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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마음을 저울질하시는 하나님 (잠2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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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마음을 저울질하시는 하나님/잠언 24:12



다니엘 5장에 보면, 바벨론의 벨사살 왕이 귀족 천 명을 초청하여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그런데 벨사살 왕이 이상한 짓을 했습니다.

그의 부친 느부갓네살 왕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탈취하여 온 금, 은 그릇을 가져오라고 명령하여 그것으로 술을 마셨습니다. 얼마나 기막힌 일입니까.

그때 사람의 손가락이 나타나 왕궁 촛대 맞은편 석회벽에 글자를 썼습니다. 그것을 본 벨사살 왕은 얼굴빛이 변하고 다리가 떨렸습니다.

벨사살 왕은 “누구를 막론하고 이 글자를 읽고 그 해석을 내게 보이면 자주색 옷을 입히고 금사실을 그의 목에 걸어 주리니 그를 나라의 셋째 통치자로 삼으리라(단 5:7)”고 말했습니다.

왕의 지혜자가 다 들어왔지만, 아무도 그 글자를 읽지 못하고 해석을 왕에게 알려주지 못했습니다.

이때 왕비가 왕에게 “왕이여 만수무강 하옵소서 왕의 생각을 번민하게 하지 말며 얼굴빛을 변할 것도 아니니이다 왕의 나라에 거룩한 신들의 영이 있는 사람이 있으니 곧 왕의 부친 때에 있던 자로서 명철과 총명과 지혜가 신들의 지혜와 같은 자니이다 왕의 부친 느부갓네살 왕이 그를 세워 박수와 술객과 갈대아 술사와 점쟁이의 어른을 삼으셨으니 왕이 벨드사살이라 이름하는 이 다니엘은 마음이 민첩하고 지식과 총명이 있어 능히 꿈을 해석하며 은밀한 말을 밝히며 의문을 풀 수 있었나이다 이제 다니엘을 부르소서 그리하시면 그가 그 해석을 알려 드리리이다(단 5:10~12)”라고 말했습니다.

다니엘은 왕의 부름을 받고 왕의 앞에 나아갔습니다. 벨사살 왕은 다니엘에게 “네가 나의 부왕이 유다에서 사로잡아 온 유다 자손 중의 그 다니엘이냐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즉 네 안에는 신들의 영이 있으므로 네가 명철과 총명과 비상한 지혜가 있다 하도다 지금 여러 지혜자와 술객을 내 앞에 불러다가 그들에게 이 글을 읽고 그 해석을 내게 알게 하라 하였으나 그들이 다 그 해석을 내게 보이지 못하였느니라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즉 너는 해석을 잘하고 의문을 푼다 하도다 그런즉 이제 네가 이 글을 읽고 그 해석을 내게 알려 주면 네게 자주색 옷을 입히고 금 사슬을 네 목에 걸어 주어 너를 나라의 셋째 통치자로 삼으리라(단 5:13~16)”고 말했습니다.

이에 다니엘은 왕에게 “왕의 예물은 왕이 친히 가지시며 왕의 상급은 다른 사람에게 주옵소서 그럴지라도 내가 왕을 위하여 이 글을 읽으며 그 해석을 아뢰리이다(단 5:17)”라고 대답했습니다.

다니엘 5장 26~28절에 보면, 다니엘은 “그 글을 해석하건대 메네는 하나님이 이미 왕의 나라의 시대를 세어서 그것을 끝나게 하셨다 함이요 데겔은 왕을 저울에 달아 보니 부족함이 보였다 함이요 베레스는 왕의 나라가 나뉘어서 메대와 바사 사람에게 준 바 되었다 함이니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벨사살 왕을 저울에 달아보시니 부족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달아보셨을까요.

본문 잠언 24장 12절에 보면, “네가 말하기를 나는 그것을 알지 못하였노라 할지라도 마음을 저울질 하시는 이가 어찌 통찰하지 못하시겠으며 네 영혼을 지키시는 이가 어찌 알지 못하시겠느냐 그가 각 사람의 행위대로 보응하시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이 어떠한지,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우리의 마음을 저울질하십니다.

벨사살 왕은 약속한 대로, 다니엘에게 자주색 옷을 입히게 하고 금 사슬을 그의 목에 걸어주 었습니다. 그리고 다니엘을 그 나라의 셋째 통치자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다니엘 5장 30절에 보면, “그 날 밤에 갈대아 왕 벨사살이 죽임을 당하였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벨사살 왕은 다니엘의 해석을 들었지만, 그 날 밤에 자신이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당시 바벨론 왕의 권세는 매우 컸습니다. 당시 바벨론 왕은 전 세계를 다스렸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권세가 천 년, 만 년 사는 것은 아닙니다.

바벨론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사람의 눈에는 굉장히 강해 보여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으면, 오래갈 수 없습니다.

병이 들고 병이 심해져서 죽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건강했던 사람이 심장이 마비되어 갑자기 죽는 경우가 있습니다. 불의의 사고로 죽는 경우도 있습니다.

건강을 잘 관리한다 해도, 하나님께서 지켜주셔야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 살아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삽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은 세상 고생이 끝나는 날입니다. 이 세상에서의 모든 수고가 끝나는 날입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 우리는 예수님을 맞이하여 예수님과 함께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을 아는 사람은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라고 예수님을 기다립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이 성도에게는 영광의 날입니다. 축복의 날입니다. 모든 수고가 끝나는 날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가진 성도는 예수님께서 빨리 오시기를 소망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이 세상 사람에게는 심판의 날입니다. 모든 것이 끝납니다. 구원 받을 기회가 없습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열 처녀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열 처녀 중 미련한 다섯 처녀는 등은 준비했지만 기름은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슬기 있는 다섯 처녀는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지고 있었습니다.

미련한 다섯 처녀가 기름을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왔습니다. 미련한 다섯 처녀가 뒤늦게 와서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라고 애원했습니다. 그러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면, 회개할 기회가 없습니다. 구원 받을 기회가 없습니다. 지옥 불에 들어가 영원히 멸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설마 오늘 오실까.’, ‘예수님께서 오늘 오시지는 않을 거야,’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미련한 다섯 처녀처럼 되기 쉽습니다.

우리는 오늘이 마지막이 될지 모른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하고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오셔도 기쁨으로 예수님을 맞이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언제 오시든 기쁨으로 예수님을 맞이해야 합니다.

오늘이 마지막이라면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지금 우리가 건강하다고 해서 내일 살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음을 준비하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벨사살 왕을 저울에 달아보시고 부족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날 밤에 벨사살 왕은 죽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서 무엇을 보시고 모세를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게 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매우 높이 들어 쓰셨습니다.

출애굽기 4장 14~16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레위 사람 네 형 아론이 있지 아니하냐 그가 말 잘 하는 것을 내가 아노라 그가 너를 만나러 나오나니 그가 너를 볼 때에 그의 마음에 기쁨이 있을 것이라 너는 그에게 말하고 그의 입에 할 말을 주라 내가 네 입과 그의 입에 함께 있어서 너희들이 행할 일을 가르치리라 그가 너를 대신하여 백성에게 말할 것이니 그는 네 입을 대신할 것이요 너는 그에게 하나님 같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출애굽기 7장 1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볼지어다 내가 너를 바로에게 신 같이 되게 하였은즉 네 형 아론은 네 대언자가 되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모세를 들어 쓰셨을까요?

첫째, 온유했기 때문입니다.

민수기 12장 3절에 보면,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온유는 성령의 열매 중 하나입니다.

온유하지 못한 사람은 잘난 척합니다. 건방지게 행동합니다. 방자하게 행동합니다. 교만하게 행동합니다.

그러나 온유한 사람은 순종합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이 세상에서 모세보다 온유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둘째, 나라를 사랑하고, 민족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금 송아지를 만들어 그 앞에 절하여 큰 죄를 범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내가 이 백성을 보니 목이 뻣뻣한 백성이로다 그런즉 내가 하는 대로 두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를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출 32:9~10)”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모세는 하나님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출 32:32)”라고 말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나쁜 짓을 얼마나 많이 했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다 멸하시고 모세를 통해 훌륭한 나라를 세우고 싶어 하셨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용서해달라고 하나님께 말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용서하지 않으시면, 자신의 이름도 생명책에서 지워버려달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모세는 나라를 사랑하고, 민족을 사랑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높이 들어 쓰셨습니다.

저는 부산을 복음화하고, 민족을 복음화하고, 세계를 복음화하기 원합니다. 그런데 자칫하면 제 열심으로 부산을 복음화하고, 민족을 복음화하고, 세계를 복음화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 하나님께서 저를 들어 쓰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들어 쓰셔야 부산을 복음화하고, 민족을 복음화하고, 세계를 복음화할 수 있습니다. 제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교회 개척 초기에 저는 아주 열심히 일했습니다. 저는 교회에서 살다시피 했습니다. 출근하는 시간은 있어도, 퇴근하는 시간은 없었습니다.

그러니 부교역자들이 아무리 열심히 해도, 제 마음에 드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부교역자들에게 야단쳤습니다. 교역자회의 할 때마다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그리고 연말에 모두 내보내기로 결심했습니다.

결심한 대로 행동하기 전에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저는 이런 사람들과 일하기 싫습니다. 다 내보내겠습니다. 저와 함께 순교할 수 있는 사람을 보내주세요.”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제게 “그들이 좋은 형님 목사님 밑에서 일했다고 기억할 수 있도록 좋은 형님 목사가 되어줄 수 없겠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기도해서 응답 받은 것을 부교역자들에게 말했습니다. “이제 나는 당회장도 아니고, 감독도 아닙니다. 나를 형님으로 생각하세요. 그리고 여러분이 당회장이라고 생각하고 소신껏 일하세요. 여러분이 원하는 대로 해보세요. 실수해도 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다들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때 이후로 우리 교회가 크게 부흥되었습니다. 저 때문에 우리 교회가 부흥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에게 “너는 뿔에 기름을 채워 가지고 가라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보내리니 이는 내가 그의 아들 중에서 한 왕을 보았느니라(삼상 16:1)”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새에게는 아들이 여덟 명 있었습니다. 사무엘은 이새의 큰 아들 엘리압을 보고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가 과연 주님 앞에 있도다(삼상 16:6)’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 16:7)”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외모를 보시지 않습니다. 얼마나 잘 생겼는가, 얼마나 늠름한가를 보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학벌을 보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재산이 얼마나 많은가, 권세가 얼마나 있는가를 보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마음, 사람의 중심을 보십니다.

사도행전 13장 22~23절에 보면,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시더니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후손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보시니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꿰뚫어 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르시는 것이 없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은 이새의 여덟 아들 중 막내아들이었습니다. 다윗은 목동이었습니다. 이새는 왜 막내아들에게 양들을 맡겼을까요?

시편 27편 9~10절에 보면,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시고 주의 종을 노하여 버리지 마소서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나이다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시여 나를 버리지 마시고 떠나지 마소서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새는 다윗을 머슴처럼 생각했습니다. 다윗은 부모가 자신을 버렸다고 했습니다. 이 정도 되면 마음에 분노가 가득할 수 있습니다. 비뚤어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보면, 다윗은 양과 함께 지내면서 수금을 연주했습니다. 사무엘상 16장 23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사울에게 이를 때에 다윗이 수금을 들고 와서 손으로 탄즉 사울이 상쾌하여 낫고 악령이 그에게서 떠나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다윗은 양을 돌보며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의 마음에는 부모에 대한 원망이 없었습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은 다릅니다. 다윗은 고난 속에서 훌륭한 믿음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다윗은 “주의 종이 아버지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 떼에서 새끼를 물어가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죽였나이다(삼상 17:34~35)”라고 고백했습니다.

다윗은 책임감이 강했습니다. 다윗은 목숨을 걸고 양을 지켰습니다. 그래서 이새는 안심하고 다윗에게 양을 맡겼습니다.

우리 교회 개척 초기에는 신대원 공부를 마친 사람 중 똑똑한 사람을 뽑아 여전도사로 채용했습니다. 그런데 열매가 좋지 않았습니다.

우리 교회의 성도 중 가정에서 모범적이고, 자녀를 잘 양육하고, 남편을 잘 돕고, 교회에서 성실하게 봉사하는 사람들을 뽑아 신학교에서 공부하게 해서 여전도사로 일하게 했습니다.

그렇게 했더니 이분들이 교회에 충성했습니다. 일을 아주 잘 했습니다. 그리고 성도들이 아주 좋아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도 잊지 못합니다. 간증거리가 아주 많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과 블레셋이 싸우는 곳에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다윗은 골리앗과 싸우기 위해 나섰습니다.

골리앗은 다윗에게 “네가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를 가지고 내게 나아왔느냐(삼상 17:43)”라고 하며 다윗을 업신여겼습니다.

다윗은 골리앗에게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삼상 17:45~47)”고 말했습니다.

다윗은 골리앗을 향해 달려가며 손을 주머니에 넣어 돌을 가지고 물매로 던져 블레셋 사람의 이마를 쳤습니다. 돌이 그의 이마에 박혔습니다.

골리앗은 땅에 엎드러졌습니다. 다윗은 골리앗의 칼을 빼내어 그 칼로 그를 죽이고 그의 머리를 베었습니다.

다윗은 믿음의 말을 했습니다. 다윗의 말을 들으신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셨겠습니까. 다윗이 믿음의 말을 했을 때,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셨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을 쓰십니다.

사울은 다윗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사울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께서 금하시는 것이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삼상 24:6)”고 말했습니다.

사무엘하 7장에 보면, 다윗은 나단에게 “볼지어다 나는 백향목 궁에 살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에 있도다(삼하 7:2)”라고 말했습니다. 다윗은 성전을 지어 바치고 싶어 했습니다.

역대하 6장 8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네가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할 마음이 있으니 이 마음이 네게 있는 것이 좋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전을 지어 바치고 싶어 하는 다윗의 마음을 보시고 좋아하셨습니다. 기뻐하셨습니다.

사울이 죽은 후, 다윗은 그의 후손에게 보복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오히려 사울의 후손들을 돌봐주었습니다.

사무엘하 9장에 보면,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은 다리를 저는 장애인이었습니다. 다윗은 므비보셋에게 “무서워하지 말라 내가 반드시 네 아버지 요나단으로 말미암아 네게 은총을 베풀리라 내가 네 할아버지 사울의 모든 밭을 다 네게 도로 주겠고 또 너는 항상 내 상에서 떡을 먹을지니라(삼하 9:7)”고 말했습니다.

창세기 28장 20~22절에 보면, 야곱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라고 기도했습니다.

야곱은 자신이 결심한 것을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함께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생각, 소원, 꿈을 가지기만 해도 복을 받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6학년이었을 때, 은혜를 받았습니다.

은혜를 받은 후, 저는 ‘무엇을 하다가 천국에 가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까’를 생각했습니다. 전도를 많이 해서 많은 사람을 구원 받게 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열심히 전도했더니 친구들이 저를 ‘정 목사’라고 불렀습니다. 그래서 저는 목사가 되어 우리나라 국민을 모두 예수 믿게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평생의 계획을 세웠습니다.

제가 결심한 대로 실천하지 못했음에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마음을 가진 것으로 인해 저는 평생 복을 받았습니다.

결단하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 없습니다. 여러분 나름대로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살겠다, 이렇게 하나님을 섬기겠다고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다윗은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함으로 죄를 지었습니다. 나단 선지자가 다윗을 책망했습니다. 그 후, 다윗은 겸손하게 회개했습니다.

나단 선지자는 다윗과 밧세바가 낳은 아이가 죽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삼하 12:14). 나단 선지자의 말대로, 우리아의 아내가 다윗에게 낳은 아이가 아팠습니다. 그러자 다윗이 금식하며 하나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압살롬이 반역하여 전쟁이 일어났을 때에도 다윗은 “나를 위하여 젊은 압살롬을 너그러이 대우하라(삼하 18:5)”고 부탁했습니다.

사무엘하 18장에 보면, 압살롬이 죽었습니다. 사무엘하 18장 33절에 보면, “왕의 마음이 심히 아파 문 위층으로 올라가서 우니라 그가 올라갈 때에 말하기를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였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압살롬은 아버지 다윗을 반역한 나쁜 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 다윗은 자신의 아들 압살롬을 끝까지 사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기를 원하실까요?

첫째, 세상의 빛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에베소서 5장 9절에 보면,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달라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진실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틀림없어야 합니다. 이것이 세상의 빛이 되는 것입니다.

둘째, 원수까지도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과 달라야 합니다.

마태복음 5장 4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원수까지 사랑해야 합니다. 박해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으면서도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행 7:60)”라고 기도했습니다.

저는 말씀대로 실천하려고 노력하지만, 실천하기 쉽지 않습니다. 교회를 해롭게 하는 사람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괴롭히고 악독한 짓을 하는 사람들을 판단하고 정죄합니다.

원수를 사랑해야 한다면,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그들을 불쌍히 여기고, 그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들이 돌이켜 하나님께 영광 돌리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데 쉽지 않습니다.

다시 결심했습니다. 저는 기도합니다. 교회를 괴롭히는 정부를 위해 기도합니다. 대통령을 위해 기도합니다.

우리는 원수를 사랑해야 합니다. 원수를 용서해야 합니다. 요셉이 형들을 용서한 것처럼 용서해야 합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과 화목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살 때,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처럼 모든 사람을 복 받게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창 12:3)”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디를 가든 우리 때문에 우리 가족이 복을 받고, 이웃이 복을 받고, 친구가 복을 받고, 직장 동료가 복을 받고, 교회가 복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사는 땅과 하늘이 복을 받아 우리나라가 가장 살기 좋은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어디를 가든지 복을 베풀고 복을 나누어주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것을 원하십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이 우리의 마음에 깊이 새겨지게 하여주옵시고, 말씀을 듣고 결단하고 실천하게 도와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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