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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하게 자아 성찰하는 신앙인으로 살아봐요 (계2: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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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하게 자아 성찰하는 신앙인으로 살아봐요 = 요한계시록2;18-23





PW : 믿음      BIW : 회개하라         AG : 여선지자 이세벨


TS : 믿음이란 하나님 앞에서 냉정하게 자아 성찰할 줄 아는 신앙인으로 사는 것이다.


바쁘게 해야 할 일이란?


어떤 수행자가 세속의 친구를 찾아와 말했습니다.


“여보게, 자네도 이젠 마음을 내어 수행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영혼도 가꾸면서 살아야지!”


“그렇지 않아도 그렇게 할 셈이라네. 하지만 세 가지 일을 하고 난 뒤에 하려고 하네.”


“그래, 그 세 가지 일이라는 게 무엇인가?”


“첫째는 빨리 돈을 벌어서 부자가 되는 것이고,


둘째는 자식들 좋은데 혼인시키는 것이고,


셋째는 자식들이 출세하는 것을 보는 것이라네.”


그러나 그 친구는 세 가지를 이루기도 전에 생을 마감하여 지옥으로 가고 말았습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언제나 매일 바쁘게 살아갑니다.


정작 할 일을 하지 못한 채 환상만을 쫓다가 인생을 마감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언제부터인가 “바쁘다.”라는 말은 참 익숙하게 들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빨리 빨리”라는 말을 쓰지 않으면 마치 남에 비해 자신이 손해를 보는 것처럼 생각이 됩니다.


우리들에게 바쁘게 해야 될 일은 무엇이 있을까요?


바쁘게 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이 과연 우리들을 진정으로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영생을 줄 수 있을까요?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보다 더 바쁘게 해야 될 일은 없습니다.


축복의 사람은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을 위하여 사는 사람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하늘 아버지께서 베풀어주시는 생명, 영생, 천국을 위하여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P4.


요한계시록에는 아시아 지역의 7개 교회를 소개하고 있다.


하나님의 사자를 통해서 사도 요한에게 7개 교회 성도들과 장로들에게 편지하라고 말씀하시면서 7개 교회를 소개하고 있다.


7개 교회 중에서 주님은 두아디라(Thyatira)교회에 대해서 편지를 쓰라고 하신다.


두아디라 성읍은 버가모 교회와 사데 교회를 이어주는 교통의 요지에 위치하고 있다.


두아디라 지역은 B.C. 7세기경 리디아(Lydia)인들이 거주하며 “펠로피아(Pelopia)”라고 부르던 지역이다.


커다란 아르테미스(Artemis)신전이 있는 곳으로서 오늘날 아키사르(Akhisar)라고 부르는 곳이다.


두아드라 지역은 B.C. 3세기경 헬라제국의 세룩쿠스1세(Seleucus Ⅰ)황제는 이곳에 도시를 세우고 상업과 산업의 중심지로 발전 시켜나간다.


두아디라 지역은 로마 제국과 동맹 관계에 있던 버가모 왕국의 지배아래 있다가 로마의 속령이 된 지역이다.


이 지역은 특별히 염색 산업이 발달한 지역이다.


빌립보성의 루디아 여인은 바로 두아디라 출신 여성으로 자주옷감을 팔면서 살았던 여인이다.


오늘 본문에서 보여주는 두아디라교회는 흔하지 않게 예수님께 칭찬받는 교회이다.


두아디라교회의 사역, 사업,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는 예수님께서 인정해 주실 정도로 교회가 살아 움직이도록 활력을 주는 요소들이다.


그렇지만 두아디라 교회에 치명적인 잘못된 일이 발생한다.


두아디라교회가 가지고 있던 치명적인 실수, 죄악은 바로 자칭 선지자라고 떠벌리고 다니는 한 여인 때문에 발생하는 죄악이다.


이 여인은 자칭 선지자라고 떠벌리는 이세벨이라는 여인이다.


두아디라교회는 이세벨 여인을 용납하고 묵인하고 징계하지 않는 것을 하나님의 사자께서 지적하고 계신다.


하나님은 자칭 여선지자라고 떠벌리면서 성도들을 유혹하여 죄악에 빠지도록 하는 이세벨 여인에게 회개할 시간을 주신다.


이세벨 여선지자는 예수님 앞에서 진정으로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회개해야만 된다.


그 이유는


① 회개해야 본인이 사는 길이 열린다.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지 않으면 예수님 앞에서 본인의 영혼이 살 수 있는 길이 없다.


② 회개해야만 하나님의 긍휼을 입을 수 있는 길이 열린다.


회개해야만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와 은혜를 입을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


③ 회개해야 교회를 살릴 수 있다.


지금 이세벨 여인 때문에 교회가 큰 시험에 들고 죄악에 빠지는 성도들이 속출하고 있다.


D4.


① 불 꽃 같은 눈과 빛난 주석과 같은 발을 지니신 예수님.


18절에서 예수님에 대해서 “그 눈이 불 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설명해 주고 계신다.


예수님에 대해서 불 꽃 같은 눈과 빛난 주석 같은 발을 지닌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예수님은 지구촌에 존재하는 세상의 그 어떤 신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나고 능력이 많으신 분이라고 소개하는 것이다.


불 꽃 같은 눈과 빛난 주석 같은 발을 지닌 신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것도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 되시는 분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세상의 그 어떤 신들과 비교할 수조차 없는 분, 아예 비교대상이 존재할 수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② 교회의 상황을 너무나 잘 알고 계시는 예수님.


19절에서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예수님은 두아디라교회의 복음사역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계신다고 말씀하신다.


보통 교회들은 처음 교회가 개척되어질 때에 보여주는 신앙에 대한 열정, 믿음의 열정, 사랑의 열정, 인내에 대한 소망이 너무 뜨겁고 좋았다가 그 다음에는 서서히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두아디라 교회는 오히려 나중에 보여주는 신앙에 대한 열정, 믿음의 열정, 사랑의 열정, 소망의 인내가 처음보다 훨씬 나중이 점점 더 좋아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예수님께서 칭찬해 주고 계신다.


처음보다 나중이 점점 더 좋아지고 나아지고 훌륭해지는 교회가 바로 두아디라교회라고 칭찬하고 있다.


하루하루가 달라지고 좋아지는 교회, 칭찬받는 교회, 성장하고 부흥하는 교회, 점점 더 인정받는 교회, 사랑받는 교회가 될 때 주님께서 기뻐하신다.


우리들이 섬기는 교회도 이처럼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흐르고, 연도가 많아지면서 점점 더 좋아지고 나아지고 칭찬받는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점점 낙후되는 교회, 점점 쓰러져 가는 교회가 아니라 점점 더 부흥하고 성장하고 든든하게 세워져 가는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주님은 바로 두아디라교회처럼 점점 더 부흥하고 성장하는 교회를 좋아하시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신다.


③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망할 것을 분명하게 책망하시는 예수님.


하나님의 사자는 20절에서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라고 말씀하시면서 분명하게 자칭 여선지자라고 불려 지기를 원하는 이세벨 여인 때문에 교회에 생겨난 여러 가지 좋지 않은 일들을 조목조목 책망하고 계신다.


자칭 여선지자라고 하는 이세벨 여인이 성도들을 꾀여서 하나님을 떠나고 우상을 섬기게 만들고 있다.


두아디라교회가 행음한다는 것은 실제적으로 육체적인 간음, 간통, 행음도 포함이 된다.


그런가하면 영적으로 우리 예수님을 떠나서 다른 신들을 섬기는 우상숭배의 죄악을 저지르는 것을 말한다.


중동지역에서 우상숭배는 바벨론의 전통종교에서 파생되어진 각종 태양신, 달신, 별신들을 섬기는 것이다.


주님의 피로 값 주고 산 교회가 교회로서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은 오직 삼위 하나님만을 믿고 의지하고 의뢰하고 신뢰하면서 오직 예수님께 예배를 드리면서 신앙생활 해야 마땅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버리고 이방신인 태양신, 달신, 별신들을 비롯한 각종 잡다한 신들을 섬기는 것이다.


주님의 몸된 교회가 오직 삼위 하나님만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각종 이단들에 포섭되어 이단들의 교주와 교리와 사상을 따라가는 것들이 음행하는 것이다.


삼위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들을 섬기는 것을 우상숭배이다.


주님의 몸된 교회가 예수님이 아닌 그 어떤 것들을 섬김의 대상으로 삼는다면 그것은 음행하는 것이요 우상숭배의 죄악에 빠진 것이다.


④ 회개하지 않은 이세벨 여선지자에게 징계를 내리는 예수님.


예수님은 자칭 여선지자라고 떠벌리고 다니면서 성도들을 미혹하는 이세벨 여인에게 회개하여 예수님 앞으로 돌아오라고 여러 차례 감동을 주신다.


예수님은 이세벨 여인에게 회개할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주신다.


이세벨 여인은 예수님 앞에서 회개하여 예수님 앞으로 돌아와야만 본인의 영혼도 살리고,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와 은혜를 받을 수 있고, 교회도 살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회개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예수님은 이세벨 여인에게 회개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회개하지 않는 이세벨 여인에게 징계하기로 최종 결정하여 선포하신다.


예수님께서 회개하지 않는 이세벨 여인에게 주시는 징계는


ⓐ 침상에 던져버리겠다고 하신다.


ⓑ 큰 환난 가운데 던져버리겠다고 하신다.


ⓒ 자녀들을 사망으로 죽이는 재앙을 내리겠다고 하신다.


ⓓ 모든 교회로 알게 하시겠다고 하신다.


그전에는 온 교회가 다 알지 못하고 몇몇만 알고 있었는데 이제는 모든 교회 성도들이 알게 된다.


아울러 이세벨 여인과 더불어 행음과 우상숭배의 죄악에 빠진 모든 성도들도 큰 환난 가운데 던져버리겠다고 말씀하고 계신다.


⑤ 교회를 살리고 회복하기를 원하시는 예수님.


그러면 왜 예수님은 자칭 여선지자라고 하는 이세벨 여인에게 회개하기를 촉구하고 있고, 회개하지 않는 이세벨 여인과 그 여인을 따라서 행음과 우상숭배에 빠진 성도들까지도 징계하시겠다고 선언하고 계실까?


그 이유는 바로 주님의 몸된 교회를 거룩한 교회로 회복하여 살리기 위해서이다.


주님의 몸된 교회를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교회로 세워주시기 위해서이다.


교회는 어디까지나 교회다워야 하는 것이다.


교회가 교회다워지지 않을 때, 하나님은 회개하기를 촉구하시고, 회개하지 않을 때 징계하시면서라도 교회를 회복시키고 거룩한 주님의 몸된 교회로 살리려고 하신다.


예수님은 주님의 몸된 교회가 사단의 밥이 되어서 사단이 교회의 주인이 되는 것을 가장 경계하신다.


예수님은 사단의 권세에서 주님의 몸된 교회를 사수하면서 지키고 싶어하신다.


예수님은 교회 안에 있는 자기 자리를 틀어 앉아 있는 이세벨 여인과 같은 이들을 징계하면서 주님의 교회를 온전하게, 거룩하게 지키고 싶어하신다.


자칭 여선지자라고 불리어지기를 원하는 이세벨 여인은 양의 탈을 쓴 늑대에 불과하다.


겉으로는 예수님을 믿는 신앙인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적으로는 이방신을 섬기는 우상숭배자에 불과하다.


겉으로는 예수님을 잘 믿는 신앙인, 믿음이 매우 훌륭하고 좋은 신앙인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적으로는 무당, 무속인, 이단들에 불과하다.


오늘 우리 주님은 교회 안에 은밀하게 들어와 있는 이런 이세벨 여인들과 같은 가짜 신앙인들, 가짜 교역자들을 가려내고 주님의 피로 값 주고 산 교회, 거룩한 주님의 교회, 온전한 교회로 세워가려고 하신다.


L4 & B4


이세벨 여인을 자칭 선지자라고 불러주기를 원하는 여인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오늘날 한국교회 안에는 수많은 이단들 속에 자칭 현대판 여선지자 이세벨 여인들이 많다.


신천지의 이만희와 이만희의 애첩 김남희, 하나님의 교회에서 어머니 하나님으로 불리는 장길자, 통일교의 문선명의 부인 한학자와 같은 여인들이 이세벨 같은 사단에 얽매인 여인들이다.


천주교의 마리아도 이세벨 여인이다.


과천 은혜로교회의 신옥주씨도 이세벨 여인이다.


소위 자신을 신령하다(?)고 하면서 ‘예언을 해준다, 000을 해준다.’고 하면서 예수점쟁이 노릇하는 이들도 자칭 여선지자 이세벨여인이다.


옷만 예수님의 옷을 입었을 뿐, 실제적으로는 무속인에 불과한 이들이 한국교회 안에 많다.


하나님은 두아디라 교회의 이세벨 여인을 징계하고 심판하시는 것처럼 현대판 이세벨 여인들을 징계하시고 심판하실 것이다.


주님의 몸된 교회를 어지럽게 만들고, 혼란에 빠지게 만들고, 수많은 하나님의 귀한 영혼들을 미혹하여 사탄의 자식으로 만들어버린 현대판 이세벨 여인을 하나님은 반드시 징계하시고 심판하실 것이다.


그러면 한국교회의 여교역자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주님의 몸된 교회에 참여하는 성도들 중에서 남성과 여성의 비율은 교회마다 다를 수 있지만 대체적으로 여성이 남성보다 훨씬 많은 것이 사실이다.


어쩌면 여성들이 많이 참여하기 때문에 주님의 교회가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교회에 참여하는 많은 여성들을 케어하고 서포트하고 협력하기 위해서 여교역자들이 사역해야 되는 비중이 많아져야 할 필요가 있다.


꼭 여자 목사가 아닐지라도 여자 전도사, 여자 간사 등등 많은 여자 사역자들이 교회나 사역처소 곳곳에서 여자 사역자들이 감당해야 될 부분이 많다.


이세벨은 자칭 여선지자라고 부르는 여인이다.


여선지자는 교회의 여자사역자를 의미한다.


주님의 몸된 교회에 사역자로 있는 여교역자들의 헌신된 사역으로 교회가 교회로서의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는 교회들이 많다.


하지만 여교역자 때문에 교회에 분란이 일어나고 시험에 들고 풍지박살 나는 교회들도 수없이 많다.


두아디라교회에 이세벨 여교역자 때문에 발생한 문제는 성도들 사이에 행음함으로 나타나게 된다.


주님의 몸된 교회가 예수님을 떠나서 다른 잡다한 신들을 음란하게 섬기는 우상숭배의 죄악에 빠지게 된다.


한국교회에도 각종 기도원이나 교회에서 자칭 여선지자라고 부르면서 온갖 죄악의 온상이 되는 여인들이 많다.


여교역자들 중에는 정말 신실하고 올바른 여교역자들도 수없이 많다.


올바르게 신학교육을 제대로 받고 여교역자로서의 사명을 감당하는 여교역자들이 수없이 많다.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고 성경을 올바르게 배우고 연구하면서 전하는 여교역자들이 많다.


저의 주변에도 정말 존경스럽고 배울 점이 많고 흠모할 수 있는 여교역자들이 많다.


정말 훌륭한 여전도사님, 여목사님, 여선교사님들이 많다.


하나님께서 이 여인들을 통해서 놀라운 구원의 사역들을 감당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켜 나가고 계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혹 자칭 여선지자라고 하는 이세벨여인과 같은 여교역자들 때문에 전체 여교역자들이 욕을 먹도록 하는 이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예수의 이름으로 예언해 준다고 하면서 점쟁이 노릇하는 여교역자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마치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우물을 헤집고 다니면서 우물을 더럽힌다는 말처럼, 몇몇 잘못된 여교역자들 때문에 전체 여교역자들을 욕 먹이는 이들이 많다.


이런 여인들 때문에 한국교회에 여교역자에 대하여 좋지 않은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져다준다.


그래서 어떤 교회는 아예 여교역자들의 사역 자체를 금지시키는 교회들도 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사역하는 여교역자들은 삼위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앞에서 냉정하게 자신들의 민낯 모습을 그대로 투영해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의 진정한 영성과 인성과 품성에 대하여 냉정하게 자아 성찰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냉혹하리만치 냉정하게 자아를 성찰하고 삼위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앞에서 자신을 바로 봐야 되는 삶은 유독 여교역자들만이 아니라 모든 믿음의 사람들이라면 당연하게 자신을 냉정하게 관찰해야만 한다.


냉정하게 자신의 민낯을 관찰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옳지 않은 모습이 보인다고 하면 어김없이 철저하게 회개하면서 하나님 앞에 올바로 서야만 한다.


이세벨 여인이 하나님께서 감동하시는 말씀을 귀담아 듣고 회개하는 삶을 살았다면 예수님의 긍휼과 자비와 은혜로 본인의 영성뿐만 아니라 가족들의 영혼도 살리고, 교회에서 올바른 여선지자로 세움을 입고 주님의 복된 십자가 복음을 전하는 사역자로 세움을 입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징계를 받고 교회에서 쫓겨나고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들, 더 나아가 교회의 성도들까지도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야 되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지도자의 삶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올바른 민낯을 볼 수 있는 은혜를 받아야 한다.


지도자의 삶, 신앙인의 삶이란 고집스럽게 자기 자신이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주님의 삶을 사는 것이고, 주님의 빛과 소금의 모습을 보여주시는 것이고, 주님의 편지와 향기를 드러내는 삶이고, 주님의 십자가의 모습을 처절하게 보여주는 삶이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의 은혜로 채워져야만 한다.


신앙인들의 삶은 하나님 앞에서 철저하고 냉정하게 회개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한다.


신앙인들의 삶은 성삼위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민낯을 보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신앙인들의 삶은 자나 깨나 무엇을 하든지 성삼위 하나님을 믿음으로 붙잡고 묵상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정결하고 온전하고 겸손한 자세로 살아야 한다.


신앙인들의 삶은 하루에게도 수없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거울을 자신의 참된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신앙인들의 삶은 신실한 신앙인들과 깊은 영적인 교제권을 형성하면서 주변에 있는 신실한 신앙인들의 조언, 충언을 귀담아 들으면서 자신의 모습을 점검할 수 있어야 한다.


신앙인들의 삶은 신앙의 레전드와 같은 멘토를 잘 만나고, 그 멘토와 교제하면서 그 멘토의 영적인 영향권 안에서 살아야 한다.


신앙인의 삶은 오직 죽으나 사나 무엇을 하거나 주님의 피, 주님의 십자가, 주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으로 순종하며 사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날마다 날마다 날마다 날마다 날마다 주님께서 세미하게 들려주시는 음성을 귀담아 들으면서 회개의 삶을 살아야 자신의 영성을 살리고, 가족들의 영성을 살리고, 주변 사람들의 영성을 살리고, 교회의 영성을 살리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오직 주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신앙인은 날마다 회개의 삶을 사는 신앙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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