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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하신 하나님을 믿는 성도의 삶 (히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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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하신 하나님을 믿는 성도의 삶/히브리서 13:1-8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은 급변하는 세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서히 변하는 것이 아니라 급격하게, 보통 사람은 따라가기가 힘들 정도로 변하는 세상입니다.


이런 변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물건이 자동차와 휴대폰이 아닌가? 생각되어집니다.


새로운 차가 출시되자마자 또 다른 차가 나오고 최신 폰이 나오자마자 또 다른 폰이 출시되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빠르게 변화하고 있을까요?


새로운 변화를 주어야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전의 것을 고집하고 시대의 변화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물건을 팔 수 없고 사회에서 퇴출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한 대기업의 총수는 ‘마누라 빼고는 다 바꾸라’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변화는 좋은 변화도 있고 좋지 않은 변화도 있습니다.


제가 아는 분이 충대 옆에서 커피숍을 하는데 그곳에 가면 거리에서 젊은 여학생들이 담배피우는 것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여학생들이 거리에서 담배를 피운다는 것은 예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인데 이제는 일상이 되었습니다.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좋은 변화 같지는 않습니다.


 


오늘 우리가 급변하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지만 세상에는 변해서는 안 되는 것, 변하지 않아야 더 좋은 것들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고 말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앞으로 영원하도록 동일하신 분이십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그 분을 믿고 섬기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시대에 따라 환경에 따라 변한다고 하면 그 분을 어떻게 믿고 섬길 수 있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진리도 변하지 않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을 통하여 구원받는 진리는 어제도 그렇고 오늘도 그렇고 앞으로도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히브리서 기자는 세상의 모든 것이 변화되는 가운데 변하지 말아야 더 좋은 것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1절에 보면,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2절에서는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고 합니다.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는 것은 변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그 일에 변화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오늘 우리가 변하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지만 세상에는 변하지 않아야 더 좋은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저는 우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이 변하지 않으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변하지 않는 신앙으로 변하지 않는 가치를 붙잡고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렇다면 변하지 않아서 더 좋은 것들이 무엇이겠습니까?


 


먼저는, 형제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1절 말씀에서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했습니다.


세상을 살기 좋게 만들고 행복하게 만드는 최고의 가치는 사랑인 줄 믿습니다.


사랑보다 이 사회를 아름답고 살기 좋게 만드는 가치는 없는 줄 압니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리 인간의 문명이 발달하고 기술이 발전해도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사랑이 있어야 행복할 수 있는 사랑의 존재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사랑에 대하여 위대한 노래를 부르면서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 주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직접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은 우리가 어떤 환경과 형편 속에서도 끊이지 않고 계속해야 할 가장 중요한 가치 중에 가치입니다.


 


엔도 슈사꾸의 <사해의 호반>이라는 책에는 예수님과 빌라도의 문답이 나옵니다.


“그러면 너는 저 의원들의 말대로 민중을 선동했는가?”


“나는 다만, 한 사람 한 사람의 슬픈 인생을 가로질러 그들을 사랑하려고 했을 뿐이오.”


“황제는 오래 지속하지 못한다고 말했는가?”


“황제보다도, 예루살렘보다도, 로마보다도 오래오래 계속되는 것이 있다고 말한 것뿐이오.”


“무엇이 로마보다 오래오래 지속되느냐?”


“그 사람들의 인생에 내가 가 닿은 흔적이오. 내가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을 가로질러 남겨놓은 흔적, 그것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말한 것이오.”


여러분,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마음 속 깊은 곳에 남겨놓으신 흔적은 사랑의 흔적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면서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마음속에 지워지지 않는 사랑의 흔적을 남겨놓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께서 여러분들에게 남겨 놓으신 그 사랑의 흔적을 따라서 서로 사랑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삶을 계속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은 환경이 바뀌고 시대가 변하고 문명이 달라져도 계속되어야 할 거룩하고 고귀한 성도들의 모습입니다.


생활이 조금 어려워진다고 사랑을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건강이 조금 나빠진다고 사랑을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시대가 바꾸어진다고 사랑하는 것을 다른 것으로 바꾸지 마시기 바랍니다.


언제 어디서나 사람들이 요구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하고 가장 필요한 것이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명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맡겨져 있습니다.


부부사이에 가족 관계 속에서 성도들 가운데서 이웃가운데서 사랑의 삶을 계속하시기 바랍니다.


 


둘째는, 손님 대접하는 것입니다.


 


2절 말씀을 보면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이 기록될 당시에는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설교를 하고 전도를 하는 유랑 설교자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누구에게 생활비를 받는 것이 아니고 있는 곳에서 성도들의 도움을 받아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들을 대접하라는 것이 손님대접하기를 잊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에 대표적인 사람이 요한 삼서에 나오는 가이오 장로입니다.


사도 요한은 가이오 장로가 나그네 대접하는 일을 이렇게 칭찬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가 무엇이든지 형제 곧 나그네 된 자들에게 행하는 것은 신실한 일이니 그들이 교회 앞에서 너의 사랑을 증언하였느니라.”


그러면서 이렇게 형제를 대접하는 것이 곧 진리를 위하여 함께 일하는 자가 되는 것이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살면서 잊지 말아야 할 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비롯하여 부모님의 은혜 선생님의 은혜 국가의 은혜 등 수없이 많이 있습니다만 그 중에 하나 잘 알려지지 않으면서도 사회와 국가와 교회를 위하여 수고하는 손길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수고하는 그 손길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고 이 사회는 살기 좋고 따뜻한 사회가 되는 것입니다.


그들을 잊지 말고 대접하는 일에 변함이 없어야 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그렇게 손님 대접을 잘 한 사람으로 구약의 아브라함을 꼽고 있는데요,


아브라함이 한 번은 자기 집에 있을 때 지나가는 나그네 3명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들을 발견하자 아브라함은 나가서 그들을 자기 집에 초대합니다.


그들이 요청한 것이 아니라 먼저 내 집에 들어와서 쉬었다 가라고 초청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정성스럽게 대접을 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들이 하나님의 일행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에 보면 3명중 하나는 성육신 하신 하나님이셨고 둘은 천사들이었습니다.


나그네를 대접한 것이 결국은 하나님을 대접한 것이 되었고 이 일로 인하여 아브라함은 다음해에 아들을 얻게 됩니다.


안타깝게도 오늘 우리 사회는 대문을 굳게 잠그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가능한 한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도록 대문은 점점 더 튼튼하게 더 높게 올라가고 있습니다.


대문을 낮추고 대문을 오픈하고 대문을 개방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손님 대접하는 이 선한 일에 여러분 마음을 여시고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셋째는, 갇힌 자와 학대받는 자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3절 말씀을 보면, ‘갇힌 자를 생각하고 학대받는 자를 생각하라’고 합니다.


여기에서 갇힌 자나 학대 받는 자는 신앙 때문에 복음 때문에 갇히고 학대 받는 자들을 말합니다.


당시에 신앙 때문에 어려움을 당하는 자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그들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갇히지 않았다고 그들을 잊어버리지 말고 내가 학대를 받지 않는다고 그들의 학대를 잊지 말고 늘 그들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내가 편하다고 모두가 편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내가 고통이 없다고 모두가 고통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건강하다고 모두가 건강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내가 장애가 없다고 장애를 가진 자를 외면할 때 그들은 남모를 불편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외국인 이주자가 아니라고 그들을 생각하지 않을 때 그들은 엄청난 학대와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편안한 가운데서도 갇힌 자를 생각하고 학대 받는 자를 생각하고 어려운 형편가운데 있는 자를 생각할 때 이 사회는 점점 더 올바른 모습으로 개선이 될 것이고 모두가 함께 잘 사는 나라를 이루어가게 될 줄 믿습니다.


 


넷째는, 결혼을 귀히 여기는 것입니다.


 


4절 말씀에 “모든 사람은 결혼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고 했습니다.


정말 시대가 변하고 사람들이 변해도 우리가 변해서 안 되는 것이 결혼을 귀히 여기는 일인 줄 믿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오늘 우리 사회는 이 부분에서 너무나 많은 좋지 않은 변화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제가 아는 한 자매가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는데 그 교회 총각 부목사가 관심을 보입니다.


이 자매도 목회자의 아내가 되고자 기도하고 있던 차여서 좋게 생각하여 부목사를 만나 결혼을 전제로 사귀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부목사는 결혼을 전제로 하지 말고 그냥 사귀자고 하더랍니다.


결혼 전까지 그냥 데리고 놀다가 결혼하면 없던 일로 하자는 이 사고방식은 얼마나 위태한 일입니까?


 


오늘날 우리는 결혼을 너무 귀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이혼이 너무 쉽게 이루어지고 결혼이 쾌락을 누리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되고 있습니다.


결혼을 하고 배우자를 두고 자녀를 두었음에도 다른 사람과 엉뚱한 짓을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결혼은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가장 소중하고 귀한 일입니다.


주님께서 세우신 가정은 이 사회를 바로 세우는 근본적인 기초입니다.


결혼을 귀하게 여기고 가정을 귀하게 세우시기 바랍니다.


결혼을 귀하게 여기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요 우리가 행복하기 위하여 어떠한 일이 있어도 변하지 말아야 할 귀중한 가치인 줄 믿습니다.


 


다섯째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는 믿음입니다.


 


5절부터 7절까지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이 일에 변함이 없으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바뀌고 사람들이 아무리 바뀌어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의 사랑은 바뀌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영원토록 동일하시다는 말씀은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면에서 변치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그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주는 나를 돕는 이시니 내가 무서워하지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 하리요.” 담대하게 하나님을 믿고 살아갔습니다.


이것이 우리 신앙의 선배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여러분, 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결코 변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여러분 오늘날 돈의 힘이 얼마나 크고 얼마나 위대하게 느껴집니까?


때때로 우리도 주님을 위해 큰일을 하기 위해서는 규모가 커야 하지 않느냐고 생각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큰돈이 있어야 큰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실 때 제자들은 그 사람들을 조금씩만 먹여도 200데나리온이 부족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200데나리온은 장정 한 사람이 200일 동안 벌어서 한 푼도 안 쓰고 모아야 모을 수 있는 큰돈입니다.


그러나 5천명이 넘는 사람을 먹인 것은 200 데나리온 어치의 빵이 아니라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였습니다.


적은 도시락 하나에 사랑이 담기고 하나님의 뜻이 더해지자 사랑의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돈이 필요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돈의 능력을 너무 과대평가할 필요는 없습니다.


돈의 신화에서 벗어나서 주님의 능력과 사랑하심을 굳게 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심을 믿으시고 우리도 변함없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급변하는 시대를 살면서 변하지 않는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변하지 않는 구원의 진리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변하지 않아서 더 좋은 아름다운 삶의 모습을 간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고 갇힌 자와 학대받는 자들을 생각하고 결혼을 귀히 여기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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