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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성한 축복 풍성한 감사 (고후9: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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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성한 축복 풍성한 감사(고후9:6-15)


 


어떤 목사님의 글에 “늙은 가을에도 감사하며 살고 싶습니다.”라는 시가 있습니다.


“상쾌한 몸 아니지만/ 새벽에 일어날/ 호흡 있음을 감사하고/


큰 능력 없지만/ 예배당에 가/ 기도할 수 있어 감사하고/


풍성한 식탁 아니지만/ 아침 식탁에 앉아/ 같이 먹을 식구 있어 감사하고/


넉넉한 살림 아니지만/ 매일 일할/ 자리 있어 감사하고/


반기는 사람 많지 않지만/ 마음 열고 환하게/ 웃어줄 사람 있어 감사하고/


마음대로 되는 세상 아니지만/ 때때로 되어지는/ 일이 있어 감사하고/


희망이 뭉게구름으로 오지 않지만/ 언제나 기대가/ 잠들지 않아 감사하고/


죽으면 끝나는 것 같지만/ 그래도 천국에 대한 소망과/ 믿음이 있어 감사하고/


사는 날 동안/ 그렇게 감사하며/ 감사하며 살고 싶습니다.”


 


이 글을 쓰신 분은 나이가 드신 목사님 같습니다.


‘늙은 가을’ 이라는 표현을 한 것을 보면, 늦은 가을, 낙엽이 다 떨어져 볼품없는 나무와 같은 몸을 이끌며 사는 연로하신 목사님 같으신데 그런 분도 감사하며 살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오늘 감사주일에 다시 한 번 ‘늙은 가을’에도 감사하는 여러분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봄과 같이 솟아나는 희망이 없어도 감사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여름 같은 싱싱한 젊음이 없을지라도 감사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낙엽 떨어지는 늦가을같이 초라하게 생각되는 인생이일지라도 여기에도 주시는 감사가 있음을 생각하며 진심으로 감사하는 삶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일본의 신학자인 우찌무라 간조는 하나님 앞에서 저주받은 사람이 셋 있다고 말했습니다.


먼저는, 아무리해도 하나님이 안 믿어지는 사람이고


둘째는, 아무리 성경을 읽어도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는 사람이고


셋째는, 아무리 감사하려고 해도 감사가 되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는 얼마나 복 받은 사람인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믿어져서 이렇게 주님 전에 나와 예배드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하시니 얼마나 복 있는 자입니까?


오늘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여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감사하게 하신 것을 생각하니 우리는 진정 복 받은 자임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주님을 찬양하고 감사의 고백을 드리고 있습니다.


“나를 지으신 이가 하나님/ 나를 부르신 이가 하나님


나를 보내신 이도 하나님/ 나의 나 된 것은 다 하나님 은혜라


나의 달려갈 길 다 가도록/ 나의 마지막 호흡 다 하도록


나로 그 십자가 품게 하시니/ 나의 나 된 것은 다 하나님 은혜라


한량없는 은혜 갚을 길 없는 은혜/ 내 삶을 에워싸는 하나님의 은혜


나 주저함 없이 그 땅을 밟음도/ 나를 붙드시는 하나님의 은혜”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연보를 요청하는 말씀입니다.


당시 사도 바울은 기근이 들고 신앙적으로 핍박을 받아 어려운 삶을 살아가는 예루살렘 성도들을 위하여 각 교회에 연보하기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연보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한 방법입니다.


찬양으로도 감사할 수 있고 고백으로도 감사할 수 있고 주의 일에 힘쓰므로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 감사를 표현하는 방법 중에 하나가 하나님께 헌금을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감사생활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why)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너희가 연보를 해야 함은 하나님께서 모든 은혜를 넘치게 하셨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8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이유는 우리에게 넘치는 은혜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지난 목요일 다니엘 기도회에 강사로 나온 김예랑 성도는 하나님의 은혜로 간질병 앓는 딸을 고치는 축복을 받았다고 간증을 했습니다.


그런 자녀들을 둔 부모들이 얼마나 고생을 하는가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힘든 만큼 어려운 만큼 부모들의 한결같은 마음은 자녀들이 그 병에서 놓임 받는 것입니다.


그 소망이 얼마나 간절하겠습니까?


그러나 김예랑 성도는 먼저 자녀들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고 힘써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이 땅에서 그렇게 어렵게 살다가 천국에 가지 못하면 얼마나 억울하겠냐는 것입니다.


비록 아이가 병이 낫지 못해도, 병이 낫도록 기도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에 앞서 천국에 가도록 더욱 기도하고 힘써야한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예수 믿고 죄 사함 받고 구원받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축복인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이것보다 큰 축복은 없는 것이고 다른 응답을 받지 못하고 다른 축복을 받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이 축복을 받았으면 그는 가장 큰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바로 이 축복을 받았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크신 은혜는 여기에 머물지 않고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필요한 모든 것들을 허락하여주셨습니다.


우리가 지금 얼마나 많은 축복, 큰 축복을 누리며 살고 있습니까?


올해 우리는 코로나 19라는 감염병사태속에서 참으로 힘든 세월을 보내고 있습니다.


아직도 코로나 위기는 해소되지 않았고 앞으로 얼마나 더 있어야 할지 불확실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그럼에도 우리에게 얼마나 큰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습니까?


세계적인 유행의 추세에 비추어볼 때 우리는 방역을 훌륭하게 감당하였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방역을 잘한 나라가 되었고 경제적으로도 가장 선방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물론 정부와 방역당국의 많은 수고가 있었습니다만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다고 믿습니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인 줄 믿습니다.


 


추수감사주일은 바로 이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한 번 깨닫고 감사하는 주일입니다.


우리가 항상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감사를 잊고 살아갈 때가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세상의 고달픔과 아픔 속에서 감사보다는 원망과 불평으로 살아갈 때가 참으로 많습니다.


이러한 삶을 돌아보면서 다시 한 번 감사를 회복하는 절기가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주신 구원의 은혜를 깨닫고 광야와 같은 인생을 살아갈 때도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모든 은혜를 깨닫고 진심으로 감사하는 삶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나의 나 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고 여기까지 지내온 것이 주의 크신 은혜입니다.


 


(how)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감사를 해야 하겠습니까?


 


먼저는, 마음에 정한대로 감사해야 합니다.


7절 말씀을 보면, “각각 그 마음에 정한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했습니다.


그 마음에 정한대로 하라는 말을 공동번역에서는 그 마음에 우러나는 대로 하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마음에 우러나는 대로 감사하고 감사의 연보를 하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내 마음대로 내 뜻대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는 말이 아니고 하나님이 마음에 감동을 주시는 대로 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감사하라고 했으면 그렇게 해야지 그런 감동을 주셨는데도 인색하거나 억지로 드리지 말아야한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헌금을 드리는 일에 있어서 성도들이 흔히 자주 겪는 일이 아닙니까?


처음에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 이 정도의 헌금을 드려야겠다는 감동이 옵니다.


그런데 조금 지나면 틀림없이 조금씩 줄어들게 됩니다.


‘내 형편에 너무 많은 것 아닌가?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많은 것 아닌가?’


이렇게 드리면 조금 아깝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결국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많이 줄어든 헌금을 드리는 것을 흔히 경험하게 됩니다.


처음 작정했던 헌금이 적다고 그보다 더 많은 헌금을 드리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어떤 목사님이 농촌교회에서 목회할 때의 일화입니다.


어느 주일 믿지 않던 한 집사님의 남편이 나와서 인사를 나누고는 목사님께 물었습니다.


“목사님, 예수 믿는데 비용이 얼마나 듭니까?”


친척들이 교회에 나가면 비용이 많이 드니까 천주교를 다니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목사님이 “얼마나 비용이 들면 믿으시렵니까?” 하니까, “담뱃값 정도면 괜찮겠습니다.”


“왜 담뱃값 정도를 생각했습니까?”


“예수 믿으면 담배를 끊을 테니까 그 돈을 바치면 되는 것 아닙니까?”


“잘 생각하셨습니다.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그래요. 생각보다 비용이 별로 안 드네요.”


그 분이 교회를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비용이 조금 올랐습니다.


이유를 물으니 예수 믿고 술을 끊어서 올랐다는 것입니다.


이 분이 빠지지 않고 교회 출석을 잘 하는데 3년이 되도록 세례를 안 받는 것입니다.


세례 받으라고 권면하면 아직 때가 안 되었다고 더 있다가 받겠다고 거절하는 거예요.


실상인즉 세례 받으면 십일조 바쳐야 한다는 말을 듣고 안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3년 되던 해 심방 때에 다시 질문을 합니다.


“목사님, 십일조를 바치려면 수확의 십일조입니까? 비용을 다 제하고 십일조입니까?”


“비용을 제하고 바쳐도 되고 수확의 십일조를 바쳐도 되는데 믿음대로 하면 됩니다.” 했더니 “비용을 다 제하고 나면 얼마 안 되는데” 그러더니 쌀 두 가마니를 바쳤습니다.


그리고 그 해 세례를 받고 결국 집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집사가 된 다음해에 놀라운 일이 벌어졌는데 그 해 추수감사주일에 쌀 20가마니를 바쳤습니다.


그래서 “아니 무슨 비용이 갑자기 10배나 올랐습니까?”하고 물었더니,


“자식도 공부 잘 시키려면 유학비용이 많이 들고 옷도 좋은 옷을 사 입으려면 비용을 많이 드는데 내가 천국 백성이 되는 일에 어떻게 비용을 값싸게 지불할 수 있겠습니까?


성령님께서 감동 주셔서 비용을 비싸게 지불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큰 감동을 받고 아낌없이 축복을 했고 그 집사님은 영육 간에 큰 복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중표 목사님의 이야기)


 


여러분, 각각 그 마음에 정한대로, 마음에 우러나는 대로, 하나님이 감동주시는 대로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 감동에 인색하지 마시고 억지로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둘째는, 즐거운 마음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7절에서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 “하나님은 즐겨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초대 예루살렘 교회에 즐겨내지 않고 억지로 내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였습니다.


이들은 사람들이 집과 밭을 팔아 하나님께 드리는 모습을 보면서 자기들도 헌금을 해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소유를 팔아 헌금을 드리려고 하니 조금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얼마를 감추고 나머지를 드렸습니다.


베드로가 이것이 전부냐고 했을 때 아나니아는 그렇다고 거짓을 말합니다.


결국 거짓이 드러나면서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는 함께 죽음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억지로 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감사는 즐거운 마음으로 내는 감사입니다.


 


오늘 우리가 즐겁게 감사하지 못하는 이유는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처럼 물질이 내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내 것이라고 생각하니까 아깝기도 하고 즐겁게 드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적으로 말하면 우리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올 때 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않았는데 하나님이 맡겨주셔서 이렇게 풍성하게 누리고 있습니다.


때가 되어 하나님의 나라에 가게 될 때 우리는 모든 것을 다 놓고 가게 되어있습니다.


내 것이라고 할 만한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하나도 없습니다.


내 자신조차도 내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데 무엇이 아깝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이렇게 많은 것을 맡겨주신 것을 생각하면 아까운 것이 아니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하나님의 것을 기쁨으로 즐거움으로 드리시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What then)이렇게 즐거워하며 감사하는 삶을 살아갈 때 여기에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먼저는, 선물이 넘치게 됩니다.


6절 말씀을 보면,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했습니다.


이 말씀에 이어서 다른 성경에서는 ‘사람이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둘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0절에서도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 했습니다.


심는 대로 거두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감사를 심는 자는 감사를 거두고 감사를 심지 않는 자는 감사를 거둘 수 없습니다.


감사를 많이 심는 자는 더 많은 감사를 거두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둘째는, 하나님께 감사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너희가 연보를 하게 되고 우리가 이것을 예루살렘 교회에 전달하게 되면 그들이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고 영광을 돌리게 된다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감사할 때 다른 사람도 하나님께 감사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셋째로, 감사로 말미암아 자신의 신앙이 증거 됩니다.


13절 말씀을 보면, 이 연보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진실히 믿고 복종하는 증거가 되고, 또한 모든 사람을 아낌없이 돕는 증거가 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고, 여러분들을 위하여 기도하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스위스의 사상가 칼 힐티가 쓴 [행복론]을 보면 행복의 첫 번째 조건으로 감사를 꼽고 있습니다.


감사를 잃어버리면, 아무리 좋은 환경 속에서도 행복할 수 없고 반대로 감사할 수 있다면, 아무리 나쁜 환경 속에서도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칼 힐티는 ‘감사하라. 그러면 젊어진다.’ ‘감사하라. 그러면 발전이 있다.’ ‘감사하라. 그러면 기쁨이 있다.’는 말도 했습니다.


감사하면 행복해지고 감사하면 보너스로 젊어지고, 발전할 수도 있고, 기쁨도 찾아오는 축복도 누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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