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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감사 하십니까? (시50:14-15)

본문

또 감사 하십니까? (시 50:14-15, 23)

 





인간은 타락한 천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천성 중에 두드러진 성품이 불평하는 것입니다. 불평은 안가르켜 주어도 어릴 때부터 잘 압니다. 그리고 불평은 그 원인이 마귀에게 있습니다. 마귀는 불평의 아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 광야 40년 동안 계속 불평하고 계속 원망하다가 결국에 하나님께 버림받을 정도까지 된 것입니다. 이런 불평과 원망이 인간에게 불행을 가져다줍니다. 오늘 본문은 이런 불행을 극복


하는 처방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감사가 처방입니다.그렇다면 감사하며 살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째로, 감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편 50편 23절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고 하셨습니다.


불평하는 자식을 좋아할 부모는 없습니다. 불평한다는 것은 아직 철이 들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어릴 적부터 절대적인 사랑을 받고 자란 자식이 어떻게 부모에게 불평하고 원망 할 수 있겠습니까? 


어느 회사도 부하가 늘 상사를 뒤에서 욕하고 불평할 때 그런 소리를 듣고 부하 직원을 좋아 할 사람이 없을 것 입니다. 부모를 좋아하고 늘 방실방실 웃는 자식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입니다. 항상 즐겁고 쾌


활하고 명랑한 부하를 거느린 상사는 마음이 즐겁고 그 부하를 사랑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보통 20대 이전의 얼굴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이지만 40대 이후의 얼굴은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고 합니다. 이 말은 살면서 마음속에 무엇을 담고 있느냐에 따라 우리 얼굴 모습이 변해간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


다. 



몇일 전에 비행기 안에서 만난 미국 아저씨 한분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이 분은 미국 몬타나 주에 사시는 분인데 영어 선생을 하면서 건축 사업을 하는 건축 전문가 였습니다. 이 분은 일년에 한달 정도 시간 


내어 단기선교 하시는 분이었는데… 요즘은 북한에 가서 집 지어주는 일을 하고 있다고 자기를 소개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를 목수라고도 소개했습니다. 14명이 한 팀이 되어 벌서 북한에 7번 이나 집지러 다녀왔


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분 옆에 있던 한국 분이 그 분을 소개 하면서 이 분의 매력은 미소인데… 100만 불 짜리 미소라고 칭찬했습니다. 


저도 마침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듣고 보니 그분의 웃는 얼굴이 얼마나 인상적이었는지 모릅니다. 정말로 그 분은 자기 얼굴에 책임을 질 수 있는 분 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버마 선교사 에도니람 저드슨은 못생긴 편에 속했지만 주변의 사람들로부터 기쁨의 얼굴 이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저드슨은 믿음의 사람으로 늘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비록 얼굴의 이목구


비는 잘생기지 못했을지라도 환하게 기쁨을 소유한 얼굴을 만들어 주변의 사람들에게 위로와 평안을 주었습니다. 누구든지 저드슨 선교사를 만나면 즐거워지고 평안해지고 명랑해졌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갈 때도 늘 우는 얼굴 찡그린 얼굴과 불평과 탄식하는 얼굴을 가지고 나오면 하나님이 고개를 돌리실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도 방실방실 웃는 자식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감사하고 찬양하고 나오


는 자를 하나님도  기뻐하시고 품에 품어 주시는 것입니다. 


종교 개혁가 마르틴 루터는 마귀의 세계에는 감사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마귀의 세계는 항상 원망만 있지 감사는 없습니다. 


대설교가 크리소스톰은 죄 중의 죄는 감사하지 못한 죄라고 말했습니다.


톨스토이도 감사하는 사람은 젊어진다고 말했습니다. 늘 원망, 불평하면 얼굴이 찡그려져서 늙어지지만은 감사하는 사람은 젊은 얼굴이 된다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짐승의 제사보다 감사의 제사를 더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는 항상 짐승을 잡아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 앞에 나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짐승의 제사보다도 당신의 백성들이 감사로 제사 드리는 것을 더 기뻐한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편 69편 30절로 31절“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위대하시다 하리니 이것이 소 곧 뿔과 굽이 있는 황소를 드림보다 야훼를 더욱 기쁘


시게 함이 될 것이라”


시편 50편 14절로 15절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존하신 이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여러분 감사하는 생활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처음 미국과 카나다에 왔을 때 놀란 것은 가족들이 밥상에 둘러앉아서 스푼 좀 전해 달라. 물 한잔 달라고 하는데 아버지와 자식들 간에 어머니와 아버지 간에 꼭 땡큐, 감사합니다. 당연지사인데…. 말 입니다.


우리는 한국에서 어릴 때 자랄 때 숟가락 주세요. 주면 그뿐입니다. 물 줘. 물주면 그뿐입니다. 밥 줘. 밥 주면 그뿐입니다. 감사란 말은 안했습니다. 아직도 이런 문화가 약간 이상하게 보입니다. 항상 감사하고 범사


에 감사하는 것이 우리 한국의 생활 습관이 된다면 좋겠습니다. 


에베소서 5장 4절에는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오히려 감사하는 말을 하라”고 했으며 골로새서 2장 7절에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


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고 말씀합니다. 


물 한잔을 마실 때도 ‘감사합니다’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물>도 아무나 마시는 것이 아닙니다. 병원에 가보면 어떤 환자들은 물도 마시지 못합니다. 


여러분, 숨 쉴 수 있음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숨쉴 때마다 감사해야 합니다.


병원에 가보면 아무나 숨 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호흡기를 의존해야 숨쉬는 환자들도 많습니다. 여러분, 숨 쉴 수 있는 것에 대해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큰 숨한번 쉬어 보시기바랍니다...그리고 감사합니다인사 


나누시기 바랍니다)


살았음에 감사해야 합니다. 생명이 있다는 것은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생명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아직도 기회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비록 힘들고 어려워도, 비록 장애가 있어도, 비록 몸이 아파도…  살았


음은 감사의 조건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은 감사하지 못할 환경까지 포함해서 감사하라는 뜻입니다. 다니엘 6장 10절에 보면 다니엘은 기도하면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렸습


니다. 이런 다니엘 같은 감사가 진정한 범사의 감사입니다.



지금 가진 것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지금 가진 것에 대해 불만을 내세우면 그 사람에게 더 좋은 것을 주겠습니까! 소유가 많은 것이 곧 행복은 아닙니다. 많이 가졌다고, 큰집에 산다고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지금 감


사하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옛말에 “천석꾼 천가지 걱정, 만석꾼 만가지 걱정”이라했습니다.  많이 가진 사람은 많이 가진 대로 걱정과 근심이 많은 것입니다. 지금 가진 것으로 감사하며 사시기를 다시 한번 축복합니다.


부모, 형제자매, 자녀, 친구가 있음에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 믿음으로 만난 믿음의 식구들이 있으니 감사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그들도 때론 짐이 되기도 하지만 그들을 곁에 두신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믿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래도 기다려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왜 감사해야 할까요?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 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감사하므로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가며 찬미로 그 보좌에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 성소의 문에 들어가며 하나님 보좌 앞에 나아가겠습니까? 옷을 단장해야 들어가겠습니까? 얼굴에 


예쁜 화장을 해야 들어가겠습니까? 쌍까풀 수술을 해야 합니까? 아닙니다. 우리의 외모 형상이 어떠하든지 감사로 나아가면 하나님 성소에 들어갈 문이 활쫙 열리고 찬미로 나아가면 그 보좌 앞으로 이끌어 들려지


는 것입니다. 


시편 100편 3절로 4절입니다. “야훼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감사함으


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 할 찌어다”


그러므로 우리가 언제나 감사하면 하늘 문이 열리는 것입니다.


유럽에 가보면 사거리에 큰 시계탑이 있는데, 얼마나 시계탑을 사거리에 잘해놓았는지…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 시계를 볼 때마다 고맙게 생각하더랍니다. 그런데 막상 그 시계를 만든 사람에게는 어느 한 사람도 고


맙다고 말하는 사람이 없어서 어느 날 이 분이 섭섭한 생각이 들어서 그만 그 시계를 일부러 고장나게 했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 시계를 고쳐보려고 애써 보았지만 만든 그 사람 외에는 아무도 고칠 수가 없었답


니다. 


그 때 그가 나타나서 '이 시계는 내가 만들었으니까 나만이 고칠 수 있습니다' 하고 고쳐 놓자 그 때서야 비로소 '아, 시계 수리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하고 인사를 하더랍니다. 그리고 나서는 또 잊어버리고 시계에게


만 고맙다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이 분이 심심하면 한 번씩 시계를 고장냈다고 하는 그런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삶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야 됩니다. 그런데 가장 기본적으로 영광 돌리는 삶이 바로 범사에 감사하며 사는 것 입니다. 


왜 감사해야 할까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때문이고….


둘째로 감사는 구원의 기적을 가져오기 때문 입니다.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 50:14,15) 


시 50:2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피난처 있으니, 환난을 당한 자 이리 오라’는 찬송가 가사대로 우리 주님은 환난을 당한 자에게 피난처가 되어주십니다. 상처받은 자의 상처를 치유해주시고, 의지할 곳 없는 자에게 반석이 되어주시며, 어두움에 처


한 자에게는 빛이 되어주시고, 죽음에 처한 자에게는 생명이 되어주시는 하나님의 이 은혜를 인하여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하며, 환난 날에 건짐을 받는 여러분 되시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평소에 감사생활을 하는 자는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져리니'라는 말씀대로 부르짖을 때마다 건져주십니다. 간절히 주의 이름을 불러 보셨습니까? 


빌립보서 4:6,7에도 보면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


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약속했습니다. 우리의 기도 속에도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불루베리 운반 사건> 간증 / 북한에서 만든 불루베리 원액 큰 통 두개와 10개도 넘는 보따리를 중국 국경 넘어 연길로…. 그리고 연길에서 비행기로 한국에 들어 오는 과정이 거의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아니나 다


를까 비행장에서 모든 것이 올 스톱입니다. 우리를 도와 주는 높은 분들이 와서 힘을 써도 안되었습니다. 게다가 네 명이 겨우 비행기 타려고 하는데…. 제 것만 표가 잘못되었다고 비행기를 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만 남았습니다.


조금 후에는 서울에서 농군학교 이사회를 인도해야 하는데…. 인간적으로는 암담한 일이었지만 … 기도했더니 마음이 평안해 지고…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이 생각나서 믿음으로 감사했더니…. 모든 것이 전화 위


복이 되었습니다. 결국 제가 남은 것이 너무 잘된 것 입니다. 나중에 보니 자기들이 잘못 했다고 비행기도 한 시간 후에 태워주고 … 불루베리 액체 큰 통 두개도 극적으로 허락을 받아 한국에 가져 왔습니다. 


정말 안된다고 해서 포기했습니다. 그러나 감사했습니다….그랬더니….기적이...


지금 농심에서 성분 분석에 들어 갔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이번에는 기적이 연속적으로 일어났습니다. 기도하던 도문의 쌀 가공 공장을 사주겠다는 분도 나타났습니다. 싯가로 150만불 되는 공장입니다. 이 공장에서 우리 교회 선교사님들 거류증이 다 해결 될 수 있게 되었


습니다. 


기적적인 일들이 너무 많아 다 말씀 드릴 수가 없습니다. 감사하고 또 감사할 뿐 입니다. 왜 감사해야 합니까? 감사는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뿐만이 아니라 감사는 하나님의 구원이라는 기적을 나타


내시기 때문입니다.


시편 118:1에 보면 "여호와께 감사하라. 저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인자하심이 영원함에 대해서 시편 기자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했


습니다. 우리도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영원하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또 데살로니가전서 5:18에도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이것저것 골라서 감사하지 말고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


다. 좋은 일이 있을 때도 감사해야 하지만, 어려운 일이 있을 때에도 감사하면 더 좋은 일과 감사한 일이 넘치게 될 줄 믿습니다.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저 솔로몬의 옷보다 더 고운 백합화, 주 찬송하는 듯 저 맑은 새소리, 다 주 하나님 영광을 잘 드러내도다' 여러분, 정말 이런 찬송을 불러 보세요. 감사의 찬송을 드리고, 감사한 말을 


해보세요. 여러분에게 감사할 일이 있게 됩니다. 주께서 축복하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불평 불만 속에 사는 사람을 보세요. 평생에 불평거리만 자꾸 생기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감사하는 자에게는 감사가 넘치고 축복이 넘쳐서 감당하기 힘들 정도입니다. 감사는 하나님의 구원이라는 기


적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감사하는 자에게 성경은 축복을 약속합니다. 신명기 16:15에 보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너는 칠 일 동안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절기를 지키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물산과 네 손을 댄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을 인하여 너는 온전히 즐거워할지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어려울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리며 제단을 쌓았습니다. 항상 여호와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제단을 쌓았다고 했습니다. 


그 때마다 하나님이 그곳에 임재해주시고, 어디로 가든지 하나님께서 동행해 주셨습니다.



여러분, 마음이 답답하고 컬컬할 때 누구도 찾아가지 말고, 하나님을 찾아 기도하십시오. 가정에 어려움이 많이 있으면,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리십시오. 하나님은 예배하는 그곳을 찾아주십니


다. 병든 자에게 의사만 찾아와도 안심이 되지요? 어려울 때 하나님이 찾아주시면 무엇에 능치 못함이 있겠습니까? 모든 것이 형통하게 될 줄 믿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평생에 감사의 제사를 드리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는 축복이 함께 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에베소서 5:19,20에 보면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라고 말씀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을 잃어버렸습니까? 그것은 당신의 환경이나 여건이 나빠서가 아닙니다. 당신이 믿음을 잃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앞에 감사할 수 있는 여건을 달라고 기도하기 전에 감사할 수 


있는 믿음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감사할 수 있는 인격은 성숙한 인격이요,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은 지혜로운 마음입니다. 


본문 9절로부터 13절을 보십시오. (현대판으로) “나는 네 집에 있는 수소나 네 우리에 있는 염소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숲속에 있는 짐승들과 수많은 산위에 널려있는 가축이 다 내 것이 아니냐? 산에 있는 모든 


새들을 다 내가 알고 들의 짐승들도 다 내 것이다. 설사 내가 짐승의 고기를 못 먹어 굶주린다 하여도 너희에게 부탁하지는 않을 것이다. 온 세상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이 다 내 것이 아니냐? 너희는 정말 내가 수


소의 고기를 먹고 염소의 피를 마신다고 생각하느냐?”



때문에 본문은 도대체 하나님은 무엇을 원하시는가? 하나님은 무엇을 기뻐하시는가? 어떤 사람을 기뻐하시는가? 이것을 알라는 것 입니다. 한마디로 14절과 23절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입니다. 반면 본문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제사, 감사의 제사가 아닌 것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형식적인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습니다.


둘째, 삶과 유리된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습니다.


22절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잊어버린 사람이 나옵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너는 기억하라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가 없을 것이다.”


감사가 없는 백성은 찢어진자는 것 입니다. 가정도 찢어지고… 사업도 찢어 지고… 


23절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감사하는 마음속에는 언제나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는 기적이 있습니다. 유일한 길은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날 낳아주신 부모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때, 온 생에 대한 감사가 일어납니다. 남편에게 감사하고 아


내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때, 그 남편이 내 남편이 되고 그 아내가 내 아내가 되는 겁니다. 감사는 언제나 마음의 기적, 환경의 기적, 구원의 기적을 가져오는 것 입니다.


셋째, 감사는 환난을 극복하는 힘이 있기 때문 입니다.


14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여기 “환난”이라는 단어는 퍽 재미있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포도를 틀속에 집어 넣고 뭉개고 짓눌러 포도를 짠다는 


뜻이 있습니다. 포도가 뭉개질 때 포도주가 나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당하는 고난은 무의미한 것이 아닙니다. 고난속에 하나님의 뜻이 있고 계획이 있습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환난날에도 감사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이 영광을 받


으십니다. 이런 사람은 환난의 바람이 강하면 강할수록 신앙과 인격이 깊어지고 높아집니다. 


목사와 교인이 정이 드는 것도 어렵게 교회를 섬겨봐야 그 맛을 압니다. 그래서 목사도 교인도 성전을 건축해 봐야 그 진가가 드러난다고 하지 않습니까?


요즘 많이 쓰는 말 가운데 인생에는 세가지 불행이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조기성공, 중년상처, 노년무전 입니다. 


이른 나이에 성공해선 안되고, 중년에 배우자가 사망하면 안되고, 노년에 돈없으면 안됩니다. 중년상처나 노년무전은 그래도 극복하는데 조기성공이 가장 극복하기 힘든 불행이라고 합니다. 특히, 젊은 나이에 성공


하거나, 운좋게 성공하면 사람이 교만해집니다. 성공을 하기 위해선 많은 시행착오가 필요하고, 그 실패와 실수들이 성공의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요즘 자살하는 연예인들의 공통점 가운데 하나가 조기성공이라는 것 입니다. 어린나이에 인기와 돈이 너무 많다 보니까… 감당 못하고 무너지는 것 입니다. 그래서 술먹고 우울증 걸리고 결국은 자기를 죽이는데 까


지 가는 것 입니다. 


고난을 모르고 젊은 나이에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 되었던 사울을 보십시오. 한순간 그는 교만해졌습니다. 사무엘 선지자가 할 일도 자기가 합니다. 월권을 많이 합니다. 다윗을 죽이려고하는 질투의 화신이 되어 비


열하게 살다가 인생을 비참하게 마감합니다. 그래서 젊어서 고생하는 것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것이라 하지 않습니까?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욥23:10) 환난날에 망하는 사람이 있고 환난날에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연단후에 죽어 송장이 되어 나오는 사람이 있고 연단후에 정금같이 나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고난 가운데서 하나님의 은혜를 모조리 까먹고 나오는 사람이 있고, 금같은 믿음을 얻어 나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누가 승리하는 사람이고 누가 망하는 사람입니까? 고난 가운데 환난 가운데 감사함으로 직면하는 사람이 은혜를 누릴 수 있고, 정금같은 믿음을 얻을 수 있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희생이 동반된 감사입니다.


본문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리라"는 말씀이 있는데, 제사(Sacrifice)란 원래 희생이란 뜻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깊은 감사는 받은 은혜에 대해서 희생을 바치며 감사하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은혜에 너무나 감사하고 감격해서 자기에게는 가장 소중히 여기는 비싼 나드 향유 옥합을 깨트려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예수님의 몸에 부어 드렸습니다. 이 나드 향유는 남자가 일 년 동안 벌어


도 다 못벌 것을 예수님께 드린 것입니다. 진정 깊은 감사는 우리의 시간도, 몸도 물질도 희생하는 데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역대의 유명한 인물인 야곱도, 요셉도, 모세도, 다니엘도, 다윗도 다 이 고난을 통하여 그런 위대한 사람이 되고 축복받은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위대한 신앙의 사도 바울도 빌립보 옥중에 갇혀 매를 맞고, 쇠고랑을 차고 피가 나고 멍든 몸을 가지고 하나님께 찬양하며 감사할 때, 옥토가 움직이고, 쇠고랑이 풀리고 닫혔던 문이 열린 것을 볼 수가 있


습니다.


(하용조 목사님… 투석을 하고…암과 투병하면서도…감사가 있고 찬송이 있습니다…) 


마귀가 우리를 얽어매고, 축복의 문이 다 닫힌 것 같고 하나님이 나를 버리신 것과 같은 그런 역경과 환경 속에서 미리미리 감사하는 사람에게 축복의 문이 열리고 우리를 얽어 맺던 사탄의 쇠사슬이 풀리고 하나님


의 축복이 임할 줄로 믿습니다. 


불평은 미움, 분노, 불안, 절망, 탄식 등을 가져오나 감사는 이 모든 독을 해독 시키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뱀에게 물려서 피가 응고할 때 어떻게 합니까? 해독제 주사를 빨리 맞아야 되는 것입니다. 해독제를 맞으면 


해독제가 몸속에 들어가서 응고되는 피를 묽게 만들어 주어서 독사의 독이 해소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불평과 원망으로 인한 독이 들어 왔을 때 그 해독제는 멀리 있지 않습니다. 병원에 가야 해독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을 펼쳐 읽고 하나님께 감사하기 시작하면 해독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감사할 때 귀신들이 


쫓겨나기 때문인 것입니다.


사무엘상 16장 14절 “야훼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야훼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그를 번뇌하게 한지라”


사울이 하나님을 반역하매 성령이 떠나고 악령이 와서 그를 괴롭혔습니다. 악령으로 말미암아 몸부림치고 야유를 하고 고함을 치고 몸부림을 쳤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와서 그를 치료한 것입니다. 


23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사울에게 이를 때에 다윗이 수금을 들고 와서 손으로 탄즉 사울이 상쾌하여 낫고 악령이 그에게서 떠나더라”


다윗이 하나님을 찬미하고 감사하는 수금을 타니까 악령이 떠나가고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여 치료해 주신 것입니다. 감사와 찬양은 저와 여러분의 마음을 치료해 주시는 것입니다. 


마음이 답답하고 괴롭고 우울하고 원통할 때 다른 것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 엎드려 주님이 주신 은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의 은혜를 큰 소리로 감사하고 찬양하면 얼마 있지 아니하여 독이 다 해소되어 


버리고 깨끗하고 밝고, 맑고, 환한 마음이 되고 축복이 다가오게 될 줄 믿습니다.


감사야 말로 내적치료를 가져옵니다. 그러므로 교회와서 많은 찬양을 드리고 많은 감사를 드리는 것이 아름다운 예배를 드리는 것 입니다. 


감사는 우리 인생을 형통하게 하고, 하늘의 복을 받게 하고, 이 땅에서도 성공하게 하는 비밀인 것입니다. 마귀가 아무리 우리에게 독을 뿌리고 우리를 깨물어도 독이 우리 속에 아무리 넘쳐와도 감사의 제사를 드릴


수 있다면 독이 다 해소되어 버리고 마귀가 무력화 되고 마는 것입니다.


마귀를 이기는 힘, 불행을 이기는 힘, 좌절과 절망을 이기는 힘, 마음에 병을 고치는 힘으로써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감사의 제사를 끊임없이 드리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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