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향을 찾는 사람들 (히11:8-16)
본문
본향을 찾는 사람들(히11:8-16)
구약의 창세기에 보면, 야곱이 가족들을 다 이끌고 애굽으로 내려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애굽으로 내려가는 것을 상당히 조심했지만 아들이 애굽의 총리대신으로 있었고 하나님의 허락이 있었기에 담대하게 애굽으로 이민을 떠날 수 있었습니다.
자리가 잡힌 후에 요셉이 아버지를 인도해서 바로에게 인사를 시킵니다.
먼저 야곱이 바로를 축복합니다.
이어서 바로가 야곱을 향해 ‘연세가 얼마나 되셨습니까?’ 고 묻습니다.
야곱이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130년입니다.” 대답을 하고 다시 한 번 바로를 축복하고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냥 쉽게 130살이라고 하면 될 텐데 구지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130년’이라고 대답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들의 체면을 생각해서 조금 유식한 말을 썼다고 생각하십니까?
가나안 땅에서 애굽으로 이민을 왔기에 자신이 나그네임을 솔직하게 표현했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야곱이 정말 험악한 세월을 살았기에 솔직하게 나그네 세월이라는 말을 썼다고 해석합니다만 오늘 본문에 나오는 히브리서 기자의 해석은 조금 다릅니다.
야곱이 나그네 길의 세월을 언급한 것은 자신이 본향 찾는 자임을 보여주었다는 것입니다.
14절 말씀을 보면,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고 합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 같은 믿음의 선조들이 고향과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난 것이나,
얼마든지 좋은 집을 짓고 살 수 있는 능력이 있었지만 오히려 장막을 치고 살았던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들임을 보여주는 증거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야곱이 나그네 길의 세월을 언급한 것은 야곱이 자신의 인생을 분명하게 인식하며 살았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야곱은 자신이 이 세상에서 나그네임을 알았습니다.
아들이 총리대신으로 있는 애굽으로 내려갔어도 그곳이 자신이 영원히 머물 곳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자신의 최후의 목적지는 이 세상이 아닌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임을 알았습니다.
그 나라를 소망하며 살았던 야곱의 130년은 험악한 나그네 길의 세월이었습니다.
험악한 나그네 세월을 살았다고 그의 인생이 불행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아닙니다. 그는 나그네 인생을 살아가면서 가장 행복한 삶을 살았습니다.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의 장이라고 해서 훌륭한 신앙인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말씀을 보면 야곱과 같은 나그네 인생을 살았던 사람들을 소개하는 내용이 나오는데요, 대표적인 사람이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으로 불리기도 하지만 인간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면 참으로 불행하기도 하고 험악한 세월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는 먼저,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살았던 사람입니다.
당시에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난 산다는 것은 정말 죽음을 각오한 모험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그의 삶을 이어갈 수 있었지만 실제로 얼마나 많은 어려운 일들을 겪었는지 모릅니다.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지 않으면 겪지 않아도 될 많은 일들을 겪었습니다.
글자그대로 아브라함은 이 세상에서도 험악한 나그네 삶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에 살았지만 실제로 그 땅을 얻은 것은 막벨라 굴과 그 주변의 조그마한 땅 뿐이었습니다.
저는 오래전에 막벨라 굴을 가 보았습니다만 바위로 둘러싸여있는 자그만 언덕 같은 곳입니다.
죽은 자를 장사하는 곳으로는 좋았을지 모르지만 땅으로는 전혀 쓸모없는 땅이었습니다.
약속의 땅에 살았지만 그 땅을 얻지는 못했습니다.
셋째로, 그는 장막을 치며 살았습니다.
한 때 그의 집에는 318명의 사람들을 데리고 있을 정도로 잘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얼마든지 좋은 집을 짓고 안정되게 살 수 있었지만 집을 짓는 대신에 텐트를 치고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즉각적으로 순종하기 위하여 견고한 집이 아닌 텐트를 치고 살았지만 그 삶이 얼마나 불편하였겠습니까?
그의 인생은 야곱이 표현한대로 험악한 나그네 인생길이었습니다.
그 고달픈 인생길을 아브라함은 야곱보다 45년을 더 살다가 175세에 마감하게 됩니다.
여러분, 이들이 이렇게 살았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얼마든지 그렇게 살지 않아도 될 사람들이었는데 그 삶을 거부하고 나그네와 같은 인생을 살았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들은 이 세상이 나그네 길의 세월인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소망을 두지 않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오늘 본문의 표현대로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인생길은 나그네 인생길인 줄로 믿습니다.
이 세상은 오래 살던 짧게 살던 행복하게 살던 불행하게 살던 여유 있게 살던 여유 없이 살던 분명히 나그네 인생길입니다.
저의 장인 어르신이 105세입니다.
호적 나이로는 10년이 더 늘어나서 115세입니다.
아직도 정정하시고 고기를 원래 좋아하셨던 분이시라 지금도 한 자리에서 닭발 두, 세 개는 거뜬히 잡수십니다.
그런 것을 보면 앞으로도 오래 사실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오래 사셔도 분명한 것은 우리 인생은 잠시 거쳐 가는 인생일 뿐입니다.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살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모두가 이 세상을 거쳐 살다가 이 세상을 떠나야 하는 존재들입니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5번째 시로 선정되기도 했던 천상병 시인의 귀천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 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이 시에서 시인은 우리의 인생이 얼마나 짧은 가를 이슬과 노을 빛 그리고 소풍이라는 이미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런 짧은 인생을 살다가 하늘로 돌아가는 것이 우리의 삶이고 현실인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시인의 표현대로 우리는 하늘로 돌아가야 하는, 귀천(歸天)해야 하는 존재들입니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더 나은 본향을 향해가는 존재가 우리 기독교인들이고 저와 여러분들입니다.
이것을 누가 부정할 수 있겠으며 이것을 누가 거부할 수 있겠습니까?
거부한다고 그런 인생을 안 살 수 있겠습니까?
거부할 수 없으면 받아들여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본향을 찾는 나그네 인생임을 생각하며 그 인생에 합당한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사는 것이 본향을 찾는 나그네 인생길을 잘 사는 것일까요?
먼저는, 떠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나그네 인생길에서 승리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떠나라는 말씀에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12장에 보면 아브라함은 떠나라는 여호와의 말씀에 따라 고향과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납니다.
그때로부터 그의 나그네 인생이 시작됩니다.
여러분, 자기 집이 있고 친척이 있고 아버지가 있고 친구들이 있는 곳에서 살면 그것은 나그네가 아니라 주인으로 사는 것입니다.
자기 가정 자기 나라 자기 삶을 떠날 때 나그네가 됩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나그네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세상과 습관과 풍습과 섬기고 의지하던 옛날의 생활을 버리고 떠나야 합니다.
정들고 익숙하고 나를 보호해주었던 것들과 단절한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습니다만 그 쉽지 않은 일을 결단할 때 우리는 나그네 인생길을 살아갈 수 있고 최후의 승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
제자들이 바닷가에서 고기 잡던 옛날의 직업과 배와 그물과 동업자들과 심지어 아버지를 버려두었을 때 예수님을 따를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들도 예수님을 따르고 나그네 인생길을 살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것들을 떠났습니까?
예전에 친구들을 떠나기도 했고 예전에 좋아하던 일들을 떠나기고 했고 예전에 섬기던 신들과 우상, 예전의 습관들 예전의 가치관들을 떠남으로 여러분들은 영적인 나그네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떠난다는 것은 그저 막연하게 떠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제시하신 목표를 향하여 나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아브라함에게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은 이어서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떠날 것을 말씀하실 뿐 아니라 떠나서 가야 할 목적지를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나그네 인생길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제시하신 목적지를 분명하게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목적지가 어디입니까?
16절 말씀을 보면 더 나은 본향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그곳이 우리가 가야 할 최종 목적지입니다.
그 목적지를 향하기 위해서 떠날 것을 떠나야 하고 버려둘 것을 버려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나그네 인생길을 잘 살아가며 믿음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두 번째는, 단순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9절 말씀을 보면 ‘아브라함이 이삭 및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장막은 요즘말로 텐트를 말하는 것입니다.
어떤 자연 재해가 있을 때 일시적으로 이재민들을 수용하기 위해서 설치하는 기구입니다.
장막에 거하는 삶은 나그네 삶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중요한 삶의 모습입니다.
먼저, 장막은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떠나라고 하면 주저하지 않고 떠날 수 있는 삶이 장막의 삶입니다.
좋은 집을 짓고 살면 떠나라는 말씀에 순종하기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주저하게 되고 지체하게 되고 심지어는 떠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장막에 살면 말씀에 순종하여 쉽게 떠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 장막의 삶은 단순한 삶입니다.
장막에 살면서 복잡하게 살수는 없습니다.
꼭 필요한 것 외에는 더 이상 가질 수 있는 공간이 없고 자리가 없습니다.
자연히 의식주의 모든 부분에서 간단하게 살 수밖에 없습니다.
장막의 삶은 단순한 삶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영적인 나그네의 삶을 살기위해서는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영적인 나그네의 삶을 살아가도록 때때로 이런 저런 말씀을 하실 때가 많습니다.
말씀에 순종할 때 우리는 나그네 인생길을 잘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 우리는 단순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단순하게 살아야 우리가 나아가야 할 이정표가 보이고 어디로 가야될지 길을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오늘의 세상은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가지라고, 그렇게 더 가질 때 행복하다고 우리를 유혹합니다.
그러나 이 유혹에 빠져 조금만 더 가지려고 할 때 우리는 행복한 것이 아니라 나그네의 영성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삶의 방향을 잃어버릴 수 있고, 이 세상이 전부인 양 생각할 수 있고요, 이 세상에 주저앉아 버리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단순한 삶을 훈련해야 합니다.
이 세상의 것을 다 누리려고 하지 마시고 순례의 길을 방해하고 지체하고 잘못 가게 하는 것들은 과감하게 포기해야 합니다.
단순한 삶을 통하여 세상의 문화를 극복하시고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성도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아야 합니다.
11절 말씀을 보면, 하 반절에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알았음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미쁘다는 말은 진실하다, 믿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를 향하여 내가 네게 지시할 곳으로 가라고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에 순종하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은 미쁘시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어떻게 고향과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날 수 있었겠습니까?
하나님이 미쁘시다는 믿음이 없었다면 그는 결코 그런 모험을 감행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었기에 하나님의 미쁘심과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믿었기에 그렇게 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나그네 인생길을 살아가기 위해서 우리가 가져야 할 믿음도 바로 이런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예비하셨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 세상의 삶이 끝나면 그곳으로 우리를 인도하신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 세상의 삶을 살아갈 때도 늘 보호하시고 지키시고 인도하신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미쁘신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더 좋은 본향 천국을 예비하셨다는 믿음을 갖고 그곳을 우리의 목적지로 삼고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은 결코 우리의 목적지가 될 수 없습니다.
미국의 LA에서 자동차로 그랜드 캐니언을 가려고 하면 반드시 네바다 주에 있는 라스베이거스를 경유해야합니다.
도박으로 유명한 도시인데 그곳의 밤은 너무도 화려하고 휘황찬란합니다.
온 세상의 유명한 조형물은 다 갖다놓고, 온갖 쇼도 많이 합니다.
그러나 그곳은 오래 머물 곳이 아닙니다.
오래 머물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고 거지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목적지인 그랜드캐니언의 장관을 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목적지는 이 세상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이 세상은 잠깐 거쳐 가는 경유지입니다.
그 목적지를 가기 위해서 우리는 떠날 것을 떠나야 하고 단순한 삶을 살아야 하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그 최종적인 목적지를 놓치고 이 세상에서 탕자가 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순례의 길을 떠났는데 목적지를 잃어서 탕자가 되어버린 거예요.
하나님은 오늘 우리들을 향하여 이런 탕자가 되지 말고 오직 더 나은 본향을 찾는 자들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믿음의 사람들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사람들임을 증거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고향 친척 아비 집을 떠났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좋은 집을 마다하고 장막을 치며 살았습니다.
말씀에 순종하기 위하여 단순한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영원한 집만을 바라보며 살았습니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도성, 그분이 계획하시고 만드신 곳,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영원한 천국을 확실히 바라보는 믿음으로 여러분의 나그네 인생길에서 승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