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는 사람들 (말3:8-12)
본문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는 사람들/말라기 3:8~12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만드신 후에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필요한 것을 모두 준비하신 후에 마지막으로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만드시기 전에 아담을 위해 우주 만물을 만드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크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마어마한 것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창세기 1장 27~29절에 보면,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 거리가 되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모든 만물을 다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있는 채소와 과일을 마음대로 먹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좋은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만복의 근원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주셔야 복을 받습니다. 모든 복은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힘으로는 복을 얻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노력해서 복을 찾을 수 없습니다. 복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을 받기 원한다면,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잘 섬겨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모든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창세기 2장 16~17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을 먹으면 죽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복을 모두 누리며 영원히 살 수 있습니다.
죽지 않습니다. 영원히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으면 반드시 죽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하셨을까요?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원하시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드신 이유가 있습니다.
피조물 중에 하나님과 친구처럼 만날 수 있고 말할 수 있고 함께 즐길 수 있고 하나님과 대화하고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가질 수 있는 인격체는 사람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신 사람과 언제나 좋은 관계를 갖기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지 말라고 사람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하와는 뱀의 말을 듣고 뱀의 말을 믿었습니다. 하와는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렸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리는 것은 하나님을 저버리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리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집니다. 만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지면, 저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사울 왕은 이스라엘의 초대(初代) 왕이 되는 복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말렉 사람을 진멸하라고 말씀하셨는데, 사울 왕은 그 중에서 살진 짐승은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아각 왕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사울 왕은 하나님의 말씀을 조금 어겼습니다. 나머지는 다 죽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울 왕이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렸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도 사울 왕을 버리셨습니다.
하나님께 버림 받으면, 지옥에 갈 수밖에 없습니다. 만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버림 받으면, 저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렸습니다. 이로 인해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복을 모두 잃었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은 것은 작은 일이지만, 그것으로 인해 엄청난 복을 다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뿐 아니라,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도 쫓겨났습니다.
창세기 3장 17~19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아담과 하와에게 공짜는 더 이상 없습니다. 밭을 갈고 씨를 뿌리는 수고를 해야 먹고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믿음의 조상 이삭의 때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흉년이 들었으니 먹을 것이 있는 애굽으로 가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삭에게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 이 땅에 거류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창 26:2~4)”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삭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애굽으로 가지 않고 그랄로 갔습니다. 이삭은 그곳에서 농사를 지었습니다. 이삭은 백 배의 복을 받아 거부(巨富)가 되었습니다.
남들은 흉년으로 인해 아우성인데, 이삭은 거부가 되었습니다. 남들이 잘 될 때에 잘 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풍년의 때에 풍년을 누리는 것은 쉽습니다.
그런데 이삭은 흉년의 때에 백 배의 복을 받았습니다. 이삭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좋아집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복을 받아 누릴 수 있습니다.
흉년이라고 세상 사람들처럼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흉년의 때에 이삭에게 백 배의 복을 주셔서 오히려 거부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이삭처럼 살면 좋을 텐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타락했습니다. 하나님을 저버렸습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떠났습니다. 그래서 저주를 받았습니다.
요엘 1장 4~7절에 보면, “팥중이가 남긴 것을 메뚜기가 먹고 메뚜기가 남긴 것을 느치가 먹고 느치가 남긴 것을 황충이 먹었도다 취하는 자들아 너희는 깨어 울지어다 포도주를 마시는 자들아 너희는 울지어다 이는 단 포도주가 너희 입에서 끊어졌음이니 다른 한 민족이 내 땅에 올라왔음이로다 그들은 강하고 수가 많으며 그 이빨은 사자의 이빨 같고 그 어금니는 암사자의 어금니 같도다 그들이 내 포도나무를 멸하며 내 무화과나무를 긁어 말갛게 벗겨서 버리니 그 모든 가지가 하얗게 되었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을 저버리니 저주를 받았습니다. 메뚜기와 황충이 몰려와 사람이 먹을 것을 다 먹어버렸습니다. 메뚜기와 황충이 나무껍질까지 갉아먹었습니다.
요엘 1장 14절에 보면, “너희는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소집하여 장로들과 이 땅의 모든 주민들을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으로 모으고 여호와께 부르짖을지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것이 사는 길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나와서 금식하고 부르짖으며 기도해보세요.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보세요.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요엘 2장 12~14절에 보면,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주께서 혹시 마음과 뜻을 돌이키시고 그 뒤에 복을 내리사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소제와 전제를 드리게 하지 아니하실는지 누가 알겠느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요엘 2장 25~26절에 보면, “내가 전에 너희에게 보낸 큰 군대 곧 메뚜기와 느치와 황충과 팥중이가 먹은 햇수대로 너희에게 갚아 주리니 너희는 먹되 풍족히 먹고 너희에게 놀라운 일을 행하신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할 것이라 내 백성이 영원히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하나님을 저버리면, 하나님의 진노를 받고 망합니다. 그러나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눅 15:7)”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회개하는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탕자를 보세요. 탕자에게 공로가 있었습니까. 얼마나 나쁜 사람입니까. 그러나 탕자가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아들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겼습니다. 살진 송아지를 잡아 잔치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눅 15:24)”고 말했습니다.
요엘 선지자는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욜 2:12)”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는 재앙을 내리지 않으시고 오히려 복을 주셔서 감사의 제사를 드리게 하십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복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을 본받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입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처럼 순종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처럼 복을 받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창 12:3)”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으로 인해 모든 민족이 복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이 받은 귀중한 복입니다.
우리도 이 복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로 인해 복 받는 사람이 많아야 합니다. 우리로 인해 교회가 잘 되어야 합니다.
우리로 인해 우리 가정이 복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으로 인해 우리 가정이 복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로 인해 교회가 잘 되어야 합니다. 우리로 인해 우리나라가 복을 받아야 합니다.
아브라함과 같은 사람이 우리나라의 지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우리나라가 지도자가 되어 그 사람으로 인해 우리나라가 복을 받아야 합니다. 국민이 복을 받아야 합니다.
이 세상을 보며 걱정하지 마세요. 하나님의 콧김에 방향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십니다. 절대주권을 가지고 계십니다. 못하시는 것이 없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아브라함처럼 복을 받아 아브라함처럼 많은 사람을 복 받게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려면,
첫째, 자신을 위해 쌓아놓지 말고 항상 나누며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자신만 잘 먹고 잘 살겠다고 재산을 모으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축을 늘리고, 주식 투자하는 등 어떻게 해서든 돈을 쌓아놓고 살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마 6:19~20)”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중요합니다.
복 받았다고 재산을 쌓아놓고 살면, 큰 시련과 고난이 찾아옵니다. 많은 것을 가지고 있으면, 골치 아픈 일이 많이 생깁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처럼 많은 사람을 복 받게 하려면, 항상 나누며 살아야 합니다. 누가복음 6장 3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허투루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 쓰고도 남아 항상 넘치는 복을 받으려면, 나누며 살아야 합니다.
요한일서 3장 18절에 보면,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어려운 이웃을 보며 말로만 먹으라고 할 것이 아니라 먹을 것을 주어야 합니다. 말과 혀로만 사랑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조심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마 6:3~4)”고 말씀하셨습니다. 구제할 때에는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는 돈 거래를 해서는 안 됩니다. 교회 안에서는 돈을 빌려주지 마세요. 그냥 주세요. 도와주고 싶은 만큼, 도와줄 수 있는 만큼 도와주세요. 빌려주고 받으려고 생각하지 마세요.
교회마다 돈 문제 때문에 시험을 겪는 사람이 많습니다. 어려움이 있어서 돈을 빌려 간 사람은 돈을 갚을 수 없습니다. 갚겠다고 말하지만, 어려움이 있는데 어떻게 갚겠습니까.
본의 아니게 갚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갚지 않는다고 괴롭히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원수가 될 뿐입니다.
그리고 보증을 서지 마세요. 자식이든 형제든 누구에게든 보증을 서지 마세요. 자신이 누운 침상까지 빼앗길 수 있습니다.
잠언 22장 26~27절에 보면, “너는 사람과 더불어 손을 잡지 말며 남의 빚에 보증을 서지 말라 만일 갚을 것이 네게 없으면 네 누운 침상도 빼앗길 것이라 네가 어찌 그리하겠느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마태복음 6장 2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습니다. 보물을 땅에 쌓아두고 사는 사람은 마음이 보물에 가 있습니다.
주식 투자한 사람은 마음이 주식에 가 있습니다. 주가가 오르는가 내리는가에 관심을 쏟습니다. 이 사람은 돈의 노예가 된 것입니다. 이것은 저주입니다.
그러나 재물을 하늘에 쌓는 사람, 하나님을 위해 바치고 하나님을 위해 쓰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 하나님께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재물을 어디에 쌓는가가 매우 중요합니다.
둘째,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누가복음 12장에 보면, 어리석은 부자가 등장합니다. 풍년이 되어 곡식이 많아지자 어리석은 부자는 창고를 많이 짓고 곡식을 거기에 쌓아두었습니다. 어리석은 부자는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부자에게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눅 12:2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2장 2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보면 불쌍합니다. 영혼이 매우 불쌍합니다. 재산이 많은 것이 죄입니다. 재산이 너무 많은 것으로 인해 고생을 많이 합니다.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교만해집니다. 자식들이 서로 싸웁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위해 물질을 쌓아두는 것은 복이 아니라 저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면, 하나님께서는 몇 배로 갚아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더 풍성해집니다.
마태복음 6장 2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잘 믿고 부자가 되기 원하는 사람, 하나님을 잘 믿고 돈이 많은 사람이 되기 원하는 사람은 재물의 노예가 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재물을 다 섬길 수 없기 때문에 이런 사람은 재물을 우상으로 섬기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처럼 항상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잘 섬겨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아 누려야 합니다. 우리가 받은 복을 많은 사람과 나누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복을 많이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재물의 노예가 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양 떼와 소 떼를 조카 롯과 나눌 때에 아브라함은 롯에게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창 13:9)”고 말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선택권을 롯에게 주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런 것에 연연해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땅을 주시겠다고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롯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롯은 약삭빨랐습니다. 소돔 쪽을 바라보니 에덴동산과 같았습니다. 물이 많고 나무가 우거지고 살기 좋아 보였습니다. 그래서 롯은 소돔 쪽을 택했습니다. 여기서 아브라함과 롯의 차이가 드러납니다.
롯이 소돔으로 간 후, 소돔 땅에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전쟁에 패해 롯은 사로잡혀갔습니다. 재물을 모두 빼앗겼습니다. 가족들이 모두 끌려갔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인입니다.
롯은 다 잃어버렸습니다. 롯 자신도 노예가 되었습니다. 창세기 14장 14~20절에 보면, “아브람이 그의 조카가 사로잡혔음을 듣고 집에서 길리고 훈련된 자 삼백십팔 명을 거느리고 단까지 쫓아가서 그와 그의 가신들이 나뉘어 밤에 그들을 쳐부수고 다메섹 왼편 호바까지 쫓아가 모든 빼앗겼던 재물과 자기의 조카 롯과 그의 재물과 또 부녀와 친척을 다 찾아왔더라 아브람이 그돌라오멜과 그와 함께 한 왕들을 쳐부수고 돌아올 때에 소돔 왕이 사웨 골짜기 곧 왕의 골짜기로 나와 그를 영접하였고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318명이 어떻게 여러 나라 군사를 다 물리칠 수 있었을까요. 하나님께서 함께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아브라함의 손에 붙이셨기 때문입니다.
전쟁은 사람의 수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누구의 편이신가에 따라 싸움의 승패가 결정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편이 되시면, 우리는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멜기세덱은 하나님께 찬송했습니다. 이때 아브라함은 자신이 얻은 것에서 1/10을 멜기세덱에게 주었습니다. 여기서 십일조가 처음 등장합니다.
창세기 13장 21~23절에 보면, “소돔 왕이 아브람에게 이르되 사람은 내게 보내고 물품은 네가 가지라 아브람이 소돔 왕에게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여호와께 내가 손을 들어 맹세하노니 네 말이 내가 아브람으로 치부하게 하였다 할까 하여 네게 속한 것은 실 한 오라기나 들메끈 한 가닥도 내가 가지지 아니하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복을 받게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소돔 왕의 말을 듣고 물건을 받으면, 아브라함이 소돔 왕 때문에 부자가 된 것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소돔 왕이 가로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소돔 왕이 주는 것을 받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실 영광을 소돔 왕이 가로채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소돔 왕에게서 실 한 오라기도 받지 않겠다고 맹세했습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은혜로 승리했습니다. 자신의 힘으로 이긴 것이 아닙니다. 잃었던 재물을 다시 찾았습니다. 그들의 것까지 다 빼앗았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주셔서 받은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래서 아브라함은 기쁨으로 자원하여 하나님의 종인 제사장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이런 아브라함이 복을 받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야곱은 아브라함처럼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창세기 28장에 보면, 야곱은 하나님께 세 가지를 서원했습니다.
세 번째로 야곱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라고 서원했습니다. 그리고 창세기 31장에 보면, 야곱은 거부가 되었습니다.
역대상 29장 11절에 보면, 다윗은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역대상 29장 12절에 보면, 다윗은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라고 기도했습니다.
역대상 29장 14절에 보면, 다윗은 “나와 내 백성이 무엇이기에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라고 기도했습니다.
우리가 가진 것은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셔서 받은 것입니다.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다윗은 이런 마음으로 하나님께 물질을 드렸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이렇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타락했습니다. 말라기 1장에 보면, 제사장이 타락하여 더러운 떡을 제단에 올려놓았습니다. 눈먼 희생제물을 바쳤습니다. 저는 것, 병든 것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 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으며 너를 받아 주겠느냐(말 1: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것을 받으시겠습니까. 그들은 헛수고한 것입니다.
깨끗하지 않은 제물로 밤낮 제사를 드리니 하나님께서는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말 1:1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죽하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겠습니까.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번거롭게 생각하고 코웃음 치고 훔친 물건과 저는 것, 병든 것을 가져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그것을 너희 손에서 받겠느냐(말 1:1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사장들이 이렇게 타락했으니 백성들은 어떠했겠습니까. 백성들도 십일조를 드리지 않았습니다. 온전한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지 않았습니다.
본문 말라기 3장 8절에 보면,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했다고 했습니다. 봉헌하는 것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에 손대면 안 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했습니다. 그래서 저주를 받았습니다.
본문 말라기 3장 10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활짝 여시고 복을 부어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시험해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십일조를 온전히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쁘시게 받으시는 십일조를 드려야 합니다.
타락하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집니다. 그러면 저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 돈이 아쉬워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주셔서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이것은 신앙고백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기쁨으로, 즐거운 마음으로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여러분 중에 십일조헌금만 드리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십일조헌금, 감사헌금, 선교헌금 등 헌금을 많이 드립니다. 십일조헌금 하는 것을 아까워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온전한 십일조를 드릴 뿐 아니라, 넘치게 하나님께 드립니다. 이것이 거듭난 사람의 특징입니다.
거듭나지 못한 사람은 평생 교회 다녔다 해도 온전한 십일조를 드릴 수 없습니다. 재산이 많을수록 십일조를 드릴 수 없습니다. 그 사람은 구원 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교회에서 직분을 받았다 해도, 거듭난 사람이 아닙니다.
거듭난 사람은 하나님께 다 바칠 수 있습니다. 아깝지 않습니다. 십일조 때문에 고민하지 않습니다. 거듭나지 못한 사람에게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자원해서 기쁨으로 섬겨야 합니다. 자원해서 기쁨으로 헌금해야 합니다. 자원해서 기쁨으로 나누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는 쓰고도 남게 하셔서 평생 돈 때문에 걱정할 일이 없게 하십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이 성도들에게 복이 될 줄 믿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진정 사랑하는가 점검하게 하여주옵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지 않고 하나님께 자원하여 넘치게 드리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복을 받는 자가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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