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예수)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막5:25-33)
본문
그(예수)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마가복음 5장 25-33절)
9월의 암송 말씀인 창세기 1장 1절 잘 외우고 계시죠? 지난주에 말씀 드린 것처럼, 이 말씀 속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선하신 능력에 근거해서, 오늘은 연약한 우리 육체에 대한 치유와 회복에 대해 함께 나누겠습니다. 오늘 말씀이 선포되는 가운데 특별히 몸(마음)이 아프신 분들은 하나님의 선하신 치유의 능력이 강하게 역사하셔서, 깨끗하게 고침 받고, 회복되는 크신 은총이 내려지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지금 당장 우리에게 소원 하나만 말하라면, 마스크 벗고 자유롭고 생활하는 것일 겁니다. 코로나19(COVID-19) 질병이 언제쯤 안정되고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예측 불가능하기는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치료제들이 속속 개발 되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고, 내년 상반기쯤에는 백신도 선을 보일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지만, 계속 변이를 일으키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완벽한 면역력을 제대로 갖춘 백신이 개발 될지는 의문입니다.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고 치료 받은 분 중에 20대 청년 유튜버가 치료 체험담을 고백하기를, “입원 후 열흘 동안 기침·고열·근육통으로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진짜 죽는 줄 알았습니다, 저승사자와 하루에도 열 번씩 하이파이브하는 느낌이었습니다”라고 고통을 설명했습니다. 한 마디로, 이제 죽는구나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더 큰 문제는 치료 이후의 후유증입니다. 부산대 박현 교수 라는 분도 확진 치료를 받았는데, 치료 후에, 머리에 안개가 낀 것 같이 집중이 힘든 ‘Brain Fog(브레인 포그)’ 현상이 나타나고, 앉아 있으면 가슴 통증을 느끼고, 자주자주 속 쓰림을 동반한 위장 통증을 느끼고, 피부가 보랏빛으로 변하는 피부건조증이 나타나고, 예측할 수 없는 만성피로에 시달린다고, 자신의 후유증을 소개 했습니다. 그러면서 박 교수는, “완치 판정을 받은 후 다섯 달이 지났지만 전혀 완치되지 않았다. 아직도 코로나 걸려도 치료 받으면 금방 나을 것처럼 호기를 부리는 젊은 사람들이 많고, 지하철에서 마스크 안 쓰는 어르신들 많은 데, 제발 마스크 쓰십시오, 한 번 걸리면 진짜 장난 아닙니다” 라고 경각심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Pandemic(팬데믹, 새로운 질병이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것)”에 해당하는 세계적인 이러한 대유행 질병 뿐 만 아니라, 단기적으로, 혹은 만성적으로 우리 몸에는 헤아릴 수 없는 질병들이 침투해 옵니다. 인간은 그 모든 질병을 막아 내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몸이 건강하지 못하면, 사실 다른 모든 면에서 의욕이 떨어지고 점점 고립되어 갑니다. “건강을 잃으면 다 잃어버리는 것이다”라는 말은, 진짜 제대로 아파본 사람이라면 100%, 1000% 공감 하실 겁니다.
오늘 말씀의 주인공은 질병으로 인해 모든 면에서 고립되고, 삶의 의욕이 완전히 상실된 한 여인의 이야기입니다. 당시 혈루증 앓던 여인의 상황이 26절에 잘 나와 있습니다.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아멘.
여기저기 용하다는 의사 찾아다니느라 고생하고, 치료하느라 돈도 다 써버리고, 이 약, 저 약 처방 받은 대로 해봐도 나아지는 것이 없고, 몸에서는 출혈이 끊이지 않습니다.12년 동안 병이 점점 나빠지기만 해가는 상황이었습니다. 더 이상 치료 받을 곳도 없고, 앞으로 나을 가망성도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희망이 찾아 왔습니다. 그리고 여인은 어쩌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다시 한 번 도전을 합니다. 27, 28절입니다 “27.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끼어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28.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함일러라” 아멘.
동네를 지나가는 예수님을 찾아가서,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었습니다. 그 결과는 거짓말처럼 혈루증이 깨끗하게 치유 되었습니다. 옷에 손을 대기만 했는데 병이 치유 된 이유를 예수님이 34절에 이렇게 말씀 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아멘.
28절에서 여인이 “그(예수님)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했던 행동은, 곧 “믿음”이었다고 예수님이 정리해주셨습니다. 여기까지가 본문의 내용 이야기이고, 익히 알고 있는 사실들입니다. “믿기만 하면 모든 병은 다 낫습니다!, 옷에 손을 대기만 해도 낫는 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러한 보편적인 해석 아닌 해석과 설교는 무수히 들었습니다. 우리는 이 시간에 좀 더 다른 시각에서 이 사건을 바라보려고 합니다.
각자가 혈루증 앓는 여인이라고 생각하시고, 실제 당시의 현장에 있었다는 심정으로 한 번 들어 보십시오. 당시 유대 사회에서는 여자라는 이유만으로도 이미 최하급의 대우를 받는 신분이었습니다. 여자라는 기본적인 ‘핸디캡(handicap, 불리한 조건)’ 도 버거운 상황인데, 불치병 까지 지니고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불치병, 난치병, 나병, 또한 신체의 장애 등은 부모의 죄로부터 저주를 받아 내려온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질병의 수치심도 괴로운데, 저주 받았다고 낙인찍어버린 설움의 기간이 무려 12년이나 지속되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했을까요? 사람들의 시선에서는 이 여인의 존재가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동네 강아지 보다 보잘 것이 없었습니다. 눈에 보이지는 않았지만 이 여인에게는 접근금지 스티커가 붙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를 보는 사람들은 이 여인이 저주 받았다고 손가락질하고, 냄새난다고 피하고, 병 옮긴다고 사람 사는 근처에는 얼씬도 못하게 내쫓아 버렸습니다. 공동체 삶의 환경에서 완전히 격리되고, 공동생활의 부적격자로 낙인찍힌 지 이미 오래입니다. 쇠사슬에 묶여 캄캄한 독방에 홀로 갇힌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그야말로 절대고독과 좌절, 그리고 절망의 늪에 던져진 버린 상태였습니다.
그런데도 한 사람도 동정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앞 뒤 사방이 꽉 막힌 상태로 짐승보다 못하게 살아온 기간이 무려 12년이나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이 비운의 주인공이었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누구든지 이 상황이면 차라리 죽는 게 났겠다고 수십, 수 백 번 생각했을 겁니다. 저는 12년의 시간을 생각해 보면서, 매 순간 마다 죽어버리고 싶은 절망의 마음을 다잡고, 버티고 끝까지 살아낸 끈끈한 삶의 의지에 고개가 숙여졌습니다.
여러분이 제 3자가 아니고 진짜 이 여인이라면, 이만한 차별 대우에, 이만한 손가락질에서도, 이만한 나름대로의 노력들이 모두 헛것으로 돌아가는 암울한 상황에서도, 앞으로 어떠한 일말의 희망의 끈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과연 꿋꿋하게 잘 버텨내고, 이를 악물고 내일 하루를 더 열심히 잘 살아보겠다는 의지를 계속 품어낼 수 있겠습니까? 저에게 물어 보았더니 제 마음은, 12년이 아니라, 저만한 병을 앓고 고생하는 몸이라면 1년도 못 돼서 그냥 골방에 묻혀서 목석처럼 지내던가, 아니면 제 목숨 하나도 지켜낼 자신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여인이 정말 대단한 것은 인간의 생존이나, 존재의 이유에서도, 최악의 상황이었지만, 버텨냈다는 겁니다. 이겨내고, 참아내고, 치료 받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는 겁니다. 이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또 있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나 이 상황을 이렇게 까지 만들어 갈 수는 없습니다. 여인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희망의 메시지는, 질병이라는 것이 참을 수 없는 고통일 지언 정, 차가운 시선이 견딜 수 없는 모욕일 지언 정, 그 상황이 자기 자신을 절망으로, 죽음으로 몰아가는 포기의 절대적인 이유가 아니었습니다.
우리 몸에 질병이 생기고, 건강에 적신호가 오는 것은 상황적으로는 매우 좋지 않은 징조이고, 치료의 과정을 보내는 것 또한 시간과 재정의 손실이 많이 납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꼭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너무나 무관심했던 소중한 내 몸에 대해 집중하고 조심할 수 있는 시간이 됩니다. 치료 받느라고 다른 헛된 시간을 보낼 틈이 없게 됩니다. 옴짝달싹 하지 못하는 자신의 몸, 자신의 연약함을 돌아보면서, 그 동안 당연시 누려왔던 숨 쉬는 것, 물 마시는 것, 잘 자고 잘 일어나는 것 등이 얼마나 감사하고 또 감사한, 특별한 감사의 조건들이었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결정적으로는 몸이 죽도록 아프면 그 동안 한 번도 불러보거나, 찾아보지 않은 어떤 신적인 존재를 찾게 됩니다. 그래서 유독 병상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빨리 치료 받고, 빨리 낫고 싶다는 간절함이 생기면서, 치유의 주권자 되시는 우리 아버지 하나님, 전능의 아버지 하나님을 향해서 시선을 돌리게 됩니다. 12년 동안 혈루증 앓은 여인에게는 관심사라고는 딱 두 가지 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는 깨끗해지고 싶은 자신의 몸(육체)이었고, 또 하나는 그 몸을 치유해 주시는 전능의 하나님을 만나는 일이었습니다.
우리에게 질병을 주시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아주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나와 하나님, 그리고 하나님과 나, 이 두 가지만 남기고 싹 다 지워버리는 선택과 행동을 하게 하시려는 겁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병든 육체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부들부들 떨며 힘들게 서는 나, 그 모든 악한 질병을 단 번에 치유하시고 온전케 하시는 우리 아버지 하나님, 이 둘 만 남겨 놓는 겁니다. 이 상황이 가장 많이 일어나는 경우가 질병으로 극한의 고통 받을 때입니다. 이것이 질병이 결과적으로 우리에게 나쁘지만은 않은 이유입니다.
오늘 설교의 제목이 “그(예수님)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입니다. 혈루증 여인은 12년의 그 인고의 시간을 이겨냈고, 결국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는 감격의 순간에 까지 이르렀습니다. 정말 의지의 여인입니다. 혈루증 여인의 이야기는 단지 질병 그 자체만을 싹둑 잘라내는 단순치유가 목적이 절대 아닙니다. 고통과 인내의 시간을 통해, 한 사람이 구원 받고 평안을 얻기 까지 얼마나 치열하게 자기 자신과 싸워야 하는지를 극적으로 연출하여 보여 줍니다.
혈루증 여인에게 있어 12년의 기간은, 수치와 모욕의 12년인 동시에, 자기 몸과 마음에 붙어 있던 세상과 사람에 대한 미련, 미움, 그 모든 것을 하나씩 하나씩 버리고, 없애고, 잘라내는 시간 이었습니다. 다 버리고, 혈루증에 고통 받고 있는 자신의 병든 육체 하나만 남았을 때, 우리 주님은 그에게로 다가오셔서 옷자락을 만질 수 있는 기회를 허락 하신 것입니다.
질병의 시간은 고통의 시간이 아니라, 내 몸에만 집중하면서, 버리는데 힘을 쏟는 시간 이라는 것, 그리고, 포기하고 절망하는 시간이 아니라, 준비하고 기대하는 시간 이라는 것이 혈루증 여인의 12년에 담겨져 있습니다. 이 고통의 시간이 복 된 만남의 통과의례입니다. 우리가 질병을 대할 때 이런 자세를 가지고, 버텨내고, 이겨 내고, 버리고, 기대하는 마음을 유지 한다면, 반드시 정확한 시간에 우리 주님은 치료의 은혜로 우리에게 찾아와 주실 줄을 믿습니다. 아멘.
우리 모두는 크고 작은 몸의 질병이 다 있습니다. 사람의 기본 습성상, 간단한 질병은 무시하고, 별거 아니다 생각합니다. 그러다 큰 병이 찾아오면, 먼저 치료비 걱정, 그 다음은 빨리 낫는 방법을 찾아 여기저기 바쁘게 움직입니다. 운 좋게 좋은 치료를 받아서 질병이 다 나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복잡한 일상 속으로 다시 몸을 던집니다. 이러한 삶의 패턴 가운데에서는, 내 몸에만 집중하고 버텨내는 시간도, 내 몸에 붙어 있는 것들을 다 버리는 시간도, 드디어 나와 하나님 둘 만 남는 상황에 이르러 예수님의 옷자락이라도 만지려는 그 어떤 간절함도 전혀 없습니다.
특히나, 모든 치유의 근원 되시는 우리 주님의 이름을 갈망하는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상태로는 예수님이 내 앞을 지나가신다는 소문을 들을 수도 없고, 내가 그 옷자락에 손을 댈 수 있는 기회도 영원히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아니, 매일 같이 내 앞을 지나가신다고 하셔도, 가시는지 오시는지 관심조차 두지 않을 겁니다. 그러다가 그냥 몸과 마음이 썩어 문드러지고, 결국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안개와 같은 인생이 될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 모두가 잃고 있는 몸의 질병, 그리고 마음의 질병까지도 속속들이 훤하게 다 알고 계십니다. 우리가 그 질병을 치유 받기를 간절히 원한고 있다는 것도 잘 알고 계십니다. 하지만 이것을 아셔야 합니다. 우리 보다 더 급하신 분이 우리 주님 이십니다. 우리가 주님을 만나 치유 받고 싶은 마음 보다, 주님이 우리를 만나서 빨리 치유해 주고 싶어 하시는 마음이 더 간절하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에게 버텨 내고, 버리고, 갈망하는 인고의 시간을 각자에게 요구하고 계십니다.
혈루증 여인처럼 버티고, 참아내고, 갈망하고, 일대일로 주님 앞에 서려고 준비하는 자에게는 반드시 치료의 은혜와, 구원의 은혜와, 더불어 평안의 은혜가 충만하게 내려질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12년을 이겨낸 만남의 주인공이 되셔서,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주님의 이 사랑의 음성이 우리 모두에게 들려지는 그 날이 속히 올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00교회 모든 성도들이 혈루증 여인과 같이, 주님의 옷에 손을 댈 수 있는 나름의 준비를 철저히 하시고, 소문을 들었을 때, 기회가 왔을 때, 거침없이 주님 앞으로 나아가셔서, 주님의 옷자락에 믿음으로 손을 대시고, 강력하게 역사하시는 치유의 광선을 받으셔서 몸과 마음이 치유되고 회복되는 큰 은총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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