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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을 통하여 배우는 부모공경 (룻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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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을 통하여 배우는 부모공경 / 룻기 1:6-18


 


1988년 유럽의 아르메니아에 엄청난 지진이 일어난 적이 있었습니다.


이 지진으로 인해서 어린 아기와 엄마가 무너진 건물 속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손이 닿을 듯 말 듯 한 거리를 두고 조금도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아기의 울음소리는 점점 더 기운을 잃어갑니다.


결국 엄마는 손가락을 깨물어 아기에게 피를 빨아먹게 했습니다.


한 방울 한 방울의 핏방울이 아기의 입 속으로 떨어질 때마다 엄마는 차츰차츰 기력을 잃어갑니다.


그들이 6일 만에 구조되었을 때 아기는 살았지만 많은 피를 흘린 엄마는 끝내 숨지고 말았습니다.


런던 타임지는 이 사건을 향해 '현대판 예수'라고 규정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처럼 자신의 육신을 희생해서라도 여러분들이 잘되기를 바라는 분이 또 한 분 있습니다. 부모님이십니다.


오늘 어버이주일을 맞이하여 부모공경을 다짐하는 귀한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여러분들이 너무나 잘 아는 나오미와 룻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베들레헴에 살던 나오미는 흉년이 들어 살기가 어려웠을 때 모압으로 피난을 갔습니다.


그 곳에서 10년을 살면서 나오미는 엄청난 상실을 경험합니다.


먼저, 인생의 반려자였던 남편을 상실합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만 예전에는 아무 일을 못해도 남편이 있는 것이 낫다는 말을 했습니다.


몸이 아파서 골골하는 남편이라도 있으면 사람들이 무시를 못합니다.


그런 남편이 미워서 어서 빨리 죽으라고 구박했는데 죽고 나니까 사람들이 남편 없는 여인이라고 구박을 합니다.


그래서 남편은 어떤 남편이라도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낫다고 했습니다.


사사 시대에 여자에게 의지할 남편을 상실한 것은 엄청난 아픔이요 고통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두 아들을 상실했습니다.


시편기자는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이것이 그 전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저희가 성문에서 그 원수와 말할 때에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로다"(시127편)고 말합니다.


남편이 없으면 아들이라도 있어야 수치를 당치 아니할 텐데 나오미는 두 아들마저 잃어버렸으니 얼마나 낙심이 되었겠습니까?


사랑하는 자식을 먼저 떠나보내는 것이 부모에게는 얼마나 큰 아픔인지 모릅니다.


남편과 두 아들의 죽음은 가정의 상실과 해체로 이어졌습니다.


 


오늘날 우리 부모님들도 나오미와 같이 많은 상실을 경험하면서 쓰라린 아픔과 슬픔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나오미와 같이 가장 가까운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어버리는 상실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남편을 상실하고, 아내를 상실하고, 어떤 분들은 사랑하는 자식을 먼저 보내는 상실 속에서 말할 수 없는 허무와 외로움과 아픔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또한 건강의 상실로 인하여 많은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건강의 상실은 많은 아픔과 불편함과 답답함을 주고 있습니다.


재산의 상실과 지위와 명예의 상실을 경험하면서 허무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실은 세월에 따라 자연적으로 나타난 것도 있겠지만 자녀들을 위해 살다가 경험하는 상실이 많다는 것입니다.


자녀들을 가르치다가 재산을 허비하고 건강을 상실하였습니다.


뼈 빠지게 벌어서 자식들 뒷바라지 하느냐고 돈도 건강도 다 상실하였습니다.


이런 상실을 경험하면서 살아가는 부모님들은 당연히 힘들게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많은 육체적 아픔을 경험하면서 때로는 많은 불편을 감수하면서 외로움과 허무감을 느끼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나오미는 자신의 이름을 나오미(희락, 행복)가 아니라 마라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마라라는 말은 쓰다, 괴롭다, 불행하다는 의미입니다.


나오미가 자신의 이름을 마라라고 한 것은 많은 상실로 인한 아픔과 쓰라림을 잘 표현한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오미만 마라이겠습니까?


우리의 부모님들도 마라의 경험을 똑같이 하고 있습니다.


 


그런 부모님을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늙으면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니 그냥 당하고 사십시오.' 라고 하겠습니까?


성경은 그런 부모님을 공경하면서 살아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룻은 남편과 두 아들을 상실하고 정말 외롭고 고달픈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 시어머니를 그냥 버려두지 않았습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니 그냥 당하고 사십시오.' 하면서 시어머니를 떠나지 않고 적극적으로 공경하였습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자세인줄 믿습니다.


룻이 시어머니 나오미를 어떻게 공경하였는지를 살펴보면서 우리의 부모공경을 다짐하는 시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룻은 감정적으로만 공경하지 않았습니다.


 


나오미가 고향의 형편이 많이 좋아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베들레헴으로 돌아갈 때 두 며느리가 따라왔습니다.


그들을 데리고 갈 수 없다는 판단을 한 나오미는 두 며느리가 새로운 삶을 살아가도록 친정으로 돌려보낼 결단을 합니다.


그때 두 며느리는 시어머니를 생각하면서 많이 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울다가 결국 오르바는 나오미를 떠나 친정으로 갑니다.


유대인들의 율법해석서인 미드라쉬에 따르면 오르바를 좋지 않게 여기고 있습니다만 사실 오르바가 잘못한 것은 별로 없습니다.


8절에 보면 오르바도 나오미를 지극히 공경하고 사랑했던 며느리였습니다.


시어머니의 간곡한 부탁도 있었고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떠나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습니다.


오르바는 정말 안됐고 불쌍한 시어머니를 위해 많이 울었지만 그것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여기에 비해 룻은 우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끝까지 시어머니를 따라 가서 실질적으로 도와주었습니다.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감정이상의 모습이 있을 때 그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실컷 울어주는 사랑도 귀합니다만 그러나 그것보다 더 귀한 사랑은 실질적으로 도와주고 필요성을 채워주는 것입니다.


만약 룻마저 그냥 시어머니를 떠났다고 한다면 나오미의 삶은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부모 공경은 감정으로는 잘 되지 않습니다.


가치관도 다르고, 삶의 방식도 다르고, 생각하는 관점도 많이 다른 부모님을 어떻게 좋은 감정으로만 섬길 수 있겠습니까?


좋은 감정을 가지고 섬기려고 하면 절대로 부모님을 잘 섬길 수 없습니다.


감정으로가 아닌 감정을 넘어서는 의지적인 모습으로 효도를 해야 합니다.


 


2. 룻은 자신의 이익과 장래 때문에 공경하는 것을 그치지 않았습니다.


 


당시 상황으로 볼 때 시어머니를 따르는 것은 두 가지의 손해를 감수해야 했습니다.


먼저는, 평생 과부의 생활을 감수해야만 했습니다.


당시 사회적인 제도는 시동생이 있어서 그 가문을 이어가기 위해서 형수와 결혼하는 것이 사별한 여인이 다시 결혼할 수 있는 합리적인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룻은 이미 그 가능성을 잃고 있었습니다.


시동생도 없었고 시어머니가 다시 결혼해서 아이를 낳을 수 있는 형편도 아니었습니다.


나중에 가문의 기업 무를 보아스를 만나는 축복을 받지만 그것은 정말 하나님의 은혜이지 결코 쉬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누가 나오미의 땅을 사서 주고 또 한사람의 아내를 두려고 하겠습니까?


자칫하면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되어 한 평생을 외롭게 살아야 할 형편이었고 그 가능성이 훨씬 많은 상황에서 룻은 그 손해를 감수하면서 시어머니를 좇았던 것입니다.


 


둘째는, 가난한 생활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재산을 많이 가진 나오미가 아니라 완전히 빈 털털이 시어머니였습니다.


당시 여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그렇게 많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베들레헴에 도착한 나오미와 룻이 연명한 것은 이삭줍기였습니다.


이삭을 주어서 겨우 풀칠이나 할 수 있는 경제적인 어려움을 감수해야 할 상황에서 룻은 나오미를 따르기로 했던 것입니다.


자신의 이익과 장래를 생각하면 도저히 시어머니를 따를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룻은 자신의 이익을 생각하지 않고 장래를 포기하면서 시어머니를 따랐습니다.


 


오늘날 부모 공경이 어려운 상황에서 그래도 공경하는 모습을 간혹 볼 수 있는데 그것은 자신에게 이익이 있기 때문입니다.


부모에게 많은 재산이 있다든지, 아니면 자신의 아이들을 맡기기 위해서, 집을 지키도록 하기 위해서 자신의 유익이 될 때 부모님을 모시고 공경하는 경우를 보게 되는데 그러나 룻은 자신의 이익을 따라 공경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손해가 불을 보듯 뻔한 상황에서, 유익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상황에서 시어머니를 따르겠다고 했습니다.


부모 공경은 이익과 유익의 차원이 아닌 줄 압니다.


나에게 이익이 되면 모시고 이익이 안 되면 버리는 것은 진정한 부모 공경이 아닙니다.


이익을 떠나서 손해를 감수하면서 모시는 것이 진정한 부모공경의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3. 룻은 세상 사람들의 모습을 따라 공경하는 것을 그치지 않았습니다.


 


오르바의 모습은 일반적인 모습, 세상적인 모습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룻은 그런 모습을 따라 시어머니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세상의 흐름을 역류하여 시어머니를 모시기로 작정을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진정한 신앙인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 위해서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살아가는 생활을 하면 안 됩니다.


시대의 흐름을 따르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오늘날 시대의 흐름은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가족들도 버릴 수 있다는 개인주의 사고방식입니다.


그래서 이혼이 급증하고 자녀들도 버리고 부모 공경은 고리타분한 이야기에 불과합니다.


결혼하기 전에 부모를 공경해야 하는지를 살펴서 그럴 가능성이 있는 사람과는 아예 결혼을 하지 않는 시대가 되고 말았습니다.


시대의 흐름이 이렇다 할지라도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은 시대의 흐름에 쉽게 따라가면 안 됩니다.


쉽게 이혼하거나 부모님을 버리거나 하지 말고 어렵더라도 열심히 노력하면서 가정을 지키도록 해야 합니다.


부모님을 모시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4. 룻은 시어머니와 생사고락을 같이 하기로 했습니다.


 


'붙좇았다'는 말은 확고한 충성과 깊은 애정을 전제로 한 결혼이나 인간관계에 주로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아브라함을 우리는 매우 존경하고 그의 신앙을 귀하게 여기고 있습니다만 그러나 그에게는 하나님의 약속이 주어져 있었습니다.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창12:2)


그러나 오늘 본문에 나오는 룻은 미래에 대한 어떤 약속이나 보장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불안한 미래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시어머니를 따르기로 굳게 마음을 먹습니다.


그리고 끝까지 시어머니를 공경하며 최선을 다하여 섬기는 생활을 합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믿음이며 결단인지 모릅니다.


 


룻이 이렇게 시어머니를 따라 베들레헴으로 왔을 때 그의 삶은 어떠했습니까?


물론 처음에는 어려움도 있었습니다만 그의 삶은 하나님의 축복으로 가득 찬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좋은 결혼을 하게 됐습니다.


일반적인 관점으로 볼 때 룻은 평생 과부로 지내면서 가난을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생각이 되었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룻을 재산이 많은 보아스를 만나게 하셨고 풍족한 삶을 살아가게 축복해 주셨습니다.


재산뿐만이 아니라 신앙과 인격이 훌륭한 보아스와 함께 행복한 삶을 살아가게 하셨습니다.


인생의 축복은 만남의 축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룻에게 하나님은 보아스를 만나게 하셨고 그 보아스의 것을 다 누리게 하셨습니다.


좋은 만남을 통하여 축복받기를 원하신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부모님을 공경하시기 바랍니다.


다윗의 가문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물질의 축복만이 아니라 가문의 축복도 받게 되었는데 이스라엘이 자랑하는 최고의 성군 다윗 왕의 증조할머니가 되었습니다.


메시야의 가문의 일원이 되는 축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메시아 그리스도의 족보에 올라있는 여섯 명의 여자중의 한 사람이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분명히 약속하고 있습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20:1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6:3) 아멘.


이 약속을 분명히 하나님은 이루어 가실 줄 믿습니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인 조시 워싱턴이 바다에 자신의 모든 꿈을 두고 선원이 되기 위해 배에 짐을 실었는데 어머니가 계속 눈물을 흘리는 것입니다.


그 모습을 본 워싱턴은 따라 나온 하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배에서 내 짐을 가져와라. 어머니를 슬프게 하면서까지 내 꿈을 좇을 수는 없다."


그때 어머니는 아들에게 이렇게 축복했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복 주신다는 성경 말씀처럼 네 장래에 큰 축복이 있을 것이다."


어머니의 축복은 그대로 이루어져 뱃사람이 아니라 미국의 초대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어머니를 극진하게 생각하는 워싱턴의 인생을 하나님은 약속대로 축복하신 것입니다.


워싱턴이 자신의 생각대로 갔더라면 기껏해야 조금 큰 배의 선장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간, 효를 따라간 워싱턴은 미국이라는 거대한 배를 움직이는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눈앞의 작은 이익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효도하면서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는 성도여러분들이 되길 간절히 축원합니다.(2020.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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