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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들의 잊혀 진 언어 (살전4: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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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들의 잊혀 진 언어 / 데살로니가전서 4:13-18


 


존 A. 샌포드가 쓴 '하나님의 잊혀 진 언어- 꿈'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저자인 샌포드는 꿈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한 가지 중요한 언어인데,


이 시대는 꿈을 믿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언어중 하나인 꿈이 잊혀 졌다고 주장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북한 사람들 때문에 잊혀 진 언어가 하나 있는데요, 동무라는 말입니다.


동무라는 말은 매우 아름다운 우리말이었습니다만 북한에서 동무라는 말을 사용하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잊혀 진 언어가 되고 말았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 성도들에게도 잊혀 진 언어가 하나 있는데요, 그것이 재림이라는 말입니다.


재림이라는 말은 기독교의 아주 중요한 용어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런데 성도들은 그 말을 잘 생각하지 않고 성도들의 머릿속에서 점차로 잊혀 져 가고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만, 거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먼저, 시한부 종말론자들의 잘못된 재림관 때문입니다.


시한부 종말론자들이 재림에 대해 오해하고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키자 그것에 식상한 성도들이 재림자체를 멀리하게 되었고 무관심하게 되었습니다.


옛말에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랴' 하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시한부 종말론자들이 재림에 대해 큰 물의를 일으켜도 재림을 외면하거나 재림에 대해서 거부감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두 번째는, 성도들의 삶이 너무 현실적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성도들의 삶은 어떻게 하면 이 세상에서 잘 살 수 있을까? 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재림에 대한 생각과 미래에 대한 생각,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생각은 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어디 한 쪽에 관심을 집중하다보면 다른 한 쪽은 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현실에 집중하는 현대인들에게 미래는 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세 번째는, 이런 성도들의 관심에 맞추어 목회자들이 재림에 대한 강조를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보면 주님께서 가르치실 때 반복해서 말씀하신 경우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진실로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3:3)


거듭나서 하나님의 나라를 보는 것이 이렇게 중요하기 때문에 ‘진실로진실로’ 두 번이나 강조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강조해서 반복해서 말씀해야 할 신앙의 진리가운데 핵심이 저는 재림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목회자들은 재림에 관해서 많은 설교를 하지 않고 강조하지 않고 반복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성도들이 이 말을 별로 반가워하지 않고 듣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자주 듣지 않다보니 재림에 대해서 점차로 잊혀 져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어집니다.


 


세상에는 잊혀 지면 더 좋은 것도 많이 있습니다.


어떤 가정에서는 부부싸움을 하면 옛날 것부터 다 끄집어내서 다투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면 ‘저 인간은 왜 저런 것들은 잊어버리지도 않느냐?’고 하소연할 때가 있습니다.


인간이 다 기억하고 살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잊어버리는 은혜를 주셔서 평안하게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잊어버리는 것이 은혜이고 더 좋을 때가 많습니다.


또한 잊어버려도 별로 문제될 것이 없는 것이 있습니다.


제가 예전에 장모님한테 받은 반지가 하나 있습니다.


반지 끼는 습관이 안 되어서 그냥 아내에게 주면서 당신이 잘 보관하라고 했습니다.


나중에 그 반지가 생각나서 그 반지 어디 있느냐고 아내에게 물었더니 아내가 오히려 ‘당신이 갖고 있지 않아요?’ 반문합니다.


서로 상대방이 갖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거예요.


속으로 반지하나 잃어버렸구나 생각하고 그냥 잊어버리고 살았어요.


그런데 어느 날 아내가 양말 속에서 반지를 찾았다고 하는 거예요.


그것이 바로 이 반지입니다.


얼마나 값이 나가는지는 몰라도 이 반지 잃어버려도 괜찮습니다.


몇 십 만원 손해는 보겠지만 없어도 괜찮고 잃어버렸다고 인생에 큰 낭패를 보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여러분, 정말 잊어버려서는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잊어버리면 큰 손해가 나는 정도가 아니라 인생을 망치는 그렇게 중요한 것들이 있습니다.


노아 시대에 살던 사람들이 홍수에 대한 생각을 잊어버리고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노아를 통해서 홍수가 있을 것이라고 경고를 해 주셨는데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면서 세상일에 집중하다가 홍수에 대한 일은 까맣게 잊고 있었어요.


결국 홍수가 나서 다 멸망당하고 말잖아요.


여러분, 절대로 잊어버리면 안 되는 일이 있습니다.


성경은 그 중에 하나가 재림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노아시대의 예를 가지고 재림을 교훈하시면서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마24:42) 고 말씀하셨습니다.


잊지 말고 깨어있어 재림을 잘 준비하고 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 중요한 재림을 잊고 살면 노아 시대의 사람들처럼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하고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이렇게 중요한 재림을 잊지 않고 잘 준비하며 살았던 사람들이 나옵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인데요, 그들이 얼마나 재림을 믿고 준비하며 살았는지를 보여주는 말씀이 13절 말씀입니다.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당시 교인들은 자기들이 살아있는 동안에 주님께서 재림하실 것을 굳게 믿었습니다.


재림하실 주님을 기대하며 열심히 살고 있었는데 주님께서 재림하시기전에 교인들 중에 죽는 사람이 생겼습니다.


주님이 재림하시면 주님과 함께 영광 속에 들어가 살 것을 기대했는데 재림 전에 교인들이 죽으니까 저들은 어떻게 되는가?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온통 재림에 대한 생각뿐이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죽어서 슬픈 것이 아니라 저들이 재림에 참여할 수 있는가? 그것 때문에 슬퍼하였습니다.


재림의 영광 속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에 슬퍼할 정도로 그들은 재림으로 가득 찬 삶을 살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재림의 중요성을 잊지 않고 큰 관심을 기울이고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재림에 대한 소망도 갖지 않고 여러분의 생각 속에서 잊혀 진 언어가 되고 있지는 않습니까?


재림은 결코 우리들 가운데 잊혀지는 언어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무슨 일이 있어도 재림을 잊어버리고 살아서는 안 됩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처럼 일상생활에 중심이 되고 신앙생활의 목표가 되고 인생의 산 소망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재림이 잊혀지는 언어가 되지 않고 살아 역사하고 기억되는 언어가 될 수 있겠습니까?


 


먼저는, 재림이 신앙생활의 최종목적임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는 재림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일들을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16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신다.’고 하면서 그 때 일어날 일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선,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또한 그 때 살아있는 자들도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재림하시는 주님을 영접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아울러 그렇게 주님을 영접한 자들은 항상 주와 함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신학적으로 설명하면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모든 믿는 자들이 부활하여 주님의 영광 속에 참여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이 영광 속에는 주님의 부활을 믿고 이미 죽은 자들은 물론이고 그때 살아있는 성도를 포함하여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이 참여하게 됩니다.


이것으로 세상은 끝나게 되어있고 하나님의 역사는 완성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여러 가지 축복을 받는 것도 매우 중요하고 그런 축복도 받아야 할 줄 믿습니다.


그러나 정말 복된 신앙생활이 되기 위해서는 가장 중요한 축복, 최종적인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그 축복을 받지 못하여 끝이 좋지 않으면 그것은 결코 복된 인생, 복된 삶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노아 시대의 모습을 보면 홍수가 나서 사람들이 다 심판을 받기 까지 어떻게 보면 세상 사람들이 더 행복하고 지혜롭게 살았다고 생각될 수 있습니다.


오랜 세월 방주를 지으면서 살았던 노아는 불행한 삶을 살았다고 생각되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최종적으로 누가 승리자였고 누가 복 받은 자였습니까?


방주를 예비하여 홍수의 심판에서 구원을 받았던 노아가 진정한 승리자였고 복 있는 자였습니다.


우리 성도들이 진정으로 복 있는 자가 되고 최종적인 승리자가 되기 위해서는 재림의 영광 속에 참여해야 합니다.


재림하시는 주님과 함께 부활하여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서 영생의 축복을 누려야 진정한 승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이 축복이 없는 신앙생활은 불완전한 것이고 진정한 승리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재림을 기억하고 재림을 준비하고 재림을 잊지 않아야 하는 것은 이 최종적인 축복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신앙생활의 최종적인 축복을 받기 위해서 재림을 잊지 마시고 항상 기억하며 준비하는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는, 재림이 우리 삶에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재림이 그들의 삶에 중심이 되었습니다.


교인들이 죽었을 때도 다른 것 생각하지 않고 이 사람이 재림의 영광 속에 참여할 수 있는가? 재림과 연관시켜서 생각하였습니다.


오늘 우리도 매일의 삶을 살면서 재림이 삶의 중심이 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기도하실 때마다 재림에 대한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평생을 경건한 삶으로 일관한 호나티우스 보나르는 아침에 해가 뜨면 창문을 열고 커튼을 젖히며 '주여! 이 아침에 오시겠습니까?'라고 말하고,


또 밤이면 창문을 닫으며 '주여! 이 밤에 오시겠습니까?'라고 말하면서 항상 주님을 맞을 준비를 하며 살았다고 합니다.


오늘 우리도 기도할 때마다 주님의 재림을 생각하며 재림을 잘 준비하며 살 수 있게 해달라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또한 하루의 일과를 사실 때에 하루를 충실하게 사는 것이 재림을 잘 준비하는 비결이라는 믿음으로 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남독일 시골 마을에서 목회를 했던 블룸하르트는 예수의 재림을 생전에 보리라는 믿음으로 살면서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갖게 했던 목사였습니다.


그의 집 마당에는 언제나 한 대의 마치가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오시자마자 그 장소로 달려가려고 준비해 둔 것이었습니다.


이렇듯 그는 끝 날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종말론적 사상으로 인해 사회나 현실에 대해 무관심한 것이 아니라,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하나님의 나라를 일깨워 줌으로써 커다란 위로와 희망을 주었습니다.


물론 그의 생애 동안에 예수의 재림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끝 날에 대한 확신 가운데서 한 시대를 생기 있게 살다간 깨어있는 사람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마차를 준비하지는 못할지 모르지만 그러나 내가 하는 일이 과연 주님이 기뻐하시고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일인가를 생각하며 살아갈 때 우리는 재림이 중심이 되는 삶을 살게 되고 재림을 잊지 않고 살게 될 줄 믿습니다.


 


셋째는, 재림을 준비할 수 있는 때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나라 속담에 '함흥차사(咸興差使)'라는 말이 있습니다.


가고 오지 않는 사람에 대하여 쓰는 말인데 오늘 주님의 재림이 초대교회 때부터 지금까지 이루어지지 않음을 함흥차사로 비유하며 말하는 사람이 있기도 합니다.


아직까지 오지 않았으니 앞으로도 오지 않을 것이다.


재림의 사실은 거짓이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까지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여기에서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주님의 재림이 2천년동안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그 재림을 준비할 수 있는 나의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죽으면 준비할 시간도 없어지는 것입니다.


주님이 언제 오시든 내가 살아있는 기간만이 주님의 재림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한 젊은이가 교수에게 '사람이 죽기 얼마 전에 내세를 위해 준비해야 할까요?' 묻자 교수는 '몇 분전이면 되지' 아주 쉬운 듯이 대답했습니다.


'그거 참 좋군요.''저 역시 같은 생각입니다'


자기 앞에 놓여 진 수십 년의 세월을 만끽할 수 있다는 생각에 젊은이는 아주 유쾌하게 말했습니다.


교수실을 나가려는 학생을 불러 세운 교수는 이렇게 한마디를 덧붙였습니다.


'그런데 자네는 언제쯤 죽을지 알고 있나'-자네는 언제 죽을지 알고 있나?


이것만 알면 죽음준비는 그렇게 어렵지 않을지 모릅니다. 쉬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내가 언제 죽을 지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언제 오실지 그것과 상관없이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시간은 얼마 없습니다.


내가 오늘 준비하지 않으면 그것으로 준비는 끝나는 것이고 그것으로 우리는 재림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주님의 부름을 받는다면 주님의 재림에 합당한 모습이 될 수 있겠습니까?


지금껏 주님의 재림을 잘 준비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주님의 재림이 여러분들에게 잊혀진 언어가 되지 않고 기억되고 살아있는 말씀이 되어 재림을 잘 준비하여 재림의 영광속에 참여하는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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