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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내게로 돌아오라! (슥1:1-6)

본문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라! / 스가랴 1:1-6


 


오늘부터 우리는 스가랴서 말씀을 공부하고자 합니다. 스가랴 선지자는 학개 선지자와 동시대 활동한 선지자로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백성들에게 예언을 하였습니다. 그는 16년 동안 성전 재건 역사를 중단한 그들에게 책망하고 격려하면서 성전 건축을 계속하라고 합니다. 스가랴라는 이름의 뜻은 ‘여호와께서 기억 하신다’라는 뜻입니다. 스가랴서의 전체 구조를 보면 1-8장과 9-14장으로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8장은 스가랴 선지자가 본 8가지 환상을 이야기 하면서 이스라엘과 함께 계신 하나님이 주실 구원을 이야기 합니다. 곧 이스라엘 왕국의 회복에 대한 말씀입니다. 9-14장은 메시아의 오심과 온 세계에 세워질 그 분의 나라 곧 메시아 왕국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본문 말씀은 스가랴서 1-14장 전체뿐만 아니라 환상을 다루는 스가랴서 전반부의 1-6장의 서론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옛 조상들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1-2)를 언급한 뒤에 현 세대를 향해서 다시 여호와께로 돌아올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3). 나아가 오늘 본문에서는 옛 선지자들의 회개촉구에 대한 옛 조상들의 불순종(4)과 그에 따른 옛 조상들의 심판, 그리고 그 심판을 경험한 그들의 참회적인 고백(5-6)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 말씀은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않고 회개를 거부하여 결국 심판에 이르고 말았던 옛 조상들의 실패 상을 그 본보기로 제시하면서 현재의 신앙 공동체를 향해 무엇보다도 회개의 자세가 절실히 필요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곧 회개하고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살펴보는 가운데 이 말씀을 통해서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계시가 무엇인지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1절에 보면 다리오 왕 이년 팔월에 여호와의 말씀이 잇도의 손자 베레갸의 아들 선지자 스가랴에게 임합니다. 스가랴에게 임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입니까? 2-3절에 보면 “나 여호와가 무리의 열조에게 심히 진노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너는 무리에게 고하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처럼 이르시되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라. 나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나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스가랴 선지자에게 임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은 여호와께서 ‘무리의 열조에게 심히 진노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는 무리에게 고하기를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라’고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보면 스가랴 선지자는 세 번이나 반복해서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을 말하고 있습니다. 스가랴 선지자가 세 번이나 반복해서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을 반복하는 것은 그 말씀이 얼마나 강력하고 위중한 권면의 말씀인가를 말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엄중히 들을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강력하고 엄중하게 이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스가랴 선지자가 만군의 여호와라고 하시는 것입니까? 만군의 여호와란 언약궤와 결부되어 전쟁을 행하시는 것과 관련이 되어 사용됩니다(참조. 삼상 4:4; 삼하 6:2). 즉 자기 언약을 신실히 이루어 내실 때에 사용하는 명칭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언약을 신실히 이루어내시는 일에 그 어떤 방해세력도 다 물리치시는 용사이신 여호와이신 것입니다. 그런 여호와 하나님께서 무엇이라고 하십니까? ‘돌아오라’(bWv 슈브)고 하십니다.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라. …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3). 너희가 여호와께로 돌아오면 하나님 자신도 그들에게 돌아오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스가랴 시대의 상황은 이미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전이 이미 재건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그런데도 왜 돌아오라고 하시는 것입니까? 학개서에서 보면 하나님의 성전은 황무한데 자기들은 좋은 집에 거하는 것이 합당하냐고 하셨습니다. 학개서 1:3-4절에 보면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이 전이 황무하였거늘 너희가 이 때에 판벽한 집에 거하는 것이 가하냐”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판벽(@p's; 싸판)한 집’이란 백향목 판자나 아로새긴 판자로 벽을 두르고 지붕을 덮은 집을 가리키는데 당시 이런 방법으로 지은 집은 매우 화려한 것에 속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학개 선지자의 말을 들은 백성들의 마음이 흥분이 되었다고 합니다. 학개 1:14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의 마음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마음과 남은바 모든 백성의 마음을 흥분시키시매 그들이 와서 만군의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의 전 역사를 하였으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마음을 흥분시켰다’라는 말은 ‘마음이 각성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곧 그들이 회개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들은 선지자 학개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회개하고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이처럼 그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 성전을 재건하다가 어려움에 부딪히자 성전재건을 팽개치고 안일에 빠져있는 그들에게 여호와께로 돌아오라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4-6절을 보면 “너희 열조를 본받지 말라. 옛적 선지자들이 그들에게 외쳐 가로되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악한 길, 악한 행실을 떠나서 돌아오라 하셨다 하나 그들이 듣지 않고 내게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였느니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너희 열조가 어디 있느냐. 선지자들이 영원히 살겠느냐. 내가 종 선지자들에게 명한 내 말과 내 전례들이 어찌 네 열조에게 임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므로 그들이 돌쳐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 길대로, 우리 행위대로 우리에게 행하시려고 뜻 하신 것을 우리에게 행하셨도다 하였다 하셨느니라 하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스가랴 선지자는 너희 열조를 본받지 말라고 합니다. 옛적 선지자들이 여호와의 말씀으로 외쳤다는 것입니다. 너희가 악한 길, 악한 행실을 떠나서 돌아오라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듣지 않고 귀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그 열조들이 어떻게 되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심판받았습니다. 그렇게 전한 선지자들도 죽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말씀은 살아서 성취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내용이 바로 6절의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6절을 다시 보면 “내가 종 선지자들에게 명한 내 말과 내 전례들이 어찌 네 열조에게 임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므로 그들이 돌쳐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 길대로, 우리 행위대로 우리에게 행하시려고 뜻 하신 것을 우리에게 행하셨도다 하였다 하셨느니라 하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돌쳐’라는 말은 히브리어 ‘슈브(bWv)’ 곧 ‘돌아오라’를 번역한 말입니다. 따라서 이 6절의 말씀은 앗수르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게 된 이스라엘의 열조가 그때서야 과거에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서 주신 경고의 말씀을 기억하고 회개하며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 길대로 우리 행한 대로 갚으셨다는 것입니다.


 


열왕기하 17:13-18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각 선지자와 각 선견자로 이스라엘과 유다를 경계하여 이르시기를 너희는 돌이켜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 나의 명령과 율례를 지키되 내가 너희 열조에게 명하고 또 나의 종 선지자들로 너희에게 전한 모든 율법대로 행하라 하셨으나 저희가 듣지 아니하고 그 목을 굳게 하기를 그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 아니하던 저희 열조의 목 같이 하여 여호와의 율례와 여호와께서 그 열조로 더불어 세우신 언약과 경계하신 말씀을 버리고 허무한 것을 좇아 허망하며 또 여호와께서 명하사 본받지 말라 하신 사면 이방 사람을 본받아 그 하나님 여호와의 모든 명령을 버리고 자기를 위하여 두 송아지 형상을 부어 만들고 또 아세라 목상을 만들고 하늘의 일월성신을 숭배하며 또 바알을 섬기고 또 자기 자녀를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며 복술과 사술을 행하고 스스로 팔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그 노를 격발케 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심히 노하사 그 앞에서 제하시니 유다 지파 외에는 남은 자가 없으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북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망하게 되는 이유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를 거역하고 목을 곧게 하기를 저희 열조와 같이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로인해 여호와께서 심히 진노하심으로 그들이 앗수르에 의해 망하고 겨우 유다만 남았다는 것입니다.


 


북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해 망하는 것을 보았다면 남 유다는 정신을 차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유다마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게 된 것입니다. 역대하 36:11-21절을 보면 “시드기야가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이십 일세라. 예루살렘에서 십 일년을 치리하며 그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고 선지자 예레미야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일러도 그의 앞에서 겸비치 아니하였으며 느부갓네살 왕이 저로 그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케 하였으나 저가 배반하고 목을 곧게 하며 마음을 강퍅케 하여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지 아니하였고 제사장의 어른들과 백성도 크게 범죄하여 이방 모든 가증한 일을 본받아서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에 거룩하게 두신 그 전을 더럽게 하였으며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백성과 그 거하시는 곳을 아끼사 부지런히 그 사자들을 그 백성에게 보내어 이르셨으나 그 백성이 하나님의 사자를 비웃고 말씀을 멸시하며 그 선지자를 욕하여 여호와의 진노로 그 백성에게 미쳐서 만회할 수 없게 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갈대아 왕의 손에 저희를 다 붙이시매 저가 와서 그 성전에서 칼로 청년을 죽이며 청년 남녀와 노인과 백발노옹을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였으며 또 하나님의 전의 대소 기명들과 여호와의 전의 보물과 왕과 방백들의 보물을 다 바벨론으로 가져가고 또 하나님의 전을 불사르며 예루살렘 성을 헐며 그 모든 궁실을 불사르며 그 모든 귀한 기명을 훼파하고 무릇 칼에서 벗어난 자를 저가 바벨론으로 사로잡아가매 무리가 거기서 갈대아 왕과 그 자손의 노예가 되어 바사국이 주재할 때까지 이르니라. 이에 토지가 황무하여 안식년을 누림 같이 안식하여 칠십년을 지내었으니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이 응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이 모습이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망해야 마땅한 것입니다. 그러나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있는 동안 가나안땅은 안식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약속의 땅은 거룩하지 못한 백성을 토하여 냄으로 땅이 안식을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구원이란 인간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과 거룩을 위한 구원입니다. 그러므로 약속의 땅에서 인간을 쫓아내어 버리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범죄 한 아담과 하와를 생명나무에 이르지 못하도록 쫓아 내어버리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서 70년만에 되어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바벨론 포로기간 동안 그들이 얼마나 시온을 그리워하였겠습니까? 그 그리워한 내용이 시편 137편입니다. 시편 137:1-9절을 보면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케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 우리가 이방에 있어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꼬.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진대 내 오른손이 그 재주를 잊을지로다. 내가 예루살렘을 기억지 아니하거나 내가 너를 나의 제일 즐거워하는 것보다 지나치게 아니할진대 내 혀가 내 입 천장에 붙을지로다. 여호와여 예루살렘이 해 받던 날을 기억하시고 에돔 자손을 치소서 저희 말이 훼파하라 훼파하라 그 기초까지 훼파하라 하였나이다. 여자 같은 멸망할 바벨론아 네가 우리에게 행한 대로 네게 갚는 자가 유복하리로다. 네 어린 것들을 반석에 메어치는 자는 유복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의 여러 강변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면서 울었다고 합니다. 그 정도로 그들은 시온을 사모하고 그리워하였습니다. 하지만 막상 포로에서 돌아와서 성전을 재건하다가 조금 어려움에 부딪히자 성전재건역사를 팽개쳐 버리고 자기들의 집을 짓는 일과 자기들의 안전이 우선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비록 바벨론에서 돌아왔지만 그들은 제대로 돌아온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직 그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멀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 3절을 다시 보면 “그러므로 너는 무리에게 고하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처럼 이르시되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나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했습니다.


 


죄가 무엇입니까? 여호와 하나님을 떠난 것이 죄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이란 무엇입니까?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범죄 하여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그들은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그 몸이 돌아왔지만 그 마음이 온전히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 비추어보면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이렇게 교회로 모였지만, 교회라는 공동체로 모여서 형제, 자매라고 하고 있지만, 하나님을 예배한다고 하고 있지만 과연 우리가 진정으로 주님께로 돌아온 것입니까? 우리가 수입중의 일부를 헌금하고, 시간 중의 얼마를 내어서 예배를 드리고 봉사를 한다고 하지만 과연 이것이 진정으로 주님께로 돌아온 것입니까? 그렇게 함으로 은근히 다른 사람들보다 복을 많이 받으리라는 기대를 하지 않습니까? 열심히 봉사하지 않으면 무언가 손해가 올 것 같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할 것 같은 불안감은 없습니까? 그런 마음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은 우리가 아직 온전히 주께로 제대로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나 중심이지 예수님 중심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스가랴 선지자가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돌아오라고 하신 이 말씀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유효한 말씀인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3).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돌아가야 하는 것입니까? 요엘서 2:12절을 보면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라고 했습니다.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며 마음을 다하여 돌아오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옷은 찢을 수 있지만 우리의 마음은 어떻게 찢을 수가 있습니까? 어떻게 마음을 찢고 마음을 다해 주께로 돌아갈 수 있습니까? 요엘서 2:28-32절에 보면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 때에 내가 또 내 신으로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 같이 변하려니와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신을 자기의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이 약속의 말씀대로 오순절 성령이 임하게 되자 회개하고 주께로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께로 돌아오라는 이 명령의 말씀은 사람이 순종하여 주께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이 말씀을 명령하시고 그 말씀을 주께서 이루신 결과로 주께로 돌아온 것입니다. 그렇게 주께로 돌아온 자들에게 주님은 또다시 주께로 돌아오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마음이 온전히 주께로 돌아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자꾸만 뒤를 돌아보고 주변을 돌아보고 세상에 소망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주께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31:16-19절을 보면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네 소리를 금하여 울지 말며 네 눈을 금하여 눈물을 흘리지 말라. 네 일에 갚음을 받을 것인즉 그들이 그 대적의 땅에서 돌아오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의 최후에 소망이 있을 것이라. 너의 자녀가 자기들의 경내로 돌아오리라. 에브라임이 스스로 탄식함을 내가 정녕히 들었노니 이르기를 주께서 나를 징벌하시매 멍에에 익숙지 못한 송아지 같은 내가 징벌을 받았나이다. 주는 나의 하나님 여호와시니 나를 이끌어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돌아오겠나이다. 내가 돌이킴을 받은 후에 뉘우쳤고 내가 교훈을 받은 후에 내 볼기를 쳤사오니 이는 어렸을 때의 치욕을 진 고로 부끄럽고 욕됨이니이다 하도다”라고 했습니다. 스스로 돌이킬 능력도 없는 것이 인간의 실상입니다. 그러니 주께서 돌이켜 주신 이후에 뉘우치고 자신의 치욕을 아는 것입니다. 스가랴 1:16절을 보면 “그러므로 여호와가 이처럼 말하노라. 내가 긍휼히 여기므로 예루살렘에 돌아왔은즉 내 집이 그 가운데 건축되리니 예루살렘 위에 먹줄이 치어지리라. 나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 주셨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긍휼히 여겨주심으로 그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성전을 재건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도 주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은 주께서 돌이켜 주신 자들입니다. 오늘날도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우리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우리가 이 말씀을 오늘날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을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이 말씀 앞에서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과연 주님께로 돌아왔습니까? 바울은 에베소서 3:17절에서 예수님을 믿는다는 에베소 성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라고 기도합니다. 이미 예수를 믿는 사람인데 예수님이 그 안에서 주님으로 거하시도록 기도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돌아오라고 하시는 우리 주님의 음성을 듣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진정 마음으로, 우리의 삶이 온전히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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