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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사는 삶 (롬6:6-11)

본문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사는 삶 (롬 6:6~11)



 


부활의 신앙으로 늘 승리합시다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삶은 사망이 통치하지 못해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줄을 믿노니”(롬 6:8)




   

  ▲ 김용대 목사  

할렐루야! 부활의 예수님을 만납시다. 복음의 핵심은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 십자가 고통과 죽으심, 부활, 승천과 재림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일생이기도 하고 우리가 또한 살아야할 우리의 일생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사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1.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삶은 예수 십자가에서 함께 죽음의 삶입니다.


8절에 보면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이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성도의 삶은 예수 그리스도가 지신 십자가에서 함께 죽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7장 50절에서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죽음은 헬라어 원문으로 ‘몰살하다’는 뜻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셔서 시체가 된 예수님은 사단의 권세에 싸였고, 세마포에 몸이 묶였고, 돌무덤에 넣어져서 입구가 큰 돌로 막아졌고, 로마병정들이 무덤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역사적으로 너무나 확실한 죽음입니다.


 


성도의 삶은 곧 예수 그리스도가 지신 십자가와 함께 죽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24절에 보면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받았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죄에서 죽었다는 것입니다. 과거 2000여 년 전의 갈보리 언덕 사건은 바로 우리의 사건이요, 우리는 육체적 죽음과 함께 정욕과 탐심의 죄가 죽은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나는 매일 죽노라’라고 고백합니다. 바울사도의 고백은 예수를 믿는 모든 성도의 고백인 것입니다.


 


통증의학 전문가들이 사람의 통증지수를 측정하였는데 치통은 30, 타박상 통증은 31, 출산 통증은 40으로 나왔습니다. 최고 통증인 50은 바로 예수님의 통증입니다. 긴 대못으로 예수님의 손과 발에 ‘탕탕’ 못 박았습니다. 예수님이 이처럼 엄청난 고통을 참으신 것은 우리의 모든 죄를 죽이기 위해서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19~21절에 보면 15가지 죄 즉 음행, 더러움, 호색, 우상 숭배, 주술, 원수 맺는 것, 분쟁, 시기, 분냄, 당 짓는 것, 분열함, 이단, 투기, 술 취함, 방탕함 등 이 모든 것을 못 박아 죽이셨습니다.


성도의 삶은 예수 그리스도가 지신 십자가에서 함께 죽는 것입니다.



2.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삶은 예수 부활과 함께 살아나는 삶입니다.


8절은 계속해서 “…또한 그와 함께 살줄을 믿노니”라는 구절로 이어집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성도의 삶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함께 살아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8장 6절에 보면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 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라고 합니다.


 


마호메트는 63세에 죽었고, 공자는 73세에 죽었고, 맹자는 83세에 죽었고, 석가모니는 80세에 죽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만은 죽음에서 부활하셔서 영원히 살아계십니다.


 


예수님과 함께 죽고 사는 삶은 또한 예수님의 부활과 함께 살아나는 삶인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22절에 보면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아담의 죽음은 모든 사람의 죽음을 가져왔습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예수님을 믿는 모든 자들의 부활의 첫 열매입니다. 예수님 부활은 우리인생에 가장 기쁜 소식이요, 우리를 감격스럽게 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17절에 보면 예수님의 재림 시에 죽은 자가 먼저 살아나서 우리를 기다리며, 살아있는 자도 변화되어 서로 만나게 됩니다. 예수님과 함께 죽고 사는 삶은 예수 부활과 함께 살아나는 삶입니다.


 


예수님은 왜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했을까요?


십자가의 모양과 영적 의미 몇 가지를 묵상하길 원합니다.


십자가에서 수직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요,


수평은 사람과 사람의 화목을 의미합니다.


즉 예수님의 십자가는 화평의 통로인 것입니다.


또한 열십자의 사방은 동서남북 모든 국가 사람들이 구원받는다는 의미로 복음의 확장성을 의미합니다.


십자가는 모든 사람들이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갈보리 언덕 위에 세웠습니다.


구약의 놋뱀을 본 사람들이 치료를 받았던 것처럼, 믿음으로 십자가를 쳐다본 자는 십자가의 구원을 받습니다. 부활의 축복을 얻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죽고 사는 삶은 예수님의 부활과 함께 살아나는 삶입니다.


 

3. 사망이 다시 주장하지 못하는 삶은 사망이 통치하지 못합니다.


9절에서는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라고 합니다. 성도의 삶은 마귀의 권세, 사망이 주장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망 권세를 이기셨습니다. 예수님을 가두었던 돌무덤이 열렸고 시체는 사라졌습니다. 사망이 사라진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사는 삶은 사망이 통치하지 못합니다. ‘주장’의 헬라어 원문은 ‘주인의 뜻’, ‘통치’, ‘지배’라는 의미를 가졌습니다. 이전까지는 사망이 통치하였지만, 예수님의 부활 이후에는 모든 성도가 더 이상 사망의 통치를 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부활의 신앙을 소유한다는 것은 크게 3가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다시 죽지 아니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었기 때문에.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사는 삶은 사망이 통치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영원히 죽지 아니한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1장 25~26절에 보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세 번째로 부활의 신앙은 사탄의 권세로부터 승리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신앙인의 삶은 스포츠경기처럼 결과를 몰라, 조바심을 갖고 두려움으로 불안해하는 삶이 아닙니다. 승리는 이미 정해졌고 여호사밧왕처럼 찬양하며 전진하여 전리품을 수거하는 여유 있는 삶인 것입니다.


 


미국의 1994년 통계를 보면 미국인 중 87%가 부활신앙이 있다는 대답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최근 통계를 보면 미국인 중 30%만이 부활을 믿고 있다고 합니다. 미국에서 부활의 신앙이 무너져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미국교회의 위기는 조만간 한국교회의 위기로 다가올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시 사망 없는 영원한 부활의 신앙을 온전히 소유하시길 바랍니다. 또한 부활의 신앙으로 다음 세대를 든든히 세우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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