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온전케 하신다 (벧전5:10-11)
본문
우리를 온전케 하신다. (벧전 5:10-11)
우리를 온전케 하신다.
이 세상에 온전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 하나님은 온전치 못한 자를 온전케 만드신다.
온전치 못한 자를 온전케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하시는 일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무나 온전케 하시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녀들을 온전케 하신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온전하시기 때문에 자녀들도 온전한 자로 만들어 가신다.
우리도 부모 된 자들은 다 자기 자녀들이 자신들 보다 더 훌륭하고 온전해 지기를 바란다.
하나님이 우리를 향하여 가지신 목표는 흠과 티도 없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다.
이렇게 되게 하기 위해서 오늘도 하나님은 열심히 일하고 계신다.
1. 하나님이 주신 구원은 완전하다.
10절 "하나님이 은혜로 그리스도 안에서 부르시고,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이가"..
하나님이 은혜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구원은 완전하다.
이것이 본문에서 첫 번째 말씀하시는 내용이다.
그래서 우리가 이미 영원한 영광에 들어갔다고 말씀한 것이다.
이 말씀은 구원은 완전하기 때문에 구원받은 자는 이미 하나님의 영광에 들어가게 하셨다고 과거사로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의 부르심도 완전하다.
"그리스도 안에서 부르시고" 하는 말씀 속에는 구원의 모든 요소들을 다 포함하고 있다.
하나님의 죄 사함도 완전하다.
하나님은 절반이나 일부만 용서하신 것이 아니다. 99% 가 아니라 100% 다 용서하셨다.
하나님의 의롭다 하심도 완전하다.
우리를 존재적으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의롭게 하셨다.
거듭나게 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를 삼아주신 것도 완전하다.
우리를 조금 더 나은 존재가 아닌 전혀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게 하셨다.
하나님의 생명을 타고 다시 나게 하시고 하나님의 성품도 타고 나게 하셨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생명을 받고 하나님의 형상 (성품)을 닮은 친자녀가 되게 하셨다.
우리의 위치도 완전하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셨다.
이처럼 하나님의 구원은 완전하고 구원받은 우리 영혼은 완전한 자가 되었다.
* 그러나 구원받은 것과 구원받은 자의 삶은 다르다.
구원은 완전하지만 구원받은 자의 삶은 완전하지 못하다.
결코 구원과 구원받은 자의 삶을 혼돈하지 말라.
때로 우리는 자신이 너무도 온전치 못함을 보면서 실망하고 내가 과연 구원받은 사람인가? 하는 의심까지 품을 때가 있다.
또한 다른 사람을 보면서도 저 사람이 과연 구원 받은 자인가? 하는 의구심을 가질때가 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구원은 완전하지만 구원받은 사람은 완전치 못하다는 것이다.
온전치 못한 인격 때문에 구원까지 온전치 못한 것으로 생각지 말라.
완성품인 구원을 온전치 못한 삶 때문에 미완성품처럼 생각하지 말라.
* 삶이 구원받은 한 증거는 될수 있다.
영적으로 거듭난 자는 삶의 변화가 오는 것이 사실이다.
삶이라고 할 때는 겉으로 나타난 말이나 행동뿐 아니라 지정의의 인격까지 포함한다.
구원받은 사람은 의식도 달라지고 생각도 달라지고 감정도 달라지고 좋아하는 것도 달라지고
가치관도 달라지고 추구하는 것도 달라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은 구원받은 한 증거일뿐이지 결코 이런 변화가 구원의 조건은 아니다.
구원의 조건은 오직 믿음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 주신
죄 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주신 것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의 구주로 영접하는 것 뿐이다.
이 믿음조차도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다.
이것이 복음이다.
2. 하나님은 구원받은 자의 삶 까지도 온전케 하신다.
10절 "잠간 고난을 받은 너희를 친히 온전케 하시며 굳게 하시며 터를 견고케 하시리라."
하나님은 우리의 삶과 인격까지 친히 온전케 하신다.
이것이 본문이 말씀하시는 두 번째 내용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고 자녀를 삼으신 후에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에 걸맞은 온전한 자가 되도록 만들어 주신다.
다시 말하면 구원받은 자의 영혼은 온전하지만 우리의 삶은 아직 온전치 못한데 하나님은 우리의 삶까지도 온전한 자를 만들어 가신다. 이것이 복음이다.
* 하나님이 친히 온전케 하신다.
"너희를 친히 온전케 하시며"
이 말씀은 우리가 온전한 자가 되는 것도 하나님이 친히 하신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구원받아서 다시 태어날 때 우리의 영혼은 흠과 티도 없는 온전한 영혼이 되었다.
우리는 주님 앞에 설 때 온전한 새로운 존재가 된다.
그러나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날 동안에도 온전한 자로 만들어 가신다.
* 온전치 못한 자를 온전케 하신다.
여기 온전케 하신다는 말은 조정한다, 수정한다. 깁는다 라는 뜻이다.
마태복음 4 :21 “거기서 더 가시다가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이 그의 아버지 세베대와 함께 배에서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 부르시니
여기 그물을 깁는다 라는 말이 온전케 한다는 말과 원문이 같다.
베드로가 너희를 온전케 하시며 라고 말할 때 찢어진 그물을 깁어서 온전케 만들었던 것ㅇ르 생각하면서 주님이 찢어진 그물처럼 망가진 인생을 온전케 하신다는 생각을 하며 말했을 것이다.
하나님은 망가진 인생을 회복시켜 주신다.
하나님은 망가진 가정을 회복시켜 주신다.
하나님은 망가진 삶을 회복시켜 주신다.
모든 은혜의 하나님이 친히 그렇게 온전케 해 주신다.
하나님의 완벽한 손길을 믿어라.
그물 깁는 일은 아무나 할수 있는 일이 아니다.
유능한 어부만이 찢어진 그물을 능숙한 솜씨로 온전하게 깁는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으로 우리를 온전케 만드신다.
그 손으로 상한 심령을 만져 주시면 치유를 받는다.
그 손으로 병든 몸을 만져 주시면 고침을 받는다.
그 손으로 비뚤어진 성품을 만져 주시면 변화를 받는다.
우리는 하나님이 온전케 해 주시는 것만큼 더 좋은 인생을 살게 된다.
그물을 깁는 것은 사용하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온전케 해 주신 후에는 사용하신다.
* 굳게 하신다.
굳게 하신다는 뜻은 고정한다 는 뜻이다.
누가복음 22:32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예수님이 흔들리는 베드로를 굳게 하셨다.
이처럼 흔들리는 우리 인생을 굳게 하신다.
흔들리지 않는 인생으로 세워주신다.
흔들리는 사명도 굳게 해 주신다.
하나님만이 우리를 해 주신다.
우리는 쉽게 흔들리는 존재이다.
인간적인 결심이 결코 우리를 굳게 세워주지 못한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를 굳게 해 주실수 있다.
베드로가 죽기까지 주님을 따르겠다고 굳은 결심을 말했으나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네가 돌이킨 후에야 네 형제를 굳게 하리라 하셨다. (눅 22:32)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베드로는 자기의 결심이 여지없이 무너진 후에
회개하고 성령 받은 후에야 자기도 굳게 설수 있었고 다른 형제들도 굳게 세울 수가 있었다.
감사한 것은 우리의 결심은 무너져도 주님은 우리를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돌이켜 주시고 굳게 세워 주신다는 것이다.
* 강하게 해 주신다.
원문의 뜻은 원기를 왕성케 하신다는 뜻이다.
힘 없는 자에게 힘을 주셔서 왕성케 해 주신다.
힘이 없다고 못한다고 하지 말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힘을 주셔서 강하게 하신다.
두려움을 이길 힘을 주시고 세상도 이길 힘을 주신다.
약해서 두려워 지거나 힘들어지거든 강하게 해 주시기를 주님께 구하라.
성령께서는 우리의 연약을 도우시고, 우리의 터를 견고케 하신다.
* 우리가 온전케 되기 위해서는 온전케 하시는 주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히 12“2 ”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라“
예수님은 믿음의 주시다.
우리에게 믿음을 주신 분이요 믿음을 유지케 하시는 분이요 믿음이 약해질때마다
믿음을 강하게 해 주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믿음의 주가 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라.
믿음이 약해질 때마다 믿음의 주가 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라.
자신이 온전치 못한 것을 느낄 때마다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라.
우리가 예수님을 바라보는 가운데 예수님을 더욱 알게 되고 닮아가게 된다.
우리가 흠 없게 된 것이 그리스도의 피로 된 것이지 우리의 행위로 된 것이 아니다.
흠 없는 자로 보존되는 것도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지 우리의 노력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쓴 영성 책에서 그리스도인은 경건생활을 해야 하지만 그러나 우리를 경건하게 만들어주시는 것은 성령님이시지 경건생활 자체가 경건한 자로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경건생활도 성령을 의지하고 할 때만이 유익이 된다는 것을 말씀했다.
경건생활은 성령님이 사용하시는 도구일 뿐이다.
이 말은 구원 받은 자의 모든 삶과 일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말이다.
우리가 주님을 바라보는 것만큼, 사모하는것 만큼, 주님이 온전케 해 주시는 것을 체험하게 된다.
너무도 온전치 못한 우리를 하나님께서 너무도 온전케 하시는 것을 깨닫고 11 절에서는 그에게 권력이 세세무궁토록 있을 지어다 라고 찬송했다.
3. 하나님은 점진적으로 온전케 하신다.
고전 13:11 “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우리도 점진적으로 자라고 있음을 믿어라.
하나님이 우리를 흠없는 자녀로 만들어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목표이다.
하나님이 목표하신 것을 이루실가요? 못 이루실가요?
하나님이 반드시 이루신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에는 다 시간이 있고 과정이 있다.
하나님은 하루 아침에 우리를 온전케 만들어 주시지 않는다.
도널드 부러시 Donald Bloesch 라는 신학자는 말하기를
"죄인을 위하여 하신 그리스도의 사역은 완성되었지만
죄인 안에서 이루어지는 그 분의 사역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와서 사시는 것이 바로 하나님이 원하는 온전한 사람을
만들기 위한 것이 주 목적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점진적으로 자라게 하고 계신다.
우리도 점점 장성하고 있음을 믿어라.
완전을 향해서 장성해 가고 있음을 믿고 기대하라.
이것이 우리의 희망이요 위로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온전케 만드시기 위해서 여러 다양한 과목들을 가르치신다.
그 과목 중에 하나가 고난 이라는 과목이다.
이 과목을 통해서 우리를 만들어 가신다.
고난을 통과하고 있는가?
주님이 나를 온전케 만들기 위해 학습하고 있다고 믿어라.
온전치 못한 약점과 싸우면서 겸손을 배우게 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우게 되고
온전하신 하나님을 더욱 바라보게 하시는 것을 감사하라.
우리가 만난 모든 문제와 상황과 여건은 다 우리를 온전케 하시려는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시는 학습과목이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과 여건 속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라.
바라보면서 한 걸음 한 걸음 내 딛다 보면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점점 터가 굳어지고 강하여지고 견고해 져 갈 것이다.
지금 이 순간도 하나님은 우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점차 만들어 가고 계신다.
하나님은 마침내 아무도 우리를 흠 잡을수 없는 온전한 자로 만드시고
아무도 흔들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굳게 하시고,
모든 어두움의 세력을 이기게 하시기 위해서 강하게 하신다.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너희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존 되기를 원하노라" (살전 5:23)
마침내 우리가 주님을 만나는 그 날 너무도 온전케 된 자신을 발견하고 우리는 환희에 넘쳐서
우리를 온전케 해 주신 그 분을 향하여 외칠 것이다.
오늘 우리를 온전캐 해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라.
"권력이 그에게 세세무궁토록 있을 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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