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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를 붙들리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사4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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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를 붙들리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이사야 41장 8-1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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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다 각자의 이름이 있습니다. 만약 이름이 없다면 내 존재가치가 부정되어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중요한 이름인데, 우리들이 가진 이름들은 사실 자기결정권이 하나도 없이 부모님이 일방적으로 만들어 주신 것이죠. 저는 딱히 그런 적은 없습니다만, 자기 이름이 마음에 안 들어서 바꿔 보고 싶은 생각 가져 보신 분 있으신가요? 법원에서는 개명 신청을 하면 거의 다 받아 준다고 하니 시도해 보실 분은 해 보시기 바랍니다. 단, 하나님께 먼저 물으시고, “지금의 네 이름이 너에게 딱 맞는 이름이다”라고 말씀 하시면, 깨끗하게 포기하시면 됩니다.


 


성경에서도 사람의 이름이 굉장히 중요한 의미로 쓰입니다. 이름에 그 사람의 인생이 담겨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민족의 아버지라는 뜻이고, ‘모세’는 물에서 건져냈다는 뜻이고, ‘여호수아’는 “예수”라는 이름과 발음이 같아서 구원한다는 뜻입니다. ‘다윗’은 사랑 받는 자, ‘사무엘’은 하나님께 구하여 얻었다, ‘느헤미야’는 여호와의 위로, ‘말라기’는 나의 사자라는 뜻입니다. 말라기 선지자는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겠다”(말 4:5)는 예언을 했죠. 보내겠다는 그 엘리야가 신약의 세례요한 이었지 않습니까? 이렇게 사람의 이름만 보아도 그 사람의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 어느 정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8절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야곱아’라고 부르고 계십니다. ‘야곱’은 우리가 잘 아는 이삭의 아들로, "속이는 자, 훼방하는 자"라는 좋지 못한 이름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야곱아’라고 부르실 때는 이삭의 아들 야곱이 아니라, 통일된 하나의 이스라엘 국가 전체를 지칭하며 부르실 때나, 혹은 남쪽 유다만를 지칭 할 때 사용되었던 이름입니다. 참고로 북쪽의 이스라엘만을 별도로 부르실 때는 ‘사마리아야, 혹은 에브라임아’라고 부르셨습니다.


 


‘야곱’이라는 이름뿐만 아니라 이사야 44장에서는 이스라엘 국가를 ‘여수룬아’라고 부릅니다. ‘여수룬’의 이름의 뜻은 “사랑 받는 자, 의로운 자라”는 뜻입니다. 야곱은 속이는자, 여수룬은 사랑 받는자, 완전히 대비된 이름 뜻을 가진 두 이름을 부르시는 이유는, 이스라엘에 대한 각별한 애증을 가지고 계시면서, 변함없이 사랑하고 용서하지만, 징계와 회복도 함께 하시겠다는 의미입니다.


 


추가로 성경을 읽으시다가 참고 하시라고 이스라엘을 부르는 이름에 대해 하나 더 말씀 드리면, “헵시바와 쁄라” 라는 단어를 혹시 들어 보셨나요? 쁄라는 생소할 수 있으나, 헵시바라는 말은 많이 익숙한 단어일 겁니다. 이 두 단어는 이사야 62장에 나오는 단어인데, 이것 역시 이스라엘 국가를 달리 부르시는 말씀입니다. ‘헵시바’는 “나의 기쁨이 그녀에게 있다”는 말로 결혼 할 때 신랑이 신부에 건네는 말입니다. ‘쁄라’는 “결혼한 여자”라는 뜻입니다. 이 두 단어가 언급 된 것은, 이스라엘이 더 이상 황무지나 버려진 땅이 아니라, 새롭게 출발하는 신랑 신부처럼,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도 결혼하는 신랑신부와 같이 회복과 영광의 날이 올 것임을 예언하시는 말씀입니다.


 


본문이 시작하는 8절에는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내가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 이렇게 무려 3가지의 이름이 불려 집니다. 어떤 사람이 나에 대하여 이름도 부르고, 별칭(별명)도 부르고, 혹은 애칭 까지 불러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나와 아주 각별한 관계를 맺고 있을 겁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이름을 다양하게 부르시면서, 그 나라, 그 민족의 빛과 어둠, 영광과 좌절, 그리고 미래까지도 너무나 잘 살펴보고 계시다는 것을 암시해 줍니다. 출애굽 당시부터만 보아도,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구원을 베푸시고, 광야에서 지켜 보호하여 주시고, 경작할 땅과 풍성한 소출의 복을 내려 주시고, 선지자들을 통해 끊임없는 경고와 회개의 말씀도 전해주시고, 멸망의 징계를 통해 또 다시 회복과 소망의 미래를 약속하셨습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불려 졌던 다양한 이름들을 하나님은 다 기억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지금의 대한민국을 다른 이름들로 불러주신다면, 혹은 내 자신을 다른 이름으로 불러주신다면 어떻게 불러 주실까 생각해 보신 적이 있나요? 그렇게 된다면 기대가 되십니까? 아니면 두려운 마음이 생기십니까? 하나님이 나의 이름, 별명, 애칭을 얼마나 기억하고 계실까를 한 번 깊이 묵상해 보십시오. 그럼, 하나님이 예비해 놓으신 특별한 감동을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좋았던 만남, 추억, 은혜의 시간들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8절에서 이름을 불러 주시며 여전히 식지 않으신 사랑과 관심을 보여 주신 후에, 9절에서 더욱더 진심의 마음을 드러내 보여 주십니다. 9절을 읽어드립니다. “내가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하여 버리지 아니하였다 하였노라” 아멘.


 


땅 끝, 땅 모퉁이라는 말씀이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그곳은 물리적이고 가시적으로 원거리에 위치한 이스라엘 밖의 땅, 즉 이방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곳을 의미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시선에서, 관심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신앙적으로는, 하나님이 시선을 거두시고, 관심 밖에 두시고, 능력을 베풀기를 저버린 진노의 심판을 받은 자들이 모여 있는 곳을 의미 합니다. 땅 끝, 땅 모퉁이라고 꼭 집어서 말씀 하신 것은, 지금 이스라엘의 상황이 얼마나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있는지를 생생하게 표현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버려지고 포기할 것 같은 상황이지만, 하나님은 그곳에 머물러 있는 자들에게 “붙들어 주겠다, 너는 여전히 나의 종(자녀)이다. 내가 너를 택한 사실은 변함이 없다. 나는 결코 너를 버리지 않는다” 이렇게 응원을 하시고 새 소망을 부어 주십니다. 참으로 우리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고, 인생이 아니시기 때문에, 상황과 현실에 관계없이 언제나 진실하시고, 누구에게나 신실하신, 진정한 사랑의 하나님이심을 새삼 알 수 있습니다.


 


우리를 향한 사랑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은 하나님의 크고, 넒고, 뜨거운 사랑의 열기는, 넘어지고, 쓰러지고, 낙심하고, 절망하고, 심지어는 징계를 받아 땅 끝, 땅 모퉁이까지 밀려간 사람들 까지도 다시 일으켜 세우실 수 있습니다. 아무리 어렵고 절망적인 상황이 밀려온다 하여도 우리의 삶이 끝나지 않는 한, 우리의 목숨이 다하지 않는 한, 아직은 기회가 충분합니다.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리고 지금 현재 질병으로 고통 받고 있는 온 인류에게, 특별히 00교회 모든 성도들에게 다시 일어서기에 충분한 용광로 같이 뜨거운 사랑의 말씀을 내려 주셨습니다.


 


바로 11월의 암송 말씀인 10절입니다.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아멘


 


참으로 몸이 후끈 달아오르는 힘이 되는 말씀입니다. 말씀 읽으시니 힘이 나십니까? 몸이 막 몸이 뜨거워지시나요. 여러분들이 이 말씀 암송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실 때마다 활활 타오르도록 불이 붙어야 합니다. 그리고 외우실 때마다, 내가 현재 불신의 땅 끝, 불순종의 땅 모퉁이에 서 있음을 직시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나를 붙들어 주시고, 도와주시고, 굳세게 해 주시는 우리 주님의 강력한 사랑의 능력을 새롭게 공급 받아야 합니다.


11월은 이 놀라운 하나님의 응원과 사랑의 말씀에 힘입어 모든 성도들이,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그리고 신앙적으로, 모든 면에서 새롭게 변화되는 기쁨의 달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0절 말씀이 우리 모두에게 강력한 믿음의 능력으로 역사하여, 우리 모두의 입술에서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뜨거운 사랑의 고백이 터져 나올 수 있는 11월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단순히 회복시키고, 마음에 소망을 주시기 위해서, 이와 같은 놀라운 말씀을 내리신 것이 아닙니다. 예전 보다 더 믿음의 사람으로 변화시켜서, 더 큰 일, 더 중요한 일을 맡기시고, 그를 통하여 영광 받으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에게 요구하시고 원하시는 것도 바로 이것입니다. 마음만 새롭게 먹고, 결단만 한 번 더 해보는 시늉으로 끝나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실제적으로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일을 맡기시고, 일하게 하시고, 열매들을 풍성하게 수확하시기를 기대 하십니다.


 


11~13절은 그토록 이스라엘을 괴롭혔던 이스라엘 대적자들을 다 물리 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는 갑자기 14절에서 “버러지 같은 너 야곱아!”라고 호통을 치십니다. 호통을 치셨다는 표현은 어감상 제 느낌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이 “독사의 자식들아!”라는 저속에 가까운 공격적인 말씀을 하신 적이 있는데, 구약에서도 그토록 자비로우신 하나님이 “버러지 같은 야곱아!”이렇게 말씀 하시니 당황스럽기는 합니다.


 


버러지는 실제 단어의 뜻은 ‘지렁이’가 맞습니다. 그 외에는 그냥 ‘벌레’ 혹은 ‘구더기’라는 말입니다. 징그럽고 소름끼치는 이 단어를 그렇게 사랑한다고, 도와준다고 말을 건넨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욕’같이 저속한 말도 아니고, 화가 나서 진노의 말씀을 쏟아낸 것도 아닙니다.


 


버러지 같이 더럽고 불결하다는 뜻이 아니라, 꿈틀거리다가 어느 순간에 사람에게 밟히면 몸이 터져 죽을 수밖에 없는 연약한 상태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지렁이같이 언제 밟혀 죽을지 모르는 연약함을 가진 이스라엘의 상태가, 곧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신앙인들의 모습입니다. 예수님 없이는, 성령님 없이는,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 없이는 우리는 다 버러지 같은 존재일 뿐입니다.


 


그러나, 14절 후반부에는, 하나님이 지렁이 같은 우리를 도우시고, 구속자가 되어 주심을 재차 강조하십니다. “약할 때 강함이라”는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우리 자신이 연약함을 스스로 인정하고, 강하고 전능하신 하나님께 의지하기만 하면, 우리는 아무 걱정 없습니다. 하나님은 지렁이 같은 우리들을 보호하시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15절을 읽어 드립니다. “보라 내가 너로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기로 삼으리니 네가 산들을 쳐서 부스러기를 만들 것이며 작은 산들을 겨 같이 만들 것이라” 아멘.


 


밟히면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들을, 곡물을 수확하는 쇠로 만든 타작기 같이 강하게 만들어 주신답니다. 그 쇠 타작기가 얼마나 강한지, 산을 부수고, 산을 겨같이 만드는데, 그렇게 강력한 쇠 타작기 같이 우리 각자 각자를 엄청난 능력자로, 하나님의 큰일을 감당하는 일꾼으로 만들어 주시겠다는 약속이십니다.


 


지렁이에서 일순간에 타작기가 되었습니다. 회개하지 않고 멸망당한 민족과 백성들을 다시 불러주시는 것만으로도 헤아릴 수 없는 은혜인데, 하나님은 여기에 덧붙여, 지렁이 같은 연약한 자들을 하나님의 일꾼으로, 용사로 거듭나게 하십니다. 참으로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우리는 누구라도 지렁이 같은 존재에서 타작기 같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거듭난다는 이 사실을 믿으시고, 기대 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타작기 같이 쓰임 받도록 준비하고, 순종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더 이상 지렁이가 아니라,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하나님의 용사로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우리교회는 특별히 일꾼이 많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희망의 미래를 여시기 위해서 우리 각자를 준비시켜 가시는 중임을 믿습니다.


 


우리 다함께 16절을 읽겠습니다. “네가 그들을 까부른즉 바람이 그들을 날리겠고 회오리바람이 그들을 흩어 버릴 것이로되 너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겠고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로 말미암아 자랑하리라” 아멘.


 


타작기, 추수, 알곡과 쭉정이, 이런 말씀들은 종국적으로 심판의 날에 이루어질 것에 대한 예언의 말씀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과정 중에 하나님 편에 서고, 하나님이 맡겨주신 사명들을 감당 해 나가는 동역자들은, 사탄의 무리들이, 그리고 거짓된 무리들이 멸망당해 가는 것을 똑똑히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 00교회는 하나님이 세우시고, 하나님이 역사하시고, 하나님이 쓰시고자 하는 일꾼들이 모여 있는 곳임을 믿습니다. 우리 교회의 성도들은, 비록 지금은 지렁이 같지만, 어느 순간에 타작기와 같이 능력의 사람으로 변화되어 하나님 나라의 일을 이루어갈 용사들이 될 것임을 믿습니다.


 


그런 교회, 그런 성도가 되기 위해서, 우리는 10절의 말씀을 가슴속에서 녹아 흘러내리게 하고,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능력의 말씀으로 새겨놓아야 합니다. 나를 붙들어 주시는 하나님, 나를 굳세게 하시는 하나님, 참으로 나를 도와주시는 하나님이, 영원히 나의 하나님이 되심을 굳게 믿으십시오. 그 믿음이 모든 역사의 출발점이 됩니다.


 


11월 한 달 동안 여러분의 마음에 하나님의 도우심과 일하심이 강하게 역사하셔서, 땅 끝에서, 땅 모퉁이에서, 다시 하나님이 원하시는 제 자리로 돌아와, 맡겨주신 사명들을 더 능력 있게 감당해 나가시는 믿음의 교회,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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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을 붙들어 주시고, 굳세게 하시고, 도와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을 가슴 깊이 새깁니다. 말씀의 능력에 힘입어, 저희 모두가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위해 크게 쓰임 받는 믿음의 성도들과 거룩한 교회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붙드시고, 세우시고, 도와주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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