곱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고 본향으로 돌아갈 시기가 다가오고 있음을 직감하면서 요셉을 자기 침소로 들어오라고 부른다.
요셉은 아버지의 부름을 받고 아버지의 장막으로 들어간다.
야곱은 요셉에게 “이제 내가 네게 은혜를 입었거든 청하노니 네 손을 내 허벅지 아래에 넣고 인애와 성실함으로 내게 행하여 애굽에 나를 장사하지 아니하도록 하라. 내가 조상들과 함께 눕거든 너는 나를 애굽에서 메어다가 조상의 묘지에 장사하라.”라고 부탁한다.
야곱은 가나안 땅에서 애굽의 총리가 되었다는 아들 요셉의 초대를 받고 브엘세바까지 내려와서 하나님께 마지막으로 제사를 드릴 때에 하나님은 야곱에게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하지 말라라고 말씀하신다.
그러시면서 “반드시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며, 요셉이 그의 손으로 네 눈을 감기리라.”라고 말씀하신다.
이제 하나님의 나라, 본향으로 돌아갈 때가 매우 가까워졌음을 직감하는 야곱은 브엘세바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기억하면서 요셉에게 ‘자신이 눈을 감거든 꼭 가나안 땅으로 올라가서 조상들의 묘가 있는 막벨라 동굴에 묻어 달라.’라고 부탁하는 것이다.
아버지가 숨을 거두거든 꼭 가나안 땅으로 가서 장사해 달라는 부탁을 받은 요셉은 “저가 꼭 아버지의 말씀대로 해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아무 염려하지 마세요.”라고 하면서 아버지를 위로해 드린다.
야곱은 요셉에게 거듭거듭 “내게 맹세하라.”라고 부탁한다.
요셉은 아버지의 부탁에 거듭거듭 “예, 아버지의 뜻대로 해 드리겠습니다.”라고 맹세하면서 아버지를 안심시켜드린다.
아들의 맹세를 들은 야곱은 그때서야 안심이 되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감사드리고 찬양과 경배를 올려드린다.
신앙인들은 언제라도 숨을 거두고 이 세상을 떠난다 해도 돌아갈 본향이 있다.
돌아갈 본향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고 소망이 되고 힘이 되는지 모른다.
신앙인들은 이미 돌아갈 본향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죽음에 대하여 두려워하지 않는다.
언제든지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으면 돌아갈 본향, 천국의 소망으로 살아가는 신앙인들은 하루를 살아도 힘차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들은 돌아갈 본향이 없기 때문에 저승사자가 자기를 데려가면 어쩌나? 하면서 매일매일 지옥에 대한 두려움과 무서움 때문에 죽음에 대하여 두려워서 벌벌 떤다.
신앙인의 죽음과 불신앙인들의 죽음에는 확연히 죽은 이후에 얼굴에서 그대로 나타난다.
대체적으로 신앙인들의 죽음에는 얼굴이 환하고 평안해 보인다.
불신앙인들의 죽음에는 얼굴이 어둡고 칙칙하고 온갖 근심 걱정이 가득 찬 모습이다.
신앙인들은 돌아갈 천국으로 가기 때문에 평안하고 환하게 보이는 반면에, 불신앙인들은 지옥의 형벌을 직감하면서 고통 중에 죽음의 길로 가는 것이다.
그러기에 신앙인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삶인가를 늘 감사하고 확신하면서 살아야 한다.
② 요셉의 두 아들을 자기 아들로 세우도록 하시는 하나님.
요셉은 아버지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고 임종할 때가 다가왔다는 소식을 듣는다.
요셉은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데리고 아버지의 장막으로 들어간다.
요셉이 두 아들을 데리고 왔다는 소식을 들은 야곱은 힘을 내어 일어나 침상에 앉는다.
야곱은 침상에 앉아서 요셉에게 지난 일을 이야기하면서 죽은 줄로만 알았던 아들 요셉을 다시 만나게 된 것이 가장 행복된 일이었노라고 회고한다.
야곱은 요셉에게 “이전에 가나안 땅 루스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이 내게 나타나사 복을 주시며, 내게 이르시되 내가 너로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여 네게서 많은 백성이 나게 하고 내가 이 땅을 네 후손에게 주어 영원한 소유가 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라고 이야기하면서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주시고 그 땅에서 번성하게 하신다고 약속하셨다고 이야기해 주고 있다.
그러면서 야곱은 요셉에게 “내가 애굽으로 와서 네게 이르기 전에 애굽에서 네가 낳은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내 것이라. 르우벤과 시므온처럼 내 것이 될 것이요, 이들 후의 네 소생은 네 것이 될 것이며, 그들의 유산은 그들의 형의 이름으로 함께 받으리라.”라고 말씀하면서 요셉이 낳은 두 아들을 자기 아들의 반열에 입적하겠다고 분명하게 선포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기근과 굶주림에서 구원하기 위하여 그동안 종으로 팔려 와서 종살이하고, 감옥살이하고, 애굽의 총리가 되어서 온 가족들을 구원한 요셉에게 갑절의 보상을 해 주시겠다고 선포하는 것이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죽을 만큼 고생하며 애쓰고 수고한 요셉에게 하나님은 하늘의 신령한 은혜와 축복을 갑절로 보상하면서 축복해 주고 계신다.
요셉의 두 아들을 곧 손자를 야곱의 아들로 입적시키겠다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선포함으로서 요셉은 두 지파의 지분을 가지게 된다.
일반적으로 이스라엘의 12지파는 야곱의 12아들의 후손들로 구성되어서 레위지파가 포함되고, 요셉지파가 되면서 12지파라고 부른다.
하지만 군대편성이나 기업분배 할 때는 레위 지파가 빠지고, 요셉 지파가 사라지고 대신에 므낫세 지파, 에브라임 지파로 나누어지면서 12지파가 된다.
에브라임 지파에서 이스라엘의 지도자 여호수아가 출현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거느리고 가나안땅을 정복하게 된다.
솔로온 왕 이후에 이스라엘의 왕국이 남북으로 분열할 때 에브라임 지파 출신인 여로보암이 북이스라엘을 건국하면서 에브라임 지파는 북이스라엘 왕국의 왕가가 된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나라와 주님의 몸된 교회와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하여 헌신하고 수고한 대가를 반드시 하나님 나라에서 상급으로 되돌려주신다.
신앙인 각자가 수고하고 헌신한 정도에 따라서 상급의 차등은 있을 수 있겠지만,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와 성도들을 위하여 헌신한 만큼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상급으로 되돌려주신다.
우리 신앙인들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받을 상급을 기대하면서 오늘 우리들에게 주어진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과 의지와 주권을 따라서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여 믿음의 결실을 맺어갈 수 있어야 한다.
③ 어머니 묘에 대하여 알려주도록 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야곱에게 요셉의 어머니 라헬의 묘에 대하여 이야기해 주도록 감동을 주시고 계신다.
야곱은 요셉에게 7절에서 “내게 대하여는 내가 이전에 밧단에서 올 때에 라헬이 나를 따르는 도중 가나안 땅에서 죽었는데, 그 곳은 에브랏까지 길이 아직도 먼 곳이라. 내가 거기서 그를 에브랏 길에 장사하였느니라(에브랏은 곧 베들레헴이라).”라고 이야기해 준다.
라헬은 요셉의 엄마이다.
라헬은 요셉이 10대 초 중반 되었을 때에 동생 베냐민을 낳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게 된다.
아직 브엘세바로 돌아오기 전에 엄마가 동생을 낳으면서 죽은 것이다.
라헬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이후에 브엘세바로 돌아오게 되고, 브엘세바로 돌아온 이후 불과 1-2년 후에 요셉은 형들의 미움을 받아서 종으로 팔려나가서 지금까지 이국땅 애굽에서 생활하는 것이다.
요셉이 형들에 의하여 종으로 팔려 나갈 때에는 요셉의 할아버지 이삭이 연로하였지만, 살아계실 때이다.
이삭은 180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었고, 요셉이 17살에 종으로 팔렸기 때문에 요셉이 종으로 팔릴 때가 이삭이 160대 후반이나 170대 초반이 된다.
이삭이 죽을 때가 요셉이 20대 후반이 되어서 감옥살이할 때이다.
요셉은 종으로 팔린 이후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엄마의 묘소에 가 본 적이 없다.
그러기 때문에 아마도 엄마의 묘소에 대한 기억이 가물가물할 것이다.
그런 요셉에게 야곱은 마지막 숨을 몰아쉬면서 요셉에게 엄마의 묘소에 대하여 유언처럼 이야기해 주는 것이다.
아버지에게서 엄마의 묘소에 대하여 들은 요셉은 나중에 야곱이 죽은 이후에 아버지를 장사하기 위하여 가나안 땅을 방문하여 아버지를 헤브론이라는 마므레 앞 막벨라 동굴까지 아버지의 관을 메고 올라가서 아버지를 장사한다.
요셉은 아버지를 장사한 이후에 베들레헴에 있는 엄마의 묘소에도 다녀가지 않았을까 싶다.
야곱은 자신이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해야 할 사명을 하나하나 점검하고 감당하면서 하나님의 나라로, 본향으로 돌아가려고 준비하는 것이다.
우리 신앙인들은 언젠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로, 본향으로 돌아가라고 부르시기 전에 본향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면서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신앙인들은 언제나 하나님께서 언제 부르시든, 하나님께서 부르시면 본향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면서 살아야 한다.
본향으로 돌아갈 때, 자녀들과 후손들과 지인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면서 돌아갈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만에 하나라도 치매, 중풍, 좋지 않은 성격과 같은 것 때문에 좋지 않은 영향력을 끼치다가 본향으로 돌아감으로 인해서 후손들이나 지인들이 기억하고 싶지 않다거나 얼굴을 찌푸린다면 얼마나 불행한 일이겠는가?
그러니 좋은 영향력을 끼치면서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최대한으로 감당하면서 노후를 준비하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비하여 기도와 말씀으로 깨어 있는 영성을 지녀야 한다.
④ 두 손자에게 축복하게 하시는 하나님.
야곱은 요셉의 아들을 보면서 “이들은 누구냐?”라고 묻는다.
야곱이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몰라서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일까?
아니다. 이미 잘 알고 있다.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요셉의 두 아들을 자기 아들이라고 선포하면서 므낫세 지파와 에브라임 지파의 특권까지 부여해 주었다.
그런데 뜬금없이 두 손자에게 “이들은 누구냐?”라고 묻는 것이다.
그러면 왜 이렇게 질문하는 것일까?
사실 두 손자는 한 번도 가나안 땅에 가 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엄마가 애굽의 태양신을 섬기는 대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이기 때문에 두 손자는 애굽에서 태어나서 애굽인으로 살았던 손자들이다.
그러기 때문에 야곱은 요셉에게 두 아들의 정체성에 대하여 묻고 있는 것이다.
야곱은 요셉에게 ‘두 아들은 태양신을 섬기는 애굽인이냐? 아니면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하나님의 백성, 히브리인이냐? 이스라엘 백성이냐?’라고 묻고 있는 것이다.
요셉은 아버지가 왜 이렇게 묻고 있는지를 정확하게 파악한다.
요셉은 아버지의 의도를 직감하면서 “이는 하나님이 여기서 내게 주신 아들들이니이다.”라고 대답하면서 ‘두 아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요 백성입니다.’라고 분명하게 대답한다.
두 아들은 태양신을 섬기는 아들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하나님의 자녀요 히브리인이요 이스라엘 백성이라고 확고하게 대답하는 것이다.
두 아들이 애굽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 히브리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확인한 야곱은 요셉에게 “그들을 데리고 내 앞으로 나아오라. 내가 그들에게 축복하리라.”라고 하면서 두 손자에게 축복해 주겠다고 말한다.
요셉은 아버지가 두 아들에게 축복하겠다는 말을 듣고 야곱의 오른손 방향에는 큰아들 므낫세를, 야곱의 왼손 방향에는 둘째 아들 에브라임을 얹어서 축복할 수 있도록 한다.
그런데 막상 야곱은 두 손자에게 축복하면서 서로 손을 어긋나게 오른손으로는 둘째아들 에브라임의 머리에, 왼손으로는 첫째아들 므낫세의 머리에 얹어서 축복기도 한다.
기도하던 중에 요셉은 깜짝 놀란다.
아버지가 서로 손을 어긋나게 얹어서 축복기도하고 있는 것이다.
요셉은 급히 아버지에게 오른손으로 첫째 아들 므낫세의 머리에, 왼손으로 둘째 아들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어서 축복해 달라고 애원한다.
하지만 야곱은 요셉에게 “나도 안다. 내 아들아 나도 안다. 그도 한 족속이 되며 그도 크게 되려니와 그의 아우가 그보다 큰 자가 되고 그의 자손이 여러 민족을 이루리라.”라고 하면서 두 손자에게 “이스라엘이 너로 말미암아 축복하기를 하나님이 네게 에브라임 같고 므낫세 같게 하시리라.”라고 축복하면서 둘째 아들 에브라임을 첫째 아들 므낫세보다 앞세워서 축복해 준다.
두 손자에게 축복한 야곱은 요셉에게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사 너희를 인도하여 너희 조상의 땅으로 돌아가게 하시려니와, 내가 네게 네 형제보다 세겜 땅을 더 주었나니 이는 내가 내 칼과 활로 아모리 족속의 손에서 빼앗은 것이니라.”라고 축복하면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반드시 가나안 땅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주실 것이라고 하면서 가나안 땅에 대한 소망을 잊지 말 것을 부탁하고 있다.
야곱은 나이가 들면 들어갈수록 더욱더 하나님과 영적으로 깊이깊이 만나면서 영적인 사람이 되고, 영성이 열려 있는 믿음의 족장이 된다.
보편적으로는 나이가 들면 들어갈수록 갖가지 질병에 시달리게 되고 좋지 않은 영향력을 끼치는 어르신이 되는 경우가 태반이다.
반면에 야곱은 나이가 들면 들어갈수록 더욱더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존경받고 인정받고 인생의 마지막까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어르신으로 남게 된다.
우리 신앙인들도 나이가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더욱더 영적인 사람, 믿음의 사람,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끝까지 감당하면서 하나님을 깊이깊이 만나고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의 바다에 푹 잠기면서 노년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신앙인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복된 삶이겠는가.
그러면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 ‘아멘 아멘, 할렐루야!!!!!’라고 하나님께 모든 영광과 찬양을 올려드리면서 천국으로, 본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은혜와 축복을 받으셨으면 하는 바램이 간절하다.
L4 & B4.
야곱이 노년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기 전에 요셉과 요셉의 두 아들들에게 축복하며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께서 주신 노년의 삶을 복되게 살았던 것처럼, 우리 신앙인들도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 가운데 자녀들, 후손들, 지인들에게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행복한 노년의 삶을 살아가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나님은 신앙인에게는 자녀들과 후손들을 위하여 4가지 특권을 부여해 주셨다.
① 축복권
축복은 제사장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백성들에게 하늘의 신령한 은혜와 사랑과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주시도록 빌어드리는 행위이다.
베드로전서2:9에서 보면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신앙인의 신분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택해 주신 하나님의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라고 신앙인의 신분을 확인시켜 주고 계신다.
그러기에 모든 신앙인들은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제사장이 된 자격으로 하나님의 귀한 자녀들, 후손들에게 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할 수 있다.
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되, 하늘의 신령한 은혜와 사랑과 긍휼과 자비를 입을 수 있는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도록 축복하는 것이다.
세상의 원리를 따라서 세상에서 이름께나 날리고 성공하는 세상적인 축복도 필요하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자녀로 세움을 입을 수 있도록 축복하는 것이다.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신앙인들은 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할 수 있는 권한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자녀들, 후손들이 삼위 하나님을 제대로 알고, 만나고, 체험하고, 고백하여 하나님의 은혜에 풍족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축복해 주어야 한다.
② 말씀 양육권
세상의 원리나 세상에서 추구하는 진리와 학문의 세계는 지역이나 민족이나 사람이나 시대에 따라서 언제든지 바뀔 수 있고, 얼마든지 변질될 수 있다.
세상의 원리는 지나간 시간까지, 지금까지 YES라고 해서 올해도, 내년에도, 언제까지라도 YES라는 정답이 될 수 없다.
세상의 원리는 지금까지 NO라고 해서 올해도, 내년에도, 언제까지라도 NO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세상의 원리는 작년에, 지금까지 YES였지만 올해에도, 내년에는, 언제인가는 NO가 될 수 있다.
세상의 원리는 작년에, 지금까지 NO였지만 올해에도, 내년에는, 언제인가는 YES가 될 수 있다.
시대가 바뀌고, 사람이 바뀌고, 지역이 바뀌고, 민족이 바뀌면 세상적인 원리나 진리는 얼마든지 바뀌고 변질될 수 있다.
그러나 절대로 바뀌거나 변질될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다.
성경은 아무리 시대가 바뀌고, 사람이 바뀌고, 지역이 바뀌고, 민족이 바뀌고, 세월이 바뀌어도 절대로 바뀔 수 없는 절대 불변의 말씀이다.
그러기에 신앙인들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바뀌는 세상의 원리나 진리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절대로 바뀔 수 없는 진리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살아야만 하는 것이다.
신앙인의 삶은 철저하게 하나님 중심,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중심, 성경중심, 교회 중심의 삶을 살아야만 하는 것이다.
오직 구원의 길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보혈을 믿는 믿음 외에 다른 길은 단 하나도 없음을 확신하고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의 말씀, 성경을 변함없이 자녀들과 후손들에게 가르치고 전해 주어야만 하는 것이다.
③ 훈육권
신앙인들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한 자녀들, 후손들이 하나님의 은혜 안에 하나님의 신령한 세계를 체험하며 하나님 앞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가르치며 훈육해야 할 의무와 권리가 있다.
성경에 보면 신앙이 아주 좋은 믿음의 가정에서 불량자들이 생겨나서 큰 어려움을 당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사무엘 선지자라고 한다면 어느 누구나 추앙할 수 있는 정말로 위대한 인물이다.
사무엘 선지자는 자기 자신의 결백을 주장할 때, 백성들이 사무엘의 결백을 증명해 줄 정도이다.
그런데 신정정치에서 왕정정치로 바뀌게 되는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한 사람이 바로 사무엘 선지자의 두 아들 요엘과 아비야 때문이다.
요엘과 아비야는 나이가 많아서 연로한 아버지 사무엘을 대신하여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을 때, 서슴없이 악행을 저지르게 된다.
두 아들은 신실한 아버지처럼 살지 않고, 백성들에게 뇌물을 요구하고, 뇌물을 받으면서 판결을 하였기 때문에 정의롭게 판결할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인하여 백성들의 원성이 자자하게 되면서 사울 왕을 세우게 되는 요인이 되고 만다.
위대한 신앙인에게서 사무엘의 두 아들 요엘과 아비야처럼 폭정을 일삼은 이들은 너무 많다.
그러기 때문에 신앙인들은 자녀들과 후손들에게 철저하게 삼위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훈육하여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세워질 수 있도록 해야만 하는 것이다.
훈육에는 징계도 포함된다.
자녀들이 잘못했을 때는 그에 마땅하게 징계하면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지도해야만 하는 것이다.
히브리서12;6-8에서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라고 말씀하신다.
아무리 친해도 친아들이 아니면 징계하기란 쉽지 않다.
현대사회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친아들이라면 친아들이 잘못한 일에는 반드시 징계하여 올바른 길로 걸어갈 수 있도록 훈육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하나님의 친아들로 삼아주셨기 때문에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서 잘못한 일이 있을 때, 징계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올바르게 살아가도록 징계하신다.
④ 신앙전수권
신앙인은 자신이 만난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자녀들과 후손들에게 상속해 주어야 할 의무와 권리가 있다.
야곱은 아들에게, 손자들에게 축복하면서 자신이 만난 하나님을 그대로 전수해 주고 있다.
야곱은 자신의 일생에 꼭 필요할 때마다 찾아와 주시고 위로해 주시고, 지켜주시고, 건져주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을 지켜주셨듯이, 요셉에게도, 므낫세와 에브라임에게도 똑같이 언약해 주실 것이라고 선포해 주는 것이다.
신앙의 전수권은 우리가 만난 하나님, 우리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 우리를 억만 죄악에서 용서해 주시고 구원해 주신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우리 자녀들과 후손들에게 전수해 주는 것이다.
사사기2:10의 말씀에 보면 “그 세대의 사람도 다 그 조상들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라고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로 출애굽을 경험하고, 40년 광야 생활을 경험하고, 요단강을 건너서 가나안 땅 정복에 참여했던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들이 세상을 떠난 이후에 여호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다른 세대, 하나님의 놀라운 이적들을 알지 못하는 다른 세대가 형성되었다고 기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하여 이들은 11-15절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을 섬기며, 애굽 땅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신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 곧 그들의 주위에 있는 백성의 신들을 따라 그들에게 절하여 여호와를 진노하시게 하였으되, 곧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겼으므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노략하는 자의 손에 넘겨주사 그들이 노략을 당하게 하시며, 또 주위에 있는 모든 대적의 손에 팔아넘기시매, 그들이 다시는 대적을 당하지 못하였으며, 그들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의 손이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시니, 곧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고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맹세하신 것과 같아서 그들의 괴로움이 심하였더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약속의 땅에 정착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녀들과 후손들에게 하나님 중심의 삶을 전수해 주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는 것이다.
사사기21:25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사사기에 등장하는 말씀이 오늘날 우리들의 삶의 현장에 그대로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너무너무 잘 나서 각각 자기 생각대로 살아가는 현상이다.
정보의 홍수 속에 살아가는 현실이지만, 그 정보를 그대로 믿을 수가 없다.
무엇이 사실이요 진짜요 팩트(Fact)인지, 무엇이 가짜요 거짓인지 분별할 수가 없다.
언론은 팩트만을 전해야 하는데, 언론이 거짓을 팩트라고 주장하고, 팩트를 거짓이라고 언론플레이를 하고 있기 때문에 세상을 믿을 수가 없다.
정치권을 믿을 수 없고, 정부를 믿을 수가 없고, 언론을 믿을 수가 없고, 온 세상이 거짓으로 가득 채워져 있는 세상이다.
그러기 때문에 국민들은 자신의 생각이 옳은 대로 판단하고 결정하여 살아가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우리 신앙인들은 무엇이 옳고 그른 지를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데드라인(Deadline)을 정해주어야 우리 자녀들과 후손들이 흔들림 없이 하나님 중심의 신앙인으로 자라 갈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신앙인들에게 주신 4가지 특권, 축복권, 말씀양육권, 훈육권, 신앙전수권을 잘 사용하여 우리 자녀들과 후손들이 삼위 하나님의 온전한 백성이요 자녀요 거룩한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 세워질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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