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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불행의 원인 (롬1: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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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불행의 원인/롬1:18-23절



                


오늘날 우리 주위에는 스스로 불행(不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당신은 무엇 때문에 불행 합니까?' 라고 물어본다면, 여러 가지로 대답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직장이 없어서 돈을 벌지 못해 가난해져서 불행하다고 말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공부를 많이 하지 못해 무식한 바람에 성공적 삶을 살지 못해 불행하다고 말할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질병 때문에 건강하지 못해 불행하다고 말할 것입니다. 여러 사람들이 스스로 불행하다고 말하는 원인들을 살펴보면ㅡ 크게 두 가지라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첫째는 개인적인 불행입니다. 즉 개인적으로 병에 걸려 불행하다든지, 아니면 가난해 행복하지 못한 것입니다. 둘째는 사회적인 불행입니다. 즉 전쟁이 나는 바람에 모든 것을 다 잃고 비참한 중에 겨우 목숨만 건져 살게 되었다든지, 아니면 IMF로 직장이 망하는 바람에 먹고사는 것이 어려워지게 되었다든지, 하는 불행입니다.


 


우리는 개인적인 불행과 사회적인 불행을 잘 연결시켜 생각하지 못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즉 몸에 병(病)이 생겼을 때는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고, 전문의의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의 몸이지만, 병이 났을 때, 어디가 아프며, 어떻게 해야 아픈 것을 고칠 수 있는지를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병원에서 해당 분야의 전문 지식을 가진 자들만이 고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몸이 아플 때는 마음대로 이것도 먹고 저것도 먹는다고 고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전문 의사(醫師)의 정확한 진찰을 받아야 고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인간들이 겪는 수많은 불행도 모두 원인이 있고, 치료 방법이 있습니다. 성경에는 인간들이 겪는 수많은 불행이 모두 하나님과의 적대 관계에서 온다고 말씀합니다. 특히 전쟁이라든지, 지진이라든지, 태풍과 같은 사회적인 재난들은 하나님과의 적대 관계가 심하게 악화되었을 때, 즉 하나님 앞에서 인간들의 죄(罪)가 많이 누적되었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실 인간들 중에서 어느 누구도 감히 신(神)을 완전히 무시하거나, 부정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마음속으로는 신(神)의 존재를 생각하고 신(神)의 축복(祝福)을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생각 하나도 정확한 것 없이 모두 자기 나름대로의 민간요법(民間療法)에 불과 합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사람이 병에 걸렸을 때, 의사의 진찰이나, 치료를 받지 않고, 호박을 삶아먹는, 자기 나름대로의 민간요법으로 치료하려는 것과 같습니다. 특히 그 당시 로마에는 많은 신(神)들을 인정했고, 신(神)들을 위한 신전(神殿)이나. 제단이 있었습니다.




이런 자기 나름대로의 노력은 하나님과의 적대 관계를 해결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진노를 악화시킬 뿐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성경(聖經)은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진찰하고, 치료하는 유일한 책(冊)이라는 사실입니다.




성경은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의 적대(敵對)관계를 해결하고, 제대로 은혜받기만 하면, 어떤 불행도 치료할 수 있으며, 오히려 아름답고 풍성한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Ⅰ.인간의 두 가지 문제


우리는 병(病)이라고 할 때, 두 가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는 병의 뿌리에 해당되는 증세입니다. 예)간이 부었다든지, 철분이 결핍되었다든지, 종양이 생겼다든지,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병의 원인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잘 알 수 없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느낄 수 있는 병의 증세입니다.


예를 들어서 배가 더부룩하고, 설사를 자주 한다든지, 혈압이 오르고, 체중이 빠지고, 몸에서 열이 나는 병의 증세입니다. 우리 몸에서 나타나는 병의 증세는 질병을 진단하는 아주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그래서 실력 있는 의사(醫師)는 배가 아프다고 소화제를 주거나, 진통제를 주지 않고, 그 중세에서부터 시작해서 병의 원인을 찾는 진단을 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성경은 인간의 문제를 두 가지로 진단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인간의 모든 불행의 원인이 되는 뿌리이고, 다른 하나는 겉으로 나타나는 증세(症勢)입니다.




18절)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여기에 보면 성경은 인간의 문제를 두 가지로 진단하고 있습니다. 하나는‘모든 경건하지 않음’이고, 다른 하나는‘모든 불의’입니다.


 


경건하지 않는 인간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문제입니다. 또‘모든 불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문제입니다. 이것이 영어에서는 구분이 잘 됩니다. 영어에서는‘죄(罪)’라고 표현할 때,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얼어나는 죄는‘죄(罪sin’라고 해서 단수로 쓰고,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죄는‘죄들 Sins 이라고 해서 복수를 사용해서 표현합니다.




성경이 진단하는 것은, 인간들이 이 세상에서 자기 스스로 혹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느끼는 불행은 몸으로 나타나는 증세이고, 실제로 불행의 뿌리는 하나님과의 잘못된 관계에서 비롯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이‘경건하지 않음’입니다.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보고, 또 경험하는 모든 불의(不義)는 곧 하나님과의 관계가 잘못된 결과로 나타나게 됩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사회를 개혁하려거나, 세상을 보다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려고 노력은 바로 죄의 뿌리는 그냥 두고, 겉으로 나타나는 증세만 치료하려는 것과 같습니다.




예를 들어서 몸에 악창(惡瘡)이 나서 고름이 계속 흐를 때, 거기에 아무리 약(藥)을 바르고 붕대를 감아도 악창은 잘 치료되지 않습니다. 물론 그 정도의 치료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훨씬 낫습니다. 




그러나 이런 식의 치료는 근본적 치료는 되지 못합니다. 악창을 고치려면, 어느 날 하루 날을 잡아서 수술할 때, 완전히 치료가 될 것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도 바로 이 부분이었습니다.




왜 예수님은 인간 사회의 산적한 문제들을 이해하지 아니하시고, 눈에 보이지 않는 죄(罪)문제와 하나님과의 관계에 몰두하셨느냐? 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것이 치료되지 않으면, 인간의 불행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것은 곧 근본적인 불행을 치료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을 위해 18절에 나타나는 몇 가지 표현들을 이해를 해야 합니다. 우선‘하나님의 진노’라는 표현입니다.




인간의 모든 불행의 원인은 죄(罪)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에 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진노라는 것은 인간들처럼 화를 내시고, 미워하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것은 인간들이 하나님에 대해 본질적으로 갖고 있는 적대 관계를 말합니다. 인간들의 문제는 태어나기 전부터 하나님에 대해 적대 관계에 있는 것입니다.


 


요즘은 세상이 많이 변해서 관계가 달라지게 되었지만, 예전에는 민주주의 사회와 공산주의 사회는 사람들이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에 대해 적대 관계에 있는 것입니다.




예전에 남한 사람들은 북한이라고 하면, 무조건 미워하고, 적대적이었으며, 북한 사람들도 남한에 대해 마찬가지 태도였습니다. 이제는 남북 관계가 많이 변해서 서로가 적도 아니고 친구도 아닌, 회색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하나님에 대해 태어나면서부터 원수로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라고 하면, 무조건 싫고, 하나님에 대해 본능적으로 거부하는데, 이것을 하나님의 진노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만드시고, 축복을 주시는 데, 어떻게 인간들이 하나님에 대해 적대 일수가 있을까? 이것이 곧 인간의 문제입니다.




인간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것을 이용하고, 복(福)을 누리면서도 하나님은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에덴동산에 있었던 사고방식과 똑같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하려고 했던 것은 하나님의 동산을 빼앗아서 자기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인간들은 하나님이 만드신 아름다운 세상에서 하나님을 몰아냄으로서 인간 세상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실제로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도무지 살 수 없으면서도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여전히 적대 관계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태도는 어떻습니까?‘불의(不義)로 진리(眞理)를 막는다.’고 했습니다. 즉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우리나라 어떤 사람들은 북한에 대해 비료도 가져가고, 쌀도 가져가고, 필요한 모든 것을 가져가면서 자기들이 인정해야 할 것은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고 불평합니다. 즉 어느 날 갑자기 핵무기를 가졌다고 발표했습니다.




이것은 인간들이 항상 하나님에 대해 하는 행동입니다. 인간들은 하나님으로부터 필요한 것은 모두 다 공급받습니다. 즉 햇빛도 공급받고, 비도 공급받고, 건강이나, 물질의 복도 공급받습니다.




그러면서도 결국은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식으로 나옵니다. 그렇다면 어떤 결과가 오겠습니까?‘하나님의 진노가 하늘에서부터 나타난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인간들이 하나님과의 적대 관계를 청산하지 않음으로 나타나는 결과를 말합니다.


 


인간들이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적대 관계를 유지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가치를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면 인간들이 가장 아름답고 존귀할 때는 하나님 앞에 돌아와 병든 영혼이 치료되었을 그때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한 평생 이 세상을 공부하고, 돈을 벌고, 사랑하고 자식을 키우면서 살아가지만, 자기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들은 자신에 대해 기억상실증에 걸린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무엇인가 열심히 중요한 것을 찾는데, 가장 중요한 것을 찾지 못합니다. 곧 잃어버린 자신을 찾지 못합니다. 인간들이 하나님을 믿을 때, 가장 먼저 찾게 되는 것이 자신의 소중함이요, 존귀함입니다. 인간들이 자신의 잃은 상태에서 한 평생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첫 번째 진노(震怒)입니다.


 


둘째는 인간들 스스로 마음속에 있는 분노와 정욕과 탐욕을 컨트롤 할 수 없습니다. 인간들이 가장 아름다울 때는 자기 안에 있는 분노와 정욕과 탐욕을 컨트롤해서 의롭고, 공정하고, 사랑이 넘치는 삶을 살아갈 그때입니다.




사람들은 죄의 충동을 이길 수 없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을 미워하고, 또 마음으로 음란한 생각을 품으며, 정욕의 화신(火神)이 되어 살아갑니다. 이것이 곧 죄의 종이요, 노예입니다.   




사실 인간들이 마음껏 죄를 지으면서 얼마나 행복해 합니까? 그러나 마음껏 죄를 짓는 것은 결코 행복이 아니요, 가장 비참한 것입니다.


 


셋째는 이런 죄들이 쌓이게 되면, 하늘에서 하나님의 진노(震怒)가 쏟아지게 됩니다. 그때 전쟁이 터지기도 하고, 지진이 일어나기도 하고, 무서운 질병이 퍼져서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됩니다. 마치 사람들이 술을 많이 마시거나, 마약주사를 많이 맞게 되면, 나중에 크게 병(病)이 터지는 것과 같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진노에서 처음 두 가지는 표시가 전혀 나지 않습니다. 즉 인간이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지 못하고, 마음껏 화를 내고, 정욕을 따르는 것이 겉으로 나타나지는 않지만, 그대로 내버려두면, 어느 날 그동안 쌓였던 죄(罪)가 하늘에서부터 폭발하게 되는 것입니다.




구약 성경에서 어떤 선지자는 하나님이 진노하시는 방식을 두 가지로 표현했습니다.




하나는 좀과 같고, 하나는 사자와 같다고 했습니다. 좀과 같다는 것은 눈에 보이지도 않게 야금야금 갉아 먹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다가 사자는 한순간에 덤벼들어 목을 물어뜯어 죽여 버립니다.




오늘 성경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인간들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 아래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들에게 가장 긴급하고,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적대(敵對)관계를 해결하는 일입니다.




이것이 되지 않으면, 처음에는 야금야금 병들어 가다가 어느 날 갑자기 무서운 재앙이 덮칠 때, 꼼짝 못하고, 망하는 것입니다.




Ⅱ.인생의 불행은 기회


오늘 말씀을 대하면서 두 가지 질문을 스스로 제기해 보게 됩니다. 첫째는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면, 이 세상의 모든 불행이 다 없어지게 되느냐? 는 것입니다. 둘째는 하나님과 인간의 적대 관계가 해결 가능한 것이냐? 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두 가지 질문이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인간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질문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경험하는 불행은 너무나도 많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적대 관계가 해결되기만 하면, 모두 없어지고, 풍성한 축복(祝福)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것에 대해 성경은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의 축복(祝福)과 능력이 주어지게 된다고 말씀했습니다.




예수 믿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하면, 바로 이 한 가지 일로 이 세상에 임하는 모든 불행이 치료될 뿐만 아니라, 우리가 생각지도 못했던 능력과 축복(祝福)이 주어지게 됩니다. 이정도면 예수 믿는 신앙을 가지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또 하나는 인간의 불행이 완전히 치료될 수 있느냐? 는 것입니다. 이것에 대한 대답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인간으로서는 자신에게 이 정도의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알지만, 스스로 치료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또 다른 하나는 하나님은 완전히 치료하실 수 있습니다. 인간의 불행은 하나님만이 치료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이 세상을 살면서 겪는 여러 가지 불행들이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생각하게 하는 아픈 증세라는 것입니다. 우리 몸에 병이 있을 때, 여러 가지 아픈 증세가 나타나게 됩니다. 즉 갑자기 배가 아프다든지, 머리가 아프다든지, 몸에서 열이 난다든지, 하는 것은 우리 몸에 이상이 있다는 중요한 단서입니다.


 


몸이 아픈 사람은 이런 증세를 참거나, 감추어서는 안 되고, 의사(醫師)를 찾아가 정직하게 아픈 것을 이야기해야 치료받을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난하다든지, 혹은 사랑받지 못해 마음에 많은 상처가 있다든지, 혹은 여러 가지 일을 해도 만족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병이 났다는 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세상에서 경험하는 여러 가지 불행은 그것이 하나의 불행으로 그쳐서는 안 되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기회가 되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어떤 불행한 조건에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께 나아가기만 하면, 그 불행만 치료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인생 전체가 치료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은 자주 이중적으로 치료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사람들의 육체적 병을 치료 하셨습니다. 또 하나는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병든 인생을 치료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여러 번 사람들의 병(病)을 고치시고,‘평안히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바로 그들의 병든 인생을 치료해주시고, 하나님과의 적대 관계를 해결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들이 고침 받아야 할 가장 치명적인 부분이 무엇일까? 하나님을 인정하기 싫어하는 교만의 병입니다.




21절)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인간들이 어느 정도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살아가는가 하면, 100%의 도우심으로 살아갑니다.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시고, 무상으로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귀한 생명과 영혼을 주셨습니다. 또 우리에게 건강을 주시고,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많은 물질의 복(福)을 주셨습니다.




인간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신세지지 않은 것은 물방울 하나나, 공기 하나에 이르기까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하나님을 인정하지도 않고, 감사하지도 않습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죄(罪)가 인간의 자존심을 잘못된 방향으로 발전시켜 버렸기 때문입니다.




인간들이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고, 감사하게 되면, 하나님보다 열등하게 된다고 착각해서 감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떤 자존심이 너무 강한 자식이 아버지를 인정하면, 자기가 아버지보다 열등한 것이 될까봐 인정하지 않는 것과 비슷합니다.


 


소설『러브 스토리』를 보면 아들 올리버 버넷 4세가 주인공인데, 하버드 대학을 다닙니다. 그리고 이 아들의 아버지 올리버 버넷 3세도 하버드 대학 출신이고, 아주 돈이 많은 은행가입니다. 하지만 아들이 한 번도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새로 사귀게 된 애인이 올리버 4세에게 아버지를 뭐라고 부르냐? 고 묻습니다. 그러니까‘선 오브 비치!’라고 대답합니다.




인간들이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못하는 것은 너무나도 자존심이 강해서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 자존심은 좋은 자존심이 아니라, 아주 삐딱하고, 반항적인 자존심입니다.




대개 이런 식으로 성격이 삐딱한 아이라고 해서 모두 나쁜 아이는 아닙니다. 나름대로 자신을 찾으려고 하는데, 모두 잘못된 방향으로 찾으려고 해서 그렇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청소년 때, 나타나는 특징은 반항적이고, 과격하고, 감정의 기복이 심합니다. 청소년들은 아무런 경험이 없는 가운데,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고 하니까 결국 이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반항적 기질이 고쳐질 때가 많지만, 이것이 고쳐지지 않는 사람은 조직 폭력배가 되든지, 타락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미 타락한 상태에서 하나님에 대해 적대적이고, 반항적이기 때문에 너무나도 고치기가 어렵습니다. 




사실 인간들에게 이것만 고쳐지면, 인생 전체를 치료받을 수 있습니다. 인간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서의 겸손(謙遜)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의 겸손이 가장 바보스러운 사람들이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을 낮추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있는 여러 가지 불행(不幸)들을 사용하십니다.


 


그러기에 세상에서 너무나도 가난해 하나님을 찾거나, 치료받기 어려운 병 때문에 하나님을 찾거나, 사람들의 핍박으로 고통을 받아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이 생기게 됩니다.


 


로마에서도 가난하고 무식한 노예들은 복음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을 믿는데, 비해 로마 시민들은 너무나도 복음에 대해 거만하고, 부정적이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구약 성경에도‘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이 전파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래도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어려움을 당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찾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인간에게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하나님 앞에서 겸손한 모습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겸손할 수만 있으면, 이 세상의 어떤 불행도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Ⅲ.인간은 치료가 가능한가?


오늘 본문 말씀은 인간의 신지식(神知識)의 가능성에 대해 놀랍도록 정확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선 성경은 인간에게‘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19절)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인간들에게‘하나님을 알 만한 것’은 종교적 본성을 말합니다. 인간들은 어떤 상태든지,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또한 신(神)의 존재에 대해, 내세에 대해, 어느 정도 어렴풋하게 생각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특히 사람들은 자기 마음속의 것을 표현하고 싶은 강한 충동을 가지고 있습니다. 조각가들은 자기 안에 있는 어떤 강한 영감(靈感)을 돌이나, 쇠붙이로 표현하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런 종교적 예술적 감정들은 가장 덜 오염되었고, 순수하다고 생각해 숭배하려고 합니다.




사람들이 커다란 부처상이나, 신상(神像)을 만들어 놓고, 숭배하는 것은, 돌이나 나무로 만들었다는 것을 몰라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종교의 종교성이나, 열정을 숭배하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런 종교성이 표현되고, 만족될 때, 가장 깊이 있는 만족감을 느낍니다. 인간의 문제가 가장 고치기 어렵고, 까다로운 이유는 종교성 자체가 깊이 오염되었고, 부패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알만한 것은 오직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가장 바르게 작동됩니다. 인간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올바로 증거 되고, 제대로 듣기만 하면, 병든 영혼이 치료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께서 피조 세계를 통해 자신을 계시하셨습니다.


20절)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 세계는 너무나도 아름답고, 규칙적이며, 정밀하고, 창의적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세계는 거대한 지구나, 별들이 움직이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아주 작은 곤충 세계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신기하고, 창의적이고, 정확합니다. 이것이 곧 하나님의 작품이며, 하나님이 자신을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이런 피조 세계에서 최고의 작품은 인간들입니다. 아직 인간보다 더 지혜롭고, 고상하고, 감정이 풍부한 존재는 없었습니다. 인간은 정상상태에 있다면, 하나님을 사모하며 병든 영혼을 치료받기 위해 몸부림을 치게 됩니다.




인간의 영혼은 이 세상의 어떤 좋은 것으로도 만족시킬 수 없는 답답함과 갈급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영혼의 갈급함을 꺼버리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 하나가 술입니다. 술은 사람으로 하여금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또 하나는 욕심(慾心)입니다. 사람이 욕심을 가지고 있으면, 다른 것은 생각하지 못합니다. 오로지 욕심만 채우기 위해 욕심의 노예가 되어 버립니다.




그리하여 하나님 앞에 나아가 치료받을 기회를 스스로 포기해 버리는 것입니다.


21-23절)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여기서‘하나님을 알되’라는 말은 하나님을 제대로 아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알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즉 인간이 자신의 한계와 부족함을 생각하면, 얼마든지 하나님 앞에 나아올 수 있는데, 스스로 그런 기회를 포기하고, 멸망의 길을 택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너무나도 고귀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냥 인간으로 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교만을 치료받기 위해 살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하나님 앞에서 부족한 것을 발견하고, 인정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후회함 없는 가장 복(福)되고, 고상한 삶을 살 것이고, 하나님을 찾는 것을 포기하는 사람은 헛된 신기루와 같은 욕심만 움켜쥐고, 교만하게 살다가 결국 망(亡)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것은 많은 행복을 붙들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을 찾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교만의 병(病)을 치료받고, 겸손해지기 위함입니다. 인간이 가장 아름답고 가치 있을 때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 그때입니다. 우리의 야망과 욕심은 술에 취하는 것과 같습니다. 마시면 마실수록 취하게 될 것입니다.


 


인간들은 하나님 앞에 돌아올 때, 소중한 자신을 찾을 수 있으며, 인생의 가치 있게 살 능력을 얻게 됩니다. 인생에서 하나님이 없으면, 인생 전체가 수수께끼가 되어버리며, 한 평생을 살지만, 자신을 찾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을 찾는 것이 결코 비겁하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자식이 부모를 찾는 것은 인간으로 당연한 일이듯이 우리가 하나님을 찾는 것은 비겁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찾을 때, 가장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도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아름다운 모습이 살아나기를 바라며, 교만을 치료받고, 불행을 치료받아 가장 아름다운 삶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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