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래에 소망이 있는 자 (욥23:10-17)
본문
장래에 소망이 있는 자 욥23;10-17, 벧전3:8-12
존 번연이 쓴 천로역정은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혀지고 있는 기독교 신앙서적으로 명작중의 명작입니다. 이 작품은 존 번연이 감옥에서 죽음의 고비에서 쓴 글입니다. 그가 감옥에 있을 때 느낌을 기록한 글을 보면 '나는 가끔씩 밧줄을 목에 두른 채 사다리 위에 서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1660년대를 차갑고 싸늘한 감방에 앉아 보내던 존 번연이 언제 자신이 교수형으로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그 기억을 후에 떠올리며 했던 말입니다.
청교도였던 존 번연은 복음전도자로서 설교자로서 하나님께 소명을 받고 열심히 사역한 신실한 목사였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포기하라는 핍박 자들의 요구를 거절한 이유로 투옥되어 12년이라는 긴 세월을 수감자 신세로 보냈습니다. 존 번연은 자신이 왜 그렇게 오랜 세월 수감자로 차갑고 싸늘한 감옥에 있어야 하는지 이유를 몰랐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알고 계셨습니다. 그는 그 시간에 천로역정이라는 불후의 명작을 쓸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전혀 예상치 못한 시련을 만날 때도 있지만 하나님을 사랑 하는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그 시련을 통해 정금처럼 나오기도 하고, 인생의 새로운 전환점이 되어 새로운 삶을 통해 주님을 영화롭게 하고, 나와 남을 유익하게 하는 자가 되기도 합니다. 두 본문을 중심으로 “장래에 소망이 있는 자”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장래에 소망이 있는 자는,
1.어떤 상황을 만나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믿음의 말을 하는 사람입니다.
구약 본문에 나오는 욥은 인간이 살면서 만날 수 있는 가장 극심한 고난을 경험한 인물입니다. 욥은 유대 땅 동남쪽 우수 지방에 살던 3,500년 전 실제 인물입니다. 욥기를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의인의 고난”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인간 구원 계획에 특별히 쓰임 받는 인물들을 보면 그들의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큰 고난의 삶을 살았다는 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말할 것도 없고, 아브라함, 야곱, 요셉, 모세, 욥, 요나, 이사야, 예레미야, 호세아, 예수님의 열두 제자, 바울, 기독교를 빛낸 역사의 인물 등 모두 고난의 길을 걸었습니다.
욥은 하나님께서 자랑할 만큼 의로운 믿음의 사람이었고, 믿음의 큰 족적을 남긴 신앙 인물로 7남 3녀를 둔 다복하고 모범적인 신앙으로 뭉쳐진 가족이었습니다. 이 많은 자녀들 중에 부모의 마음에 걱정을 끼치는 자녀들이 없었습니다. 거기다 욥은 요즈음으로 말하면 재벌이었습니다. 그의 재산 규모를 보면 양이 7천 마리, 약대가 3천 마리, 소가 1천 마리, 나귀가 5백 마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모범적 신앙을 가지고 아주 행복하게 살고 있는 욥에게 말로 할 수 없는 혹독한 시련을 겪게 되었습니다. 욥이 당한 구체적인 재난을 보면 *첫 번째가 재산의 몰락입니다. 성경에는 스바의 도적떼가 떼강도로 나타나 모든 가축을 몰고 가서 하루아침에 빈털터리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두 번째는 자식들을 일시에 잃게 되는 고통이 왔습니다. 10남매가 큰 아들 집에서 잔치 하다가 갑자기 대풍으로 집이 무너져서 다 죽었다고 했습니다. 욥은 인간 최대 비극을 당했습니다. *세 번째로 아내에게서 조차 외면을 당한 것입니다. 아내가 와서 합리적으로 따졌습니다. “당신이 그렇게 하나님을 잘 믿고 그렇게 하나님 믿으라고 자식들과 나한테도 가르치더니 그 결과가 이거냐?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는 이런 거냐?” 그러면서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어라.” 말하면서 아내마저 그를 외면한 것입니다. *네 번째로 육신의 질병으로 인한 고난입니다. 욥의 몸은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성한 데가 없습니다. 그래서 질그릇 조각을 가져다가 하도 가려워서 온 몸을 긁었다고 했습니다. 온 몸이 만신창이가 된 것입니다. *다섯 번째로 친구들로 인한 심적 고통입니다. 친구가 고난을 당하니까 깜냥 위로해 준다고 찾아온 세 친구들은 욥의 심사를 뒤 흔들어 놓았습니다. 엘리바스, 빌닷, 소발 세 친구가 찾아와서 한다는 말이 “네가 이처럼 고난을 당하는 것은 하나님만 아시는 죄가 있다. 고백하라. 그것 때문에 네 고통이 온 거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욥은 그야말로 사면초가의 어려움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도 욥은 놀라운 신앙고백을 했습니다. 본문 욥23:10에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고 한 것입니다. 이 고백의 의미는 욥은 자신의 가는 길을 자신은 알지 못하고 오직 하나님만이 아시며 이런 시련을 통해 자신이 마치 용광로를 거쳐 나온 정금처럼 되리라는 신앙 고백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약 본문 벧전3:10에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고"하였습니다. 장래에 좋은 날의 소망을 가진 자는 악한 말, 불평, 원망의 말, 불신앙의 말을 하지 않고, 욥처럼 불 시험을 받는 가운데서도 믿음의 말을 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또한 욥은 너무나도 분명하고 확실한 "내세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욥19:27에서 "자신의 육체가 죽고 썩어져 낡은 옷을 벗은 듯 한 다음에 자신은 육체 밖에서 주님을 뵙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어떤 형편에 살아도 잠시 나그네의 삶을 살다가 한 번은 죽고 떠날 인생인데, 이 육신이 얼마나 많은 것을 누리고 살다가 가느냐 하는 것 보다 더 소중한 것은 '내가 이 육신을 벗고 하나님 앞에 가서 하나님을 뵈올 때 하나님께서 나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나는 하나님을 반갑게 대하게 될 것'이라는 믿음과 소망을 갖는 일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욥의 이런 신앙고백이 필요합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이런 고백이 오늘날 힘들게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신앙고백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2.선하신 하나님의 성품을 가지고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는 사람입니다.
성도가 선을 행하는 것이 구원의 조건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거듭난 성도는 선하신 하나님의 DNA를 지닌 자녀입니다.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한 자가 되어 선한 자로 사는 것이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입니다. 성도가 죄 가운데 살면 징계가 따르지만 선을 행할 때 하나님은 그런 자들을 사랑 하십니다. 욥이 하나님의 칭찬을 받은 것도 그런데 있었습니다. 욥1:1에 “우스 땅에 욥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했습니다. 욥은 자신뿐만 아니라 자녀들도 항상 성결하게 살기를 힘썼습니다. 욥1:5에 “그 잔치 날이 지나면 욥이 그들을 불러다가 성결케 하되 아침에 일어나서 그들의 명수대로 번제를 드렸으니 이는 욥이 말하기를 혹시 내 아들들이 죄를 범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배반하였을까 함이라 욥의 행사가 항상 이러하였더라.”했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의로운 노아를 통해, 모세를 통해, 다윗을 통해 새 역사를 이루어 가셨습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을 잘 경외하며 선한 성품을 가지고 구제를 많이 한 고넬뇨에게 천사를 보내어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께 상달이 되었다.’고 알려 주었고, 베드로를 초청하여 모인 무리가 성령 충만한 은혜를 받게 하였습니다.
신약 본문 벧전3:11에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했습니다. 여기 ‘악에서 떠나’라고 하는 말은 ‘악에서 돌아서라.’는 말입니다. 성경은 우리를 대적하고 고통스럽게 하는 악한 사람들에게 그들과 똑같이 악으로 대하지 말고, 선으로 대할 것을 가르칩니다. 본문9절에서도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고 하셨습니다. 로마서12:21절에서는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적극적인 방법을 제시하셨습니다. 이러한 태도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이신 삶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무리들을 보시며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저희는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고 오히려 그들을 용서해 달라고 간구 하셨습니다.
‘탈무드’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제자가 랍비에게 질문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경건한 사람이 기도하고 바른 행동을 하도록 주위 사람들을 강하게 이끌지 않는 것은 왜 그렇습니까?” 랍비가 반문했습니다. “우리는 항상 사람들에게 좋은 일을 행하며 바로 살도록 권하고 있지 않느냐?”
그러자 제자가 따지듯이 랍비에게 물었습니다. “그러나 악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악한 일로 끌어들이는 힘이 훨씬 강하며, 또 사람을 자기들의 패거리로 만들어 악한 힘을 키우려 할 때는 우리보다 더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랍비는 조용히 대답했습니다. “그 이유는 바른 일을 행하고 있는 사람은 혼자 걷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악한 일을 행하는 사람은 혼자 걷기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선을 행하는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주님의 재림이든 하나님의 심판이든 박해자이든, 환난이든, 권력이든 그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합니다. 이는 자신의 삶이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담대하게 설 수 없다면 좋은 날 보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심판 때 오셔서 알곡과 가라지, 양과 염소를 오른편과 왼편으로 갈라놓고 하신 말씀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예수께서 칭찬 하실 때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선하신 하나님의 자녀답게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다 주님 앞에 칭찬 듣는 모습으로 설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3.하나님의 자녀답게 항상 화평을 도모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욥은 그의 믿음의 고백대로 불 시험의 고난을 통과한 후 모든 것이 회복되는 은총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그 전에 하나님께서 욥과 세 친구들에게 명하신 일이 있습니다. 세 사람에게 ‘수소 일곱과 수양 일곱을 가지고 욥에게 가지고 가서 너희를 위해 번제를 드리라 내 종 욥이 너희를 위해 기도할 때 내가 받으리라’(욥42:8) 명하실 때 순종했습니다. “욥이 그 벗들을 위하여 빌매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욥에게 그전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42:10)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욥을 곤경에서 돌이키기 전에 먼저 욥과 친구 사이를 화목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화목은 하나님 앞에 서기 위해 꼭 거처야 할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화목을 방해 하는 요소가 죄입니다. 죄가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과 형벌을 받게 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화목제물이 되시어 죄의 담을 허시고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화목하게 하셨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죄의 문제를 처리하게 되면 하나님과 화목의 길이 열리게 되고 사랑과 보호와 칭찬과 상급이 따르게 됩니다.
신약 본문 11절에 ‘화평을 구하여 이를 좇으라.’했는데, 여기 화평은 헬라어로 '에이레네' 입니다. 양편을 모두 좋게 하는 행동을 뜻합니다. 좋은 날을 보기를 원한다면 하나님은 물론이고, 누구와도 불화해서는 안 됩니다. 화평을 구하고 화평을 좇아야만 합니다. 화평을 구하고 좇는 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구하며 따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을 적극적으로 본 삼고 따르라는 말씀입니다. 예배도 예물도 화목이 있은 후에 열납이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5:23-24에서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만한 일이 있는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또 예수님은 마5:9에서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화니 크로스비(Fanny Crosby)는 미국의 유명한 찬송 작사가였습니다. ‘예수로 나의 구주 삼고’, ‘오 놀라운 구세주 예수 내 주’,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등 2천여 편의 은혜롭고 감동적인 찬송시를 작사하였습니다. 크로스비는 생후 6개월 만에 시력을 잃고 시각장애인으로 92년 평생을 살았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은혜로운 찬송을 지을 수가 있었는지 한 기자가 물었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늘 만나는 사람에게 당신의 영혼에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빌었습니다. 나중에 보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빌었던 것이 다 내게로 와 어려운 환경에서도 평화를 누리며 은혜로운 찬송을 지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답게 항상 화평케 하는 자로 살다가 장래에 소망이 있는 자로 주님 앞에 설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정리합니다.
두 본문을 중심으로 “장래에 소망이 있는 자”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장래에 소망이 있는 자는,
◆.어떤 상황을 만나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믿음의 말을 하는 사람입니다.
◆.선하신 하나님의 성품을 가지고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답게 항상 화평을 도모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아멘.
<2021. 07. 28. 호현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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