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함이 보여 지는 사람 (시116: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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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함이 보여 지는 사람 시116:12-19, 딤전6:17-19
한 시골 노인이 도시의 아들 집에 와서 살게 되었습니다. 아들의 집 모퉁이에 자투리땅이 있는데 밤만 되면 이웃 주민들이 몰래 쓰레기를 버리기 때문에 아들이 매일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아들이 주민들에게 아무리 호소하고, 경고문을 붙여놓아도 허사였습니다. 아들의 고민을 아는 아버지가 시장에 가서 호미와 퇴비와 채소 씨앗을 사왔습니다. 아버지는 그날부터 자투리땅을 일구었습니다. 단단한 땅을 갈아엎고, 자갈을 들어내고, 퇴비를 뿌리고 골을 파니 텃밭이 생겼습니다. 아버지는 손질 된 텃밭에 상추와 고추를 심었습니다. 밭을 일군 다음 날 아침에 아들이 호들갑을 떨며 “아버지! 쓰레기가 보이질 않아요!”라고 말했습니다.
그 후에는 쓰레기가 더 이상 보이지 않았습니다. 얼마 후에 상추는 먹음직스럽게 많이 자랐고, 싱싱한 풋고추도 풍성하게 많이 열렸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종이와 굵은 펜을 가져오라고 하더니, 이렇게 썼습니다. “상추가 필요하신 분은 마음껏 가져가시오. 고추도 마음껏 따가시오.” 싱싱한 상추와 풋고추는 마을 사람들에게 인기였습니다. 이제는 많은 이웃 주민들이 아들에게 “여기 오래도록 함께 살았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 일은 별로 어렵지 않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사람들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얻는 일도 우리의 생각을 바꾸고 우리의 행실을 바꾸어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그 은혜에 보답하는 삶으로 감사함이 보여 지는 삶을 살게 되면 얼마든지 가능하게 됩니다.
추수 감사절을 맞아 두 본문을 중심으로 “감사함이 보여 지는 사람”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감사함이 보여 지는 사람은,
1.하나님께 감사하며 주님께 소망을 두고 삽니다.
구약 본문 시116:12에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했습니다. 인간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지금까지 살아왔음에도 그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사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주님의 은혜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감사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잘나서 그런 것처럼 자기를 들어내고 자랑합니다. 이에 대해 바울사도는 말하기를 "누가 너를 구별하였느뇨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뇨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뇨"하였습니다 ( 고전 4 : 6 )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기 때문에 어떤 인간적인 선을 행할 수는 있으나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 은혜를 보답하는 삶이란 전혀 생각할 수 없고 도리어 하나님의 은혜를 배은망덕 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사람은 시편 기자처럼 감사하면서 ‘이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하며 은혜에 보답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17절에서는 “내가 주께 감사제를 드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이다.”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혜가 너무 많지만 무엇보다도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구원이라는 엄청난 은혜를 선물로 받고 구원의 은총 안에서 살고 있는 은혜를 무엇으로 감사 하며 보답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을 배반하고 죄짓다가 죽어 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던 우리들을 선택해 주신 은혜, 독생자를 보내시어 우리 대신 십자가에 형벌 받아 죽게 하시고 속죄해 주신 은혜, 예수님 안에서 의롭다함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신 은혜, 순교자들의 피의 복음과 성령의 은혜로 우리를 불러내어 주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여 주시고 영생과 영원한 천국을 기업으로 얻게 하여 주시는 은혜, 지금까지 신앙의 자유를 누리며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이런 은혜를 깨달아 아는 성도라면 어찌 감사의 삶을 살지 않으며 보답의 삶을 살지 않겠습니까?
만주 명월구라는 곳에 '감사 장로님'이라는 훌륭한 장로님이 계셨습니다. 그분은 큰 부자였는데, 애국 운동을 하다가 일본 형사에게 잡혀서 형무소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큰 부자 장로님이 형무소에서 온갖 고생을 다 하며 지내자니 이만저만 힘이 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때 사도 바울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아하, 사도 바울도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혔는데… 매를 맞아도 감사했는데… 아무것도 아닌 내가 사도 바울을 경험하는구나.' 그러자 너무 기쁜 나머지 그만 밥그릇을 들고 춤을 추었다고 합니다. 변기 통 옆에서 밥을 먹다가 밥그릇을 들고 한바탕 춤을 추자 간수가 "저 영감이 미쳤구나"하면서 보고를 하였습니다.
경찰서장이 그 보고를 듣고 장로님을 불러내었습니다. "영감, 밥을 먹다가 변기통 옆에서 춤을 추었다면서?" "예" 싱글벙글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뭐가 좋아서 춤을 추었지?" "바울과 실라가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들어갔는데 거기서 감사하고 찬송을 부르니 감옥 문이 열렸습니다. 그래서 나도 옥문이 열리라고 춤을 추었습니다." "감옥 문이 쇠문인데 어떻게 열려. 이 영감쟁이가 정말 미쳤군. 정말 미쳤어. 이 영감쟁이를 집으로 보내 버려. 무엇 때문에 미친 사람을 가두어 놓는 거야?"
그래서 정말 옥문이 열려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감옥 같은 어려운 일이 있어도 낙심치 아니하고 감사하고 찬송하면 문제가 해결되는 은혜를 받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은혜의 근원이 되심을 아는 성도는 오직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사는 자가 됩니다. 신약 본문 딤전6:17에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했습니다. 여기 '정함이 없는'의 원어의 뜻은 '불확실성'이란 말로 신약성경에서 본 절에만 나옵니다. 재물은 믿을 것이 못 됩니다. 잠언23:5에도 '정녕 재물은 날개를 내어 하늘에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가리라'고 했습니다. 불완전하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변함 없으신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면 영혼과 범사와 강건의 복을 받습니다. 재물이 복의 근원이 아니라 하나님이 만복의 근원이십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로 보답하며, 오직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사는 성도되시기를 소망합니다.
2.하나님 은혜에 보답 하고자 선한 일에 힘쓰며 삽니다.
시편 기자처럼 하나님 은혜를 깨닫고 감사하며 그 은혜에 보답하며 살기를 원하는 자들은 주께서 기뻐하시는 선한 일에 힘쓰는 자가 됩니다. 우리가 지키는 추수감사절은 받는 절기가 아니라, 받은 것에 감사하며 베푸는 절기입니다. 하나님에게 받은 것만 베풀어주지 말고, 그 이상을 베풀어주어야 진정으로 보람과 가치를 찾을 수 있습니다. ‘베푸는 사랑’의 근본적인 목적은 ‘선한 일’에 있습니다.
신약 본문 딤전6:18에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고 했습니다. 여기 선행은 일반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유익한 일을 하다’라는 뜻입니다. 곧 부자들을 명하여 나누어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자들은 재물에 대하여 끝없는 욕심을 부리기보다 그가 가진 재물로 선한 사업에 힘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난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며 도와주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의 책임입니다. 이 말씀의 깊은 뜻은 부자들에게만 하신 것이 아니고, 은혜를 입은 성도는 가난해도 이웃에게 사랑과 동정으로 대하여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선한 일을 많이 하라는 뜻도 있습니다. 선한 일은 단지 돈이 많은 부자들만 하는 것이 아니고, 가난한 성도라도 마음만 넉넉하면 누구든지 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현실적으로 보면 욕심 많은 부자보다 가난한 사람이 선한 일을 더 많이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나누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마음의 부자가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주는 자는 더 많은 것을 받게 된다는 역설적인 진리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눅 6:38). 돼지와 젖소가 친구가 되어 서로를 이해하게 되자 돼지가 젖소에게 물었습니다. "그대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좋은데 나는 왜 인기가 없는지 모르겠어." 젖소가 미소만 짓고 있자 돼지가 스스로 말하기를 "사람들은 항상 젖소의 부드럽고 온순함을 칭찬하지. 몰론 너는 사람들에게 우유와 크림을 제공하지만 나도 베이컨과 햄, 심지어 내장과 족발까지 제공하는데 왜 날 좋아하지 않는지 몰라."
그러자 젖소가 말했습니다. "글쎄. 그건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 계속 우유를 제공해 주었기 때문일 꺼야. 너는 모든 걸 죽어서 제공하잖아."
우리도 살아 있는 동안 기회가 지나가기 전에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일에 부한 자가 됩시다. 나눠 주기를 좋아합시다. 동정하는 자가 됩시다. 이렇게 살면 우리 자신이 변하고 행복할 것입니다. 우리를 바라보는 남들이 놀랄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할 것입니다. 돼지가 아닌 젖소의 삶을 삽시다.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축복하시는 모습으로 살아 봅시다. '선한 사업의 터' 위에 선행을 많이 쌓읍시다. 지금부터라도 최선을 다 한다면 '선한 사업의 터'는 넓어지고 높아지며 아름답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선한 일에 힘쓰는 성도가 됩시다.
3.장래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사람으로 삽니다.
신약 본문 딤전6:19에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하였습니다. 사람은 이래 살거나 저래 살거나 한 평생을 살뿐 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살면 뜻있고 보람된 삶을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장래를 위하여 살아야 그래도 무엇인가를 위하여 진지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장래성이 없으면 오늘로 만족하게 산다는 마음 때문에 장래를 위해 저축이나 계획을 하지 않고 되는대로 살아갈 것입니다.
장래를 위해 좋은 터를 쌓는 삶은 주님이 말씀하신 마 6:19-21의 말씀, 곧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는 말씀과 맥을 같이 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하면 육의 것으로 심고 영의 것으로 거두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시편 37:27-29에 보면 "저는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 주니 그 자손이 복을 받는 도다.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영영히 거하리니 여호와께서 공의를 사랑하시고 그 성도를 버리지 아니하심이로다. 저희는 영영히 보호를 받으나 악인의 자손은 끊어지리로다. 의인이 땅을 차지함이여 거기 영영히 거하리로다."하였습니다. 옛날 미국의 백악관 옆에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있었습니다. 링컨은 가끔 백악관 창가에서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어느 날 울타리에 한 무리의 아이들이 몰려 있었습니다. 몇 명의 아이들이 한 소년을 가난뱅이라고 놀려댔습니다.
그 소년의 아버지는 전쟁터에서 전사했고 어머니는 청소부였습니다. 선생님이 구두를 반질반질하게 닦고 등교하라고 했으나 소년의 구두는 너무 낡아서 광을 낼 수가 없어 놀림을 당한 것입니다.
링컨은 이 소년에게 선물을 해주기로 결심했습니다. 이튿날 소년의 집에는 커다란 선물 보따리 하나가 배달됐습니다. 가족들이 입을 멋진 새 옷과 구두와 식료품이 가득 담겨 있었습니다. 소년은 광채 나는 구두와 멋진 새 옷을 입고 등교했고 친구들의 두 눈은 휘둥그레졌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링컨 대통령이 교실에 나타난 것입니다. 링컨은 칠판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마25:40)
링컨이 존경을 받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어려운 사람들에게 사랑을 실천하는 일에 망설임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미루지 않습니다. 사랑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시작됩니다. 사랑의 실천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장래 자기를 위해 좋은 터를 쌓는 일이요, 참된 생명을 취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우리 모두 장래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복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정리합니다.
추수 감사절을 맞아 두 본문을 중심으로 “감사함이 보여 지는 사람”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감사함이 보여 지는 사람은,
◆.하나님께 감사하며 주님께 소망을 두고 삽니다.
◆.하나님 은혜에 보답 하고자 선한 일에 힘쓰며 삽니다.
◆.장래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사람으로 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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