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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사랑하지 말고 족한 줄로 알라 (히13:5-6)

본문

돈을 사랑하지 말고 족한 줄로 알라 (히브리서 13:5-6)


 


히브리서 13:5-6


5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6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말하되 주는 나를 돕는 이시니 내가 무서워하지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


 


 


돈을 사랑치 말라는 것은 성경에서 그리스도인들에게 대단히 강조된 명령입니다. 돈에 대한 탐욕은 타인의 권리를 생각지 아니하고 오직 자신의 욕망만을 채우는 이기심입니다. 이런 마음은 하나님보다 돈을 더 신뢰하는 것이기에 우상숭배입니다. 즉, 하나님은 해결해 주지 못하지만 돈은 해결해 준다는 그릇된 인생 가치관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돈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자이며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더라도 그 하나님은 돈을 위한 우상신이기에 복음에서 멀고 결국 많은 죄악을 낳게 됩니다.


 


그러나 인생의 행복과 영원한 안식은 돈에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저자는 현재 주어진 상황과 물질에 만족하며 그리스도 안에 거할 것을 권면합니다.


 


사도는 현재 주어진 상황에 만족해야 할 두 가지 이유를 제시합니다. 첫째는, “주께서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약속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돈을 사랑하지 아니하고 현재 주어진 상황에 만족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지켜주시고 또한 함께 하시리라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며 지켜주신다니 우리는 어떤 여건과 상황에서도 평안할 수 있습니다.  


 


사도는 또한 6절에서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말하되 주는 나를 돕는 이시니 내가 무서워하지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라고 말합니다. 이 내용은 시편 118편 6절의 내용을 인용한 것입니다. 시편 118편을 보면, 하나님께서 나를 돕고 보호하심은 내가 주를 경외하며 믿고 의지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합니다.


[


4 이제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말하기를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할지로다


5 내가 고통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응답하시고 나를 넓은 곳에 세우셨도다


6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


7 여호와께서 내 편이 되사 나를 돕는 자들 중에 계시니 그러므로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보응하시는 것을 내가 보리로다


8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사람을 신뢰하는 것보다 나으며


9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고관들을 신뢰하는 것보다 낫도다


](시 118:4-9)


 


즉, 우리가 주를 경외하며 주를 믿고 의지할 때 우리의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해 하나님이 보장하시고 나를 공격하는 자들로부터 망하지 않도록 보호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당하였을 때 주를 믿고 의지하기 바랍니다. 힘든 일을 당하였을 때, 또는 원수들이 나를 망하게 하려고 공격할 때 주를 의지하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며 떠나지 않으시며 반드시 도와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무서워하지 아니하며 절망하지 않습니다. 주를 의지하는 가운데 인내하면서 철저하게 주의 지시를 따르다 보면 반드시 어려운 상황에서 벗어나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딤전 2:2) 하게 될 것입니다. 


 


자, 본문을 좀 더 자세히 연구해 보겠습니다.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5절).


 


먼저, 5절의 “족한 줄로 알라”는 원어는 (아르케어)의 피동태인데 “만족하다”라는 뜻입니다. “있는 바”에 만족하라고 합니다. 돈을 사랑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는 게으름을 합리화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가만히 있으면서 주를 믿고 도와달라고 하면 돈을 주시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사실 게으름은 하나님 앞에서 대단히 무서운 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면 게으른 자에게는 먹을 것을 주어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


6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명하노니 게으르게 행하고 우리에게서 받은 전통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 …


10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더니


11 우리가 들은즉 너희 가운데 게으르게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을 만들기만 하는 자들이 있다 하니


12 이런 자들에게 우리가 명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권하기를 조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 하노라


](살후 3:6, 10-12)


 


사실, 이 말씀은 대단히 엄중한 말씀입니다. 즉, 믿음을 핑계로 게으름을 합리화할 수 없다는 절대적인 명령이며 말씀입니다. 우리는 게으른 사람 하나 때문에 공동체가 얼마나 주 앞에서 더럽혀지는지 철저하게 알아야 합니다.


 


게으른 자들의 그릇된 신앙관을 보면, 삶에 장애물이 올 때 ‘하나님의 섭리’라는 잘못된 이름을 붙여 놓고는 쉽사리 포기해 버립니다. 장애물은 우리가 믿음과 용기를 갖고 극복함으로 믿음이 성장하도록 하시려는 하나님의 목적이 담겨 있는데, 게으른 자는 장애물 때문에 포기하고, 포기한 상태에서 자신은 욕심이 없다고 진단하며 안일함과 불성실과 방종을 합리화 시킵니다.   


 


그러나 게으름으로 인한 가난이나 궁핍을 겪으면서 나는 믿음 안에서 자족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주께서 주신 믿음을 업신여기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런 그릇된 사고를 갖지 못하도록 바울은 자족이라는 의미를 빌립보서에서 좀 더 뚜렷하게 알려줍니다.


[


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12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 4:11-13)


자족은 여건과 상황을 초월함으로 오는 것인데, 풍부하고 배부를 때도 자족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자족은 궁핍만을 전제로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게으름으로 인한 배고픔과 궁핍은 자족과 연결될 수 없습니다.  


 


한편, 자족은 복음을 통해 삶에서 배우는 것입니다. 이에 바울 역시 자족하는 ‘비결’을 배웠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내게 능력을 주시는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누릴 수 있는 만족을 배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공관 복음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자족을 보면서 그리스도에게서 자족을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동일한 자족이라는 단어가 디모데전서 6장 8절에서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


7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8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딤전 6:7-8)


 


즉, 내가 만족을 누리는 것은 하나님 안에서 그리스도 덕분이기 때문에 단지 오늘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약간의 먹을 것과 몸을 가리거나 보호할 수 있는 옷 한 벌 정도만 있어도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먹을 것이 풍족해도 상관없고, 입을 것이 풍족해도 상관없습니다. 이는 신자는 그런 것들로 만족을 얻지 않기 때문입니다. 신자들이 항상 기억해야 하는 것은 이 세상에 올 때 아무 것도 없이 왔고, 이 세상을 떠날 때도 아무 것도 가져갈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입는 것과 먹는 것, 그리고 내가 거할 처소 등에 대해 그리 큰 관심을 가져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따르는 자는 이 땅에서 큰 집과 좋은 집에서 살고자 추구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마음으로는 예수님을 따를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어디로 가시든지 나는 따르리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니라”(눅 9:57-58).


물론 이 말씀이 무소유주의를 가르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것은 집이나 옷이나 먹는 것에 대한 것이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그분의 뜻과 나라를 이루는 것이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내게 주어지는 상황은 주 하나님의 섭리와 손에 달려있기에 나는 주께서 맡기신 영원한 보람이 있는 일에 관심을 쏟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한 영혼이라도 구원하는 것이며 한 영혼이라도 그리스도를 닮도록 내가 먼저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어 영혼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지니고 그리스도를 닮아가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족하는 자는 경건에 힘쓰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딤전 6:6).


즉, 마음이 세상 때문에 갈리지 않기 때문에 경건에 힘쓸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관심이 세상의 자랑과 육체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에 있지 않기 때문에 영원한 것에 마음을 쏟아 부을 수 있는 것입니다.  


[


1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2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3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골 3:1-3)


그러므로 세상에 속한 것들이 내게 적든 많든 자족하며, 내 마음은 오직 위의 것을 찾으며 경건을 추구함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복된 삶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자족하지 못하고 탐욕에 빠진 자들, 즉 부하려고 하는 자들은 이미 이 세상 물질이 그들의 우상이 되어 버렸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될 것입니다. 이는 탐심은 우상 숭배이기 때문입니다.  


[


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6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7 너희도 전에 그 가운데 살 때에는 탐심 가운데 행하였으나


8 이제는 너희가 탐심을 벗어 버리라


](골 3:5-8, ‘탐심’을 중심으로 부분 수정)


 


[


9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딤전 6:9-10)


 


부하려는 목적을 가진 사람은 수많은 악을 행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행복하기 위해 부를 추구하지만 도리어 많은 죄악 때문에 결국 비참하게 되고 망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돈을 사랑하는 탐욕을 버리고 신령한 것들을 추구하라고 간곡히 당부합니다.


[


11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돈을 사랑하고 추구하는 마음을 버리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12 믿음의선한싸움을싸우라


](딤전 6:11-12)


 


이처럼 사도를 통해 알려주신 그리스도의 뜻은 너무나 자명해서 우리는 주의 지시를 몰랐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 앞에 섰을 때 책망을 받고 싶지 않다면, 혹은 거짓 믿음으로 드러나 지옥에 떨어지고 싶지 않다면, 지금 당장 여러분이 추구하는 것이 돈이 되지 않도록 우상을 버리고 경건을 추구하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가 자족하지 못하고 탐심에 물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저는 세 가지를 말하겠습니다. 교만, 시기, 그리고 염려입니다.


 


첫째, 탐심은 교만에서 나옵니다. 탐심은 내 중심적인 사고에서 발생합니다. 즉, 내가 우주 중심에 서 있고 싶은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입장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뜻과 주권에 관심이 없습니다. 오직 내 입장에 관심이 있습니다. 그래서 많이 쌓고 싶은 것입니다.


 


특히 탐심은 불만과 맞물려 있습니다. 즉, 탐심이 있는 자는 만족할 줄 모릅니다. 그래서 교만한 자는 끝없이 권력과 재물을 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어디서든 “나를 어떻게 이 정도로 밖에 대우하지 못하느냐”며 늘 원망합니다. 이러한 원망을 누구에게 합니까? 사람들에게도 하고 궁극적으로는 하나님께 합니다. 하지만 죄인인 주제에 아직도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은 헛된 망상이며 교만일 뿐입니다.


[


3 악인은 그의 마음의 욕심을 자랑하며 탐욕을 부리는 자는 여호와를 배반하여 멸시하나이다


4 악인은 그의 교만한 얼굴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를 감찰하지 아니하신다 하며 그의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 하나이다


](시 10:3-4)


 


하나님은 탐심을 죄라 정하셨습니다. 십계명의 제 10계명은 정확하게 탐심의 죄를 금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탐심과 불만은 제 10계명에 걸리는 무서운 죄입니다. 이는 사실 모든 우상 숭배를 금한 것과 다름 없습니다. 즉, 주 하나님과 그리스도 외에 다른 것을 더 사랑하는 것을 금한 것입니다.


“네 이웃의 아내를 탐내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집이나 그의 밭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네 이웃의 모든 소유를 탐내지 말지니라”(신 5:21; 참조, 출 20:17).


 


바울은 문자적인 율법을 다 지킨 줄로 착각했지만, 제 10계명 그 자체가 마음을 다루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면서 죄책감을 느끼게 되고 이에 복음의 능력이 없이는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즉, 아무리 노력해도 탐심은 우리 인간의 부패한 본능이기에 인간 스스로 제거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


7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8 그러나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온갖 탐심을 이루었나니 이는 율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라


9 전에 율법을 깨닫지 못했을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


13 그런즉 선한 것이 내게 사망이 되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오직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를 죽게 만들었으니 이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 되게 하려 함이라


](롬 7:7-9, 13)


 


즉, 탐심에 대한 계명은 우리로 하여금 내가 죄인 중에 죄인이라는 사실을 드러냄으로 조금도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에 대해 핑계할 수 없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탐심이 십계명을 어기는 것이고 탐심으로부터 원망이 나오기 때문에 원망을 매우 엄중하게 다루십니다.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고전 10:10).


 


그러면 우리는 여기서 탐심으로 인한 원망이 무엇인지 구약의 여러 원망 사건들 중 한 가지 사건만 살펴보겠습니다. 그것은 민수기 11장의 메추라기 사건입니다. 4절부터 보겠습니다.


[


4 그들 중에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이 탐욕(탐심)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이르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 이스라엘 백성은 탐욕의 마음에 순식간에 물들어 버렸습니다. 그 후 어떤 반응을 보입니까? 원망입니다. */


5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6 이제는 우리의 기력이 다하여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도다 …


10 백성의 온 종족들이 각기 자기 장막 문에서 우는 것을 모세가 들으니라 이러므로 여호와의 진노가 심히 크고 모세도 기뻐하지 아니하여


11 모세가 여호와께 여짜오되 어찌하여 주께서 종을 괴롭게 하시나이까 어찌하여 내게 주의 목전에서 은혜를 입게 아니하시고 이 모든 백성을 내게 맡기사 내가 그 짐을 지게 하시나이까


12 이 모든 백성을 내가 배었나이까 내가 그들을 낳았나이까 어찌 주께서 내게 양육하는 아버지가 젖 먹는 아이를 품듯 그들을 품에 품고 주께서 그들의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가라 하시나이까


13 이 모든 백성에게 줄 고기를 내가 어디서 얻으리이까 그들이 나를 향하여 울며 이르되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라 하온즉


14 책임이 심히 중하여 나 혼자는 이 모든 백성을 감당할 수 없나이다


15 주께서 내게 이같이 행하실진대 구하옵나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즉시 나를 죽여 내가 고난 당함을 내가 보지 않게 하옵소서 /* 모세가 얼마나 힘들면 죽여달라는 말을 하겠습니까? 공동체에서 지체들의 원망과 불평은 지도자를 지키게 하고 번뇌하게 만듭니다. 이때 주께서 간섭하십니다. */


](민 11:4-15)


 


주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이들 모두에게 한 달 동안 고기를 먹게 하겠다.”


이에 모세가 말합니다.


[


21 나와 함께 있는 이 백성의 보행자가 육십만 명이온데 주의 말씀이 한 달 동안 고기를 주어 먹게 하겠다 하시오니


22 그들을 위하여 양 떼와 소 떼를 잡은들 족하오며 바다의 모든 고기를 모은들 족하오리이까


](민 11:21-22)


 


주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여호와의 손이 짧으냐 네가 이제 내 말이 네게 응하는 여부를 보리라”(민 11:23).


 


[


31 (그 후) 바람이 여호와에게서 나와 바다에서부터 메추라기를 몰아 진영 곁 이쪽 저쪽 곧 진영 사방으로 각기 하룻길 되는 지면 위 두 규빗쯤에 내리게 한지라


32 백성이 일어나 그 날 종일 종야와 그 이튿날 종일토록 메추라기를 모으니 적게 모은 자도 열 호멜이라 그들이 자기들을 위하여 진영 사면에 펴 두었더라


33 고기가 아직 이 사이에 있어 씹히기 전에 여호와께서 백성에게 대하여 진노하사 심히 큰 재앙으로 치셨으므로


34 그 곳 이름을 기브롯 핫다아와라 불렀으니 욕심을 낸 백성을 거기 장사함이었더라


](민 11:31-34)


 


사랑하는 여러분!


탐심은 이처럼 원망을 만들고 원망하는 자는 불순종하며 심지어 힘이 생기면 반역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도 불만이 생기면 흉을 보게 되고 책을 잡으려고 하고, 불순종하고, 힘이 모아지거나 기회가 오면 당을 짓고 반역함으로 공동체를 어지럽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불만과 원망은 결코 작은 죄가 아닙니다.  


[


15 경건하지않은죄인들이주를거슬러한모든완악한말로말미암아그들을정죄하려하심이라


16 이 사람들은 원망하는 자며 불만을 토하는 자며 그 정욕대로 행하는 자라 그 입으로 자랑하는 말을 하며 이익을 위하여 아첨하느니라


](유 1:15-16)


 


심지어 하나님을 향해 불만이 생기면 하나님을 융통성이 없는 분, 매우 잔인한 분, 순종을 악으로 갚는 분인 것처럼 묘사하고 떠들어댑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 분노하며 대드는 사람들입니다.


[


14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니 만군의 여호와 앞에서 그 명령을 지키며 슬프게 행하는 것이 무엇이 유익하리요


15 교만한자가복되며악을행하는자가번성하며하나님을시험하는자가화를면한다하노라


](말 3:14-15)


 


즉, 교만에서 나오는 탐심 및 원망은 하나님이 부당하다고 비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께서 사도를 통해 대답하십니다. 


“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롬 9:20-21).


 


한편, 불만과 원망은 교만에서 나오는 비이성적인 판단에 기인하여 생겨납니다. 불만과 원망은 하나님이 내 비위를 맞추어주지 않으시니 화가 난다는 것입니다. 그런 자들은 어둠 가운데 선을 이루시고, 고난을 통해 가장 소중한 것을 빚으시는 하나님의 지혜를 알지 못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경영하심에 대해 욕을 하고 분노하는 것입니다.


왜 이런 사람을 만나게 하셨습니까?


왜 이 시대에 태어나게 했습니까?


왜 하필 이런 직장입니까?


왜 나는 이렇게 돈이 없고 못 생기고 무력합니까?


왜 이런 부모를 만나게 하셨습니까?


놀라운 것은 불만은 정상적인 사고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서 불만의 상태에서 내리는 삶의 결정은 언제나 비정상적이고 악하고 어리석은 결정이라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하만은 권력과 인기를 다 차지하였지만 단 한 사람, 모르드개가 자기에게 인사하지 않자 불만이 커졌습니다. 그는 모르드개가 속한 모든 주의 백성을 멸하고자 했습니다. 이 얼마나 잔인하고 가혹한 비이성적인 결정입니까?


[


5 하만이 모르드개가 무릎을 꿇지도 아니하고 절하지도 아니함을 보고 매우 노하더니


6 … 모르드개만 죽이는 것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아하수에로의 온 나라에 있는 유다인 곧 모르드개의 민족을 다 멸하고자 하더라


](에 3:5-6)


이것이 교만과 탐심, 그리고 불만에서 생겨나는 지독한 어리석음입니다.


 


둘째는, 비교의식에서 오는 시기와 질투가 탐심과 불만과 원망의 요인입니다. 탐심을 갖게 되는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는 비교의식입니다. 항상 내 집에 만족하며 살아왔는데 어느 날 다른 사람의 집에 갔다고 그 집을 보고 나서 내가 사는 집이 갑자기 너무 초라하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그 다음 날 이후로 탐심을 갖게 됩니다. 즉, 돈이 많아야 큰 집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돈에 욕심을 내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마음 속에 들어온 탐심은 나중에 큰 집을 얻게 되어도 만족하지 않고 계속 탐욕을 부리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은 남의 집을 보며 부러워하는 그 순간부터 평생 탐심의 사람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런 대표적인 사례로 아합 왕이 있습니다. 그가 나봇의 멋진 포도원을 보기 전까지는 선한 사람을 죽이는 악한 일까지는 하지 않았는데 그의 포도원을 본 후 결국 나봇을 죽이고 빼앗는 자리까지 나아가게 됩니다.


[


2 아합이 나봇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 포도원을 내게 주어 채소 밭을 삼게 하라 내가 그 대신에 그보다 더 아름다운 포도원을 네게 줄 것이요 만일 네가 좋게 여기면 그 값을 돈으로 네게 주리라


3 나봇이 아합에게 말하되 내 조상의 유산을 왕에게 주기를 여호와께서 금하실지로다 하니


4 … 아합이 근심하고 답답하여 왕궁으로 돌아와 침상에 누워 얼굴을 돌리고 식사를 아니하니


5 그의 아내 이세벨이 그에게 나아와 이르되 왕의 마음에 무엇을 근심하여 식사를 아니하나이까


6 왕이 그에게 이르되 나봇이 그의 포도원을 주지 아니하겠노라 하기 때문이로다


7 그의 아내 이세벨이 그에게 이르되 왕이 지금 이스라엘 나라를 다스리시나이까 일어나 식사를 하시고 마음을 즐겁게 하소서 내가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포도원을 왕께 드리리이다 하더라


](왕상 21:1-7)


 


그 후 여왕은 깡패들을 동원하여 거짓 증인으로 세워 나봇이 왕과 하나님을 저주하는 것을 들었다고 하며 돌로 쳐죽입니다.


 


이처럼 권력과 탐심이 힘을 합치면 큰 악을 서슴지 않고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큰 죄악에 빠지기 전에 신속하게 탐심을 회개하고 자족하는 삶으로 돌아오기 바랍니다.


 


또한 원망은 자신에게도 많은 해를 끼칩니다. 불만은 마음의 평화와 평강을 앗아갑니다. 번뇌하는 마음 상태는 심적인 에너지를 고갈시킵니다. 불만은 마음의 모든 즐거움과 감사를 어둠으로 던져 버리고 스스로 쓴 맛을 느끼며 슬픔과 염려에 빠집니다. 그 후 아합 왕의 경우처럼 앓아 눕기 십사이며 병마 및 사망으로 신속하게 이어지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 갖고 싶은 것을 다 가져도 만족함이 없는 심령은 아무 것도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와는 마귀의 음성을 듣고 불만을 느꼈고, 아담은 하와의 음성을 듣고 불만을 느꼈습니다. 그들은 다른 모든 열매를 먹을 수 있는 것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잃고, 먹지 못하게 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실과 때문에 하나님께 반역 죄를 짓게 됩니다. 그러나 그들은 모든 것을 잃고 죽음에 이르게 되었으니 자신에게 가장 끔찍한 해를 끼친 셈입니다.


 


심지어 자살 역시 불만에서 비롯될 때가 많습니다. 특히 누군가에게 아픔을 주기 위해 자살한다면 그것은 불만 때문입니다. 불만과 원망 가운데 지독히 어리석은 판단을 한 것입니다. 물론 이때 이런 마음에는 반드시 교만이 담겨 있습니다. 즉, 내가 받아야 할 마땅한 대우를 받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탄은 불만을 느끼는 심령을 찾아 다니다가 찾으면 곧바로 거짓의 음성을 들려주고, 불만의 감정에 맞장구를 쳐줍니다. 그러면 불만을 느끼던 마음은 쾌감을 느끼면서 사탄의 편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단은 언제나 바른 교회에 속하여 있으면서도 불만을 느끼는 심령을 찾아 다니다가 걸리면 잡아 삼키는 것입니다.


 


이처럼 비교의식에서 생겨나는 질투는 가장 강렬한 불만을 불러일으킵니다. 신기한 것은 불만은 복음의 은혜를 대적하는 특이한 요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베푸신 모든 선한 일들을 망각하고 화를 내고 있고, 그래서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 앞에서 안위를 받기보다 차라리 하나님을 대적을 하며 망하기를 자처합니다.


 


그러므로 지옥은 하나님을 향해 불만을 느끼는 자들끼리 함께 모여 있는 곳이 될 것입니다. 그들은 그 어떤 미소도 없이 끝없이 투덜거리며 서로 원망하며 하나님을 향해 격노하며 영원한 어둠과 불꽃 속에 머물게 될 것입니다.


 


셋째는, 염려입니다. 염려는 하나님을 불신하고 원망하는 상태입니다. 염려 역시 남들과 비교하는 의식에서 발생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염려할 때 탐심이 생깁니다. 그러나 성경은 믿음을 권합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 4:6).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벧전 5:7).


 


[


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마 6:24, 31-32)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눅 21:34).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이 예배와 함께 자족을 배우기 바랍니다. 자족하기 위해 겸손하기 바랍니다. 겸손은 나의 악독함과 죄악 됨을 알고 늘 회개하며 그 자리에 있지 않기 위해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겸손한 자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악함과 무가치함을 알기 때문에 불만이라는 것은 그에게 지나친 허영 및 썩어빠진 자존심일 뿐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보시는 내 모습은 어떠한지 늘 주의 시선으로 나를 볼 수 있기 바랍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든 그것이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나를 창조하시고 나를 구원하신 주께서 나를 어떻게 보시는지가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내가 누리는 모든 것이 주께서 주신 것인데, 무엇이 두렵고 무엇이 그리 부럽습니까?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 있다면 평온과 평안을 얻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이미 얻은 상태입니다. 즉, 외부 환경에 의존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만족의 상태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족을 배운 다윗 역시 쫓기는 피곤한 삶 속에서 이런 고백을 하였습니다.


[


5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6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시 23:5-6)


 


즉, 그리스도를 믿고 연합한 겸손의 상태는 성령이 충만한 상태로서 그 마음 안에 천국이 실재합니다. 따라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 반드시 차고 넘치는 것입니다.  


 


이에 마리아는 하늘의 희락을 놓치지 않기 위해 주님 발 앞에서 겸손히 주의 말씀을 듣는 것을 택하였습니다.


“마리아가 주의 발치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라. … 주께서 이르시되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눅 10:39, 41).


즉, 자족은 선택의 문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돈을 사랑하지 말고 족한 줄로 여기며 내게 주어진 자리에서 주의 지시를 따르기 바랍니다. 그것이 성도의 본분입니다.


[


20 각 사람은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 …


23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


24 형제들아 너희는 각각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


](고전 7:20, 23-24)


 


과거를 탓하지도 말고 현재를 탓하지도 말고, 내게 주어진 여건 그대로, 지금 건강, 지금의 위치, 지금의 신분, 그 상태에서 오늘 지금부터 하나님의 지시를 철저하게 따르기 시작하는 것이 자족하는 비결입니다. 그렇지 않고 과거나 현재를 탓하는 것은 불만의 원인으로써 오직 현재의 여건과 상태를 악화시킬 뿐입니다.


 


또한 신기한 것은 자족을 배우면 욕망을 다스리는 것을 배우게 되고, 썩어질 세상의 것 때문에 주눅 드는 일이 없게 됩니다. 시기할 것도 없게 되고 단지 주 앞에서 바르게 살며 주께 인정 받고자 하는 것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각각 자기의 일을 살피라 그리하면 자랑할 것이 자기에게는 있어도 남에게는 있지 아니하리니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이라”(갈 6:4-5).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우리보다 더 잘 아십니다. 나의 불만의 원인은 나의 환경이 아닙니다. 만약 그렇다면 환경의 변화로 불만이 해결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불평하는 죄성은 환경을 바꾼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불만의 원인은 우리 안에 있습니다. 우리의 내면 깊은 곳에 있습니다. 그곳은 오직 무한하신 하나님만이 만족을 시킬 수 있는 곳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으로 인한 만족 외에는 인간의 탐욕과 불만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 뵙지 못하는 한, 그 어떤 사람도 허무와 욕심과 탐심과 불만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신자들은 주님이 친히 성령을 통해 주시는 하늘의 평안을 맛봅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7).


세상에서는 폭풍우가 강하게 불고 있고 큰 배가 난파되어 부서져 있더라도, 주께 속한 영혼은 그 거친 파도 가운데 바다로부터 우뚝 솟아나 있는 든든한 바위의 틈새에 조용히 앉아 쉼을 누립니다. 이것이 자족하는 상태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과 자비, 그리고 무엇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죄를 사해 주시고 또한 주의 생명을 주셨으며 장차 영원한 기업을 마련해 주셨다는 것을 알고 그리스도로 인하여 즐거워하며 기뻐합니다. 그들은 주의 당부에 따라 모든 일에 감사하게 됩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8).


 


그러므로 불만이 마음에 생겨나면 나는 지금 마귀에게 속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당장 회개하고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붙들기 바랍니다. 그러면 불만이나 불평이 우리 마음과 입에서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어느새 기쁨과 감사가 싹트고 감사할 일들이 너무 많아서 하나님과 그리스도께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주 기도하며 주께 마음을 쏟아 놓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어느새 기도의 응답을 확증하게 되면서 평안이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주 크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입니다.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눅 12:15).  


 


명품을 사서 몸에 장식하는 것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곳에 돈을 사용하였을 때 오는 보람과 만족을 아십니까? 그런 마음은 돈을 사용할 줄 아는 마음으로서 그 마음이 돈에 묶여 있지 않다는 증거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 마음 깊은 곳에 주시는 영원한 하늘의 미소를 맛봅니다.


 


고린도후서는 주를 위해 물질을 사용하는 기쁨과 복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


6 적게 심는 사람은 적게 거두고, 반대로 넉넉하게 심는 사람은 넉넉하게 거둡니다.


7 각자 자기가 마음에 결정한 대로 내고, 내키지 않는 마음이나 억지로는 내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기쁘게 내는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8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모든 선한 일을 넘치게 할 수 있도록 여러분에게 모든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


10 씨 뿌리는 자에게 씨를 주시고, 먹을 양식을 주시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씨앗을 주시고 그것을 성장시키셔서 여러분이 거둘 의의 열매가 많아지게 하실 것입니다.


11 여러분은 모든 면에서 부유하여 넉넉하게 헌금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바친 헌금을 우리가 전달하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12 여러분이 행한 이러한 봉사는 성도들의 부족한 부분을 채웠을 뿐만 아니라, 그것으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많은 감사를 드리게 될 것입니다.


13 여러분이 바친 헌금은,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고 순종한다는 것과 여러분이 그들이나 다른 모든 사람들을 너그럽게 도와 주었다는 증거이므로, 그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


14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보이신 놀라운 은혜로 인해 깊은 애정을 가지고 여러분을 위해 기도할 것입니다.


15 말로 다할 수 없는 선물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고후 9:6-8, 10-15; 쉬운 성경)


 


자족하는 신자들은 아들까지도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주신 무한한 사랑으로 사랑하신 선하신 하나님을 믿기에 기회가 주어지기만 하면 선한 일을 행하는데 인색하지 않습니다. 이에 자족하는 마음은 선을 멈추지 않으며 계속 밀고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때가 되면 선행의 결실을 반드시 보게 되는 것입니다.


[


17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18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19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딤전 6:17-19)


 


[


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10 그러므로우리는기회있는대로모든이에게착한일을하되더욱믿음의가정들에게할지니라


](갈 6:9-10)


 


오늘도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자족을 배우며 우리 마음 속의 탐심을 회개하고 거절하기 바랍니다. 롯의 아내처럼 되기 전에 신속히 영원한 것에 마음을 두기 바랍니다. 이 세상은 불안한 세상입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인자하심을 믿고, 우리 주 그리스도의 완전한 다스림을 믿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려고 하지 말고, 돈을 많이 벌려고 하지 말고, 그 대신 거룩함과 진실함과 우정과 신용으로 인정 받는 정직하고 경건한 거룩한 주의 자녀들이 되는 것에 마음을 두고 힘쓰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역사하는 분이시기에 그러한 믿음의 자녀들에게 영원한 보람을 안겨 주시며 영원한 미소를 허락하실 것입니다. 결코 그를 버리지 않으시며 그를 떠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는 나를 돕는 이시니 우리는 두렵지 않습니다. 고작 썩어지는 이 세상의 인간들이 주 안에 있는 우리를 어찌하겠습니까? 언제나 주 안에서 하늘의 평강과 영원한 보람을 위해 지혜롭게 살 수 있는 아름다운 믿음의 자녀들이 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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